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레이스는 큰형임에도 워낙 순하고 만만해서 평소에도 동생들한테 놀림을 제일 많이 받았음. 셋이 한마디씩 얹어가며 놀려도 웬만한 건 헤헤 웃으며 넘겼고, 조금 짓궂은 장난을 당해도 정말 싫은 게 아니면 굳이 정색하지 않았지. 짜증을 내더라도 오래 가지 못하고 금세 풀려 돌아오곤 했음. 그렇다고 동생들에게 그레이스가 큰형이라는 사실까지 흐려지는 건 아니었겠지. 평소에는 제일 만만하게 굴고 허물없이 장난치는 형이라 해도, 결국 이 집의 중심을 잡아온 사람은 그레이스였음. 셋이 어렸을 때부터 가장 먼저 앞에 서 있던 사람도 그레이스였고,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찾게 되는 사람도 늘 그레이스였지. 울면 달래주고, 아프면 밤새 곁을 지키고, 사고를 치면 수습해주고, 무서울 때는 대신 앞에 서주면서 동생들을 키우다시피 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 평소에 얼마나 놀려먹든 그건 어디까지나 그레이스가 웃으며 받아주는 선 안에서 가능한 일이었음. 만만하게 장난칠 수 있는 것과 정말로 만만한 사람으로 여기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지. 아무리 순하고 화도 잘 못 내는 형이라 해도, 셋에게 집안의 기둥은 여전히 그레이스였음. 그레이스와 드라이버는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났음. 거의 띠동갑에 가까웠으니 그레이스에게 드라이버는 정말 아기 같았지. 식스나 콜트가 어렸을 때 졸라도 “안 돼.” 하고 단호하게 끊었던 걸 드라이버가 똑같이 조르면 한참 고민하다 결국 해준 적도 많았음. 둘이 “우리 때는 안 해줬잖아.” 하고 억울해하면 그레이스는 조금 민망한 얼굴로 “얘는 막내잖아….” 하고 넘어갔고. 드라이버가 다 커서 자기보다 훨씬 무뚝뚝하고 단단한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레이스 입에서는 심심찮게 “우리 막내”라는 말이 튀어나왔음. 그레이스 눈에는 아직도 그랬음. 한참 작았을 때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막둥이. 우리 막내. 그래서인지 드라이버도 아주 가끔 형에게 선을 넘곤 했음. 일부러 무시한다거나 함부로 대하려는 건 아니었음. 그냥 어릴 때부터 그레이스한테 예쁨 받는 게 너무 익숙했고, 무슨 짓을 해도 형이 자기한테 쉽게 화내지 못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이었지. 짜증이 나면 말을 조금 거칠게 해도 그레이스는 “알았어.” 하고 넘겼고, 퉁명스럽게 대답해도 기분 나쁜 티를 내기보다는 ‘오늘 무슨 일 있었나.’ 하고 먼저 살피는 사람이었음. 어릴 때부터 막내라는 이유로 한 번 더 봐주고, 한 번 더 받아주고, 결국에는 품어주던 형이었으니까. 드라이버에게는 그레이스의 그런 다정함이 너무 오래도록 당연한 것이었음.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형이 나를 봐주는 것’과 ‘이 정도는 해도 되는 것’의 경계를 자기도 모르게 헷갈리고 있었던 거겠지. 식스나 콜트가 옆에서 듣다가 ‘저건 좀 심한데.’ 싶은 순간에도 정작 당사자인 그레이스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니 그럭저럭 끝났고. 그렇게 드라이버는 조금씩 허용되는 선을 착각하고 있었던 거임. 그러던 어느 날 드라이버와 그레이스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했음. 처음부터 크게 싸운 것도 아니었음. 그레이스는 늘 그렇듯 차분하게 얘기하려 했고, 드라이버는 이미 다른 일로 잔뜩 예민해져 있던 상태였지. 그레이스가 몇 번이나 이유를 물어도 드라이버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고, 그럴수록 그레이스는 그냥 보내기보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끝내려고 했음. “디,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봐.” “됐어.” “됐다고 하지 말고. 