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맏형의 최애 는 누구? 그날은 그레이스가 학교 일 때문에 평소보다 늦는 날이었고, 식스와 콜트, 드라이버 셋만 먼저 집에 와 있었음. 어느덧 저녁때가 다 되어가고 있었지만, 어차피 그레이스도 곧 온다고 했으니 셋은 밥을 먼저 먹지 않고 기다리며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 식스는 소파 한쪽에 기대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드라이버는 맞은편에 앉아 별생각 없이 TV 채널을 돌리고 있었음. 콜트는 한동안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눈을 번쩍였지. “이거 봐봐.” 그러고는 냅다 둘 사이로 휴대폰을 들이밀었음. 식스는 화면에 시선조차 주지 않았고, 드라이버 역시 리모컨을 누르던 손을 멈추지 않았지. “뭔데.” 둘 다 심드렁하기 짝이 없었지만 콜트는 전혀 개의치 않았음. 오히려 몸을 앞으로 쭉 숙이며 자기가 방금 발견한 걸 신이 나서 설명하기 시작했지. “누구한테 여러 사람이 동시에 뽀뽀하면 그 사람이 본능적으로 제일 좋아하거나 의지하는 사람을 쳐다보게 되어 있대. 신기하지 않아?” 그제야 식스와 드라이버의 시선이 천천히 콜트에게 향했음. 표정은 둘 다 비슷했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콜트는 그 눈빛을 보고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음. “형한테 해보자.” 식스의 미간이 바로 좁아졌음. “...뭘.” “이거. 우리 셋이 동시에 형한테 뽀뽀하는 거야.” “.....” 잠깐의 정적 끝에 식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음. “싫어. 너나 해.” 그리고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내렸지. 콜트는 곧바로 손바닥으로 식스의 휴대폰 화면을 가려버렸음. “아, 한 번만 해보자.” 식스가 손을 옆으로 옮기자 콜트 손도 그대로 따라왔음. “손 치워.” “궁금하잖아.” “별로.” 이번에는 드라이버가 다시 TV를 보려 하자 콜트가 반대편 손을 뻗어 눈앞에서 휘휘 저었음. “네 생각은 어때?” 드라이버가 귀찮다는 얼굴로 고개를 뒤로 뺐음. “됐어.” “진짜 안 궁금해?” “응.” “거짓말.” “진짜 안 궁금해.” “진짜? 형의 최애동생이 누군지 안 궁금하다고?” “애초에 그런 게 어딨냐.” “왜 없어. 있을 수도 있지.” “없어.” “아 왜애. 재미로라도 한번 해보자.” 아무도 대꾸하지 않자 콜트가 못마땅한 듯 “칫.” 하고 입술을 내밀었음. 결국 휴대폰을 거둬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식스도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내렸으며 드라이버 역시 TV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 그렇게 이야기는 끝난 것처럼 보였음.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지. 식스는 휴대폰을 보고 있으면서도 조금 전 콜트가 한 말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음. 형이 제일 좋아하거나 의지하는 사람을 본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왠지 자기를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쳤지. 드라이버도 비슷했음. TV 화면은 계속 바뀌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용은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음. 그런 걸로 사람 마음을 알아낼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셋 중 하나를 본다면 자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정도는 들었지. 둘 다 그 생각을 굳이 오래 붙잡지는 않았음. 다만 아까까지만 해도 관심조차 없던 장난이 어느새 한 번쯤 결과를 확인해보고 싶은 일로 바뀌어 있었을 뿐이었음. 그리고 콜트는 그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음. 자기 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은근슬쩍 곁눈질하고 있었는데, 조금 전까지 그렇게 단칼에 싫다고 하던 것치고는 영 집중하는 얼굴들이 아니었지. 식스는 같은 화면에 유난히 오래 머물러 있었고, 드라이버도 채널을 바꾸는 걸 잊은 듯 멍하니 TV만 바라보고 있었음. 콜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음. “봐봐. 솔직히 궁금하잖아.” “...안 궁금하다니까.” 콜트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발끝을 까딱였음. “그럼 그냥 하면 되잖아.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재미로 하는 거야. 어차피 나도 이거 백 퍼센트 믿는 건 아니야.” 식스는 대답하지 않았음. “형 볼에 뽀뽀 한번 하는 게 뭐 어때서.” 드라이버가 콜트를 가만히 바라봤음. “너는 원래 그러니까 아무렇지 않겠지.” 그건 맞는 말이었음. 콜트는 셋 중 스킨십이 가장 많은 편이었음. 애교도 많았고, 뒤에서 목을 끌어안거나 어깨에 매달리는 건 기본이었으며 기분이 좋으면 냅다 끌어안거나 볼을 부비는 일도 있었지. 반면 식스와 드라이버는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었음. 둘 다 애정을 굳이 몸으로 표현하는 타입이 아니었고, 먼저 끌어안는 일조차 드물었음. 그러니 아무런 맥락도 없이 그레이스 볼에 입을 맞추자는 제안이 꺼려지는 게 당연했지. 무엇보다 그레이스가 얼마나 당황할지는 굳이 해보지 않아도 훤했음. “우리는 아니잖아.” 드라이버가 그렇게 덧붙이자 콜트도 잠시 입을 다물었음. 정말 내켜 하지 않는다는 건 이제 알겠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지. 한동안 눈을 굴리며 고민하던 콜트가 갑자기 자세를 바로잡았음. “좋아.” 그러고는 먼저 드라이버를 봤음. “디. 내 차 몰아도 돼.” 드라이버가 리모컨을 누르던 손을 멈췄음. “뭐?” “전에 한번 몰아보고 싶다며.” 드라이버가 이번에는 아예 콜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음. 콜트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바로 못을 박았지. “해주면 하루 빌려줄게. 내가 옆에 안 타도 돼.” 그러고는 괜히 생색까지 덧붙였음.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돈 모아 산 건지 알지? 나도 아까워서 잘 안 타는 건데 너한테 하루 통째로 빌려준다.” 드라이버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음. 그 차는 콜트가 얼마 전 큰맘 먹고 뽑은 새 차였음. 한동안 돈을 모으고 또 모아서 겨우 산 만큼 유난히 애지중지했고, 작은 흠집 하나라도 날까 봐 본인조차 조심스럽게 다루는 물건이었지. 드라이버가 차를 처음 봤을 때 한번 몰아보겠다고 했지만 콜트는 시동 한번 걸어보게 해주지 않았음. 식스가 옆에서 어이없다는 듯 콜트를 바라봤음. “너 그렇게까지 하고 싶냐?” “응.”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음. 식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 콜트는 이번에는 그쪽으로 몸을 틀었음. “형도.” “난 됐어.” “내 헤드폰.” 식스의 시선이 아주 잠깐 멈췄음. 콜트는 그걸 놓치지 않았지. “그거 형 가져.” 식스가 콜트를 빤히 바라봤음. 그 헤드폰은 콜트가 꽤 비싸게 주고 산 물건이었음. 정작 콜트 본인은 집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듣는 걸 더 좋아해서 손이 자주 가는 편은 아니었지만, 식스는 달랐지. 우연히 한번 써본 뒤로 꽤 마음에 들었는지 콜트가 사용하지 않을 때면 가끔 조용히 물어보곤 했음. “이거 지금 써도 돼?” “응.” 그러면 한두 시간 사용한 뒤 늘 원래 자리에 정확히 돌려놓았지. 갖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음. 평소 물건 욕심도 거의 없는 사람이었고, 굳이 자기 걸로 만들 생각까지는 없어 보였으니까. 그래도 콜트는 알고 있었음. 식스가 유독 저 헤드폰만큼은 꽤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걸. “형 그거 좋아하잖아.” 식스가 슬쩍 시선을 피했음. “그냥 편해서 쓴 거야.” “그러니까 편하니까 가지라고.” “그럼 넌?” 콜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음. “난 사실 음악도 그렇게 자주 안 들어. 