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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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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차마 다 말하지 못하는 잔인한 진실 2~~~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무너진 폐허 위에서 연합군과 인류가 마주해야 했던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더 무겁고 복잡한 것이었습니다. 400만 명에 육박하는 국방군, 1,000만 명에 달하는 나치 당원, 그리고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 장치 속에서 각자의 톱니바퀴 역할을 하며 체제를 굴러가게 했던 수많은 관료와 기술자들. 그 거대한 범죄의 사슬 앞에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유죄로 묻고 처벌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딜레마였습니다. 당시 서독의 초대 총리였던 아데나워는 국가 재건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서 한 가지 타협을 선택합니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는, 어쩌면 무척이나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들리는 명분을 내세웠지요. 당장 멈춰버린 국가의 행정과 사법 시스템을 돌리기 위해서는 그 체제 안에서 일했던 전문가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사면법과 131조법이 통과되었고, 한때 나치 체제에 부역했던 수많은 엘리트들과 판검사들은 조용히 과거의 짐을 벗어던진 채 다시금 국가의 요직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장의 현실적인 필요와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공동체가 반드시 짚고 넘어갔어야 할 뼈아픈 과거의 죄상들은 그렇게 서서히 은폐되고 봉합되어 갔습니다. 저는 저 먼 과거 독일의 풍경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는 사실에 깊은 슬픔과 서늘함을 느낍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검찰 개혁'이나 '내란 청산'이라는 시대적 화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거창한 구호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참으로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권력이 진정으로 메스를 대어야 할 곳은 부패를 잉태하는 시스템 그 자체여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의 권력자들은 개혁이라는 이름의 칼을 쥐고서도, 그것을 오직 자신들의 정치적 생존과 안위를 방어하는 든든한 방패로만 기형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나치 체제 아래에서 누군가는 그저 상관의 명령에 따라 가스실의 밸브를 열었고, 누군가는 수용소로 향하는 열차의 배차 시간표를 작성했습니다. 그들은 훗날 전범 재판에서 "나는 그저 주어진 명령과 실무에 따랐을 뿐" 이라며 항변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권력 주변부에서 벌어지는 풍경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고 권력자의 의중을 살피며 오직 '절대 충성'을 맹세한 이들만이 인사 검증의 문턱을 넘어 요직을 차지하고 당권을 차지 합니다. 그들은 시스템의 합리성이나 국민을 위한 공리가 아니라, 오직 위를 향한 맹목적인 복무를 시스템의 미덕으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권력이 시스템의 공정성을 독점하고 사유화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그 안에서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기는 일이 일상화될 때, 조직 내부의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게 됩니다. 권력의 정점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충성했던 이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정작 그 권력은 "나는 알지 못하는 일이다", "하위 실무자가 한 일이다"라며 너무나도 차갑게 선을 긋고 방어막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면 어제까지 동지라 불렀던 아랫사람조차 언제든 소모품처럼 잘라버릴 수 있다는 그 냉혹한 꼬리 자르기의 속성. 그것을 목도한 실무자들의 마음속에 피어나는 것은 깊은 배신감과 '각자도생'의 본능뿐일 것입니다. 가장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줄 줄 알았던 권력이 실상은 나를 제물로 삼아 자신만 살아남으려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맹목적인 충성은 가장 무서운 칼날이 되어 되돌아옵니다. 이것은 권력이 스스로 자초한 구조적인 비극입니다. 이러한 책임 회피와 권력의 사유화는 단지 특정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국정을 책임져야 할 행정부의 요직에 있던 이들이, 정책의 실패와 인사의 난맥상으로 인해 쏟아지는 비판의 화살을 정면으로 감당하기보다 슬그머니 당권이라는 새로운 안전지대로 피신해 버리는 모습들...... 우리는 그런 이합집산과 도피성 행보들을 매일같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언제나 국민과 대의를 말하지만, 막상 위기가 닥치면 당이라는 진영의 벽 뒤에 숨어 내부의 쓴소리를 차단하고 자신만의 견고한 벙커를 구축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이들이 쌓아 올리는 '실용'과 '안정'이라는 성벽은 아데나워가 과거를 덮으며 얻고자 했던 그 위태로운 평화와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묵인하는 카르텔을 형성하며 지금 당장은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 안도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곪아있는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반창고만 덧붙인다고 해서 병이 낫지 않듯, 진정성 없는 봉합과 타협은 결코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흘러 1960년대가 되었을 때, 서독 사회는 거대한 폭풍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과거의 진실을 대충 덮어두고 기득권을 유지해 온 부모 세대를 향해, 전쟁을 겪지 않은 청년 세대가 서늘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신은 그때, 그 끔찍한 시대에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습니까?" 이 뼈아픈 질문에서 촉발된 '68 운동'은 결국 독일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고, 빌리 브란트 총리가 바르샤바의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음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과거 청산이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기득권의 틈바구니 속에서 온갖 정교한 법 기술과 교묘한 핑계들로 진실을 가리고, 아랫사람들을 방패막이로 삼아 그토록 높고 단단한 성벽을 쌓아 올린다 해도, 역사가 부과하는 책임과 진실의 청구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예된 시간만큼 더 큰 이자가 붙어, 다음 세대와 우리 공동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내 편 챙기기, 위기가 오면 서슴없이 꼬리를 자르는 비정함, 그리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 안전한 곳으로만 숨어드는 그 모든 초라한 풍경들. 지금 당장은 권력이라는 따뜻한 장막 안에서 그들만의 잔치를 즐기고 있을지 모르지만, 주권자인 국민들은 그 얄팍한 위선과 자해적인 폭주의 궤적을 아주 차분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그러나 결코 잊지 않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명확한 청산 없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과 실용주의로 포장하기 시작하면, 결국 개혁의 본질은 흐려지고 사법 정의는 형해화되고 맙니다. 청산되지 않은 모순은 결국 그 시스템 자체를 안에서부터 붕괴시키는 가장 무서운 독이 됩니다. 이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이 스스로 파놓은 아집의 벙커 속에서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끝까지 지켜보려 합니다. 역사는 언제나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아도, 결국은 자신이 가야 할 가장 올바르고 엄정한 방향을 찾아가기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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