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 씨는 179명이 숨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아내와 딸을 잃었다. 참사 이후 1주기까지는 유가족협의회 관련 업무를 하며 거의 무안공항에 머물렀다. 1주기가 지나면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일상에 적응하는 어려움을 겪어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그럴수록 유가족협의회 일에 매진하면서 자신도 치유받고 다른 유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랐다. 어느 날 아들이 약속했는데도 왜 집에 오지 않느냐고 묻자 그제야 혼자 집을 지켜온 아들을 돌아보게 됐다. 지금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렸지만 유해 재수색과 유류품 관련 업무를 맡아 여전히 공항을 자주 오간다. 성철 씨의 아내와 딸은 사회복지사였다. 사고가 난 해 여름에도 두 사람은 무안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이전에는 인천이나 김해공항을 이용했지만 집에서 30~40분이면 갈 수 있는 무안공항이 편했기 때문이다. 참사 직후 성철 씨는 아내의 시신을 먼저 확인했다. 관계자들은 직접 보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후 DNA 감식으로 딸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도 성철 씨는 다른 가족들에게는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딸을 보러 갔다. 그런데 딸의 얼굴은 놀랍게도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성철 씨는 그 순간, 아내가 딸을 품에 안고 있었을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졌다고 한다. "너무 깨끗한 거예요, 얼굴이. 제가 딸애 어릴 때 잠잘 때 찍어놓은 사진이 있거든요. 그 사진하고 진짜 100% 똑같은 거야. 근데 그 순간… 그냥 뭐라고 해야 되죠? 그림이 그려져. 엄마가 품에 딱 안았던 거야... 아, 그래서 딸 얼굴은 괜찮고 엄마 얼굴이 상했구나. 그 그림이 딱 보이는데… 그래서 아내한테 그때 너무 고맙더라고요. 자기도 엄청 무서웠을 텐데..."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참사로 부모님과 남동생을 잃었다. 남동생 강헌 씨는 천안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장기근속 포상으로 휴가를 받았다. 혼자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지만 광주에 사는 부모님을 함께 모시고 가기로 했다. 부모님이 인천공항까지 먼 길을 오가지 않아도 되도록, 조금이라도 편하게 모시기 위해 무안공항을 이용했다. 세 사람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참사를 당했다. 부모님과 남동생을 한꺼번에 잃은 김 대표는 "사실상 가족이 다 없어져 버린 거죠"라고 말했다. "정말 좋은 부모님이었고 정말 좋은 동생이었어요. 세 사람의 장례식을 한꺼번에 치른 것도 기가 막히고... 한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나날을 보냈어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참사 발생 1년도 더 지난 시점에, 김 대표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사고 뒤 보관 중이던 기체 잔해에서 아버지의 유해가 추가로 발견된 것이다. 25㎝가 넘는 정강이뼈였다. "기체 잔해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돼 대형 포대를 열었더니 음식물 쓰레기와 과자 봉지, 유류품, 기체 잔해, 타다 만 쓰레기, 들쥐가 나왔습니다. 거기에 가족들의 유해들이... 한두 점이었다면 불가피하게 그럴 수도 있었다고 이해해보려고 노력이라도 했을 거예요. 거기서 가장 먼저 발견된 유해가 저희 아버지의 정강이뼈였고, 무려 25㎝가 넘었습니다. 육안으로도 빠뜨리기 어려운 크기였고, 세밀하게 작업했다면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유해가 나온 거죠. 저에겐 그건 그냥 뼈가 아니라 평생 저를 지지하고 받쳐주시던 아버지 자체였는데... 그런 아버지를 1년 넘게 공항 밖에 방치해 둔 채 나는 편하게 잠자고 밥 먹고 살았구나 하는 죄책감이..." 지난 4월 13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사고 현장 수색이 다시 시작됐다. 