들어도 헤드폰 끼는 것보다 그냥 크게 틀어놓는 게 좋더라.” 식스는 잠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음. 콜트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아예 못을 박았지. “해주면 형 가져. 진짜로. 나중에 돌려달라고도 안 할 테니까.” 평소 같으면 이런 거래에 넘어갈 생각도 없었겠지만 조건이 생각보다 너무 정확하게 들어왔음. 사실 갖고 싶긴 했거든. 굳이 새걸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기 것이 된다면 분명 잘 쓸 물건이었음. 무엇보다 한 번도 갖고 싶다고 말한 적 없는 걸 콜트가 먼저 눈치채고 내민 게 조금 얄미웠지. 식스가 결국 헛웃음을 흘렸음. “너 사람 약점 잡는 데 재주 있네.” 콜트가 뻔뻔하게 웃었음. “그래서 할 거야?” 식스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콜트를 바라봤음. 그러다 결국 깊게 한숨을 내쉬었지. “...하, 알았어.” 콜트 얼굴이 바로 밝아졌음. “진짜?” “한 번만이야.” “응!” 식스는 한숨 섞인 얼굴로 콜트를 한번 노려봤음. “대신 형한테 맞아도 난 모른다.” 콜트가 대수롭지 않게 웃었음. “형은 그냥 놀라서 머리나 긁적이고 말겠지.” 식스가 잠깐 생각하더니 작게 중얼거렸음. “...하긴.” 그레이스 성격을 생각하면 틀린 말도 아니었음. 식스는 더 대꾸하지 않고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내렸지만,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풀린 것까지는 숨기지 못했음. 식스까지 넘어가자 콜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드라이버에게 향했음. 드라이버는 여전히 리모컨을 손에 쥔 채 둘을 번갈아보고 있었지. 콜트가 턱짓했음. “디는?” 드라이버는 한동안 말이 없었음. 그러다 결국 못 이기는 척 리모컨을 소파 위에 내려놓았지. “...알았어.” 콜트 눈이 반짝였음. “진짜?” 드라이버는 곧바로 조건부터 붙였음. “대신 차 일주일 몰게 해줘.” “뭐어?” “일주일.” 드라이버는 조금도 물러날 생각이 없는 얼굴이었음. 콜트는 입을 벌린 채 한동안 드라이버를 쳐다봤음. 자기가 먼저 거래를 걸긴 했지만 일주일까지 내줄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었지. 그래도 여기서 안 된다고 했다가는 드라이버가 곧바로 빠질 게 뻔했음. 결국 콜트가 얼굴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음. “아, 알았어! 일주일. 네가 운전 잘해서 봐주는 줄 알아.” 그제야 드라이버 입가에 아주 옅은 웃음이 번졌음. “나중에 딴말하지 마.” “알았다고.” 그렇게 셋의 거래가 성립됐음. 형의 최애동생이 누군지 한번 확인해보겠다고, 신빙성이 있는지도 모를 이야기에 헤드폰이며 자동차며 선뜻 내어놓는 콜트도 충분히 어이없었음. 그런데 식스와 드라이버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어이없는 게 따로 있었지. 그 조건에 결국 넘어가버린 자기들이었음. 둘 다 굳이 입 밖으로 인정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왕 이렇게까지 하게 된 이상 정말 그레이스가 셋 중 누구를 먼저 쳐다볼지 은근히 궁금해진 것도 사실이었지. 잠깐의 정적 끝에 콜트가 느긋하게 소파에 등을 묻었음. “근데 형은 아마 나 볼걸.” “넌 아닐 거다.” 콜트가 황당하다는 듯 웃었음. “왜?” “아무튼 넌 아냐.” “뭐야, 근거도 없잖아.” 식스는 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내렸음. 그러자 이번에는 드라이버가 무심하게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끼어들었지. “누구 볼지는 해봐야 알지.” 콜트가 식스와 드라이버를 번갈아보다가 피식 웃었음. “뭐야. 다 본인이 최애라고 생각하나 보네.” 드라이버가 짧게 코웃음을 쳤고, 콜트가 뭐라고 한마디 더 놀리려던 순간이었음. 현관문 밖에서 익숙한 인기척이 들리더니 곧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났음. 셋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현관 쪽으로 향했지. “나 왔어.” 피곤한 얼굴로 신발을 벗으며 들어온 그레이스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셋을 한번 둘러봤음. “너네 아무것도 안 먹었어?” “응.” 식스가 대답했음. 그레이스는 예상했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고 곧장 주방 쪽으로 향했지. “왜 안 먹었어. 먼저 먹지.” 콜트가 그 뒤를 졸졸 따라붙었음. “형 금방 온다며.” “그래도 배고프면 먹어야지.” “같이 먹으려고 기다린 거야.” 그레이스가 걸음을 멈추고 콜트를 한번 돌아봤음. 그러더니 피곤한 와중에도 조금 웃으며 손가락 마디로 콜트 정수리를 가볍게 콩 두드렸지. “기특하네.” 콜트는 괜히 흐뭇한 얼굴이 됐고, 그 모습을 본 식스와 드라이버는 별말 없이 시선을 돌렸음. 저녁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지나갔음. 그레이스가 늦게 온 만큼 셋도 꽤 배가 고팠고, 식탁에 둘러앉자 자연스럽게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이 오갔지. 콜트가 쓸데없이 말을 부풀리면 그레이스가 웃으며 받아쳤고, 식스는 중간중간 한마디씩 사실을 바로잡았음. 드라이버는 조용히 듣다가 꼭 필요한 순간에만 툭 끼어들었지. 식사를 마친 뒤에는 차례로 씻고 나와 다시 거실에 모였음. 그레이스는 소파 가운데에 앉았고, 식스와 드라이버는 양옆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자리 잡았음. 콜트는 한쪽 팔걸이에 거의 걸터앉다시피 했지. TV에서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프로그램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넷 중 누구도 화면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지는 않았음. 그냥 같은 공간에 모여 각자 편한 자세로 시간을 보내는 것. 4형제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저녁 풍경이었지. 그러다 콜트가 슬쩍 식스를 봤음. 눈이 마주치자 아주 작게 턱을 까딱했지. ‘지금.’ 식스의 미간이 바로 좁아졌음. 콜트는 모른 척 이번에는 드라이버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똑같이 짧은 고갯짓을 보냈음. ‘지금.’ 드라이버도 썩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음. 하지만 이미 거래까지 끝난 일이었고, 여기까지 와서 혼자 빠질 수도 없었지. 정작 그레이스는 아무것도 모른 채 TV만 보고 있었음. 그리고 거의 동시에 셋이 그레이스 쪽으로 몸을 기울였음. 팔걸이 쪽에 있던 콜트가 먼저 옆에서 얼굴을 들이밀었고, 반대편에 앉아 있던 식스도 몸을 숙여 가까이 붙었음. 드라이버 역시 그레이스의 다른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지. 쪽. 거의 동시에 가벼운 소리가 세 번 겹쳤음. 그레이스는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대로 굳어버렸음. 조금 전까지 멀쩡히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세 방향에서 얼굴에 입술이 닿았으니, 놀란 나머지 반응조차 한 박자 늦어진 모양이었지. “.....” 그레이스는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만 천천히 깜빡였음. 그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 입을 열었지. “...뭐야?”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음. 콜트 쪽이었지. 정확히는 바로 옆에서 자기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콜트의 얼굴을 봤음. 그 순간 콜트의 눈이 확 커졌음. “헉.” 식스와 드라이버의 표정도 동시에 미묘해졌음. 그런데 콜트는 둘의 반응을 살필 틈도 주지 않았지. “날 봤어!” 그러고는 냅다 그레이스를 와락 끌어안았음. “야, 잠깐.” “나 본 거지, 지금?” “뭐?” “형, 나 제일 좋아해?” “뭐라는 거야.” 콜트는 이미 신이 나서 그레이스를 더 꽉 끌어안고 있었음. 거의 소파 위에서 방방 뛰듯 몸을 흔들어대는 바람에 그레이스만 팔 사이에 갇혀 낑낑댔지. “내가 최애야! 역시 나였어!” “아, 야. 좀 놔.” 