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음악을 소재로 한 드라마라 포핸즈를 관심 있게 보고 있습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아쉬운 부분도 있고,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도 많습니다. 그리고 송강을 비롯한 남자 주인공들 얼굴 이야기가 더 난리인. ㅋㅋ 그래도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계속 보게 되네요. 피아노 전공 와이프는 현실성 없는 장면에서는 피식피식 웃으면서도, 이상하게 재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꽤 진지하게 공감합니다. 노력으로 상당한 곳까지 갈 수는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설명하기 힘든 재능이라는 벽을 만나게 되니까요. 와이프왈 딱 대학입시까지가 재능을 덜가진 사람은 한계라고~ 그 부분을 드라마가 꽤 노골적으로 건드립니다. 포핸즈를 계속 보다 보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듯 반복해서 귀에 들어오는 선율이 하나. 처음 듣자마자 저는 엉뚱하게 김연아부터 생각났습니다.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Danse macabre. 김연아 음악이라고 하면 더 빨리 알아듣는 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설명은 첨언하자면 생상스가 1874년에 만든 교향시인데, 한밤중 자정이 되자 죽음이 바이올린을 켜고, 무덤 속 해골들이 하나둘 일어나 춤을 춘다는 내용입니다. 바이올린의 기괴한 선율에 목관과 현악기가 뒤엉키고, 실로폰은 마치 해골 뼈가 부딪히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다가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과 함께 모든 것이 다시 무덤으로 돌아갑니다. 당시에는 이런 음산하고 노골적인 표현 때문에 꽤 낯설고 기괴한 음악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동물의 사육제 정도로만 소개된 생상스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고 영화, 드라마, 광고, 피겨스케이팅까지 정말 셀 수 없이 많이 사용됐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각인시킨 사람이 김연아였습니다. 2008-2009 시즌 쇼트프로그램. 검은 드레스를 입은 김연아가 죽음의 무도에 맞춰 빙판 위에 등장했습니다. 지금 다시 봐도 선곡이 기가 막힙니다. 그 전까지 여자 피겨선수에게 기대하던 아름답고 우아한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차갑고, 날카롭고, 어딘가 위험해 보였습니다. 곡 자체가 가진 기괴함과 긴장감, 김연아 특유의 큰 동작과 빠른 스피드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시즌 김연아는 세계를 석권 했습니다. 개인적인 기억도 있습니다. 당시 우리 가족이 일본에 있을 때였습니다. 일본에서 아사다 마오의 인기는 정말 뭐~ 그냥 유명한 운동선수 정도가 아니라 거의 국가적인 스타에 가까웠습니다. TV를 켜면 아사다 마오가 나오고, 광고에도 나오고, 뉴스에서도 계속 나오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의 김연아가 등장했는데 하필 음악이 죽음의 무도였습니다. 검은 드레스까지 입고. 일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 최종보스 같은 느낌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당시에도 했습니다. ㅋㅋ 밝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자국 스타와 경쟁하는 한국 선수가 새까만 옷을 입고 등장해서, 첫 음부터 불길한 바이올린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점프하고, 활주하고, 마지막 포즈를 잡습니다. 음악까지 알고 들으면 정말 절묘했습니다. 죽음의 무도라는 곡이 원래 가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두 잠든 한밤중에 죽은 자들이 깨어나 잠시 춤을 추다가 새벽이 오면 다시 사라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김연아는 그 음악을 무섭게만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차갑지만 아름답고, 강하지만 우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17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다시 이 선율을 들어도 저는 생상스보다 김연아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리고 포핸즈를 보다가 그 선율이 다시 들리니 참 묘했습니다. 음악이라는 게 이런 것 같습니다. 1874년 프랑스 작곡가가 만들어 놓은 음악이 130여 년 뒤 한국 선수의 검은 드레스와 만나 전혀 새로운 기억이 되고, 또 시간이 한참 지나 드라마에서 우연히 몇 마디를 듣는 순간 2009년 일본에서 TV로 김연아를 보던 기억까지 한꺼번에 따라 나옵니다. 좋은 음악은 오래 남는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음악만 남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음악을 들었던 시간과 장소와 사람까지 같이 남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포핸즈에서 죽음의 무도가 나올 때마다 저는 드라마보다 잠깐 다른 곳으로 갑니다. 2009년으로. 검은 드레스를 입고 빙판 한가운데 서 있던 김연아에게로. 추천 1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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