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는 어떻게 해서 세조가 됐을까?
종묘에서 부르는 이름, 묘호
조선시대 국왕의 호칭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대표 호칭은 묘호(廟號)였다.
묘호는 종묘에서 부르는 호칭이란 의미이다.
예컨대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등이 묘호였다. 이 묘호는 왕의 재임 시 업적에 대한 후세의 평가였다.
묘호는 두 개의 글자로만 이루어졌다.
앞의 글자는 각각 다르지만, 뒤의 글자는 조(祖) 아니면 종(宗)으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 두 글자로 된 묘호는 철저하게 왕의 업적을 기준으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이 묘호를 통하여 조선시대 사람들은 왕이 살아생전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 알 수 있었다.
왕의 업적을 평가하는 항목은 두 가지, 공(功) 아니면 덕(德)이다.
공은 이 땅의 무질서와 혼돈을 바로잡는 대업을 이룬 경우였다.
이에 비해 덕은 선대의 왕들이 확립한 훌륭한 정치 이념을 계승하여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계속 이어 간 경우였다.
묘호는 국왕의 업적에 대한 평가서와 같았으므로, 서로 간에 평가 의견이 다를 수 있었다.
신료들 간에도 의견이 다르거나 아니면 신료들이 올린 평가 의견에 왕이 동의하지 않는 수도 있었다.
심지어는 몇 십 년 지난 후대 사람들이 전대의 평가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고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왕의 업적에 대한 평가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으므로 2품 이상의 재상들이 왕에게 세 가지의 묘호를 추천해 보고하면,
왕이 그 중에서 판단하여 선택하였다.
왕은 추천된 세 가지 묘호 중에서 첫 번째 묘호를 선정하는 수가 많았다.
그렇다면 각종 미디어 작품의 단골 소재인 계유정난의 주인공 세조
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조선시대의 관행으로는 왕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조카 단종을 쫓아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 세조가 단종을 쫓아낸 행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다.
신료들이나 후계 왕의 평가 의견이 대립할 수 있는 것이다.
세조는 어떻게 해서 세조가 됐을까?
세조가 승하한 후 예종이 왕위에 올랐다.
전하 선왕(세조)의 묘호를 결정하셔야 합니다.
어 그래그래 추천해봐
신종, 예종, 성종 중 고르시면 됩니다.
?
?
우리 아빠가 나라를 중흥시킨 공이 있는 거 모름? 근데 왜 다 종(宗)이야
아니 세조는 이미 세종이 계시기 때문에 안됩ㄴ
중국 한나라 때도 세조랑 세종 있었는데?
(...)
다시 가져와.
예종의 질책을 받은 신료들은 모두 할 말을 잃고 벌을 내려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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