그레이스가 콜트 팔을 밀어냈음. “숨 막혀.” “나 제일 좋아하지?” “아니, 너네 지금 뭐 하냐고.” “형이 나 봤잖아.” “그러니까 그게 왜!” 그레이스는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음. 콜트가 갑자기 달려드는 거야 평소에도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식스와 드라이버까지 아무런 맥락 없이 자기 볼에 입을 맞춘 건 처음이었지. 그레이스는 콜트를 겨우 떼어내고 양옆을 번갈아봤음. “너네 오늘 왜 그래?” 식스는 이미 팔짱을 낀 채 슬쩍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고 있었음. “몰라.” 드라이버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지. “...별거 아니야.” 콜트만 혼자 세상을 다 얻은 얼굴이었음. 식스가 그런 콜트를 힐끗 보고는 낮게 중얼거렸지. “유치하게.” “왜. 부러워?” “아니.” 드라이버도 무심하게 한마디 얹었음. “신빙성도 없는 걸 진짜 믿네.” 이번에는 콜트의 시선이 드라이버에게 향했음. “질투?” “아니.” “표정은 그런데.” “꺼져.” 그레이스는 방금 뽀뽀당한 볼을 손바닥으로 벅벅 문지르며 셋을 번갈아봤음. 그런데 아무리 봐도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알 수 없어졌지. “...너네 진짜 뭐 해?”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음. 콜트는 끝까지 히죽거렸고, 식스와 드라이버는 괜히 입을 다문 채 슬쩍 시선만 피했지. 결국 그레이스만 혼자 이상한 기분으로 남았음. 잠깐 진지하게 생각해봤지. ‘오늘 무슨 날이던가?’ 아무리 되짚어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음. 특별한 날도 아니었고, 좋은 소식을 들고 온 것도 아니었음. 설령 무슨 기념일이었다고 해도 셋이 동시에 달려들어 자기 볼에 입을 맞추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지. 그레이스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혼자 결론을 내렸음. ‘또 셋이서 무슨 장난을 꾸미고 있나 보네.’ 어차피 물어도 말해줄 기색이 없으니 그 이상 캐묻지는 않았음.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 문제는 그날 밤부터였음. 식스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운 뒤에도 이상하게 조금 전의 장면을 머릿속에서 떨쳐내지 못했음. 셋이 동시에 그레이스에게 입을 맞췄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굳어 있던 그레이스가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가장 먼저 콜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던 순간이 자꾸만 되풀이됐지.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식스의 머릿속에 문득 생각 하나가 스쳤음. ‘...왜 날 먼저 안 봤지?’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식스는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음. 손을 들어 미간을 꾹 누르며 짧게 숨을 내쉬었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애초에 신빙성이 있는지도 모르는 이야기였음.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뽀뽀를 받으면 그중 제일 좋아하거나 의지하는 사람을 본다느니 하는 말이 어디서 나온 건지도 몰랐고, 그런 찰나의 반응이 정말 사람의 마음과 연결된다는 근거도 없었지. 무엇보다 누가 더 사랑받는지를 순위처럼 나누는 것 자체가 평소의 식스라면 관심조차 두지 않을 일이었음. 그레이스가 셋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아낀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 마음을 굳이 서로 견주어본 적도 없었지. 콜트가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신이 나서 떠드는 거야 이해할 수 있었음. 원래 저런 장난을 좋아하는 애였으니까. 그런데 정작 식스 자신도 그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음. 머리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몇 번이고 결론을 내리면서도, 이상하게 한구석이 자꾸 걸렸지. 그레이스와 가장 오래 함께한 건 자기였음. 아직 콜트도 드라이버도 없던 시절부터 둘은 형과 동생이었고, 나이 차이도 크지 않았음. 함께 보낸 시간이 긴 만큼 둘 사이에는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통하는 것들이 많았지. 그레이스가 무슨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식스에게 의견을 묻는 경우도 많았고, 식스 역시 그레이스가 평소와 조금만 달라도 굳이 이유를 캐묻지 않고 대충 무슨 상태인지 알아차리곤 했음. 그건 오랜 시간 곁에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쌓인 익숙함이었음. 그래서 식스는 둘 사이의 관계를 굳이 특별하다고 정의해본 적도 없었지. 확인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별 의미도 없는 장난 하나가 그 당연함 위에 괜한 물음표를 하나 얹어놓은 기분이었음. ‘그래도 제일은 아닐 수도 있는 건가.’ 고작 그런 생각 하나였는데 예상보다 쉽게 사라지지 않았음. 서운하다고 부르기에는 너무 사소했고,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넘기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걸렸지. 무엇보다 그런 감정에 자기가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음. 식스는 이불을 조금 더 끌어올리며 눈을 감았음. ‘유치하게.’ 누구를 향한 말인지도 애매했지. 콜트한테 하는 말 같기도 했고, 고작 이런 일 하나로 마음이 쓰이는 자기 자신한테 하는 말 같기도 했음. 결국 식스는 더 생각해봐야 달라질 것도 없다며 억지로 생각을 끊어냈음. 한숨 자고 나면 지금보다는 훨씬 별것 아닌 일처럼 느껴질 테고, 내일은 다시 평소처럼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드라이버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음. 침대에 누운 채 한참 휴대폰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화면 위의 글자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 시선은 분명 손안의 화면에 머물러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몇 번이고 반복되고 있었음. 그레이스가 콜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던 순간,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세상을 다 가진 얼굴로 외치던 콜트. ‘내가 최애야.’ 드라이버의 입매가 아주 조금 굳었음. ‘...진짜?’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야 자기가 그 장면을 꽤 진지하게 되짚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음. 그레이스가 특별한 의미를 담아 콜트를 쳐다본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쪽을 본 것뿐일 수도 있었음. 그런데도 묘하게 마음에 남았음. 드라이버는 막내라는 자리를 꽤 좋아했음. 굳이 그걸 내세워 뭔가를 요구한 적은 없었지만, 셋 중 자기한테만 그레이스가 조금 더 느슨하게 허용하는 것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 말없이 어깨에 기대거나 품 쪽으로 파고들어도 웬만하면 밀어내지 않았고, 콜트가 똑같이 달라붙으면 “좀 떨어져.” 할 때도 자기한테는 그냥 내버려두는 일이 많았음. 막내라서 그러는 거겠지 싶으면서도 그게 은근히 좋았음. 그래서 아주 조금쯤은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었지. 형이 자기를 제일 예뻐하지 않을까. 적어도 셋 중에서는 자기한테 가장 무르게 굴지 않을까.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는, 자연스럽게 자기 몫인 자리라고 생각했음. 그런데 막상 콜트가 ‘내가 최애야.’ 하고 떠드는 걸 듣고 나니 별것도 아닌 말 하나에 그 자리가 갑자기 애매해진 기분이 들었지. 