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바람을 가르고 달려 도착한 곳은 인적이 드문 숲이었다. 숲속엔 작은 산장처럼 보이는 술집이 있었고 그 앞엔 바이크가 스무 대 정도 주차되어 있었다. "우와... 이런 곳에 술집이 있다니. 다들 어떻게 알고 여길 오는 거예요?" 늘어선 바이크 사이를 걸어가며 코너가 순진하게 웃어 보였다. 레이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익숙하게 출입문을 열고 코너를 그 안으로 안내했다. 음악소리와 사람들 말소리로 소란스럽던 실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코너는 이 침묵의 원인이 자신 때문이라는 걸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레이가 아는 얼굴들과 안부를 묻고 다니는 동안 코너는 증명사진처럼 어색한 미소로 벽을 바라봤다. 왼쪽 벽에서 오른쪽 벽으로, 그리고 정면에 있는 벽에서 다시 왼쪽 벽으로. 나무로 된 스툴이 너무 높아 발뒤꿈치가 바닥에 닿지 않았다. "뭐 마실래." "어... 맥, 맥주요!" "맥주 뭐." "음... 논알콜... 있을까요?" 레이가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마치 논알콜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보는 것처럼. 그가 바텐더에게 가서 뭐라고 말하자 그 주변에서 엄청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깨가 움츠러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두가 바이크 슈트를 입은 어른 남자였고 20대는 코너가 유일했다. 그냥 20대도 아닌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생일도 지나지 않아 정확히는 열아홉 살 밖에 안 된 꼬맹이. 레이가 커다란 맥주잔 두 개를 들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흑맥주예요...? 한 번도 안 마셔 봤는데..." "마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레이의 목젖만 쳐다보던 코너도 두 손으로 맥주잔을 잡았다. 흑맥주가 그냥 맥주보다 더 도수가 높은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논알콜이 아니라면 이거든 저거든 똑같다고 생각했다. "어...?" 그런데 입안에서 익숙한 단맛이 몰아쳤다. "이거... 맛이 꼭 콜라 같아요. 맛있다." "콜라야." "앗, 그런가요..." 이런 곳에 와서 술도 못 마시고 콜라나 홀짝이는 게 민망했지만 내심 콜라를 마실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코너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주는 레이가 듬직하다고 생각했다. 산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논알콜 맥주 같은 건 없으니 다른 걸 고르라고 물어보는 대신 알아서 콜라를 갖고 와준 게 좋았다. 레이는 말이 없고 대답도 짧지만 지루한 사람은 아니었다. 무서운 사람도, 이상한 사람도 아니었다. 적어도 코너는 그렇게 느꼈다. 말없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게 부끄럽긴 해도 그 시선 끝엔 다정함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술집을 나서는 사람과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꼭 레이를 거쳐 가는 게 신기했다. 안부, 날씨, 바이크 순서로 이야기가 흐른 뒤엔 꼭 코너를 향해 턱짓을 했다. 그럼 가죽 자켓을 입은 남자들이 코너에게도 악수를 청했다. '저는 코너라고 해요...'라는 말만 열세 번쯤 한 것 같았다. 조금 의아했던 건 그 많은 사람들이 둘의 관계에 대해 묻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누구야? 라든가, 조카야? 라든가, 아니면 동호회 신입이야? 라든가. 궁금해할 법도 한데 아무도 묻지 않았다. 마치 무슨 관계인지 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아저씨는 바이크 탄 지 알마나 됐어요?" "10년 정도." "그렇구나... 저도 어릴 땐 작은 바이크가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사주신 건데, 그거 타고 놀다가 나무를 들이받아서 이마 뼈가 함몰됐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마치 내 이마를 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코너였다. 레이는 살며시 웃으며 남은 맥주를 들이켰다. "근데 아저씨 맥주 마시고 바이크 몰면... 음주 운전인데... 어떡해요? 그러고 보니 여기 사람들 다 바이크 갖고 왔는데 술을 마시네요?" 대화가 들렸는지 뒤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너에게 말했다. 우린 논알콜이거든. 자기를 놀리는 건지도 모르고 코너는 논알콜 맥주가 있었는데 왜 안 준 거냐며 레이에게 물었다. 레이는 말없이 콜라가 반쯤 남은 맥주잔을 손가락을 밀어줬다. "얼른 마셔." "아저씨도 논알콜 먹은 거예요 그럼?" "여긴 논알콜 같은 거 안 팔아." "그럼 저 아저씨 말은 뭐예요? 논알콜이 아니면... 술 마신 상태로 바이크를 운전한다고요? 뒷자리에 저를 태우고요?" 그때 술집을 나서던 한 남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여기서 자고 가는 건데. 말 안 했나 보구만. 엄마한테 전화해라, 외박한다고. "어... 아니죠? 저 기숙사 들어가야 해요. 내일 아침에도 수업 있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레이가 코너 옆으로 다가갔다. 너도 일어나라는 뜻이었다. 높은 스툴에서 폴짝 뛰어내려온 코너는 울상을 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 정말 가야 하는데... 내일 아침 첫 수업이라 늦으면 안 돼요 아저씨. 앞서 걷던 레이가 술집 문을 잡아주며 대답했다. "내일 아침 일찍 데려다줄 거야." 당장 어디에서 자는 건지, 같은 방을 쓰는 건지 머릿속이 바빠졌다. 칫솔이랑 속옷도 안 가져왔는데. 바이크 시트 밑에서 뭔가 압축된 가방을 꺼낸 레이가 호수 근처로 가더니 바닥에 가방을 툭 던졌다. 그 안에서 뭐라도 나오나 기대했지만, 그냥 그 압축 가방이 베개 대신이었다. "설마 여기서 이렇게 자는 건 아니죠?" "폭죽 소리 괜찮지?" "네? 폭죽이라니... 그게 중요한 아니고, 모텔이나 이런데서 자는 거죠?" 레이는 익숙한 듯 바닥에 등을 대고 대자로 누웠다. 주변을 돌아보니 이미 많은 사람이 누워 있었고 몇몇 젊은 남자들이 폭죽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코너는 쭈뼛대며 레이 옆에 쪼그려 앉았다. 오랜만에 보는 폭죽이었다. "너도 할래?" "아뇨... 이따가 텐트 같은 거라도 치는 거죠?" "겨울 되면 이것도 못해. 지금이 딱 하늘 보며 잠들기 좋은 날씨야." 해가 지고 있었다. 정말 이대로 호숫가에 누워 노숙자처럼 자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보이스카웃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압축 가방을 껴안고 꼬물꼬물 몸을 눕히니 레이가 힐끗 옆을 돌아봤다. 그거 베개 하라고 준 거야. 너무 딱딱해요. 안 베고 잘 거면 내놔. 아니에요, 주세요! 코너는 주먹으로 압축 가방을 퍽퍽 치면서 나름 부드럽게 만들려고 애썼다. 숲의 밤은 도시의 밤보다 훨씬 짙었다. 폭죽 소리가 끊이지 않는데도 레이는 금방 잠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말을 걸어볼까 싶었지만 왠지 다들 짝을 이루고 있어 다가가기 어려웠다. 몸 붙이고 마음 붙일 사람이 레이뿐이라는 걸 깨닫고 코너는 그의 팔뚝에 뺨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슼탘 레이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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