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는 90이 넘으시면서 치매를 앓게 되셨다. 짧게 소학교를 다녔지만 또래 중에 드물게 한글을 깨쳤다는 것, 산골에서 장골로 유명하셨던 외할아버지가 콕찝어 외할머니와의 혼사를 추진했다는 썰은 두고 두고 되풀이 하셨다. 할머니는 사진 마다 땅을 보고 계시는데, 눈이 너무 커서 작아보이고 싶어 그랬단다. 누군가는 할머니 젊은시절 사진을 보곤 뽀뽀를 쪽 하고싶다고 했단다. 이는 외할머니를 통해 온가족에게 구전되었다. 다소 공주병이 있으셨지만, (아버지께 사랑을 듬뿍받아 성함 마저 숙녀인 본투비 공주님이심) 외할머니는 손자 손녀 딸집에 올때면 손수기른 작물을 이고 지고 오셔선, 낮에는 구석구석 닦고 쓸고, 끼니때마다 홍합이 들어간 미역국이며 냉국, 구운 생선을 올리셨다. 딸을 닮아 비위가 약한 손녀 옆에 앉아 직접담은 김치를 손으로 조각내 올려주시거나, 오참물에 밥을 말고, 구운 생선 조각을 올려주셨다. 어린눈에 검게타고 흙물이들어 거무스레한 손톱이 싫어 김치를 밀어내면 "내 손이 더러바서 그라제.?"하며 나긋한 경상도 사투리로 말씀하셨다. 꼭 그 말씀이 너의 유치함마저도 어쩔수 없이 귀엽다는것 같아 못 들은척하고 수저를 내려 놓곤했다. 사랑받는 딸, 마을의 젊은이에게 관심봤는 숙녀의 삶을 평생 살아오셨을 것 같은 할머니도 나에게 문신을 들킨적이 있다. 여름방학때 외가집에서 며칠을 보내다 민소매를 입은 할머니의 팔꿈치깨에 북두칠성 모양이 있고 자세히 보니 푸르스름한 문신임을 알게되었다.할머니! 이거 북두칠성인데요오?! 하니 급 쌍커풀진 큰 눈을 내리뜨시며 의자매와 함꺼 팔뚝에 세겼다고 하셨다. 명랑한 소녀시절을 보내셨다보다. 외할머니의 7남매중 우리엄마는 외할머니와 가장 닮았다. 외할아버지의 장신을 모든형제가 받았지만, 넷째인 엄마는 외할머니의 단신과 작은 얼굴, 고운선 큰 눈을 닮았다.( 나중에 외할머니께서 쌍커풀 수술을 폭로해 나에게 큰 충격을 줌.) 그리고 나도 엄마와 꼭 닮았는데, 외할머니는 자신과 판박이인 우리모녀의 외모엔 항상 인색하셨다. 우리에겐 인색하셨지만 사위와 손녀사위에게 매우 너그러우셨는데, 결혼전 남편과 인사드리로 갔더니 피가 비치는 수육과 갖가지 찬으로 한상차려 반겨주셨다. "니카모 느그남편이 낫다."고 활짝 웃으시며 말하셨다. 제일 예쁘고 싶은 새신부 욕심에 그말이 밉고 서운해서 한동안 외할머니 하면 흥!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쯤이 치매 초기였다고 한다. 조금씩 아주조금씩 예전같지 않으시다가, 아들도 딸도 잊어버리셨다. 북두칠성나누던 동무, 일만 알던 시어머니, 주중에는 면서기하고 주말엔 집에 왔지만 7남매를 안겨준남편 그 시절에 뱅글뱅글 머물러 계셨다. 여러가지 사연이 쌓이고 외할머니는 나의 친정에서 가차운 요양병원에 모셔졌다. 메마른 꽃대처럼 기력없이 한숨만 포오 내쉬셨다. 추석께에 들렀을때 기력을 회복하셨는지 넷째딸은 정초에 낳아 이름에 정자가 들어가고, 둘째딸은 순하게 살아라고 이름에 순을 넣었다고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넷째딸인 울엄마는 처음 듣는다며 신기해했고, 갑자기 기억이 돌아온 외할머니는 너희들이 날보러 왔구나하며 엉엉우셨다. 울엄마도 덩달아 눈가가 촉촉해져서, 귀염둥이 막둥이 손녀인 나는 "숙녀할머니 예쁜 숙녀할머니, 숙녀할머니를 제일 많이 닮은 저도 예쁘죠.?!"하니 당장에 눈물을 그치시더니 "잘 모르겠다." 하시며 먼산을 보셔서, 우리는 다같이 웃었다. 그리곤 요양원 선생님들께서 잘해주신다고 말씀하시다, 손녀 사위를 집게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주 미남이구먼! 아주 미남이구먼!" 하며 확신에 차서 말씀하셨다. 외할머니의 강단진 말투에 우리 모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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