네가 왜 화났는지는 말해줘야 나도 알지.” “형은 몰라.” “그러니까 말해주면….” “아, 형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결국 드라이버가 짜증스럽게 말을 잘라버렸음. 그리고 더 이야기하기 싫다는 듯 등을 돌렸지. 그레이스도 거기서 잠깐 멈칫했음. 평소 같으면 그냥 보내줬을지도 몰랐지. 드라이버가 진정되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런데 그날은 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았음. “디.” 그레이스가 지나가려는 드라이버의 팔을 붙잡았음. 드라이버는 그것마저 답답했는지 얼굴에 짜증이 한층 더 짙어졌고. “놔.” “잠깐만.” “놔봐.” 팔을 빼내려고 거칠게 뿌리치면서 몸을 홱 돌리던 그 순간, 퍽. 생각보다 훨씬 둔탁한 소리가 났음. 드라이버의 손등이 그대로 그레이스 얼굴을 후려쳤지. 충격에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고, 얼굴에 걸쳐져 있던 안경은 버티지도 못하고 날아가 바닥을 몇 번 튕긴 뒤 멀찍이 떨어졌음. 그리고 그 순간 거실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음. 그레이스도 그대로 굳어 있었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리는 얼굴이었음. 얻어맞은 뺨에 손을 가져가지도 못하고 고개가 돌아간 자세 그대로 눈만 몇 번 깜빡였음. 드라이버는 그보다 더 심했음. “…형.” 방금까지 얼굴에 남아 있던 짜증이 순식간에 사라졌음.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믿을 수 없다는 듯 휘둘렀던 손마저 어정쩡하게 굳어 있었지. 일부러 친 게 아니었음. 그레이스를 때릴 생각 같은 건 단 한 순간도 한 적 없었음. 하지만 의도가 없었다고 해서 방금 벌어진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음. 바닥 저편에 나뒹구는 안경이 그걸 너무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지. 그 광경을 소파에서 지켜보던 콜트도 아무 말 못 했음. 눈이 커진 채 둘을 번갈아보다가 천천히 옆에 있던 식스의 눈치를 봤음. 그리고 그대로 입을 다물었겠지. 식스의 표정이 무서울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으니까. 그레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 그저 천천히 허리를 숙여 흐릿한 시야로 바닥을 더듬으며 떨어진 안경부터 찾으려 했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식스가 움직였음. 성큼성큼 드라이버에게 다가가더니 그대로 멱살을 움켜쥔 거임. “너 미쳤냐?”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음. 차라리 소리를 질렀으면 덜 무서웠을지도 몰랐지. 드라이버의 몸이 그대로 식스 쪽으로 끌려왔음. “뭐 하는 짓이야, 지금.” 드라이버는 아무 말도 못 했음. 변명할 생각조차 못 했겠지. 식스가 드라이버의 멱살을 더 세게 움켜쥐었음. “누구한테 손을 대.” “…실수였어.” 겨우 나온 말이었음. “실수?” 식스가 헛웃음을 한번 흘렸음. “실수로 형을 쳐?” “코트.” 뒤에서 그레이스가 불렀음. 식스는 처음에는 돌아보지도 않았음. 그러다 자기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껴져서야 고개를 돌렸겠지. 그레이스가 바로 뒤에 서 있었음. 주워 쓴 안경은 충격 때문에 조금 비뚤어져 있었고, 맞은 쪽 뺨은 벌써 눈에 띄게 붉어지고 있었음.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식스의 표정이 오히려 더 험악해졌음. “형은 가만있어.” “놔줘.” “형.” “디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그 말에 드라이버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음. 그레이스는 정작 드라이버 쪽은 보지도 않았음. 한 손으로 삐뚤어진 안경을 고쳐 쓰면서 다른 손으로 식스의 손목을 붙잡았지. “쟤도 놀랐잖아. 