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궁 안의 모든 사람들은 알았다. 황후에 대한 황제의 사랑이 광기와 닮았다는 것을. 황제 알버트는 오른 손에 인두를 든 채 고심에 빠졌다. 왼쪽이 좋을까, 오른쪽 이 좋을까. 아니면 두개 다? 근래 들어 가장 진중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고민했다. 격렬하게 반항하느라 귀를 거슬리는 쇠사슬의 소음이 황제의 신경을 건드렸다. "조용히 좀 시켜봐. 시끄럽잖아." 황제의 명령에 시종은 찰그랑 거리는 쇠사슬의 부딪힘의 소음의 원인을 줄이기 위해 목과 손이 연결된 쇠사슬을 좀더 바투 잡았다. 소음은 확실히 줄었으나 반대로 소년은 목이 졸렸다. 목이 뒤로 당겨져 졸리게 된 소년은 무릎을 꿇려진채 몸을 버둥거렸다.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짓임을 알면서도. 새빨갛게 달구어진 인두를 손에 쥔 황제는 새로운 문제로 골몰했다. "왼손잡이랬으니까 왼쪽 눈을 남겨둘까? 어느쪽이든 별로 상관 없으려나?" 소년의 얼굴은 겁에 질렸으나 그렇다고 비굴하지는 않았고 당당했지만 그렇다고 겁을 상실한건 아니었다. 당장에라도 저 인두가 자신의 몸 어딘가를 지지게 될거라는걸 소년은 잘 알았다. 그 뒤에 목이 잘리거나 목이 졸리거나 물에 빠지거나 흙구덩이에 산채로 파묻히게 될지도 몰랐다. 소년은 언젠가 그런 미래가 자신을 찾아올지도 모른다 생각했고 자신의 예상과 썩 다르지 않은 결과에 조금은 납득했다. 딱히 잘못을 저지르진 않았다.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고 하늘 같으신 높으신 분들께 무례를 저지르지도 않았다. 적어도 소년은 자신이 평생 잘 처신해왔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드러날만한 잘못을 하고 살지는 않았단 소리다. 이런 처벌을 받을만큼의 잘못을 말이다. 하지만 소년이 하나 간과한게 있었다. 소년은 고아였고 귀족의 신분이지도 않았다. 당연히 황후나 황제 바로 곁에서 옷을 입히고 시중을 들어주는 지체 높으신 시종이 될 수는 없었고 그저 허드렛일을 하는 황궁의 수많은 시종들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소년은 소소한 심부름을 했다. 소년의 처지를 우연히 알게 된 황후가 딱하게 소년을 여겨 가까이 둔 덕분이었다. 대체로 누구나 해도 될 일을 했고 그 말은 반대로 말하자면 소년이 아니라 그 누가 대신해도 될 법한 일들 뿐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소년은 황후를 가까이서나마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신분이 신분인지라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있었다. 황후를 절대 가까이서 모시지는 못 했고 으레 그 나이대의 허드렛일을 하는 소년들이 할 법한 일을 하긴 했지만 황후는 소년의 이름과 얼굴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고 이따금 제 몫으로 나온 간식을 조금 남겨 몰래 소년에게 쥐어주며 윙크를 하곤 했다. 브래들리, 너 혼자만 먹어야 해. 소년과 황후는 나이차가 많지 않았다. 사실 소년에게 그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소년에게 황후는 첫사랑이었고, 목숨이었고, 빛이자 닿을 수 없는 하늘이었다. 소년은 하늘을 날고자 했던 이가 어떻게 땅에 떨어졌는지 안다. 오르지 못 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 분명 소년은 그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살았다. 사실 소년이 황후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 상태기 때문에 과자 하나로 사랑에 빠진건 아니었다. 소년은 학식은 없었지만 현명했고 이 감정을 드러내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면 제 목숨이 위험하다는걸 알았다. 제 목숨으로 끝나지 않고 황후까지 위태롭게 할 걸 알았다. 그렇기에 소년은 필사적으로 제 감정을 숨겼다. 제 목숨 하나 귀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제 목숨과 같은 황후에게 해가 가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인두의 열기가 뺨 근처까지 왔다. 소년은 눈을 감고 저항을 멈추었다. 그래, 나 하나로 끝나면 다행이지. 지글거리는 열기는 아직 뺨에 닿기도 전인데 벌써 소년을 태울것처럼 뜨거웠다. 그 어떤 말로도 황제의 결심은 바뀔 수 없었기에 체념은 빨랐고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모든걸 알고 있는 황제 앞에서 거짓이나 발뺌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탓이다. 황제는 소년이 황후인 톰을 남모래 흠모해왔다는 사실과 황후가 소년을 곁에 두고 제법 아낀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록 그 아낀다는 의미가 이성적인 호감이 아니라 그저 말 잘 듣고 똘똘한 시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한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한 번 마음을 먹은 이상 이유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차라리 그냥 죽여주면 편할텐데 편하게는 보내주지 않네. 고통스러운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소년은 초연했다. 생에 미련이 많은건 아니었지만 한가지 아쉽다면 황후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나 들었다. 이런 순간에조차. 햇살 아래 찬란하게 빛나던 금발과 올리브색 눈동자가 실제로 눈 앞의 시뻘겋게 달아오른 인두 대신 아른거렸다. "멈추세요! 폐하! 멈춰요, 제발!" 늘 인자하고 온화한 황후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달려온 황후가 황제의 앞을 가로막아섰다. 미친 짓이었다. "톰. 여긴 어쩐 일이에요?" "지...지금, 뭘..