정말 빼앗긴 것도 아닌데 괜히 조금 서운했음. 드라이버는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다보다가 결국 전원을 끄고 뒤집어 놓았음. ‘됐어.’ 고작 이런 일로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했음. 그래서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지. 내일이면 다시 평소처럼 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음. 식스도 아마 비슷했을 거고. 둘 다 정말 그럴 생각이었음. 하지만 그런 결심이 무색하게도, 다음 날 아침부터 콜트가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어 보였음. 전날의 일을 혼자만의 승리로 받아들인 콜트는 아침부터 기분이 눈에 띄게 좋아 보였지. 드라이버가 방에서 나왔을 때부터 그랬음.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콜트가 드라이버를 발견하자 싱긋 웃었음. “좋은 아침.” 드라이버는 그 얼굴을 잠깐 바라보다가 별 대꾸 없이 주방 쪽으로 향했음. 조금 뒤 식스까지 나왔는데 평소라면 진작 모습을 보였을 그레이스만 방에서 나오지 않았지. 식스가 시계를 한번 확인했음. “형 아직 자?” “그런가 봐.” 드라이버도 그레이스 방문 쪽을 한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음. “깨울게.” 그런데 몇 걸음 가지도 못해 콜트가 불쑥 앞으로 들어와 길을 막았지. “야, 있어봐.” 드라이버가 눈썹을 찌푸렸음. “왜.” 콜트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음. “이런 건 최애동생이 해야지.” 그러고는 드라이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냅다 앞질러가 그레이스 방문 손잡이를 잡았음. 드라이버는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섰지. “아직도 저러네.” 몇 분 지나지 않아 방 안쪽에서 잠에 잠긴 그레이스의 낮은 목소리와 콜트가 웃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음. “아... 나 걸을 수 있어.” “알아. 가, 가.” “밀지 마...” 잠에 덜 깬 그레이스가 비척비척 방문 밖으로 나왔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그 뒤에서는 콜트가 양손으로 그레이스 어깨를 잡아 천천히 앞으로 밀고 있었지. “자, 기상 완료.” 그레이스는 반쯤 감긴 눈으로 웅얼거렸음. “으음... 알람이 안 울렸나...” 그러면서도 콜트가 미는 대로 별 저항 없이 주방까지 걸어갔음. 식스와 드라이버 앞을 지나칠 때 콜트가 둘을 향해 슬쩍 어깨를 으쓱했지. 아주 노골적으로 보란 듯한 표정이었음. 드라이버의 눈썹이 꿈틀했고, 식스는 그 꼴을 보고 짧게 한숨만 내쉬었음. 정작 그레이스는 아무것도 몰랐지. 식탁 앞에 앉자마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중얼거렸음. “커피...” 평소라면 이런 건 식스가 자연스럽게 맡았음. 그레이스가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아침이면 먼저 커피를 내려주는 날이 많았지. 그런데 오늘은 식스가 움직이기도 전에 콜트가 냉큼 주방 쪽으로 돌아섰음. “앉아 있어. 내가 해줄게.” 그레이스가 그제야 눈을 조금 떴음. “네가?” “응.” 식스도 콜트를 한번 바라봤지만 굳이 말리지는 않았음.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하는 얼굴로 조용히 한발 물러났지. 잠시 뒤 콜트가 커피를 내려 그레이스 앞에 내밀었음. “자.” 그레이스는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따뜻한 김을 잠깐 바라봤음. “...고마워, 콜트.” 평소라면 장난부터 치고 보는 콜트가 아침부터 이리저리 챙겨주는 게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음. 아직 잠에 취한 얼굴로도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지. 그 한마디에 콜트 얼굴도 덩달아 환해졌음. 그날 아침 내내 콜트는 유난히 부지런했음. 그레이스가 식탁 위 잼을 집으려 하면 먼저 밀어줬고, 출근 준비를 하며 가방을 찾으면 냉큼 가져왔으며, 마지막에는 재킷까지 집어 들고 현관으로 따라붙었지. “형, 이거.” “어? 응.” “자, 가방도.” 그레이스는 가방을 받아들면서도 콜트를 빤히 바라봤음. “고마워. 근데 너 오늘따라 안 하던 짓을 하네.” 그레이스가 순간 눈을 가늘게 뜨고 콜트를 의심스럽게 훑어봤음. “너 뭐 사고 친 거 아니지?” “아니거든.” 콜트는 조금도 찔리지 않는 얼굴로 뻔뻔하게 웃었음. “그냥 형이 좋아서 그러는 건데? 최애 서비스.” 그레이스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음. “응?” “아무것도 아니야.” 콜트는 대충 얼버무리더니 그레이스 뒤에 서 있던 식스와 드라이버를 한번 봤음. 둘에게만 보이게 입꼬리를 슬쩍 올리는 게 영 얄미웠지. 그레이스가 집을 나서고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드라이버가 입을 열었음. “그만 좀 해.” 콜트가 태연하게 돌아봤음. “뭘.” “아침부터 계속.” “내가 형 좀 챙긴 게 왜?” “평소엔 안 그러잖아.” “오늘부터 그러려고.” 식스가 옆에서 콜트를 한번 훑어보더니 낮게 말했음. “어제 형은 그냥 네가 제일 앞에 있어서 본 거야.” “그걸 형이 어떻게 알아.” “보면 모르냐.” “둘 다 부러워서 그러지, 지금?” 콜트는 전혀 타격받지 않은 얼굴로 둘을 번갈아봤음. “아니.” “아닌데.” 대답이 거의 동시에 나오자 콜트가 피식 웃었음. “그러시겠지.” 식스는 더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말없이 헤드폰을 꺼내 썼음. 이제는 완전히 자기 것이 된 물건이었지. 귀에 헤드폰을 눌러쓴 식스는 일부러 볼륨까지 조금 올린 뒤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버렸음. 그러자 이번에는 드라이버가 콜트 앞으로 다가와 말없이 손을 내밀었음. 손가락을 한번 까딱했지. 콜트가 그 손을 내려다봤음. “뭐.” 드라이버는 아무 말 없이 손만 그대로 내밀고 있었음. 그제야 콜트 얼굴에 뒤늦게 깨달았다는 표정이 떠올랐음. “아...” 콜트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드라이버 손바닥 위에 올려놨지. 그래도 바로 놓아주지는 않았음. “막내야.” 드라이버가 눈을 들었음. 콜트는 차 키를 놓지 않은 채 못내 불안한 얼굴로 당부했음. “네가 운전 잘하는 건 아는데 진짜 조심히 다뤄. 알겠지?” 드라이버가 키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음. “일주일이라고 했다.” “그래, 그래...” 그제야 콜트가 마지못해 손을 놨음. 드라이버는 만족스럽게 차 키를 한번 내려다보고 그대로 집을 나섰지. 현관문이 닫히자 콜트만 그 자리에 남아 작게 중얼거렸음. “벌써 아깝네...” 그렇게 약속했던 대가는 확실하게 치렀지만, 그렇다고 콜트의 ‘최애동생 놀이’까지 끝난 건 아니었음. 그레이스가 집에 돌아온 뒤에도 옆자리가 비면 누구보다 먼저 차지했고, 뭘 가져다 달라는 말이 나오면 평소답지 않게 먼저 움직였으며, 식스나 드라이버가 형을 챙기려 하면 슬쩍 끼어들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지. 그레이스가 그런 콜트를 보며 웃거나 “고맙다.” 하고 한마디라도 해주면 콜트는 금세 헤헤 웃으며 옆에 달라붙었음. 그러고는 그레이스가 보지 않는 틈만 나면 식스와 드라이버 쪽으로 시선을 던졌지. ‘봤냐?’ 말하지 않아도 딱 그런 얼굴이었음. 처음에는 식스도 드라이버도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무시했음. 그런데 콜트가 틈만 나면 저런 식으로 보란 듯 굴어대니 전날 밤 애써 눌러둔 찝찝함이 완전히 사라질 리 없었지. 더 짜증나는 건 자기들도 그걸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다는 거였음. 콜트한테 정말 긁힌 것처럼 보이는 건 더더욱 싫었고. 그래서 둘 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음. 다만 억지로 눌러둔 감정이라는 게 뜻대로만 잠잠해지는 건 아니었지. 콜트한테는 끝까지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도, 그 미묘한 심사는 엉뚱하게 그레이스를 대하는 태도 사이로 조금씩 새어나오기 시작했음. 그레이스는 거실 한쪽에 놓여 있던 커다란 상자를 안쪽으로 옮기려다 한참 낑낑대고 있었음. 학교에서 가져온 책이며 수업 자료며 이것저것 잔뜩 들어 있어서 보기보다 훨씬 무거웠지. 혼자 어떻게든 들어보려고 양쪽을 붙잡아 몇 번 힘을 줘봤지만, 상자는 바닥에서 겨우 조금 들렸다가 다시 쿵 내려앉았음. 