자기가 그러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제 놔줘.” 식스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 그레이스 얼굴 한번, 드라이버 얼굴 한번. 그러다 결국 손을 놓았고, 드라이버의 구겨진 옷깃이 아래로 툭 떨어졌음. 하지만 화가 풀린 건 아니었지. 오히려 이제는 그 화살이 조금 다른 쪽으로 향했음. “형이 맨날 그렇게 넘어가니까 얘가 이러는 거잖아.” 그레이스가 잠깐 멈칫했음. “얘가 형 만만하게 보는 거라고.” 그레이스를 탓하려고 꺼낸 말은 아니었음. 식스도 그걸 알고 있었겠지. 그런데 그동안 옆에서 지켜보며 쌓여 있던 답답함이 한꺼번에 튀어나온 거임. 아무리 만만하고 순해서 동생들한테 허구한 날 놀림이나 당하는 형이어도, 이 집의 큰형은 분명 그레이스였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형이었지. 그래서 식스한테는 막내가 형을 쳤다는 사실 자체가 도무지 용납되지 않았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드라이버 역시 지금 누구보다 놀랐다는 것도 보였지만 그건 그다음 문제였음. 실수든 뭐든 간에 형 얼굴에 손이 닿았고, 안경이 날아갈 정도로 세게 맞았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식스 눈에는 제대로 선을 넘어버린 거지. 더 화가 나는 건 그레이스가 그런 상황에서조차 드라이버부터 감싸고 있다는 거였음. 평소에도 저렇게 다 받아주고 넘어가니까 결국 여기까지 온 것 같아서, 드라이버한테 화가 나는 만큼 형한테도 답답하고 속이 터지는 거임. “말 막 해도 넘어가. 짜증 내도 넘어가. 형한테 함부로 굴어도 그냥 애니까 하고 넘어가잖아.” “…….” “얘 이제 애 아니야. 형도 정신 차려.” 거실이 다시 조용해졌음. 그레이스도 이번에는 아무 말 못 했지. 식스가 왜 저렇게 화가 났는지 아니까. 그레이스의 시선이 천천히 드라이버에게 향했음. 드라이버는 차라리 식스한테 한 대 맞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음. 맞은 뺨이 벌겋게 올라온 형이 자기를 보고 있는데도 화를 내지 않았으니까. 도저히 그 얼굴을 계속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결국 드라이버가 먼저 시선을 내렸음. “……형, 미안해.” 한참 만에 드라이버가 말했음. 그레이스가 아무 말이 없자 다시 한번 입을 열었지. “미안해.” “……응.”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었어.” “알아.” 너무 쉽게 돌아오는 대답이라 그게 오히려 드라이버를 더 견디기 힘들게 했겠지. 입술을 한번 꾹 깨물고 고개를 숙이는데 눈가가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함. 눈을 몇 번 깜빡여도 맺힌 물기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음. 한참을 입 다물고 있던 드라이버가 겨우 다시 입을 열었음. “…그것만 미안한 게 아니야. 아까 말한 것도. 그전에도…… 형한테 막 말한 거.” 그레이스는 이번에는 바로 괜찮다고 하지 못했음. 평소 같으면 벌써 “됐어.” 하고 웃어줬을 텐데 잠시 입을 다물었지. 그리고 그 짧은 침묵 하나로 드라이버는 충분히 알아들었음. 형도 기분 나빴던 적이 있었다는 걸. 괜찮았던 게 아니라 그냥 말하지 않았던 거였다는 걸. “……나도 미안해.” 이번에는 그레이스가 말했음. 식스가 바로 인상을 썼지. “형이 왜 미안해.” “내가 계속 애처럼 대해서.” 드라이버를 바라보는 그레이스 표정이 조금 씁쓸했음. “네가 다 큰 거 아는데도 자꾸 막내라고만 생각해서… 네가 화내도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 같아.” “그게 왜 형 잘못이야.” “잘못이라기보다는….” 그레이스가 잠깐 말을 골랐음. “나도 싫으면 싫다고 했어야 했다는 거지.” 그 말에는 식스도 더 이상 끼어들지 않았음. 그레이스가 드라이버를 똑바로 바라봤음. “근데 디.” “응.” “오늘은 진짜 싫었어.” 드라이버 얼굴이 그대로 굳었음. 