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퇴근 후 서로 너무 불편했습니다. 이대로 두면 회사에서 계속 눈도 못 마주치고 살 것 같아서, 퇴근할 때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습니다. “저… 잠깐만 시간 되실까요.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그분은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사무실 아랫층 커피숍에 마주 앉았습니다. 앉자마자 사과부터 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열 번쯤 한 것 같습니다. 세 번 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다는 변명은 최대한 줄이고, 결과적으로 불편하게 만든 건 제 잘못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너무 불편하셨을 것 같고, 정말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처음에는 불편한 듯 컵만 만지작거리며 듣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표정이 풀리기를 기다리며 계속 말했습니다. 변명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분의 표정이 조금 풀린 것 같았고, 뜻밖의 말이 나왔습니다. “…저, 배고픈데요.” 저는 반사적으로 대답했습니다. “뭐든 사드리겠습니다. 다 사드리겠습니다.” 그분은 잠깐 생각하더니 양곱창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평소에 잘 못 가는 곳이라고요. 술을 잘 못 마시는 분이라 곱창집에 갈 기회가 별로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저희는 양곱창집으로 갔습니다. 사과하는 마음으로 대접하는 자리였습니다. 문제는 분위기였습니다. 사과는 했지만 서로 아직 어딘가 뻘쭘했습니다. 곱창이 지글지글 익는 소리만 크게 들렸고, 저는 할 말이 없어서 술잔만 자꾸 비웠습니다. “맛있으세요?” “네.” “많이 드세요.” “네.” “더 시킬까요?” “네.” 저도 “네…”, 그분도 “네…”. 대화라기보다 서로 확인 도장을 찍는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연거푸 술을 들이켰고, 곱창은 다행히 맛있었습니다. 그러다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조금씩 긴장이 풀렸습니다. 말도 편해졌고, 평소처럼 시시한 농담도 하게 됐습니다. 그분도 피식 웃어 주셨습니다. 세 번의 사고 이후로 처음 본 웃음이라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습니다. 편안해진 건지, 취한 건지, 욕심이 난 건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와 버렸습니다. “사실… 평소에 좋아했었습니다. 그래서 더 미안했고, 솔직히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말해 놓고 나서 아차 싶었습니다. 사과하러 온 자리에서 고백 아닌 고백이라니, 순서가 엉망이었습니다. 그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잔을 들더니,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연거푸 두 잔 들이켰습니다. 그리고 화제를 돌렸습니다. 곱창 양념 이야기, 회사 행사 이야기, 날씨 이야기까지. 자꾸 다른 쪽으로요. 저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묻지 못했다는 쪽이 맞겠지만요. 사과는 받아들여졌습니다. 그건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고백 아닌 고백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오간 이야기를 곱씹어 보면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오해는 풀렸는데, 저는 새로운 짐을 하나 얹은 채 헤어졌습니다. 어깨가 가벼워진 만큼 다른 쪽이 무거워졌다고 할까요. 주말 내내 곱창집에서 그분이 두 잔을 연달아 마시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재생됐습니다. 그건 무슨 의미였을까요. 당황이었을까요, 부담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냥 목이 말랐던 걸까요. 물론 답은 알 수 없습니다. 점심 무렵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 돌아와 있는데, 그분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순간 몸이 굳었습니다. 제 몸이 어디에 부딪힐까 봐 본능적으로 팔부터 몸에 붙였습니다. 그분의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습니다. 점심 먹고 오는 길에 챙겨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부딪히지도, 걸리지도, 손끝이 스치지도 않았습니다. 컵 하나가 두 사람 사이를 무사히 오갔을 뿐입니다. 세 번의 사고를 겪고 나서야 처음으로 사고 없이 이루어진 접촉이었습니다. 저는 “감사합니다”라고 했고, 그분은 “네”라고 했습니다. 그게 전부였지만, 어제까지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습니다. 제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저는 그 아메리카노를 아주 천천히, 행복한 마음으로 마시고 있습니다. 얼음이 다 녹기 전에 한 모금이라도 더 아껴 마시고 싶습니다. 솔직히 여기서 더 밀어붙일 용기는 없습니다. 명분도 없습니다. 사과하러 간 자리에서 고백 비슷한 말을 흘려 버린 사람이 무슨 염치로 더 다가가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그냥 이것만 바랍니다. 복도 모서리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어디서든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는 하루가 되기를요.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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