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편: # 20편(외전1): # 20편(외전2): # 21편: # 22편: # 23: # 24: # 25: # 루크딘 ㅇㅇ딘 “각오하시지, 만달로리안!” 오후 볕이 나른하게 내려앉은 사원 마당 한가운데에서 초록빛 광선검이 길게 뻗어 나왔다. 루크는 검 끝을 비스듬히 겨눈 채 한 발을 뒤로 빼고 섰다. 로브 자락이 바람에 펄럭였다.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과장된 자세였고 본인도 그걸 아는지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려 했다. 맞은편에 선 딘은 대답 대신 헬멧의 턱 부분을 한 번 고쳐 잡았다. 흉갑부터 정강이 보호대까지, 베스카 한 조각 빠뜨리지 않은 완전무장이었다. 사원에서 그가 헬멧까지 갖춰 쓴 모습을 보는 건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는 벗고 지내기로 한 약속을 딘은 그동안 성실하게 지켜 왔으니까. “말이 많군, 제다이. 오늘이 네 마지막 날이다.” 음성에는 장난기라곤 단 한 점도 섞여 있지 않았다. 루크의 눈썹이 흥미롭다는 듯 살짝 올라갔다. 이 고지식한 남자의 입에서 반말이 튀어나오는 걸 들은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이렇게나 낮고 거칠게라니. “…방금 그거 한 번 더 해 주시면 안 돼요?” “덤벼라.” 마당 가장자리 돌계단 위에 앉아 있던 그로구가 귀를 쫑긋 세웠다. 작은 두 손을 가슴 앞에 꽉 쥔 채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영락없이 피 냄새를 맡은 웜프랫이었다. 아이의 큰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무언가 엄청난 일이 시작되려 한다는 걸 온몸으로 알고 있는 눈이었다. 딘의 손목에서 휩코드가 날카롭게 날아갔다. 루크는 몸을 비틀어 가볍게 스치듯 피하곤 초록빛 광선검을 크게 휘둘렀다. 낮게 울리며 공기를 가르는 소리에 그로구가 꺅 소리를 질렀다. 딘이 옆으로 굴러 거리를 벌리자 루크가 성큼 다가섰고 딘이 블래스터를 뽑는 시늉을 하자 루크는 검을 들어 막는 시늉을 했다. 쏘지 않기로 한 총과 닿지 않기로 한 검이 허공에서 몇 번이고 엇갈렸다. 그로구는 계단 끝에 꼿꼿이 앉아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다. 검과 휩코드가 엇갈릴 때마다 작은 주먹을 꽉 쥐고 숨을 참았다가 둘이 떨어지면 그제야 내쉬었다. 귀는 흥분으로 앞으로 바짝 서 있었다. 공방이 이어질수록 둘의 움직임이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합을 맞추듯 한 박자씩 기다려 주던 둘이, 어느새 상대를 봐주지 않고 있었다. 딘은 루크가 검을 거두는 찰나를 노려 안으로 파고들었고 루크는 그걸 알면서도 한 걸음 늦게 물러서며 딘의 접근을 유도했다. 파고든 휩코드가 루크의 발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쳤고 광선검 끝이 딘의 헬멧 바로 옆에서 멈췄다. 둘 다 숨이 조금씩 거칠어져 있었다. 루크의 입가에 걸려 있던 가벼운 장난기가 처음으로 옅어진 건 바로 그즈음이었다. 다시 한번 휩코드가 쏘아졌다. 이번엔 정확히 루크의 오른쪽 팔목을 노렸다. 그러나 줄은 루크에게 닿기 직전 허공에서 슬쩍 방향을 틀었다.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줄 끝을 집어 든 것처럼. 딘이 헬멧 안에서 짧게 숨을 들이켰을 때는 이미 늦었다. 휘어진 휩코드가 오히려 딘을 앞으로 끌어당겼고 균형을 잃은 몸이 그대로 루크 쪽으로 쏟아졌다. 루크가 그를 받았다. 한 손으로는 딘의 손목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춤 띠를 단단히 그러잡은 채였다. 묵직한 베스카가 루크의 가슴에 부딪혔고 딘은 꼼짝없이 그 품에 갇혔다. 그로구가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 하면, 이야기는 세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서고에는 오후의 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있었다. 서가는 아직 절반쯤 비어 있었다. 루크가 몇 해에 걸쳐 은하 곳곳에서 주워 모은 기록들이 한쪽 벽을 겨우 채웠고 나머지는 영링들이 오면 함께 채워 나갈 자리였다. 빈 선반에 내려앉은 먼지가 빛 속에서 천천히 떠다녔다. 긴 책상 한쪽에 그로구가 방석을 두 개 겹쳐 깔고 앉아 있었다. 