그레이스가 숨을 한번 고르고 소파 쪽을 돌아봤음. “코트.” TV를 보고 있던 식스가 고개를 들었음. “응?” 그레이스가 발치의 상자를 가리켰음. “이거 좀 같이 들어줘. 생각보다 너무 무거워.” 평소 같으면 식스는 별말 없이 바로 일어났을 일이었음. 그런데 그날은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왔지. “콜트한테 해달라고 해.” 그레이스가 눈을 깜빡였음. “...엉?” 식스 역시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내뱉고 나서야 깨달은 듯 잠깐 멈칫했음. 그래도 이미 나온 말을 주워 담지는 않았지. “걔가 계속 해주고 싶어 하잖아.” 그레이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식스를 바라봤음. “그래도 지금 내 옆에 있는 건 너잖아. 콜트는 방에 있고.” 다시 상자 손잡이를 붙잡으며 덧붙였지. “걔 불러오느니 네가 한쪽만 들어주면 바로 끝나는데.” 그 말에는 식스도 딱히 반박할 게 없었음. 결국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식스가 그레이스 옆으로 왔음. “놔. 내가 들게.” “같이 들면 되는데.” “됐다니까.” 식스는 아예 그레이스를 옆으로 밀어내더니 혼자 상자를 번쩍 들어 올렸음. 그레이스가 말한 자리까지 옮겨놓고 나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한 얼굴이었지. “여기?” “응. 고마워.” 그레이스는 대답하면서도 식스 얼굴을 한동안 살펴봤음. “근데 너 오늘 왜 그래?” 식스가 시선을 피했음. “뭐가.” “아니...” 그레이스는 잠깐 더 바라보다가 결국 말을 접었음. 괜히 예민한 날인가 싶어 넘어가긴 했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분은 남았지. 드라이버도 크게 다르지 않았음. 조금 뒤 그레이스가 방 안에서 한참 뭔가를 뒤적이다가 거실 쪽으로 목소리를 높였음. “디!” 소파에 있던 드라이버가 고개를 들었음. “왜.” “혹시 거실에 학교 서류 뭉치 있어? 투명 파일에 넣어둔 거.” 드라이버는 대답하기 전에 무심코 식탁 쪽을 한번 봤음. 있었음. 그것도 못 볼 수가 없을 만큼 식탁 한가운데에 떡하니 놓여 있었지. 조금 전부터 거기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음. 그런데 괜히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음. “몰라.” 방 안에서는 다시 서랍 여닫는 소리가 몇 번 이어졌음. 잠시 뒤 그레이스가 직접 방에서 나왔지. “이상하네. 분명 들고 왔는데...” 그러다 식탁 앞으로 몇 걸음 오지도 않아 발을 멈췄음. 투명 파일이 바로 눈에 들어왔거든. “뭐야. 여기 있네.” 그레이스가 서류 뭉치를 집어 들고 드라이버를 돌아봤음. “근데 왜 모르겠다고 했어?” 드라이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만 한번 으쓱했음. “못 봤어.” 누가 들어도 설득력 없는 대답이었음. 그레이스는 서류를 품에 안은 채 한동안 드라이버를 빤히 바라봤지. “너도 오늘 이상해.” 괜히 찔린 드라이버가 바로 되물었음. “뭐가.” “코트도 그러더니.” 그 말에 드라이버 입에서 또 괜한 말이 튀어나왔음. “콜트 형한테 물어보지 그랬어.” 그레이스의 눈썹이 천천히 올라갔음. “...왜?” 드라이버가 입을 다물었음. 그레이스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지. “아니, 왜 자꾸 콜트 얘기가 나와?” “...그냥.” “뭐가 그냥인데.” “아무것도 아니야.” 드라이버는 결국 더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슬쩍 피해버렸음. 그레이스는 서류 뭉치를 든 채 그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봤지. 이쯤 되니 아무리 그레이스라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음. 한 명만 저랬다면 그냥 기분이 안 좋은가 보다 하고 넘겼을 텐데, 식스와 드라이버가 동시에 미묘하게 평소와 달랐음. 게다가 희한하게 둘 다 끝에는 꼭 콜트 이야기를 꺼냈지. 반대로 콜트는 하루 종일 혼자 기분이 지나치게 좋아 보였음. 그레이스는 잠시 생각해봤음. ‘셋이 싸웠나?’ 그런데 그것도 어딘가 맞지 않았음. 식스와 드라이버가 콜트한테만 퉁명스러운 게 아니라 자기한테도 묘하게 틱틱대고 있었으니까. 전날에는 이유도 없이 셋이 우르르 달려들어 볼에 뽀뽀를 하더니, 오늘은 둘이 번갈아가며 사소한 일마다 괜히 심술을 부리고 있었음. ‘내가 뭘 잘못했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씩 되짚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게 없었음. 그래서 더 답답했지. 무슨 일로 기분이 상했다면 말을 하면 될 텐데, 둘 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태도만 묘하게 달라져 있었으니까. 그러다 저녁 무렵, 결국 그레이스도 참는 걸 그만뒀음. 주방에서 냉장고를 뒤적이던 그레이스가 거실 쪽을 돌아보며 물었지. “디, 저녁 뭐 먹고 싶어?” 소파에 기대 휴대폰을 보고 있던 드라이버가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대답했음. “아무거나.” “아무거나 말고. 먹고 싶은 거 하나만 골라봐.” “없어.” 평소보다 유난히 퉁명스러운 대답에 그레이스가 냉장고 문을 잡은 채 잠깐 멈췄음. “그럼 파스타 할까?” “형 마음대로 해.” 그레이스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음. 하루 종일 비슷한 식이었음. 뭘 물어봐도 대답은 짧고 시큰둥했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괜히 날이 서 있었지. 처음에는 그냥 기분이 안 좋은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계속 이러니 이제는 자신한테 일부러 저러는 건가 싶을 정도였음. 그레이스는 냉장고 문을 닫고 이번에는 식스를 바라봤음. “코트, 얘 오늘 왜 이래?” 드라이버가 바로 고개를 들었음. “내가 뭘.” 그레이스는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식스만 바라봤음. 적어도 식스라면 뭐라도 설명해줄 줄 알았지. 그런데 식스는 드라이버를 한번 힐끗 보더니 별다른 표정도 없이 시선을 돌렸음. “몰라.” 그 순간 그레이스 안에서 하루 종일 간신히 붙들고 있던 인내심이 툭 끊겼음. 그래서 냉장고 문을 탁 닫고 짧게 숨을 내쉬었지. “됐다.” 그레이스는 그대로 거실 쪽으로 걸어와 소파 앞에 멈춰 섰음. “다들 이리 와봐.” 콜트가 가장 먼저 고개를 들었음. 평소보다 확실히 낮아진 목소리였으니까. 식스와 드라이버도 잠시 눈치를 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올렸지. 그레이스가 소파 앞을 턱짓했음. “이리 와.” 셋이 하나둘 모이자 그레이스는 팔짱을 낀 채 얼굴을 차례로 훑어봤음. “너네 오늘 왜 이래.”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않았음.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식스는 괜히 시선을 피했고, 드라이버도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었지. 그레이스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음. “있으면 그냥 말해.” 그래도 아무 대답이 없자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음. “어제는 갑자기 셋이 달려들어서 이상한 짓 하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둘이 나한테 틱틱대고.” 그레이스가 식스와 드라이버를 차례로 바라봤음. “나한테 화난 거 있어? 아니면 너네끼리 싸웠어?” 그 순간 콜트의 표정이 묘하게 달라졌음. 처음에는 자기도 같이 불려온 처지라 잠자코 듣고 있었는데, 그레이스의 말을 듣다 식스와 드라이버의 얼굴을 번갈아보더니 문득 뭔가를 깨달은 듯 눈이 커졌지. 곧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음. “잠깐만.” 콜트가 식스를 한번 가리켰다가 그대로 손가락을 옮겨 드라이버까지 가리켰음. “둘 다 삐졌구나?” 식스와 드라이버의 시선이 동시에 콜트에게 꽂혔음. 말은 없었지만 둘 다 눈빛만으로 입 다물라고 경고하고 있었지. 그 반응에 콜트의 입꼬리가 더 올라갔음. “뭐야. 신경 안 쓰는 척하더니 둘 다 엄청 신경 쓰고 있었네!” 그레이스가 미간을 찌푸렸음. “뭘?” 콜트가 기다렸다는 듯 그레이스 쪽을 돌아봤음. “형, 어제 왜 우리가 갑자기 형한테 뽀뽀했는지 알아?” 그레이스가 어이없다는 듯 콜트를 빤히 봤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동시에 뽀뽀하면 그 사람이 제일 좋아하거나 의지하는 사람을 쳐다본다는 얘기가 있길래 해본 거야.” 