뭘 하고 계신 겁니까?" "아. 이거." 알버트는 손에 들린 인두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황후는 '이거'라고 지칭한 것이 인두인지 아니면 소년인지 헷갈렸지만 현명하게 묻지 않았다. <i> 황궁은 보육원이 아니야. 가엽잖아요.</i> 톰은 언젠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황제는 소년을 아예 모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세히 아는 것도 아니었다. 황제가 오는걸 알았다면 미리 소년을 을 황제가 보지 못 하도록 다른 곳에 있도록 명령했을텐데 그 날은 그러지 못 했다. 황제는 불쑥불쑥 예고도 없이 들이닥쳤고 미처 소년을 숨길 새도 없었다. <i>못 보던 얼굴이네. </i>황제가 시종의 얼굴 하나하나를 다 외우는건 보통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황후에 관해서만큼은 달랐다. 원래 황제는 필요한 일을 제외하고는 무관심하기가 이를데가 없는 성품이었다. 아랫것들이 실수를 해도 그냥 넘어가곤 했다.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크게 화내는게 불필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고기가 조금 덜 익었거나, 수프가 식었거나, 너무 뜨거워서 혀가 데이거나, 생선 요리의 간이 덜 되어 있어도 황제는 별 말이 없었다. 어찌보면 아랫것들에게는 너그러운 상관으로 비춰질수도 있었지만 본래 그가 너그러워서는 아니었다. 그 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황후는 그 차이점을 알지 못 했다. 황궁 사람들 중 톰 하나만 몰랐다. "브래들리가 도대체 뭘 잘못 했는데요?" "당신을 좋아하더라구." "....별로 놀라운 소식은 아니네요." "표정을 보니 이미 알고 있었군." 톰은 거짓말을 못 했다. 끔찍하게 못 했다. 그게 단점은 아니었지만 황후쯤 되면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 마련인데, 톰은 그걸 못 했다. 제딴엔 노력한거지만 안색 하나 안 바꾸고 거짓말을 하는 황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톰의 표정은 미취학 아동이 하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처럼 투명했다. "제발....그거 놓고 얘기해요.... 알버트." "왜 그래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톰. 역시 고민이 너무 길었나. 어느쪽인지 고민하지 말고 그냥 양쪽 다 지져버릴걸 그랬나. 황후가 알면 놀라서 쓰러질만한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이미 식어서 벌건 기운이 사라진 인두는 그다지 뜨거워보이지 않았다. 조금 식었다고 해도 충분히 끔찍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건 알버트, 황제 하나 뿐이었다. "그 애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당신은 이런 일이 익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 "나는 이런게 당연하지 않아." 소년은 완전히 두 사람의 대화에서 배제되었다. 여전히 목은 숨이 막히지 않을 정도로만 졸린 정도였다. 풀어주라는 황제의 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시종이 소년의 목을 둘러싼 쇠사슬을 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화하고 인자하던 황후가 시종을 째려보았지만 황제의 시종은 황제의 명령에 따라야했기 때문에 감히 소년을 놓아줄 수 없었다. 소년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채 두 사람의 대화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설마...지금 저 애를 질투하시는건 아니겠지요. 폐하를 흠모하는 많은 이들이 있었을텐데요." "황후도 이렇게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도 돼" "그럴 생각 없어요." 농담 말라는 말이 목구머 끝까지 치솟았으나 톰은 본능적으로 눈 앞의 사람이 방금 한 말이 반쯤은 진심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흘깃 시선을 돌려보면 소년은 모든 것을 체념한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무서운거 어서 내려 놓고요. 다치면 어떡해요" 황제는 손에 들린 것과 황후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곧이어 화로에 달구어졌던 인두가 손쉽게 황제의 손에서 떨어져나갔다. "톰이 원한다면야. 당연히 그래야지." 새파랗게 질린 얼굴과 입술을 하고서도 황후는 간신히 웃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황제가 황후를 끌어안는다. 어깨 너머로는 여전히 무릎이 꿇려진 소년이 있다. 그에게 소년은 그저 장식물이나 화분에 불과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저 무가치한 존재였다. 고아이니 아무도 찾지 않을거고, 이 드넓은 황궁에서 시종 하나 죽는다한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하등 질투 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로든 황후의 눈에 띄는 것 자체가 거슬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기력하게 무릎이 꿇려졌던 소년이 고개를 들어 쳐다본다. 황제는 그제서야 소년과 자신이 약간 닮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소년의 얼굴 위로 분함이 스쳐지나갔다. 아하. 더러웠던 기분이 말끔히 씻겨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루스터행맨 루디허드너 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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