한 개로는 책상 위가 보이지 않아서 루크가 하나를 더 가져다준 것이었다. 아이 앞에는 루크가 띄워 둔 홀로그램 기록이 푸르스름하게 떠 있었다. 그로구는 이따금 작은 손가락을 뻗어 빛 속을 휘저었다. 손끝이 지나갈 때마다 옛 기사들의 형상이 일렁였다가 다시 맞춰졌고, 아이는 그게 재미있는지 몇 번이고 같은 짓을 되풀이했다. 한번은 두 손을 한꺼번에 집어넣어 휘휘 저었더니 기사 셋이 한데 뭉개져 이상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로구는 그걸 보고 깜짝 놀라 손을 빼더니 형상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걸 숨죽여 지켜보았다. 다 돌아오고 나서야 안심한 듯 귀를 내렸다. 그러고는 또 손을 넣었다. 루크는 아이를 굳이 말리지 않았다. 배움의 시작이란 원래 저런 호기심에서 비롯되는 법이었다. 루크 본인도 이 아이만 할 때는 타투인의 황량한 사막에서 모래쥐나 쫓아다니지 않았던가. 딘은 책상 반대편 끝에 앉아 있었다. 헬멧은 옆에 내려놓고 흉갑을 앞에 펼쳐 둔 채 천으로 닦는 중이었다. 정비라고 하기엔 같은 자리를 너무 오래 문지르고 있었다. 이미 반들반들한 자리를 또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루크는 진작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딘의 손길이 느려질 때마다 그의 온 신경과 귀 끝이 이쪽을 향해 슬며시 기울어 있다는 것까지도. 모른 척 넘어가 주는 것 역시 수업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루크는 속으로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옛날 옛적에, 제다이 기사들은 공화국을 지키는 일을 했단다. 싸움을 멈추게 하고, 다친 사람을 돕고, 길 잃은 사람한테 길을 알려 주고.” 그로구가 홀로그램 속 기사들을 뚫어져라 보았다. 루크의 의식 언저리로 아이의 마음이 작은 물결처럼 밀려왔다. 아주 오래전에 잊고 지내던 장난감을 다락방 구석에서 다시 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아련하고 반가운 감정이었다. 나 이거 알아. 이 옷, 이 빛나는 검. 높은 천장이랑 넓은 복도도 알아. 거기서 다른 애들이랑 같이 있었어. 좋았어. 물결이 반짝거렸다. 루크는 그 반짝임 속에서 아주 짧게, 그로구가 기억하는 풍경의 끄트머리를 보았다. 높다란 창으로 쏟아지는 빛, 작은 로브를 입은 아이들,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어른의 손. 그로구는 그 시절을 바로 그곳에서 보냈다. 정작 스승인 루크는 단 한 번도 발을 디뎌 보지 못한 옛 제다이 사원의 풍경이었다. 아이가 루크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꺄하 하고 짧은 소리를 냈다. 제 과거를 알아봐 달라는 듯 꽤나 자랑스러운 어조였다. 루크는 아이에게서 밀려오는 그 스스럼없는 마음의 물결이 참 좋았다.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에게 이보다 기쁜 순간은 없었으니까. 비록 이번만큼은 제자가 스승보다 먼저 경험하고 알고 있던 영역이었지만 말이다. “그래, 이미 잘 알고 있구나. 광선검이란다. 제다이는 언젠가 자기만의 검을 직접 만드는 법이지. 너도 조금 더 자라면 너만의 검을 만들게 될 거야.” 그 말에 그로구의 귀가 반가운 듯 쫑긋 섰다. 동시에, 책상 저편 끝에서 슥슥 천을 문지르던 단조로운 소리가 아주 잠깐 뚝 멈췄다. 곧이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무덤덤하게 천이 베스카를 닦아내기 시작했지만, 루크는 밀려오는 웃음을 가만히 삼켜야 했다. 저 사람은 아이가 언젠가 광선검을 들게 될 거라는 말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디 섭섭함보다는 기쁨이었으면 좋겠다고 루크는 내심 바랐다. 루크는 손짓으로 다음 홀로그램 기록으로 장을 넘겼다. 이번에는 갑옷을 입은 전사들의 흐릿한 형상이 떠올랐다. 어깨에 각이 진 장갑, 등에 멘 제트팩, 그리고 가운데에 T자 틈이 난 헬멧. 그로구의 길쭉한 귀가 번쩍 솟아올랐다. 아이는 홀로그램 쪽으로 몸을 쭉 내밀더니 고개를 휙 돌려 책상 끝을 보았다. 딘의 무릎 옆에 놓인 헬멧이랑 홀로그램 속 헬멧을 번갈아 보았다. 똑같았다. “그래, 만달로리안이야. 아빠와 같은 사람들이지.” 딘의 손이 흉갑 위에서 멈췄다. 이번에는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제다이와 만달로리안은 아주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어. 