그레이스가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싫다고 말하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일부러 그런 거 아닌 건 알아. 그래도 나 놀랐어. 그리고 아까 네가 나한테 말한 것도… 기분 나빴고.” “……미안해.” “응.” “진짜 미안해.” 그레이스는 한동안 막내를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음. 그걸로 당장 평소처럼 웃어주지는 않았음. 드라이버도 그걸 바라지 않았겠지. 그 뒤로 한동안 집 안 분위기도 묘했음. 드라이버는 눈가에 아직 마르지도 않은 눈물을 달고 그레이스 주변만 쭈뼛쭈뼛 맴돌았음. 가까이 가고는 싶은데 지금 자기가 형 옆에 붙어 있어도 되는지 확신이 안 서는 얼굴이었지. 그레이스도 그걸 모를 리 없었음. 하지만 먼저 드라이버를 달래주기 전에 식스가 움직였음. 냉동실에서 얼음팩을 꺼내 수건으로 감싸 들고 오더니 그레이스 앞에 턱 서겠지. “어디 봐봐.” 평소보다 말투부터 퉁명스러웠음. 그레이스가 슬쩍 고개를 들자 식스는 한 손으로 턱을 붙잡아 얼굴을 자기 쪽으로 돌렸음. 워낙 손이 큰 데다 아직 화도 덜 풀려 있어서 잡는 손길마저 평소보다 조금 거칠었겠지. “아야…….” 그레이스가 작게 앓는 소리를 냈음. “가만있어.” “응…….” 식스가 붉게 올라온 뺨 위에 얼음팩을 조심스럽게 가져다 댔음. 손길은 조심스러운데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겠지. 그레이스도 식스가 아직 자기한테까지 조금 화가 나 있다는 걸 알아서 별말 안 했음. 입술만 꾹 다문 채 식스가 턱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상태를 확인하는 대로 얌전히 따라줬지. “아파?” “조금…….” 식스가 다시 한번 붉어진 부분을 살폈음. “그러니까 왜 맨날 다 봐줘.” “…….” “진짜 답답하게.” 그레이스가 슬쩍 눈을 내리깔았음. 평소라면 “알았어, 알았어.” 하고 웃었을 텐데 이번에는 자기도 할 말이 없어서. 그리고 그 옆에는 드라이버가 계속 서 있었음.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식스가 형 얼굴에 얼음팩을 대주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음. 자기가 만든 붉은 자국이라는 걸 아니까 볼 때마다 눈가가 다시 젖었겠지. 그레이스도 그런 드라이버를 계속 모른 척할 수는 없었음. 솔직히 아직 화가 나기는 했음. 아무리 실수였다지만 동생한테 얼굴을 맞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었고, 그전부터 거칠게 내뱉었던 말들도 분명 상처로 남아 있었음. 그래도 드라이버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음. 무엇보다 아까부터 눈가에 눈물까지 달고 제 주변을 서성거리면서도 차마 가까이 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마냥 단단해지지도 않았겠지. 아무리 다 큰 어른이어도 그레이스한테는 여전히 동생이었음. 사고를 쳐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형 눈치만 보던 어린 시절의 모습과 별반 다르게 보이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레이스가 먼저 막내를 불렀음. “디.” 드라이버가 기다렸다는 듯 바로 고개를 들었지. “나 괜찮아.” “……알지만.” 대답하면서도 표정은 전혀 괜찮지 않았음. 그리고 사실 그레이스 역시 말과 달리 별로 괜찮아 보이지 않았음. 한쪽 뺨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고 안경도 조금 휘어 있었으니까. 어떻게 정말 괜찮을 수 있겠음. 그런데도 형이 자꾸 괜찮다고 하니까 드라이버는 오히려 더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됐음. 그레이스가 그런 막내를 잠시 바라보다가 결국 자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어 번 두드렸음. “이리 와.” 드라이버는 바로 움직이지 못했음. 잠깐 망설이던 끝에 천천히 다가와 그레이스 옆에 앉았지. 