그레이스의 표정이 그대로 멈췄음. 바로 대답하지도 않고 눈만 몇 번 천천히 깜빡였지. 어제 저녁의 일이 그제야 하나씩 맞춰지는 모양이었음. 셋이 갑자기 가까이 붙었던 것부터 아무 설명도 없이 볼에 입을 맞췄던 것, 그리고 그 직후 콜트가 혼자 신이 나서 자기를 끌어안았던 것까지. 한참 멍하니 굳어 있던 그레이스 앞에서 콜트는 신이 나서 말을 이어갔음. “근데 형이 나를 봤잖아.” “...뭐?” “셋 중에 나를 제일 먼저 봤잖아. 그래서 내가 형 최애동생이 된 거지.” 콜트가 식스와 드라이버를 차례로 가리켰음. “근데 이 둘은 그걸 아직도 못 받아들이고 있는 거고. 그래서 하루 종일 저렇게 틱틱댄 거야.” 그레이스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음. 시선이 천천히 식스에게 갔다가 드라이버에게 옮겨갔고, 마지막으로 다시 콜트에게 돌아왔지. “너네...” 목소리가 아주 낮아졌음. 그레이스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잠깐 그대로 서 있었음. 그러다 힘이 쭉 빠진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헛웃음을 흘렸지. “진짜 애야?” 콜트의 입꼬리가 씰룩했음. 그레이스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셋을 번갈아봤음. “그러니까 오늘 하루 종일 이 난리를 친 게... 고작 그 말도 안 되는 거 때문이라고?” 콜트는 웃음을 참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음. “그래도 형이 제일 먼저 날 봤잖아.” “그건!” 그레이스가 답답하다는 듯 손부터 들었음. 원래도 흥분하거나 뭔가 열심히 설명하려 들면 손동작이 많아지는 편이었음. 학생들 앞에서 수업할 때 생긴 버릇인지,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일 때가 종종 있었지. 그레이스가 콜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음. “네가 제일 세게 했잖아!” 콜트가 고개를 갸웃했음. “내가?” “그래, 너.” 그레이스는 이번에는 아예 자기 볼을 가리켰음. “다른 애들은 그냥 뽀뽀한 건데 넌 거의 들이받았어. 갑자기 여기다 입을 팍 부딪혔다고.” 그레이스가 손까지 휘저으며 말을 이었음. “그래서 본 거야. 갑자기 아프니까!” 식스와 드라이버의 시선이 동시에 콜트에게 향했음. 콜트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슬쩍 되물었지. “아파서?” “그래!” “좋아해서 본 게 아니고?” 그레이스가 환장하겠다는 듯 머리를 쓸어넘겼음. “그냥 갑자기 제일 세게 자극 온 쪽을 본 거라고! 아무 생각 없이!” 말이 끝나자 식스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풀렸음. 드라이버 역시 조금 전까지 굳어 있던 눈빛이 눈에 띄게 누그러졌지. 그레이스가 그 변화를 놓치지 않고 천천히 둘을 돌아봤음. “...너네는.” 식스와 드라이버가 거의 동시에 시선을 피했음. 그레이스는 기가 막힌 얼굴로 둘을 번갈아봤지. “진짜 그거 때문에 하루 종일 나한테 이랬던 거야?” “삐진 거 아니야.” 드라이버가 바로 대답했음. 식스도 잠깐 뜸을 들이다가 낮게 덧붙였지. “형 때문은 아니야.” 그레이스가 눈썹을 살짝 들었음. 식스가 콜트를 힐끗 봤음. “그냥 쟤가 계속 저러니까 얄미웠던 거지.” 콜트가 바로 웃음을 터뜨렸음. “그게 삐진 거잖아.” “닥쳐.” 그 짧은 대화를 듣고 있던 그레이스는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었음. 하루 종일 신경 쓰였던 일의 정체가 고작 이런 거였다는 게 어이가 없었지. 그렇다고 마냥 화만 나지도 않았음. 적어도 셋이 크게 싸운 건 아니었고, 자기가 뭘 잘못해서 식스와 드라이버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하루 종일 괜히 붙들고 있던 긴장이 뒤늦게 풀렸음. 그레이스는 한동안 셋을 바라보다가 결국 허탈한 웃음을 흘렸지. “어이가 없다, 정말...” 이제야 상황이 대충 정리됐다고 생각한 그레이스가 힘 빠진 얼굴로 이마를 짚었음. 그런데 그걸로 끝난 줄 알았던 건 그레이스뿐이었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가 최애라며 우기던 근거가 사실은 고작 ‘제일 세게 들이받아서’였다는 걸 알게 된 콜트는 잠깐 입을 다물고 있었음. 그렇다고 정말로 서운한 건 아니었지. 오히려 그레이스가 식스와 드라이버의 기분까지 하나하나 신경 쓰며 진지하게 해명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슬슬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음. 괜히 한 번 더 건드려보고 싶어진 거였지. 콜트의 눈에 장난기가 슬쩍 떠올랐음. 그러고는 웃으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눌러내더니, 금세 입술을 삐죽 내밀고 제법 그럴듯한 서운한 표정을 지었음. “그럼 나는?” 그레이스가 불길한 표정으로 콜트를 돌아봤음. “뭐가.” “그럼 난 안 좋아해?” “뭐?” “형이 날 본 건 그냥 내가 아프게 해서 그런 거고, 난 딱히 안 좋아하는 거야?” 그레이스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렸음. “아니, 그걸 왜 그렇게 받아들여.” “난 형이 나 제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야.” 콜트는 일부러 시선을 피하며 고개까지 돌렸음. “아니었구나.” “콜트.” “됐어.” 팔짱까지 끼고 입술을 내민 채 고개를 휙 돌리는 모습은 누가 봐도 과장됐음. 그런데 그레이스는 그 뻔한 연기에 그대로 걸려들었지. “아니, 야. 그런 뜻이 아니라.” 냉큼 콜트 팔까지 붙잡았음. 콜트는 고개를 돌린 채 입술 안쪽을 꾹 깨물었음. 조금만 방심하면 웃음이 터질 것 같았거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식스의 눈빛도 슬쩍 달라졌음. ‘이걸 진짜 믿네.’ 그레이스는 형제 중 제일 나이가 많고 늘 맏형 노릇을 해왔지만, 가끔 이렇게 어이없을 만큼 순진하게 속아넘어갈 때가 있었음. 특히 동생들이 자기 때문에 서운한 척이라도 하면 더 그랬지. 혹시 자기가 정말 뭔가 잘못했나 싶어 금세 진지해지고, 당황하기 시작하면 표정이며 손짓이며 반응이 고스란히 드러났음. 그래서 콜트가 가장 자주 장난을 거는 상대도 자연스럽게 그레이스였음. 조금만 건드려도 반응이 확실해서 장난칠 맛이 났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였지. 누가 봐도 삐진 척하는 콜트의 팔까지 붙잡고 진심으로 달래려 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식스가 결국 슬쩍 장난에 끼어들었음. “뭐, 우리 셋 다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닌가 보지.” 그레이스가 홱 돌아봤음. “뭐어?” 식스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어깨를 한번 으쓱했음. 그레이스의 표정이 단번에 더 난감해졌지. “야, 잠깐. 너까지 왜 그래.” 그 모습을 보던 드라이버도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챘음. 콜트가 시작한 장난에 식스까지 올라탔으니, 굳이 자기만 빠져 있을 이유도 없었지. 드라이버가 태연한 얼굴로 말을 보탰음. “나도 뭐. 막내라고 특별한 건 아니었네.” “아니, 무슨 소리야.” 셋을 차례로 바라보던 그레이스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지. “너네 셋 다 똑같이 좋아해.”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음. 묘하게 이어지는 침묵에 그레이스 쪽이 오히려 더 초조해졌지. “아니, 말이 돼?” 답답하다는 듯 손까지 들어가며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음. “내가 누구는 더 좋아하고 누구는 덜 좋아하고 그러겠냐고. 너네 정말 내가 그럴 거라고 생각해?” 셋은 여전히 잠자코 있었음. 콜트는 당장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입꼬리를 애써 누르고 있었고, 식스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레이스를 바라봤으며, 드라이버도 굳이 장난을 끝낼 생각은 없는 듯 태연했지. 그레이스는 그런 얼굴들을 차례로 바라보다 결국 자기 가슴팍까지 짚었음. “나는 너네 다 좋아하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콜트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음. “얼마나?” 그레이스가 눈을 깜빡였음. “뭐?” “똑같이 얼마나 좋아하냐고.” “그걸 어떻게 수치로 말해!” 