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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이승만을 싫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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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2월 28일 3.15 대선 을 앞두고 경상북도 대구시 (현 대구광역시)의 8개 고교 학생들이 자유당 의 독재와 불의에 항거해 일어난 시위다. 이 시위는 제1공화국 정부 수립 이후 시민들이 민주 개혁을 요구한 최초 의 시위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2월 28일은 국가 기념일 로 지정되었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 이 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해방 정국의 미군정 에서 대구 10.1 항쟁 [1] 이라는 최초의 무장항쟁이 일어났으며 6.25 전쟁 이 끝난 뒤 한반도 최초의 민주화 운동 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60년 2월 28일, 일요일 이었던 그날 수성천변에선 야당인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 연설이 계획되어 있었다. 참고로 당시 장면 후보는 같은 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 박사가 사망하면서 거의 대통령 후보급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심지어 대구 지역은 당시 이승만 / 자유당 에 대한 반감이 매우 짙었고 서울과 함께 자유당의 약세지역으로 손꼽혔다. [2] 오늘날 대구 지역은 보수적 색채가 강한 곳이지만 당시 대구는 남한에서 가장 진보적인 동네로 꼽혔다 . [3] 한때 동양의 모스크바인 대구였는데, 박정희로 인해 많은게 바뀌었죠. 또 시간이 지나면 박정희는 희미해지고 새로운 꽃이 피리라 믿습니다. 대구를 욕해도 이승만을 찬양하는 동네라는 소리는 안 하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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