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독립운동가
일제 감옥에 7번 끌려가 혀까지 깨물었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훈장 하나 받지 못한 남자
"혀를 깨물지언정, 피를 나누며 결의한 동지의 이름은 내 입에서 결코 나갈 수 없습니다."
영화 <밀정> 속 공유가 연기한 의열단원의 실제 모델이자, 대한민국 독립투쟁사에서 가장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독립운동가 김시현 선생.
1923년, 그는 의열단장 김원봉과 함께 조선총독부를 겨냥해 36개의 폭탄과 권총을 국내로 몰래 들여오는 대담한 거사를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밀고로 인해 거사 직전 일제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이어진 일경의 잔혹한 고문과 폭행 앞에서도 그는 스스로 혀를 깨물며 정적을 지켜냈습니다.
평생 짧아진 혀와 불편한 발음이라는 상처를 끌어안은 채, 일제강점기 동안 무려 일곱 번이나 옥고를 치르며 10년이 넘는 청춘을 차디찬 감옥에서 바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염원하던 해방이 찾아왔음에도 그가 꿈꾸던 평등하고 정의로운 나라는 오지 않았습니다.
일제에 부역하던 친일파들이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서고 이승만 정권의 독재가 횡행하자, 일흔을 바라보던 노병은 1952년 또다시 옛 의열단 동지 유시태와 함께 독재 정권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습니다.
비록 총알이 불발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혔지만, 그 굳건했던 지조와 기개는 결코 꺾이지 않았습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에야 겨우 감옥에서 풀려났으나, 대통령 암살 미수 전력이라는 굴레 때문에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 하나의 독립유공자 훈장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눈을 감기 전, 평생의 독립운동 동지이자 아내였던 권오설 지사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권동지, 미안하오"라는 가슴 메어지는 한마디였습니다.
자신의 몸을 던져 조국을 지켜냈음에도 역사 뒤편으로 잊혀야 했던 참된 영웅 故 김시현 선생.
돈과 권력, 타협 대신 오직 정의만을 좇았던 그의 숭고하고 고결했던 삶에 깊은 경의와 진심 어린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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