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 원짜리 반도체 심판대, ‘디저트와 뼈’의 환장할 로맨스

 

 

 

세상 참 좋아졌다. 뼈를 깎는 수술실의 명의와 달콤한 크림으로 지친 마음을 녹이는 디저트 카페 대표님이 대한민국 첨단 산업의 대동맥을 쥐락펴락하는 심판관으로 거듭났으니 말이다.

정부가 2027년부터 4년간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쏟아붓겠다는 돈은 무려 6조 원이다. 평범한 소시민은 평생을 구경조차 하기 힘든, 0의 개수를 세다 눈이 아파오는 천문학적 국고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이 거대한 예산의 타당성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매년 수조 원이 흘러갈 둑방의 균열을 가려내야 할 국무총리 소속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원위원회’의 면면을 보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산업 분야 민간위원 3인방의 이력이 화려하다. 디저트 카페 대표, 정형외과 의사 출신 대학 총장, 그리고 지역 균형발전 정책 원장.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왔을 그 노고를 깎아내릴 의도는 티끌만큼도 없다. 다만 순수한 의문이 들 뿐이다.

달콤한 디저트 레시피와 인체의 뼈마디를 꿰뚫는 지식이, 하루에 65만 톤씩 쏟아져야 하는 공업용수와 6.3GW라는 초대형 전력망의 기술적 타당성을 판독하는 데 정확히 어떤 마법의 연금술로 작용하는지 말이다.

정부의 큰그림이 애초에 그것이었을까. 반도체 팹(Fab)을 짓다가 공정이 꼬이면 디저트로 현장을 달래고, 전력 공급에 과부하가 걸려 뼈가 휘청이면 정형외과적 처방으로 뚝딱 봉합하겠다는 깊은 뜻 말이다. 이 정도의 유기적인 융합 행정이라면 노벨상은 몰라도 행정안전부 장관상쯤은 떼놓은 당상일 테다.

물론 정부는 참으로 당당하다. 논란이 일자 "반도체 전문가 위촉이 법적 의무는 아니지 않냐"며 눈을 동그란히 뜬다. 법조문 어디에도 "6조 원을 심사하는 자리에 반도체를 아는 사람을 꼭 앉혀야 한다"고 빨간 펜으로 적어두지 않았다는 완벽한 면죄부다. 법꾸라지 마냥 법조문 뒤에 숨어 "의무가 아니다"를 읊어대면, 수조 원의 세금이 어디로 증발하든 면죄부가 발급되는 마법의 나라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돈의 성격이다. 산업통상부가 직접 집행하는 돈도 아니다. 통합특별시가 만들 기금의 반도체 계정으로 들어가, 정작 반도체 정책을 주무르는 본진인 산통부의 손을 떠나 엉뚱한 위원회의 심의대 위에 오른다.

더불어 예비타당성조사까지 면제받은 채 "나중에 보완하겠다"며 급조된 이 거대한 자금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정밀한 현미경을 들이대야 할 위원회에, 정작 '반도체'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표를 가진 위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거대한 판을 깔고 춤을 추는 이들 중에는 지역 살림을 책임진 자치단체장들의 얼굴도 겹쳐 보인다.

특히 광주를 이끄는 민형배 시장의 행보는 사뭇 깊은 여운을 남긴다. 막대한 재정 지원과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라는 굵직한 ‘정무적 전적’을 챙기기 바빠, 정작 그 돈을 제대로 벼려낼 심사대에 ‘반도체’라는 글자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눈에 띄지 않았던 모양이다.

‘광주·전남의 통합’이라는 대의명분만 전면에 내걸면, 6조 원이라는 혈세가 부실한 검증 속에 난도질당하든 눈 한 번 감으면 그만인가.

언론과 국회가 매섭게 지적하고 나서야 정부는 "뒤늦게 전문가 추가 위촉을 검토하겠다"며 허겁지겁 뒷북을 친다. 호미로 막을 일을 포크레인으로도 못 막을 지경이 되어서야 움직이는 민첩한 늑장 행정에 박수를 보낸다.

실수가 거듭되면 무능이고, 뻔한 팩트를 지적받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면 그것은 오만이다. 6조 원은 정권의 정치적 명분을 포장하기 위한 쌈돈이 아니다. 뼈 빠지게 일해서 세금을 바치는 국민의 피와 땀이다.

대체 언제까지 법조문 뒤에 숨어 ‘합법적 난장판’을 방조할 것인가. 디저트 향 가득한 회의실에서 반도체의 운명이 결정되는 이 기막힌 풍경 속에서, 상식의 자리에 상식을 채워 넣는 그 쌈박한 정상화는 과연 언제쯤 시작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