평소 같았으면 그레이스가 자연스럽게 어깨라도 한번 두드려줬을 텐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음. 둘 사이에는 잠시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고, 먼저 움직인 건 드라이버였음.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레이스의 소매 끝을 손가락으로 잡았지. 그레이스는 제 옷자락을 붙들고 있는 손을 가만히 내려다봤음. 그 순간만큼은 눈앞에 있는 게 다 큰 막내가 아니라, 정말 어렸을 때 사고를 치고 나서 형 눈치만 살피던 꼬맹이랑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겠지. 늘 그럴 때면 그레이스가 먼저 괜찮다고 해줬음. 품에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다음부터는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이른 뒤 금세 웃어주곤 했지. 드라이버가 아무리 큰 사고를 쳐도 마지막에는 언제나 형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무조건 감싸주고 넘어갈 수는 없었음. “다음부터는 그러면 안 돼.” “…응.” “화나는 건 괜찮아. 나한테 화낼 수도 있고.” “응.” “근데 함부로 말하거나, 사람 밀치고 그러는 건 안 돼.” “……응.” 그레이스가 잠깐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음. “나한테만 그러면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든.” 드라이버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지. “알았어.” 그제야 그레이스가 손을 들어 막내 머리를 천천히 한번 쓸어줬음. “알았으면 됐어.” 드라이버는 그 손길을 받으며 고개를 조금 더 숙였고, 눈가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물기가 남아 있었음. 그레이스 소매 끝을 붙잡은 손도 여전히 그대로였지. 그레이스도 굳이 떼어내지는 않았음.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식스는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고, 보다 못한 콜트가 옆구리를 팔꿈치로 슬쩍 찔렀음. “그만 노려봐. 디 진짜 울겠다.” 식스는 대답하지 않았음. 드라이버를 한번 쳐다봤다가 이번에는 그레이스의 벌겋게 올라온 뺨으로 시선을 옮겼지. 아무리 봐도 화가 쉽게 가라앉을 만한 꼴은 아니었던 거임. 한참 입을 다물고 있던 식스가 낮게 한마디 했음. “한 번만 더 그래봐.” 드라이버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음. 그걸 본 그레이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지. “어휴, 이제 됐어. 너도 참…….” 그러더니 손을 뻗어 식스 얼굴을 턱 잡았음. “뭐 해.” “그만 봐.” “놔.” “막내 그만 노려보라고.” 그레이스는 식스의 얼굴을 아예 반대쪽으로 돌려버렸음. 식스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다시 드라이버 쪽을 보려고 하자 이번에는 양손으로 뺨까지 붙잡고 꿋꿋하게 다른 쪽을 향하게 했지. “그만.” “형은 진짜…….” 식스가 기가 막힌다는 듯 형을 쳐다봤지만, 그레이스는 손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음. 결국 먼저 포기한 식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고, 그제야 그레이스도 만족한 듯 손을 떼줬지. 콜트는 그 꼴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작게 웃었음. 드라이버도 고개를 숙인 채 손등으로 눈가를 한번 훔쳤고. 아마 그날 이후로 드라이버에게 가장 오래 남은 건 단순히 자기가 형을 쳤다는 사실만은 아니었을 듯. 자기 손이 닿는 순간 옆으로 돌아갔던 그레이스의 얼굴도, 안경이 바닥으로 날아갔는데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곧바로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던 모습도 쉽게 잊히지 않았겠지. 