그레이스가 황당하다는 듯 두 손을 벌렸음. 그런데 옆에 있던 식스와 드라이버도 콜트를 말릴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지. 식스는 팔짱을 낀 채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드라이버도 그게 뭐가 이상한 질문이냐는 듯 태연하게 그레이스를 바라보고 있었음. 그레이스가 잠깐 입을 다물었음. 콜트에게 향했던 시선이 식스로, 다시 드라이버에게 천천히 옮겨갔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각각 굴던 셋이 어느새 너무 자연스럽게 한편이 되어 있었음. 그리고 이제 와서 보니 셋 다 자기가 얼마나 당황하는지 구경하면서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 그제야 아주 늦게 의심이 들었음. ‘...잠깐.’ 설마. 얘들 지금 자기를 놀리고 있는 건가.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이미 셋한테 휘말릴 대로 휘말린 뒤였음. 그레이스는 결국 두 눈을 질끈 감고 관자놀이를 꾹 눌렀음. “...너네 오늘 다 왜 이래.”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콜트가 문득 입을 열었지. “안아줘.” 그레이스가 고개를 돌리자 콜트는 이미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었음. “갑자기?” 조금 전까지 셋이 작정하고 자기를 놀려놓고는 이제 와서 태연하게 안아달라는 꼴이 기가 막혔음. 그레이스는 한동안 콜트를 바라보다가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 “진짜...” 그러면서도 끝내 두 팔은 벌려줬음. 콜트는 그걸 보자마자 냅다 그레이스 품으로 파고들었지. 방금 전까지 이어지던 장난은 그걸로 끝이라는 듯,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만족한 얼굴로 그레이스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음. “됐냐?” “응.” 그레이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콜트의 등을 몇 번 토닥여줬음. 그러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옆으로 향했지. 식스와 드라이버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음. 콜트야 원래 틈만 나면 먼저 달라붙고 안아달라고 할 수 있는 애였지만, 저 둘은 아니었음. 먼저 애정을 확인해달라고 들이댈 성격도 아니었고, 안아달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애들은 더더욱 아니었지. 그레이스는 잠시 둘을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자기가 먼저 손짓했음. “너네도 이리 와.” 식스의 눈썹이 바로 올라갔음. “난 됐어.” “안 돼. 이리 와.” 그레이스는 한쪽 팔을 여전히 콜트에게 둘러둔 채 남은 팔을 벌렸음. 그리고 드라이버에게도 턱짓했지. “너도.” 드라이버는 잠깐 그레이스를 바라봤지만 굳이 거절하지는 않았음. 조용히 가까이 다가오자 그레이스가 자연스럽게 어깨를 감싸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지. 이제 남은 건 식스뿐이었음. 식스만 여전히 한발 떨어진 채 서 있었지. “코트.” “.....” “오라니까.” 그레이스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식스의 팔목을 붙잡았음. 식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끝까지 버티지는 않았고, 결국 한 걸음 가까이 끌려왔지. 그러자 그레이스가 식스의 어깨까지 팔로 감싸 그대로 제 쪽에 붙여버렸음. 콜트는 한쪽에 착 달라붙어 있고, 드라이버는 반대편 어깨에 몸을 기대고, 식스까지 조금 어색한 자세로 가까이 붙으면서 어느새 넷이 한데 엉겨 붙게 됐지. 그레이스는 셋을 놓아줄 생각 없이 팔에 힘을 조금 더 줬음. “나 진짜 너네 셋 다 똑같이 좋아하거든?” 그리고는 아까부터 제대로 못다 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음. “누구는 더 좋아하고 누구는 덜 좋아하고 그런 거 없어. 너네 셋 다 내 동생이고 나한테는 다 똑같이 소중해. 내가 언제 누구 하나만 편애하는 거 봤어? 그리고 애초에 이런 걸 왜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건데. 내가 혹시 너네한테 못해준 게 있거나 서운한 게 있으면 그냥 바로 말해. 괜히 하루 종일 혼자 속으로 삐져 있지 말고.” “안 삐졌다니까.” 식스가 중간에 작게 끼어들었지만 그레이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음. “나는 그래도 너네한테 너무 어려운 형은 아니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거든. 편하게 얘기할 수 있고, 무슨 일 있으면 제일 먼저 찾을 수 있는 그런 형이고 싶고. 내가 너네 좋아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지금까지 같이 산 세월이 몇 년인데...” 어느새 그레이스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있던 드라이버가 결국 낮게 중얼거렸음. “...길어.” 그레이스가 바로 고개를 돌렸음.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데.” 콜트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식스도 고개를 조금 숙인 채 입꼬리를 숨겼음. 그레이스는 기가 막힌 얼굴로 셋을 한번 더 꽉 끌어안았지. “아무튼. 알았지?” “응.” 콜트가 제일 먼저 대답했음. 그러고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아주 태연하게 덧붙였지. “그래서 최애는 누구야?” “야!” 셋을 끌어안고 있던 그레이스의 팔이 바로 풀렸음. 그대로 콜트를 향해 한 손을 휘둘렀지만, 콜트가 낌새를 알아채자마자 민첩하게 상체를 뒤로 빼는 바람에 손은 보기 좋게 허공만 갈랐지. “너 때문에 시작된 거잖아!” “아, 알았어. 알았어.” 콜트는 그레이스의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벌써 웃음을 터뜨린 채 한 걸음 더 물러났음. 그 모습에 식스와 드라이버도 결국 참지 못하고 웃었지. 그레이스가 한 번 더 손을 뻗는 시늉을 하자 콜트는 잽싸게 거리를 벌렸음. “알았다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웃느라 제대로 된 대답은 나오지 않았음. 그렇게 그날의 소동은 사실상 끝이 났음. 누가 형의 최애니 아니니 하며 하루 종일 신경전을 벌였던 게 무색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넷은 다시 평소처럼 거실 소파에 늘어져 있었지. TV에서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프로그램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한바탕 시끄럽게 굴었던 분위기도 어느새 익숙한 저녁처럼 느슨하게 가라앉아 있었음. 그러다 한동안 잠자코 화면을 보고 있던 그레이스가 문득 입을 열었음. “난 어제 진짜 너네가 다 같이 미친 줄 알았어.” 콜트가 바로 낄낄 웃었음. “내가 꼬신 거야. 둘 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거든.” 그레이스가 고개를 돌렸음. “꼬셔?” “응. 식스 형한테는 내 헤드폰 준다고 하고, 디한테는 차 일주일 몰게 해준다고 했지.” “뭐?” 콜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고, 식스와 드라이버는 괜히 TV 쪽으로 시선을 돌렸음. 그레이스가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지. “너도 참...” 고작 자기 볼에 뽀뽀 한번 시키겠다고 비싼 헤드폰을 통째로 넘기고,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새 차까지 일주일씩 빌려줬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음. 한동안 어이없다는 얼굴로 콜트를 바라보던 그레이스는 문득 뭔가 떠오른 듯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지. “그래도 너네 어릴 때는 나한테 뽀뽀도 잘해주고 그랬는데.” 말끝에 자연스럽게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기색이 묻어났음. 그레이스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웃었지. “다들 그랬어. 디도 어릴 때는 내가 안고 있으면 볼에 쪽쪽 잘도 해주고. 