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다음 날, 그레이스는 도저히 뺄 수 없는 과외 알바가 있어서 결국 콜트를 데리고 집을 나왔음. 시급이 유독 높은 부잣집 과외라 한 번이라도 빠지면 잘릴 게 뻔했기에 이틀밖에 없는 시간마저 온전히 같이 보내지 못하는 처지가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지. 그레이스는 과외 집 근처에 있는 제법 근사한 카페에 콜트를 앉혀놓았음. 미안함이 가득 차오른 얼굴로 현금을 쥐여주며 먹고 싶은거 다 시켜 먹고 얌전히 기다려달라고 신신당부를 한 뒤, 서둘러 과외를 하러 뛰어갔음. 두 시간이 지나 과외가 끝나자마자 그레이스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카페를 향해 뛰어왔음. 멀리서 카페 유리창 너머로 콜트의 모습이 보였어. 테이블 위에는 처음에 주문해 준,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 달달한 초코 밀크쉐이크 잔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지. 콜트는 길 건너편을 보면서 의자 아래로 다리를 길게 내리고 발끝을 까딱거리고 있었음.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며 서둘러 걸어오던 그레이스의 머릿속에 문득 옛날 기억이 스쳐 지나갔음. 아주 어린 시절부터서 제 껌딱지였던 콜트는 제가 화장실에 가거나 무얼 하느라 기다려야 할 때면 꼭 저렇게 의자에 앉아 발을 까딱거리곤 했거든. 덩치는 훌쩍 컸는데 사소한 버릇은 여전히 그대로였어. 어른들로 그득한 낯선 카페 안, 쨍한 햇살을 받아 유독 투명하게 반짝이는 동생의 옅은 금색의 머리칼이 그레이스의 눈에 아프도록 선명하게 들어왔음. 걸음이 천천히 느려졌고, 그저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지. 먼 곳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린 콜트가 멀리서 걸어오는 그레이스를 발견했음. 그 순간 볼이 발그레해지며 방긋 웃는 동생의 말간 얼굴을 마주하자 그레이스는 가슴 깊은 곳에서 참기 힘든 충동이 일었어. 당장이라도 저 말간 뺨을 붙잡고 부서지도록 뽀뽀를 해주고 싶다는 조금 비틀린 열망이었어. 하지만 그레이스는 이를 악 물고 턱에 힘을 주며 겨우 표정을 가다듬고 벌떡 일어난 콜트에게로 서둘러 걸어갔음. 오후 시간에는 다행히 여유가 좀 있었음. 그레이스는 콜트와 점심을 먹고 바닷가로 향했어. 이곳의 바다는 플로리다와는 완전히 달랐어. 집 집마다 서핑 보드가 굴러다니는 플로리다의 잔잔한 바다와 달리, 샌프란시스코는 파도가 집어삼킬 듯이 높고 거셌거든. 콜트 같이 아직 어린애는 감히 서핑 보드를 띄우지도 못할 만큼 무시무시한 파도였지. 두 사람은 모래사장에 나란히 앉아 먼바다를 바라보았어. 콜트는 무릎을 모아 쥔 채 어릴 때 보았던 바다랑 느낌이 많이 다르다며 신기한 듯 중얼거렸어. 그레이스는 세찬 바닷바람에 쉴 새 없이 휘날리는 콜트의 밝은 머리카락을 커다란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었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나 물에 들어가 볼래." "엄청 차가울걸. 플로리다 바다 생각하면 안 돼." 그레이스가 나지막히 말렸지만 콜트는 괜찮다며 들어가겠다고 바득바득 우겼어. 그레이스가 어떻게 이겨 먹겠어, 결국 작게 웃으며 한 걸음 물러나 주었지. 콜트가 모래사장에 벗어던진 운동화 안에 양말을 쑤셔 넣고 손가락에 걸어 들고는 멀지 않은 곳에서 콜트를 바라보았어. 그레이스는 한쪽 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이 넣은 채 맨발로 서 있는 콜트의 발끝을 가만히 눈으로 쫓았음. 하얀 모래 입자가 까슬하게 묻은 콜트의 발과 매서운 바닷바람에 사방으로 흐트러지며 햇빛을 받아내는 찬란한 금발 같은 것들이 그레이스의 시선에 고스란히 담겼지. 안개와 파도 때문에 사시사철 어둡고 축축한 샌프란시스코의 무채색 풍경 속에서 오직 제 동생인 콜트 혼자만이 이질적일 정도로 환하게 반짝이고 있었음. 그 눈부신 괴리감이 감격이 되어 그레이스의 가슴을 가득 채웠어. 콜트는 바짓단을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리고는 하얗게 부서지는 물가로 조심조심 걸어 들어갔어. 하지만 파도가 발목에 닿자마자 "악!" 소리를 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음. 물 온도가 그야말로 얼음장처럼 차가웠거든. 뒤에서 그레이스가 으하하 웃자 약이 오른 콜트가 차가운 바닷물을 손에 묻혀 그레이스를 향해 뿌렸음. "야, 차가워!" 그레이스가 인상을 쓰며 질색하자 콜트는 히히 웃으며 물가에서 뛰어 나와 대뜸 그레이스의 목을 와락 감아쥐었어. 갑작스럽게 제 목덜미를 파고드는 얼굴과 어깨 위로 훅 실리는 무게감에 그레이스는 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중심을 잃었음. 이제 제법 뼈대가 단단해진 사내애라 힘도 만만치 않아서 두 사람은 모래사장 위로 엉망으로 엉겨 붙으며 엉덩방아를 찧었지. 그레이스는 제 몸 위로 완전히 엎어지듯 쏟아진 콜트의 허리를 마주 안아주었음. 그런데 품에 맞닿은 콜트의 몸이 미세하게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어. "추워? 거봐, 차갑다고 했잖아." 그레이스가 나직하게 물었지만 콜트는 제 목덜미에 고개를 푹 파묻은 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어.