만나면 서로 무기를 겨눴고…” 말을 다 맺기도 전이었다. 물결 같던 아이의 마음이 갑자기 사나운 파도가 되어 루크를 덮쳤다. 그것은 순수한 의문이었다. 크고 둥글고, 도무지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납득할 수 없다는 거대한 물음표였다. 그로구는 루크를 보고, 딘을 보고, 다시 루크를 보았다. 아이의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들이 포스를 타고 줄줄이 흘러들었다. 아침마다 딘의 뺨에 입을 맞추는 루크. 밤마다 한 이불을 덮는 두 사람. 그로구가 자다 깨면 양쪽에서 동시에 뻗어 오는 손. 밭에서 돌아오는 딘을 마중 나가는 루크. 루크의 옷깃을 바로잡아 주는 딘. 이런데 사이가 안 좋다고? 포스를 타고 너무나 선명하게 전달되는 아이의 정확한 지적에, 제다이 마스터인 루크조차 순간 목이 막혀 헛기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건 옛날 일이고. 지금은, 음.”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딘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정작 딘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루크를 마주 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아이의 다정한 아빠이자 루크의 애인이었다가 갑자기 은하계 역사의 숙적으로 소개되어 버린 남자의 표정이었다. “지금은 아주, 아주 사이가 좋단다.” 그로구의 귀가 반쯤 내려갔다. 어설픈 대답으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이의 의문은 줄어들기는커녕 한 겹 더 단단해져서 루크의 의식을 콕콕 찔러 댔다. 왜. 왜 싸웠는데. 지금 좋으면 옛날에도 좋았어야지. 왜. 루크는 아이가 포스로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질문할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어진 것은 딘의 목소리였다. 딘은 어느새 베스카를 닦던 천을 내려놓고 무뚝뚝하게 팔짱을 낀 채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얼굴이었다. “제다이와 만달로리안은 대체 왜 싸운 겁니까?” 루크는 얼떨결에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자린 씨도 모르세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만달로리안이시잖아요.” “저는 평화를 좋아합니다.” 딘이 지극히 진지하게 말했다. 심지어 은근한 억울함까지 짙게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루크는 당장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 안쪽을 깨물어야 했다. 밤마다 머리맡에 블래스터를 고이 모셔 두고 잠드는 사람이 할 소리는 전혀 아니었지만 헬멧을 벗은 그 얼굴이 너무나 곧고 진지해서 감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딘은 정말로 몰랐다. 배운 것은 오직 길과 맹세였다. 헬멧을 벗지 않는 법, 무기를 손질하는 법, 파운들링을 거두는 법,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놓인 한마디. 이것이 길이다. 제다이가 오랜 숙적이라는 이야기 역시 어디선가 지나치듯 들은 기억은 있었다. 아마 첫 갑옷을 맞추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를 굳이 물어보는 아이는 없었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어른 또한 없었다. 적은 그저 적일 뿐이었다. 이유는 필요치 않았다. 그런데 그 오래된 적이 지금 눈앞에서 그로구의 방석을 바로잡아 주고 있었다. 매일 아침 딘의 잔에 따스한 차를 따르고, 혼자서는 손이 잘 닿지 않는 갑옷 등 끈을 대신 매어 주며, 밤이면 딘과 단둘이 한 침대를 쓰는 사람. 심지어 베개마저 딘 쪽으로 자꾸만 잡아당겨 끌어오는 사람. 다른 만달로리안들이 이 광경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딘은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상상해 봤자 어차피 다들 헬멧을 쓰고 있어서 표정 따위는 보이지도 않겠지만. “선생님은 알고 계실 것 아닙니까. 