참사 발생 1년 3개월 만이었다. 경찰과 군, 소방,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관계자들이 다시 사고 현장에 투입됐다. 사고기가 지나간 일대를 구역으로 나눠 흙을 걷어내고, 걷어낸 흙은 체에 걸러 확인했다. 재수색 과정에서 나온 유해 추정물과 유류품은 계속 늘었다. 국무조정실이 지난 9월 30일 유가족에게 설명한 재수색 경과에 따르면 현장에서 추가로 수습된 유해 추정물은 1천709점, 유류품은 906점이다. '유해 추정물'은 현장에서 유해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습한 대상으로, 모두가 희생자의 유해로 확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이 가운데 1천265점에서 희생자 141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이번 추가 발견은 관계기관이 이미 두 차례 수색을 종료했던 사고 현장 일대에서 이어졌다. 그렇다면 앞선 두 차례 수색은 어떤 판단과 기준으로 종료됐던 걸까. 첫 수색은 사고 당일인 2024년 12월 29일부터 이듬해 1월 7일까지 전남소방본부가 총괄했다. 소방은 1월 7일 상황판단회의에서 추가로 발견할 유해가 없다고 보고 수색을 끝냈다. 그런데 경찰은 바로 그날 현장에서 유해 6점을 추가로 발견했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공직복무점검단은 당시 이런 상황에서 1차 수색을 종료한 것은 성급한 결정이었다고 판단했다. 이틀 뒤인 1월 9일, 전남경찰청이 다시 수색에 들어갔다. 두 번째 수색은 1월 15일 유족과 합의한 뒤 끝났다. 하지만 이튿날인 16일에도 현장에서 유해가 발견됐다. 경찰은 추가 발견 사실을 알고도 추가 수색 필요성을 검토하지 않았다. 점검단은 두 차례 모두 추가 유해 발견 가능성과 현장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수색을 끝냈다고 판단했다. 당시 소방청 업무 매뉴얼에는 항공기 사고 현장에서 유해를 어떤 범위와 방식으로 수색·수습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었다. 이 때문에 소방과 경찰 등 관계기관은 합리적인 기준 없이 현장에서 임의로 수색 구역을 정했고, 경험이 없는 인력이 투입될 때도 관련 교육이나 구체적인 수색 지침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구체적인 수색 기준이 없는 데다 현장 지휘·감독도 미흡한 상태에서 두 차례나 수색이 종료된 것이다. 수색이 끝난 뒤 기체 잔해를 수거하고 보관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이어졌다. 정부 점검 결과를 보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2025년 1월 16일부터 이틀 동안 사고 현장의 기체 잔해를 수거해 대형 포대 등에 담았다. 이 과정에서 잔해에 유해나 유류품이 섞여 있는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잔해 수거 이후의 조사 계획과 정밀조사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잔해는 격납고 같은 규정상 보관 장소로 옮겨지지 않고, 대형 포대와 그물망 등에 담긴 채 무안공항 아스팔트 도로 위에 놓였다. 방수포와 차양막을 덮은 채 약 14개월 동안 보관됐다. 관련 규정과 매뉴얼은 비나 눈 등 외부 기상 환경으로부터 잔해를 안전하게 보관·관리하도록 하고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유족들은 지난해 9월부터 기체 잔해를 다시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요구는 같은 해 9~10월 국토교통부 피해자지원단을 통해 사고조사위원회에 전달됐지만, 잔해물 보관 해제 검토 등 필요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 1월 13일에는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현장 실사를 앞두고, 사고조사위원회 관계자들이 현장 답사를 하던 중 잔해와 유류품 등을 추가로 발견했다. 하지만 그때도 발견된 잔해만 수거했을 뿐, 추가 수색 여부는 검토하지 않았다고 점검단은 밝혔다. 수색이 끝난 뒤에도 유해나 유류품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이 여러 차례 확인됐지만, 전면 재수색이 시작되기까지는 1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전면 재수색이 시작되기 전, 유족들은 직접 사고 현장 주변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성철 씨는 기체 잔해에서 유해가 발견되자 유족들이 사고 현장 부근에 미수습 유해가 남아 있지 않을까 의심했다고 말했다. "기체만 있는 줄 알았고, 혹시라도 유류품 하나라도 찾을 수 있을까 했던 건데... 