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대학 시절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중독에 완치란 없다, 그저 참는 것이다. 술을 처음 마시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우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로 술과 우울은 어떤 결합을 이루어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악순환이 되었다. 자주 생각했다. 고단하고 외로운 내 삶에 술 마저 없다면 대체 무슨 낙으로 살 것인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평소의 의식엔 안중에도 없던 젊은 가수가 꿈에 나왔고, 통상 재물복이란 해석을 불어일으킬 만한 광경들이 함께 펼쳐졌을 때 귀찮음을 무릅쓰고 태어나서 두 번째로 로또를 샀다. 꿈에 대한 예의 같았다. 그럴 리가 없지만, 상상을 해보았다. 큰돈이 생기면 무엇을 하지? 이사를 하는 것도, 차를 바꾸는 것도 다 귀찮다. 술이나 실컷 마셔야겠다. 그만큼 애주가였던 나는 올해 사는 것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져 프로야구를 보았다. 아련한 내 고향의 연고 팀 경기를. 야구란 것은 월요일만 빼고 경기가 이뤄졌고, 일희일비했고, 그래서 인생과 닮아 있단 생각을 했다. 아깝게 지면 너무 분하고 연패를 하면 수치스러웠다가 연패를 끊으면 너무 기쁘고 연승을 하면 자랑스러웠다. 술과 안주를 먹고 마시며 매일 저녁을 삭제했다. 그러자 저녁들이 아까워졌다. 질 것이 뻔해 시큰둥해진 저녁도 있었고, 그날이 노동이 고단하여 이기는 와중에도 잠든 저녁도 있었다. 비가 오거나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면 고대하던 경기가 취소되기도 했다. 여러 모로 인생스러웠다. 그런데 수많은 저녁들이 그냥 삭제된 것만은 아니란 생각도 막연히 들었다. 저 젊은 남자들은 직장인과 비슷한 처지에서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의 노력은 빛을 발하고 누군가는 도무지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한 채 하향곡선만을 그린다. 그러다 문득 술이 지겨워졌고 내 지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마실 대로 마셨다, 알콜에 절여지다 못해 녹아내리고 있을 내 뇌와 장기들을 보호하자는 생산적인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술을 끊기로 결심했다. 무너졌던 뇌의 보상체계가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다. 휴일마다 잠자리에 누워 노년의 병상을 연습했던 내가 문득 외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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