제다이이시니까요.” 이번엔 루크가 말문이 막힐 차례였다. “그게, 그러니까…” 루크는 난처한 표정으로 홀로그램 기록을 앞뒤로 바쁘게 넘겼다.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기록되어 있었다. 언제쯤, 어떤 행성 근처에서 부딪쳤는지 띄엄띄엄 적힌 파편 같은 기록도 존재했다. 그러나 대체 ‘왜’ 두 세력이 싸우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넘기고, 또 넘겼다. 그로구가 목을 쭉 빼고 홀로그램을 따라다녔고, 어느새 딘마저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책상 가운데로 다가와 있었다. 어느덧 셋이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고 푸르스름한 홀로그램을 들여다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오래된 기록일수록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렇게 비어 있는 자리는 대개 가장 결정적이고 궁금한 대목이었다. “…기록이 없네요.” 루크는 제국이 들어선 해에 태어났다. 제다이 사원이 불타던 시절의 일은 남의 이야기로 들었고, 교단이 멀쩡하던 시절은 본 적도 없었다. 그가 아는 제다이의 역사란 사막 한가운데 오두막에서 오비완에게 들은 몇 마디와, 늪지 행성에서 요다에게 꾸중 들어 가며 배운 몇 가지, 그리고 그 뒤로 은하를 떠돌며 한 조각씩 주워 모은 기록이 전부였다. 이 서고의 절반이 비어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럴 때 마음 편히 물어볼 수 있는 진짜 스승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오비완 스승님이라면 알고 계셨을 것이다. 구백 년의 세월을 살아낸 요다 스승님라면 더더욱 잘 알고 계셨으리라. 어쩌면 그 오랜 전쟁의 한 자락을 직접 보았을지도 몰랐다. 두 스승은 지금도 가끔 포스영의 상태로 루크를 찾아오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그분들이 오고 싶을 때뿐이었다. 제자가 부른다고 오시는 분들이 아니었고, 정작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해서 다정하게 대답해 주는 분들도 아니었다. 루크는 오래전에 기다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기다리는 대신 직접 은하를 뒤져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법을 배웠다. 빈 서가를 하나씩 채워 온 것도 그래서였다. 그래도 이렇게 아이가 모르는 것을 물어 올 때 대답 대신 빈 기록만 내밀어야 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조금 쓸쓸해지곤 했다. 그때 그로구의 조그만 마음 파동이 다시 한번 루크의 의식을 툭, 하고 다정하게 건드렸다. 아까보다 훨씬 누그러진 작고 따뜻한 물결이었다. 어서 대답을 달라고 재촉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 괜찮냐고 묻는 쪽에 가까웠다. 루크는 아이의 보송보송한 머리를 가만히 한 번 쓸어 넘겨주었다. 그러곤 푸른 빛을 내뿜던 홀로그램 기록을 꺼 버렸다. “말로 설명해서는 도저히 안 되겠네요.” “예?” “직접 보여 드려야겠어요.” 딘은 그 말에 담긴 뜬금없는 뜻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고 난 뒤에는, 즉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루크가 기분 좋게 픽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슬쩍 그로구를 바라보았다. 그로구 역시 동그란 눈으로 루크를 마주 보았다. 아이는 선생님이 무슨 계획을 세웠는지 포스로 대충 짐작한 모양이었다. 긴 귀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대감으로 위로 번쩍 올라갔다. 곧이어 스승과 제자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딘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그 무시무시하도록 초롱초롱한 두 쌍의 눈빛을 차마 오래 버텨내지 못했다. … 딘이 갑옷을 하나씩 걸치는 동안 루크는 문가에 기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강이, 허벅지, 흉갑, 어깨. 버클을 채우는 손이 군더더기 없이 빨랐다. 