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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화 얘기는 완전히 날조 조작된 이야기라고 밝혀짐

김희로의 이 증언은 결혼 연도(1950), 홍콩 촬영(1958), 임화수의 공작, 이혼 시점(1962), 친부의 사망 등 구체적인 연대와 행위가 명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스토리만 자극적으로 설정해 놓고 연도조차 밝히지 않은 김현철의 칼럼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당대 영화계 내부자의 직접적 회고라는 점에서 사료적 신뢰도 또한 압도적으로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출처: 김희로, 『부산영상위원회 리포트(BFC Report)』 2004년 가을호] 여기서 또한 주목해야 할 역사적 사실은 김삼화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인 임화수의 최후다. 임화수(본명 권중각, 1921~1961)는 이승만 정권 시절 정치깡패이자 영화 제작자로, 연예계 전반을 장악한 영향력 덕에 이른바 '연예계의 황제’로 군림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를 법의 심판대에 세운 주체가, 다름 아닌 박정희였다. 5•16 직후 박정희 군부는 연예계 정화와 정치 깡패 척결을 명분으로 임화수를 체포해 군사재판에 회부했고, 그는 이정재 등 다른 정치깡패들과 함께 1961년 12월 21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결국 김삼화를 괴롭혔던 영화계의 ‘암종’을 제거한 실체적 주체는 박정희였으며, 그런 박정희를 도리어 김삼화의 가해자로 둔갑시킨 김현철의 스토리는 사실의 인과를 정면으로 뒤집어 ‘가해자’와 ‘단죄자’를 뒤바꾼 역사적 기만이다. -- 김삼화를 그렇게 만든것은 박정희가 아니라 임화수입니다. 오히려 박정희는 김삼화 한을 풀어 줬겠네요. 한국에서 하면 철컹철컹 될 거니까., 미국에서 기자노릇한다면서 말도 안 되는 소설 만들어서 박정희 대통령 명예 훼손시키고 결국 고발당해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유포한 사람들 벌금 먹게하고 참 잘한다 그죠? 사실은 박정희는 김삼화 삶에서는 영웅인데 뜬금포 가해자로 둔갑시키고, 좌파들 악랄한 거 말도 못 하죠. 박정희 관련된 모든 여자들에 대한 썰들이 이렇게 왜곡되고 부풀려지고 둔갑이 됩니다. -- 김삼화의 실제 삶의 궤적에 대해서는, 1960~70년대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며 명신필름 사장을 지낸 김희로의 회고가 가장 구체적이다. 『부산영상위원회 리포트(BFC Report)』에 실린 그의 기고문은 김삼화의 은퇴와 이혼을 둘러싼 루머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날조인지를 실증적으로 증명한다. 김희로는 당시 영화계 내부자로서 김삼화의 사연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당대의 인기배우 김삼화가 어느 날 갑자기 은막 뒤로 사라지게 된 데는 남모를 몇 가지 사연이 있다. 1950년에 결혼한 김삼화의 결혼생활은 길지 못했다. 그가 결혼 12년 만에 이혼하게 된 데는 당시 한국 영화계의 암종과 같았던 한국 반공예술인단 단장 임화수의 악역이 작용하였다. 1958년 영화 촬영을 위하여 홍콩에 간 김삼화의 뒤를 따라 홍콩에 가 김삼화를 유혹해 보려던 임화수의 계획이 실패하자 서울로 먼저 돌아온 임화수는 홍콩에서 자신이 김삼화를 범했노라는 뜬소문을 퍼트려 남편과의 사이를 벌어지게 하고 끝내는 1962년에 이혼에 이르게 된다. 자존심 강한 김삼화로서 참으로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무렵 남달리 딸을 사랑했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김삼화는 방황하기 시작했고 은막과도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세상에는 뜬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녀가 습관성 마약을 한다던가, 제3세계의 외교관들과 놀아났다던가 하는 근거 없는 뜬소문으로 김삼화는 심한 정신적 공황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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