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에 장인어른 돌아가시고 혼자 되신 장모님을 모시고 합가했습니다 아내가 먼저 꺼낸 얘기였고 저도 동의했어요 저희 부모님은 아직 두 분 다 건강하시고 동생네가 근처에 살거든요 1년이 지나서 정리해봅니다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쓰는 거라 두서없을 수 있어요 좋은 점부터 애들 하원은 장모님이 해주십니다 맞벌이라 이게 제일 큽니다 어린이집 연장반을 안 써도 돼요 애들도 할머니를 엄청 따르고요 큰애는 요즘 저보다 할머니한테 먼저 달려갑니다 저녁밥이 있습니다 퇴근하면 국이 끓고 있어요 이건 솔직히 감사합니다 아내가 많이 편해졌어요 표정이 확실히 밝아졌습니다 여기까지가 좋은 점이고 힘든 점 집에 제 공간이 없어요 원래 작은방이 제 컴퓨터방이었는데 장모님 방이 됐습니다 지금 제 컴퓨터는 거실 구석에 있어요 밤에 게임하면 장모님이 나오셔서 아직 안 자냐고 하십니다 아내랑 싸울 수가 없어요 목소리 조금만 커져도 장모님이 방에서 나오세요 그리고 무조건 아내 편이십니다 당연하죠 그래서 싸울 일이 생기면 차에 내려가서 얘기합니다 지하 주차장이 저희 부부 회의실이 됐어요 주말에 늦잠을 못 잡니다 장모님은 다섯 시에 일어나시고 일곱 시면 청소기를 돌리세요 제가 자고 있는 거실 바로 옆에서요 제 부모님이 서운해하십니다 우리 집엔 1년에 두 번 오면서 처가랑은 같이 사냐는 얘기를 지난 추석에 어머니한테 들었습니다 그 말에 아무 대답도 못 했어요 그리고 이건 말하기 좀 그런데 아내랑 둘만의 시간이 아예 없어졌습니다 같이 영화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나요 밤에 둘이 거실에 앉아 있으면 장모님이 나오셔서 같이 앉으십니다 외로우신 거 아니까 뭐라 할 수도 없어요 제일 힘든 건 이거예요 이 모든 걸 누구한테도 말할 수가 없다는 거 아내한테 말하면 우리 엄마가 짐이냐는 얘기가 될 거고 제 부모님한테 말하면 그러게 왜 그랬냐는 얘기가 될 거고 친구들한테 말하면 그래도 밥 해주시잖아 소리 듣습니다 그래서 여기 씁니다 후회하냐고 물으면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 같아요 애들이 할머니랑 노는 거 보면 잘했다 싶다가도 지하 주차장에서 아내랑 소리 죽여 싸우고 올라올 때는 이게 사는 건가 싶습니다 장모님은 오늘도 다섯 시에 일어나셨고 저는 아직 못 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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