오두막에서 저 갑옷을 하나씩 벗겨 주는 건 대개 루크의 몫이었으므로 거꾸로 하나씩 입혀지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매일 밤 풀던 끈이 하나씩 다시 묶이고, 매일 밤 내려놓던 무게가 하나씩 다시 얹혔다. 그로구는 딘의 발치에서 갑옷 조각을 하나씩 건네주는 역할을 맡았다. 포스로 띄워서 건넸는데 가끔 방향이 엇나가 딘의 정강이를 툭 치고 떨어졌다. 딘은 그때마다 말없이 주워 들었다. 마지막으로 딘이 헬멧을 집어 들었다. “그것까지 쓰시게요?” “만달로리안의 진짜 모습을 보여 드리는 거 아닙니까.” 헬멧이 그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익숙하고 다정한 얼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냉정한 검은 T자형 틈새만 남았다. 루크는 문득 처음 이 사람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딘 자린은 단단하고 차가운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로구를 내어주던 순간, 그 완고한 갑옷 속에서 전해지던 미세한 떨림을 루크는 포스로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 은빛 베스카 안에 이토록 다정한 남자가 숨어 있을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좋아요. 몇 가지 규칙을 정하죠. 블래스터는 절대 쏘지 않기. 광선검은 스치지 않기.” “휩코드는 써도 됩니까.” “…특별히 허락해 드리죠.” “그럼 됐습니다.” 딘이 손목을 털자 휩코드가 맞물리는 소리가 짧게 났다. 루크는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만달로리안이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이 역할극에 진심으로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그리하여 지금, 딘 자린은 완전무장을 한 채 제다이의 품에 붙들려 있었다. 시연이라는 가벼운 명목은 처음 검을 겨누고 오 분까지만 유효했다. 막상 휩코드를 쏘기 시작하자 몸이 먼저 진지해졌다. 몸에 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루크가 그 공격들을 하나하나 너무나 여유롭게 받아낼 때마다 슬슬 오기가 발동했다. 피하는 것도 아니고 막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비켜서는 것 같은데 닿지 않았다. 한 번쯤은 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워 보고 싶었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자신을 안아 누른 루크의 팔은 겉보기에 꽤 느슨해 보였지만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손목을 그러잡은 손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은데 몸을 비틀면 비트는 각도만큼 슬그머니 따라와 도로 제압했다. 허리띠를 쥔 손은 더했다. 딘은 두어 번 버둥거리며 몸을 털어내려다 이내 단념했다. 저 사람의 압도적인 무력을 잘 알면서도 덤벼들었으니 딱히 할 말도 없었다. “봤지, 그로구?” 루크가 딘을 품에 단단히 끌어안은 채 돌계단 쪽을 돌아보았다. “옛날엔 이렇게 제다이가 만달로리안을 제압했단다.” 딘이 베스카 헬멧 안에서 고개를 슬쩍 들었다. “…역사적 근거는 있는 이야기입니까.” “없어요.” 루크가 너무 당당해서 딘은 잠깐 할 말을 잃었다. 방금 서고에서 기록이 없다고 한숨 쉬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시연치고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사심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선생님.” “그래요?” 딘의 헬멧 턱 끝이 톡 소리를 내며 가볍게 튕겼다. 루크의 두 손은 여전히 딘을 붙든 채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포스로 장난을 친 것이었다. 그러고는 살포시 고개를 기울여 헬멧 옆면, 딘의 귀가 있을 자리에 입술을 바짝 가져다 댔다. “그게 제다이의 방식입니다, 자린 씨.” 귓가를 낮게 긁어내리는 목소리였다. 차가운 베스카 너머로도 루크의 더운 숨결이 고스란히 닿아오는 것만 같았다. “제다이는 원래 외교와 협상에 아주 능했다고 하거든요.” 