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경흥군과 러시아 연해주 사이에 있었던 녹둔도라는 조그만 섬이 있었다 지금은 러시아에 붙어버렸다 녹둔도는 교통의 요지인 것으로 추정되어 조선 정부는 1583년부터 녹둔도에 둔전(군사용 논밭)을 세우고 소규모의 병력을 배치하여 수비하도록 하였다 다만 여진족 마을과 너무 가까워서 지방 사람들이 걱정했다고 하고 그 걱정은 곧 현실로 바뀐다 1587년, 충무공 이순신은 조산보 만호(造山堡萬戶, 현대의 대대장, 중령급)로 근무하며 녹둔도를 지키고 있었는데 다수의 여진족 기병이 쳐들어왔다는 첩보를 받고 그에 맞아 싸운다 당시 충무공이 이끌던 병력 수는 정확하지 않으나 조산보의 총 정원이 90명이므로 그보다 이하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충무공은 당시 경흥부사 이경록(충무공의 과거시험 합격 동기, 충무공은 병과 4등, 이경록은 병과 3등)과 함께 여진족을 맞아 싸워 녹둔도 방어에 성공하고 포로 50여명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으나 전사자 약 10명, 농민 포로 약 160여명의 피해를 입게 된다 당시 북병사(병마절도사, 현대의 사단/군단장, ☆☆/☆☆☆) 이일은 이순신과 이경록의 전투 결과를 객관적으로 보고하였으나 그와 별도로 이 둘을 감옥에 가뒀고, 추후 장계로 이들을 처형하겠다고 보고한다 실제로 몇년 전 고을이 함락되었을 때 선조의 명으로 책임자가 처형된 일이 있으니 이순신과 이경록이 실제로 처형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순신이 상급자인 병마절도사 이일에게 "조산보 병력이 너무 적으니 좀 지원해주세요" 라고 보고하였으나 이일이 병력을 보내지 못했던 기록이 있었으며, 기병 vs 보병(90명 이하)라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 속에서 분전하며 녹둔도를 지켜낸 공이 인정되었다 따라서 선조는 이순신과 이경록에게 장형 + 백의종군 선고로 일을 마무리짓게 되며 이순신과 이경록은 백의종군으로 참여한 바로 다음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복직된다 충무공은 말할것도 없고, 당시에 함께 싸웠던 동기 이경록도 임진왜란 도중 제주도를 방어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유능한 관리였다 실제로 이 둘을 처형되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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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령 시절 처형 당할뻔한 충무공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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