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에 회사 그만뒀습니다 애가 돌 지나고 어린이집 적응을 너무 못 해서 둘 중 하나는 집에 있어야겠다고 아내랑 같이 결정한 거였어요 아내 연봉이 저보다 높아서 제가 그만두는 게 맞다고 둘 다 동의했고요 그렇게 열 달째 애 보고 있습니다 아침에 애 깨워서 밥 먹이고 기저귀 갈고 낮잠 재우고 그 사이에 청소 빨래 장보고 이유식 만들고 아내 퇴근하면 저녁 차려놓고요 솔직히 회사 다닐 때보다 몇 배는 힘듭니다 근데 지난 금요일에 일이 터졌어요 아내 회사 동기들이랑 부부 동반 저녁이 있었는데 아내가 저를 소개하면서 이쪽은 우리집 백수예요 이러더라고요 다들 웃었어요 아내도 웃었고요 저만 못 웃었습니다 그 뒤로 저녁 내내 동기 남편들이 무슨 일 하세요 물어보면 그냥 애 보고 있습니다 했고 그럼 아내분이 다 버시는 거예요? 와 부럽네요 팔자 좋으시다 이런 말을 서너 번 들었어요 그때마다 아내는 옆에서 맞아요 저 혼자 벌어요 이러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진짜 참다가 터졌습니다 백수라는 말을 꼭 그렇게 해야 했냐고 아내는 농담인데 왜 그렇게 예민하냐고, 그럼 뭐라고 소개하냐고 하더라고요 전업주부라고 하면 되잖아 했더니 남자가 전업주부라고 하면 더 이상하게 본다고 그러니까 차라리 웃기게 넘긴 거라고요 그 말 듣고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운전만 했어요 근데 생각할수록 허탈하더라고요 같이 결정했잖아요 제가 놀려고 그만둔 게 아니잖아요 아내가 평소에 저한테 고맙다는 말 안 하는 건 아니에요 주말에 애 재우고 나면 오늘도 고생했어 이런 말도 해주고요 근데 그게 집 안에서만이에요 밖에 나가면 저는 와이프 등골 빼먹는 백수 남편이 되는 거죠 주변 반응도 다 비슷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언제 다시 회사 들어가냐고 매번 물으시고 친구들은 부럽다면서 단톡에 아내 등에 업혀 사는 놈이라고 놀려요 처음엔 같이 웃었는데 이제는 단톡 알림 오면 그냥 안 봐요 그날 이후로 아내 휴대폰에 제 이름이 뭐로 저장돼 있는지까지 신경이 쓰여요 괜히 봤다가 더 상처받을까 봐 안 보고 있지만요 어제 아내한테 다음 모임부터는 그냥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그럼 사람들이 더 이상하게 본다고 같이 가자고 하네요 가서 또 백수 소리 들으라는 건지 제가 예민하게 구는 건가요 농담 한마디에 열 달 동안 한 일이 다 없어진 것 같은데
📰
이슈
-
·
-
·
약 1분 분량
육아하려고 회사 그만뒀더니 백수 남편 됐네요
|
0
댓글
댓글을 작성하려면 회원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