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6년 차고 아들 둘 다 군대 다녀와서 하나는 서울에서 직장 다니고 하나는 대학 기숙사에 있습니다 이제 둘이 오붓하게 살겠구나 했는데 지난주 저녁 먹다가 아내가 폰을 내밀더라고요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어학원 1년 과정이었습니다 등록금이랑 홈스테이 비용까지 다 정리해서 엑셀로 만들어 놨더라고요 합치면 대충 사천만 원 정도 됩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근데 아내가 아주 차분하게 말하더라고요 스물넷에 시집와서 한 번도 나를 위해서 산 적이 없다고 애들 다 컸으니 딱 1년만 자기 인생 살아보고 싶다고요 그 말에 제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생각해보자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부터 진도가 너무 빠릅니다 여권 갱신을 벌써 했고 처제한테는 이미 다 얘기해놨더라고요 처제가 저한테 형부 언니 좀 보내줘요 언니 진짜 고생 많이 했잖아요 하는데 이건 저 빼고 다 정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제 입장도 좀 말씀드리면 저도 내년이면 쉰인데 회사에서 명퇴 얘기가 슬슬 나옵니다 집 대출도 아직 남아 있고요 사천만 원이면 대출 상환에 넣거나 노후 자금으로 묶어둘 돈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1년 동안 혼자 밥해 먹고 살 자신도 없습니다 제가 라면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거든요 이건 제 문제라는 거 알지만요 아내한테 6개월로 줄이면 안 되냐고 했더니 당신은 26년 동안 회식이다 출장이다 골프다 다 하면서 나는 6개월이냐고 하더라고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출장으로 해외도 여러 번 나갔고 골프도 쳤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가라고 할까 싶다가도 쉰 넘은 사람이 갑자기 영어 배우겠다고 1년을 외국에서 산다는 게 저는 아직도 좀 황당합니다 주변에 말하면 다들 웃습니다 그 나이에 무슨 유학이냐고요 어제는 퇴근하고 들어왔더니 아내가 식탁에 영어 단어장을 펴놓고 있더라고요 작은아들이 중학교 때 쓰던 거였습니다 발음 연습한다고 혼자 중얼거리는데 그 모습 보니까 마음이 또 약해졌다가 식탁 옆에 놓인 대출 상환 안내문 보니까 다시 정신이 들었습니다 이번 달 금리가 또 올랐더라고요 아내는 제가 허락해주면 가고 아니면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근데 그 말이 더 무겁습니다 안 된다고 하면 남은 평생 그 얘기를 들을 것 같아서요 돈 문제랑 제 사정 때문에 반대하는 게 제가 잘못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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