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고등학교 친구 둘이랑 오랜만에 저녁 먹고 왔어요 저는 결혼 8년차에 애가 둘이고 한 친구는 결혼은 했는데 딩크, 한 친구는 미혼이에요 셋이 만난 게 거의 1년 만이라 저는 진짜 설레서 나갔거든요 남편한테 애들 맡기고 원피스까지 꺼내 입고요 시작은 좋았어요 근데 메뉴 고를 때부터 좀 이상했어요 제가 매운 거 괜찮냐고 물었더니 미혼 친구가 너 애들 때문에 매운 거 못 먹은 지 오래됐겠다 오늘 실컷 먹어 이러더라고요 웃으면서 넘겼어요 그다음은 휴가 얘기였는데 둘이 같이 다녀온 발리 사진을 한참 보여주더니 딩크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너는 이런 거 언제 가봐 애들 크면 가려나? 그때쯤이면 우리 무릎 나가겠다 ㅋㅋ 그 말에 미혼 친구가 맞장구치면서 근데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너 요즘 무슨 낙으로 살아? 순간 젓가락 들고 멈췄어요 애들 보는 낙으로 살지 했더니 아 그치 그게 제일 크지 하면서 둘이 눈빛을 주고받더라고요 그 눈빛이 아직도 생각나요 그 뒤로도 계속 그런 식이었어요 제가 큰애 영어학원 얘기 꺼내니까 요즘 엄마들 진짜 대단하다 나는 그렇게 못 살 거 같아 남편 얘기 하니까 그래도 남편이 애 봐주는 게 어디야 우리 언니 남편은 아예 안 본대 칭찬인지 걱정인지 모를 말인데 듣고 나면 묘하게 기분이 나빠요 중간에 제가 둘째 사진 보여주려고 폰을 꺼냈는데 미혼 친구가 아 귀엽다 하고 바로 자기 강아지 사진으로 넘기더라고요 강아지가 요즘 분리불안이 와서 펫시터를 쓴다는데 그 얘기는 삼십 분을 했어요 저는 그 얘기를 끝까지 다 들어줬고요 계산할 때도 딩크 친구가 너는 애들 학원비 나가잖아 우리가 낼게 하는데 고마운 게 아니라 동정받는 기분이더라고요 그래서 굳이 제 몫 계산했어요 삼만 사천 원이요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단톡방 보니까 둘이 오늘 즐거웠다고 다음엔 와인바 가자는 얘기 하고 있더라고요 저도 있는 방인데 저한테는 아무도 묻지를 않았어요 어차피 못 올 거라고 생각한 거겠죠 남편은 그냥 친구들이 너 생각해서 한 말일 수도 있다는데 저는 그 말들이 하나하나 다 너 인생 별거 없지 않냐고 확인하는 것처럼 들렸어요 새벽 한 시인데 원피스가 아직도 의자에 걸려 있네요 다음 모임은 솔직히 안 나가고 싶어요 나가봤자 또 무슨 낙으로 사냐는 질문에 웃으면서 대답할 자신이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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