딘은 제 손목을 결박하듯 붙든 루크의 손과 허리띠를 억세게 움켜쥔 다른 한 손을 차례로 내려다보았다. “…지금 이게 원만한 협상입니까?” “네, 아주 원만하게 진행 중이잖아요.” 말과 동시에, 허리를 틀어쥐고 있던 루크의 손이 티 나지 않을 만큼 은근히 딘의 몸을 제 쪽으로 더 바짝 끌어당겼다. 원만한 협상이라 부르기엔 피협상자에게 선택지가 전혀 없었다. 그 순간 루크의 의식 한쪽이 홱 당겨졌다. 조금 전까지 환호와 흥분으로 가득 차 있던 아이의 마음이 순식간에 뒤집혀 있었다. 신나서 발을 동동 구르던 기쁨이 사라진 자리에는 어느새 다급함과 위기감이 차올랐다. 아빠가 붙잡혔다. 아빠가 못 움직인다. 선생님이 안 놔준다. 이건 놀이가 아닌 것 같다. 뒤이어 로브 자락이 뒤로 쭉 당겨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옷감을 꼭 집어 힘껏 잡아당기는 듯한 힘이었다. 돌아보니 계단 위에 서 있던 그로구가 작은 두 손을 이쪽으로 뻗은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루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루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붙들고 있던 딘을 순순히 놓아주었다. “알았어, 알았어. 이제 놔줄게, 그로구.” 딘이 살짝 어색하게 한 걸음 물러서며 헬멧을 고쳐 잡았다. 그로구는 그제야 뻗었던 손을 슬그머니 내렸지만, 여전히 루크를 향해 경계의 눈빛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귀가 바짝 뒤로 젖혀져 있었다. 루크가 항복하듯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뒤로 물러서는 시늉을 하자 아이는 그제야 콧김을 한 번 뿜어냈다. “아빠 괜찮아, 그로구. 어디 다친 데 없어.” 딘이 계단 쪽으로 걸어가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로구는 딘의 흉갑에 얼굴을 비비며 몇 번이고 확인하듯 갑옷을 두드렸다. 팔, 어깨, 헬멧. 작은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은 전부 두드려 보고 나서야 안심했다. 그러고는 딘의 어깨 너머로 루크를 향해 꺄앙! 하고 짧게 무어라 소리쳤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전하려는 뜻만큼은 아주 명확했다. 우리 아빠 괴롭히지 마요, 선생님. 루크는 웃는 얼굴로 순순히 후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선생님이 반칙했어.” 딘은 아이의 등을 쓸어 주며 헬멧 안에서 조용히 웃었다. 제다이가 이겼다는 역사는 근거가 없었다. 그러나 만달로리안의 아이가 제다이 마스터를 물러서게 했다는 건 방금 이 마당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방금 건 만달로리안의 승리로 하겠습니다.” “그로구가 이긴 거죠, 자린 씨.” “그로구는 만달로리안입니다.” “제 유일한 제자이기도 한데요.” “그럼 둘 다 이긴 겁니다. 진 건 선생님뿐이고요.” 루크가 짐짓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뭐라고 반박을 던지려다, 딘의 어깨 너머로 그로구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아직 긴 귀를 완벽하게 세우지 않은 채, 경계심을 눈빛에 담고 있었다. 루크는 군말 없이 입을 다물었다. 제다이 마스터로서 매우 현명하고 신속한 판단이었다. … 해가 기울 무렵 셋은 마당 가장자리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딘은 헬멧과 흉갑을 벗어 발치에 내려 두었다. 땀에 젖은 머리칼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는데 루크가 그걸 손가락으로 쓸어 넘겨 주자 딘은 피하지 않고 순순히 그 손길을 받아냈다. 그로구는 한바탕 신났다가 놀랐다가 화났다가 한 것이 피곤했는지 딘의 무릎에서 잠들어 있었다. 깊은 잠에 빠져든 와중에도 조그만 한 손으로는 딘의 옷자락을, 다른 한 손으로는 루크의 로브 끝자락을 꼬옥 쥔 채였다. 루크가 손바닥 위에 조심스럽게 푸르스름한 홀로그램 기록을 다시 띄워 올렸다. 아까 서고에서 셋이 머리를 맞대고 보던 바로 그 빈약한 기록이었다. 루크는 허전하게 비어 있는 홀로그램의 공백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록이 생각보다 너무 부족하네요.” 