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는 게 의아해서 그레이스가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동생의 안색을 살폈어. 제 어깨에 짓눌린 콜트의 등이 미세하게 들썩이고 있었음. 이런... 그레이스가 나지막하게 읊조렸음. 그와 동시에 살갗에 축축하고 더운 눈물이 번졌어. 형이랑 같이 있는 순간이 이렇게 좋은데 당장 내일이면 다시 비행기를 타고 대륙 반대편으로 헤어져야 한다는 현실이 어린 동생을 무너뜨린 거였지. 그레이스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음. 그러고는 제 다리 사이로 동생의 마른 몸을 깊숙이 끌어당겨 가두듯 꽉 안아주었어. 자신이 입고 있던 두툼한 점퍼를 벗어 콜트의 떨리는 어깨 위로 꼼꼼하게 둘러주고는 온기가 전해지도록 콜트의 등과 팔을 단단하게 감싸 쥐며 연신 쓸어내렸음. 그레이스는 제 품에 파묻힌 콜트의 부드러운 머리통에 깊게 입을 맞춰주었음. 이어 눈물이 고여 축축하게 젖어 든 눈가에도, 차가운 바닷바람에 발갛게 달아오른 뺨에도 차례로 제 자국을 꾹 묻었어. 형의 살결이 닿을 때마다 콜트는 더 서러워져서 목을 감아쥔 팔에 힘을 더 꽉 주며 매달렸지. 처음에는 소리도 안내고 어떻게든 울음을 참아보려고 애쓰던 콜트가 결국엔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울음을 터뜨려버렸음. 이제 다 컸으니까 울면 안되는데, 내가 울면 형도 슬플텐데... 그레이스의 다정한 손길을 받으니 생각과는 다르게 어리광이 터져나왔어.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그레이스의 어깨에 짓뭉개며 숨이 넘어갈 듯이 웅얼거렸어. "흐으엉, 라이... 나 진짜 가기 싫어. 안 갈래..." "콜트." "그냥 나 여기 살면 안돼? 나 형이랑 같이 있고 싶어, 형아... 나 두고 가지 마아..." 제 목에 매달려오는 동생의 애원에 그레이스는 심장이 통째로 쥐여짜이는 것 같았지. 그레이스는 가쁘게 숨을 내쉬며 웅얼거리는 콜트의 붉어진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음. 두 사람의 숨결이 서로의 턱끝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그레이스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어. "울지마, 콜트. 형이 미안해." 형의 입에서 나온 덤덤한 사과에 콜트가 히끅거리며 고개를 저었어. 형이 미안할 게 없는데, 제 철없는 투정 때문에 형을 난처하게 만든 건 저인데도 형은 언제나 제 탓을 하고 있었어. 그레이스는 물기가 축축하게 배어있는 동생의 얼굴을 제 커다란 손으로 감싸 쥐며 말을 이어갔음.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딱 3년만 더... 그럴 수 있지?" "흑, 으응. 흐으, 기다릴 수 있어." "형아가 자꾸 전화 놓쳐서 미안해. 이제 진짜 절대 그럴 일 없게 할게. 매일 밤마다 네 목소리 들으러 갈 거야. 약속해." 그레이스는 제 품에 무너져 내린 콜트를 더 강하게 감싸 안았음. 콜트는 형의 점퍼 자락을 손에 꼭 쥔 채 어깨의 떨림이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그 품에 얼굴을 묻고 있었어. 밀려드는 파도 소리와 서늘한 바닷바람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모래사장 위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에만 매달린 채 그렇게 한참 동안을 미동도 없이 끌어안고 있었음.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세계이자 전부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한 번의 무모한 일탈 이후로 콜트는 형에게 폭 안겨서 약속했던 것처럼 형의 말을 잘 듣는 아이로 돌아갔음. 여전히 그레이스처럼 열심히 책을 파고들진 않았지만 학교 수업에 꼬박꼬박 출석을 하고, 방과 후엔 친구들과 바다로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오후 7시가 되기 전에 시버스네 집으로 돌아왔음.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고, 저금을 하기까지 했어. 매일 밤 이불 속에서 이어지는 페이스타임은 여전했고, 콜트는 형에게 새로 배운 서핑 기술이나 알바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빠짐없이 해주었어. 그레이스 역시 제 목표를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고등학교 내내 전교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어. 그리고 원하던 명문 대학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진학하게 되었음. 이는 곧 만 18세, 법적인 성인이 되었음을 의미했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늘 무력한 미성년자로 묶여 있던 그레이스에게, 드디어 제 동생을 합법적으로 데려와 보호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가 쥐어진 거였지. 휴먼다큐가 되어가는 중... 배덕한거 언제봐...ㅠ 고슬고슬 그레이스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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