참 귀여웠는데.” 드라이버가 슬쩍 그레이스를 바라봤지만 굳이 뭐라고 하지는 않았음. “집에 들어오면 달려와서 안기고, 잘 때도 옆에 붙어 있고. 그때는 내가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들 그렇게 해줬는데...” 그레이스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 머물렀음. 아마 지금보다 훨씬 작았던 세 동생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었지. “다 컸다고 이제는 그런 것도 없네.” 조금 아쉽다는 듯 웃는 목소리였음. 그 순간 옆에서 식스가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졌음. “언제 적 얘기야.” 잔잔하게 이어지던 분위기가 단번에 깨졌음. 그레이스는 천천히 식스를 돌아봤다가 결국 손을 휘휘 저었지. “됐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레이스는 다시 TV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옆에 앉은 식스를 슬쩍 바라봤음. 생각할수록 조금 웃겼지. 보통 식스는 이런 장난에 제일 시큰둥하게 구는 애였음. 콜트가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해도 한심하다는 얼굴로 흘려넘기고, 드라이버가 장난에 휘말려도 굳이 끼어들지 않은 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쪽이었지. 그런 식스가 자기가 형의 ‘최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 하나에 은근히 신경을 쓰고, 결국 하루 종일 괜한 심술까지 부렸다는 게 생각할수록 묘하게 귀여웠음. 결국 얘도 동생이긴 하구나 싶었지. 평소에는 제법 어른스럽고 무덤덤하게 굴어도, 형이 자기를 얼마나 아끼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쯤 확인받고 싶어 하는 평범한 동생이었던 거임. 그 생각이 들자 그레이스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음. 식스가 그걸 눈치채고 힐끗 돌아봤지. “왜 웃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레이스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식스의 머리 위에 얹었음. 그리고 머리칼을 따라 천천히 몇 번 쓸어내렸지. “아, 왜 이래.” 식스가 바로 얼굴을 찌푸렸음. 그런데 말과는 달리 손을 피하지는 않았음. 몸을 옆으로 빼지도 않았고, 머리 위에 얹힌 그레이스의 손을 굳이 떼어내지도 않았지. 그게 또 괜히 귀여워서 그레이스는 몇 번 더 천천히 머리를 쓸어줬음. “너도 참 귀엽네.” 식스가 뭐라고 받아치기도 전에 반대편에서 콜트가 불쑥 끼어들었음. “나도.” 그레이스가 고개를 돌렸음. 콜트는 벌써 머리부터 들이밀고 있었지. “나도 해줘.” 이런 건 콜트한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음. 원래부터 안아달라거나 머리를 만져달라거나 하는 걸 거리낌 없이 요구하던 애였으니까. 그레이스는 익숙하다는 듯 한숨을 한번 쉬고는 콜트 머리를 조금 거칠게 헝클어줬음. “됐지?” 콜트는 그것만으로도 금세 만족한 얼굴이 됐음. 그 모습을 보던 그레이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생각 하나가 스쳤지. ‘진짜 얘는 골든 리트리버 같다니까...’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줬다고 금방이라도 꼬리까지 흔들 것 같은 얼굴로 웃고 있으니 더 그랬음. 그러고 나니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드라이버 쪽으로 시선이 갔음. 그레이스는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별말 없이 손짓했지. “너도 이리 와.” 드라이버는 콜트처럼 냉큼 머리를 들이밀지는 않았음. 그렇다고 사양하지도 않았지. 잠깐 그레이스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가까이 붙었고, 그레이스는 그런 드라이버의 머리를 몇 번 천천히 쓸어줬음. 그러자 드라이버는 아무 말 없이 몸을 기울여 그레이스 어깨에 기대었음. 그레이스는 한쪽에서 여전히 만족한 얼굴로 앉아 있는 콜트를 바라봤다가, 제 어깨에 편하게 기대 있는 드라이버 쪽으로 시선을 옮겼음.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식스가 다시 TV를 보는 척하고 있었지만, 아까보다 입가가 미묘하게 풀려 있었지. 결국 그레이스가 작게 웃으며 중얼거렸음. “다 큰 것들이 진짜...” 그날 끝까지 그레이스의 ‘최애동생’이 누구인지는 정해지지 않았음. 애초에 그레이스에게는 누군가를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는 식으로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아니었으니까. 식스와는 가장 오래 함께한 만큼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알아차리는 것들이 있었고, 콜트와는 거리낌 없이 주고받는 애정이 이미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었음. 드라이버에게는 또 드라이버만의 자리가 있었지. 말없이 곁에 붙어 있거나 어깨에 기대고, 가끔은 슬쩍 품 안으로 파고들어도 그레이스가 굳이 밀어내지 않는 자리였음. 셋이 그레이스 곁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저마다 달랐지만, 그렇다고 그 마음의 크기까지 다른 건 아니었지. 오히려 그날 그레이스가 새삼 깨달은 건 훨씬 단순한 사실이었음. 아무리 몸집이 커지고 이제는 제 앞가림을 알아서 하는 어른이 됐다고 해도, 자기 눈에는 여전히 셋 다 동생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다 큰 동생들도 가끔은 아주 사소한 일을 핑계 삼아 형의 마음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는 것. 처음에는 그게 어이없고 유치하게만 보였음. 그런데 막상 셋이 아무렇지 않게 다시 자기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꼭 싫지만은 않았지.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레이스에게는 본인도 한동안 알아차리지 못한 작은 버릇 하나가 생겼음. 콜트를 한번 안아주고 나면 자연스럽게 식스와 드라이버 쪽에도 눈이 갔고, 드라이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나면 지나가던 식스의 머리도 별생각 없이 한번 건드리게 됐음. 식스에게 뭔가 하나 챙겨줬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콜트와 드라이버 몫까지 자연스럽게 마련해두곤 했지. 누가 그렇게 해달라고 한 적은 없었음. 그저 하나를 챙기고 나면 자연스럽게 나머지 둘까지 돌아보게 됐고, 누구 하나라도 마음 한구석에서 ‘나는?’ 하고 생각할 틈을 남기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손이 먼저 움직였음. 동생들도 그레이스에게 생긴 그 작은 변화를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 식스는 귀찮다는 듯하면서도 다가오는 손을 피하지 않았고, 콜트는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며, 드라이버는 별말 없이 그레이스가 내어주는 자리로 조금 더 가까이 기대었음. 처음에는 고작 ‘형의 최애가 누구냐’는 엉뚱한 장난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그 시작을 굳이 떠올리는 사람도 없어졌지. 그 집에서는 어느새 그게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셋도 더는 굳이 확인하려 들지 않았음. 저마다 형의 곁에 자기만의 자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레이스가 그 어느 자리도 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충분히 알고 있었으니까. 고슬고슬 사형제 고슬사자 4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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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는 맏형이지만 집에서 서열 꼴찌일 것 같음 십사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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