무엇보다 식스가 자기 멱살을 움켜쥐었을 때조차 그레이스가 먼저 걱정한 건 맞은 자신이 아니라 막내였음. ‘쟤도 놀랐잖아.’ 그 말이 오래 남았을 거임. 그레이스는 언제나 자기 편을 들어주는 형이었고, 조금 심하게 굴어도 마지막에는 품어주는 사람이었음. 그렇게 오랫동안 예쁨 받고 자라다 보니 드라이버에게는 형의 다정함도, 자신을 한 번 더 봐주는 것도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겠지. 그래서 그날에서야 처음 알았던 거임. 그레이스가 화를 내지 않았던 건 화가 나지 않아서가 아니었고,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도 정말 아무렇지 않아서가 아니었다는 걸. 그저 막내를 아끼는 마음이 늘 그보다 앞섰던 거지. 그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음. 아무리 자신을 예뻐하고 무엇이든 받아주는 형이라도 분명 지켜야 할 선은 있었고, 오히려 늘 자신을 봐주던 사람이기에 그 선을 먼저 지켰어야 했음. 그래서 그날 이후로 드라이버가 형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은 달라졌을 듯. 여전히 툭툭거리기도 하고 가끔 짜증도 냈지만, 예전처럼 형이 받아주겠거니 하고 선을 넘는 일은 없어졌겠지. 그레이스가 싫은 티를 내면 한 번 더 살피게 됐고, 말이 너무 거칠게 나갔다 싶으면 뒤늦게라도 먼저 사과했을 거임. 그리고 별개로 한동안은 식스를 피해 다녔을 듯. 그레이스는 이미 막내를 용서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평소처럼 “디야.” 하고 부르며 챙겨주기 시작했는데, 식스 쪽은 영 아니었음. 그렇다고 뭐라고 하거나 대놓고 다시 혼내는 것도 아니었지. 그냥 봄. 드라이버가 거실에 들어오면 한번 보고, 주방에서 마주치면 또 보고, 그레이스 옆에 붙어 앉아 있으면 하던 걸 멈추고 한번 쳐다봤음. 아무 말도 안 하는데 그 시선이 계속 따라붙는 거임. 처음에는 드라이버도 모른 척했겠지. 자기가 잘못한 게 있으니 며칠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음. 그런데 그게 하루 이틀 계속되니까 슬슬 견디기 힘들어졌을 듯. 결국 어느 날 또 식스랑 눈이 마주치자 드라이버가 먼저 못 참고 말했음. “아, 형. 그만 좀 해…….” “뭘.” “그렇게 보는 거.” “내가 뭘 어떻게 봤는데.” “알잖아.” 식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고, 그게 더 짜증 났겠지. 드라이버가 한숨을 푹 쉬더니 먼저 백기를 들었음. “내가 미안하다고…… 이제 안 그럴 거라고. 절대.” 그제야 식스가 잠깐 드라이버를 바라봤음. “당연히 그러면 안 되지.” 그러고는 지나가면서 등을 퍽 한 대 쳤겠지. “악, 씨…….” “말버릇.” “…….” 그걸로 끝이었음. 사실 생각해보면 드라이버가 식스한테 저렇게까지 혼난 것도 처음이었을 듯. 형제끼리 살면서 싸운 적이야 당연히 있었고 식스한테 잔소리를 들은 적도 많았지만, 멱살까지 잡혀본 적은 없었음. 식스가 진짜로 눈 돌아갈 만큼 화난 모습을 자기한테 보인 것도 처음이었겠지. 당시에는 그레이스를 쳤다는 충격이 워낙 커서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음. 자기 손에 형 얼굴이 돌아가고 안경까지 날아간 순간부터 머릿속이 새하얘졌으니까. 그런데 며칠 지나 정신이 좀 돌아오고 나서야 문득 생각났을 듯. ‘……나 둘째형한테 멱살 잡힌 것도 처음인데.’ 그리고 곧바로 그때 식스 표정까지 떠올라서 괜히 목덜미 한번 쓸었겠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음. 그 뒤로 드라이버가 그레이스한테 함부로 굴지 않게 된 데에는 스스로 깨달은 것도 당연히 컸지만, 어쩌면 식스의 그 살벌한 얼굴도 아주 조금쯤은 지분이 있었을 거임. 고슬사자 4형제 고슬고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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