여기에 유해가 이렇게 방치돼 있을 정도면, 현장에도 더 있지 않을까 해서 공항 밖 풀숲을 찾으러 다녔죠" 유족들은 직접 호미를 들어 공항 주변을 살폈는데, 이 과정에서도 유해 추정물과 유류품이 발견됐다. 유족들의 직접 수색뿐 아니라 관계기관이 사고 잔해물 등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유해 추정물이 추가로 나왔다. 전면 재수색에 들어가기 전 관계기관은 유해 추정물 115점을 추가로 수습했고, 이 가운데 74점은 감식을 거쳐 희생자 44명의 유해로 확인됐다. 정부가 사고 현장 일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전면 재수색은 첫날 오후 한 차례 멈췄다. 경찰과 군, 소방 등 여러 기관이 투입된 상황에서 전체 작업을 누가 지휘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를 유족들이 제기했기 때문이다. 기관마다 수색 방식도 달랐다. 관계기관은 다음 날 유족과 협의한 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현장을 총괄하도록 지휘체계를 다시 정리했다. 애초 기관별로 나눠놓았던 수색 구역도 조정했다. 최대 30㎝ 깊이까지 수색했지만 재정비 뒤에는 필요에 따라 최대 1m까지 땅을 파고 흙을 체로 걸러 확인하기로 했다. 수색 구역을 재정비하고 깊이를 늘린 뒤에도 현장에서는 유해 추정물이 계속 발견됐다. 취재진이 찾은 9월 초에도, 현장에선 군 장병들이 양동이로 흙을 옮기고 작업대에서 유류품으로 보이는 물건을 하나씩 골라내고 있었다. 취재진과 현장을 돌던 성철 씨는 더운 날씨에 뒤늦은 수색에 투입돼 고생하는 군경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지금 이분들이 이렇게 고생하시는 일이 사실 없었어야 할 일이거든요. 정상적이라면." 심층 수색 대상 995개 지점에 대한 확인은 9월 14일까지 마쳤고, 사각지대 집중수색과 수색기관의 자체 점도 9월 말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정부는 9월 30일 유가족에게 재수색 경과를 설명하면서 유해를 100% 수습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로컬라이저 둔덕과 주변, 공항 외곽에도 미수습 유해가 남아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유족과 관계기관은 이들 지역의 추가 수색 범위와 방식을 더 협의할 예정이다. 공항 안 임시 쉘터에는 지금도 유족들이 머물고 있다. 김유진 대표에 따르면 열 명 안팎의 유족은 장례를 치르러 집에 다녀온 때를 제외하면 사실상 공항에서 생활해 왔고, 30여 명은 교대로 현장을 지키고 있다. 유족들이 공항을 지키는 동안에도 수사와 뒤늦게 수습된 유해의 장례 문제는 이어졌다. 지난 8월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74명을 입건해 수사를 이어갔지만, 참사 600일을 맞은 유가족협의회는 당시까지 기소된 책임자가 한 명도 없다고 지적했다. 유족들은 재수색에서 뒤늦게 수습된 유해의 장례를 누가 맡을지를 두고도 국토교통부와 제주항공 사이에 책임이 정리되지 않았다고도 밝혔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최종 조사보고서는 참사 발생 1년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다. 콘크리트 로컬라이저 둔덕이 피해 규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조사도 계속되고 있다. 유족들은 지난 9월 14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해 초기 부실 수습과 유해·유품 방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독립성 침해 여부, 로컬라이저 관련 의혹 등 8개 사안을 들여다봐 달라고 요구했다. 참사 2주기가 다가오지만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도, 뒤늦게 찾은 가족을 다시 보내는 절차도 끝나지 않았다. 유족들의 공항 생활도 그렇게 길어지고 있다. (4편에서 계속) ¹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공직복무점검단, 「12·29 여객기 참사 희생자 유해 부실 수습 경위 점검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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