루크가 픽 웃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딘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제다이와 만달로리안의 수수께끼를 제자에게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못하는 스승이라니,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요.” “굳이 다 알아야 합니까?” 딘이 그로구의 등을 천천히 토닥이며 물었다. “지금은 싸우지 않으니 그거면 되지 않습니까.” 루크는 홀로그램을 바라보다가 대답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아마 서로 몰라서 싸웠을 거예요. 모르니까 무섭고, 무서우니까 먼저 무기를 드는 거죠.” 딘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무심하게 한 마디를 짧게 덧붙였다. “저도 제다이를 몰랐습니다.” 루크가 고개를 돌렸다. 딘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기울어가는 노을빛이 그의 옆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지금은 압니다.” 그게 다였다. 딘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가장 중요한 말을 가장 짧게 하는 사람. 루크는 그 짧은 말을 오래 곱씹었다. 몇천 년 동안 아무도 하지 못한 화해가 벤치 위에서 한 문장으로 끝나 버린 셈이었다. 루크는 조용히 손바닥을 쥐어 푸른 홀로그램을 껐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 딘의 체온과 노을빛만이 온전히 남았다. 루크가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양손에 하나씩 쥐고 있는 옷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그로구는 제다이이기도 하고, 만달로리안이기도 하잖아요.” 그 순간 딘의 손이 그로구의 등 위에서 잠깐 멈칫했다. 예전에 이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어떤 길을 걷게 해야 할지를 두고 둘이 서로 다른 말을 하며 팽팽하게 대립했던 그날이 퍼뜩 스쳤다. 루크 역시 그날을 함께 떠올렸는지 딘을 바라보는 눈빛에 조심스러운 기색이 조금 맴돌았다. 하지만 딘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로구의 작은 등을 다시 가만히 토닥이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한층 느리고 다정하게. 그것만으로도 루크에겐 더없이 충분한 대답이었다. 루크는 가만히 시선을 올려 딘의 맨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 만달로리안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고요.” 루크는 발갛게 물들어가는 딘의 귀 끝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단지 석양 노을 탓이라고 우기기엔 지나치게 빨갛고 솔직했다. “이 사원에 있는 기록만으로는 부족해요. 조만간 옛 제다이 유적에 가서 직접 찾아봐야겠어요.” “같이 가겠습니다.” 대답이 너무 빨랐다. 루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 같이 가자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요.” “어차피 물어보실 거 아니었습니까?” 딘은 태연한 얼굴로 그로구의 등을 토닥였다. 루크는 뭐라고 장난스럽게 말을 받으려다 이내 그만두고 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베스카를 벗은 어깨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딘은 루크가 기댄 쪽 어깨를 아주 조금 낮춰 주었다. 머리가 편하게 얹힐 만큼만. 노을이 사원 너머로 천천히 넘어가고 있었다. 오래전 서로를 알지 못해 무기를 겨누고 피를 흘렸다던 두 숙적의 후예가, 작은 아이 하나를 사이에 둔 채 같은 벤치에 앉아 같은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하계의 그 어떤 거창한 역사 기록에도 남지 않을 사소하고 아늑한 장면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둘이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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