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트의 시끄러움 이 그리운 날 오랜만에 넷 모두 아무 일정 없이 집에서 보내는 주말이었음. 그런 날이면 아침 풍경은 대체로 비슷했지. 평일 내내 쌓인 피로를 주말 아침에 몰아서 풀기라도 하듯 그레이스와 식스는 늦게까지 자는 편이었고, 반대로 콜트와 드라이버는 비교적 일찍 눈을 떴음. 특히 콜트는 쉬는 날이라고 얌전히 침대에 붙어 있을 성격이 아니었음. 눈을 뜨자마자 거실로 나와 냉장고부터 열어보고, 소파에 드러누웠다가 괜히 드라이버한테 말을 걸고,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흥얼거리다 아직 자고 있는 형들 방문 앞을 기웃거리기도 했지. 그러니 그날 아침 드라이버가 혼자 거실로 나왔을 때 집 안이 유난히 조용했던 건 꽤 드문 일이었음. 드라이버는 물을 한 잔 따라 마시다가 콜트 방문 쪽을 한번 바라봤음. 문은 닫혀 있었지. 잠깐 의아하긴 했음. 보통이라면 자기보다 먼저 나와 있거나, 적어도 비슷한 시간에는 거실을 돌아다니고 있을 사람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전날 밤 콜트가 스턴트 일 때문에 꽤 늦게 들어왔던 게 떠올랐음. 현관문 열리는 소리를 들었던 시간이 평소보다 한참 늦었으니, 아무래도 피곤해서 늦잠을 자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지. 드라이버는 그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소파에 앉아 TV를 켰음.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식스가 방에서 나왔음. 잔뜩 눌린 머리를 한 채 주방으로 가 물부터 벌컥벌컥 마시던 식스는 거실을 한번 둘러보더니 뒤늦게 물었지. “콜트는?” 드라이버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며 대답했음. “자는 것 같은데.” “아직?” 식스가 의외라는 듯 눈을 조금 크게 떴음. “어제 늦게 왔잖아.” 그 말을 듣자 식스도 금세 납득했음. “아.” 평소에는 귀찮을 만큼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하루쯤 늦잠을 자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레이스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음. 안경을 얼굴에 대충 걸친 채 부스스한 모습으로 방에서 나온 그레이스는 길게 하품부터 했음. “몇 시야...” “열 시 넘었어.” 드라이버가 대답했음. 그레이스는 느릿느릿 거실까지 걸어와 그대로 소파 한쪽에 몸을 늘어뜨렸음. “좋은 아침...” “응.” 드라이버가 짧게 받아줬고, 그레이스는 한동안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소파에 누워 있었음. 그러다 문득 평소와 달리 주변이 너무 조용하다는 걸 느낀 듯 눈을 깜빡였지. “콜트는?” 이번에도 대답은 똑같았음. “자.” 그레이스가 조금 의외라는 듯 콜트 방문 쪽을 바라봤음. “웬일이야.” 드라이버가 대꾸했지. “어제 늦게 들어왔잖아.” “아, 맞다.” 그레이스도 그제야 떠올렸음. “많이 피곤했나 보네.” 그레이스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음. 콜트는 일이 고돼도 좀처럼 제 몸을 쉬게 두는 법이 없는 애였으니까. 하루 종일 몸을 쓰고 돌아온 날에도 집에만 들어서면 언제 피곤했냐는 듯 금세 기운을 되찾아 떠들고 돌아다니기 바빴지. 그러니 모처럼 늦잠에 빠져 있다면 굳이 깨울 필요는 없겠다 싶었음. 이참에 밀린 피로라도 푹 풀면 그게 더 나을 것 같았고. 그래서 아무도 콜트의 잠을 건드리지 않았음. 셋은 각자 늦은 아침을 챙겨 먹고, 별다른 약속도 없는 주말답게 느긋하게 시간을 흘려보냈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늦잠이 조금 길게 느껴지기 시작했음. 열한 시를 훌쩍 넘기고 정오가 가까워질 때까지도 콜트 방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음. 아무리 전날 늦게 들어왔다고 해도 평소의 콜트라면 배가 고파서라도 진작 모습을 드러냈을 시간이었지. 그레이스가 문득 벽시계를 올려다봤음. “아직 자네?” 그레이스가 벽시계에서 시선을 떼며 중얼거렸음. 식스는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TV를 보고 있다가 잠깐 콜트 방문 쪽으로 눈을 돌렸지. “피곤한가 보지.” “그래도 너무 오래 자는데...” “어제 늦게 왔다며.” “그렇긴 한데...” 그레이스는 말끝을 흐린 채 한동안 닫힌 방문 쪽을 바라봤음. 전날 늦게까지 일을 했으니 피곤해서 오래 자는 거겠지 싶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너무 늦어지고 있었음. 콜트는 아무리 늦잠을 자도 정오가 다 되도록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애는 아니었으니까. 배가 고파서 냉장고를 뒤지든, 심심하다며 누군가한테 말을 걸든 이쯤이면 진작 한 번쯤은 밖으로 나왔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제야 조금 신경이 쓰였지. 그레이스는 다시 한번 닫힌 방문을 바라보다가 결국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음. “한번 깨워봐야겠다.” 콜트 방 앞에 선 그레이스는 문을 두어 번 가볍게 두드렸음. “콜트.”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음. 잠시 기다렸다가 한 번 더 불렀지. “콜트?” 여전히 방 안은 조용했음. 그레이스는 잠겨 있지 않은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돌렸음. 문을 열자 커튼이 닫힌 방 안에는 흐릿한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고, 콜트는 침대 위에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깊이 파묻혀 있었음. 어찌나 미동도 없던지 정말 피곤해서 곯아떨어진 사람처럼 보였지. 그레이스는 그제야 조금 웃었음. ‘진짜 많이 피곤했나 보네.’ 괜히 크게 깨우고 싶지 않아 발소리를 죽여 침대까지 다가간 뒤, 끝자리에 살짝 걸터앉았음. “콜트.” 이불 위로 드러난 다리 부근을 가볍게 두드렸지. “야, 일어나. 점심 다 됐어. 배 안 고파?” 평소 같았으면 이쯤에서 귀찮다는 신음이라도 흘러나왔을 텐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음. 그레이스가 조금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음. “콜트, 일어나.” 이번에는 이불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몸이 움직였음. 하지만 그것뿐이었지. 그제야 그레이스도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음. 잠깐 망설이다 이불 끝을 잡아 얼굴 쪽만 조심스럽게 걷어냈고, 드러난 모습을 확인한 순간 얼굴에서 남아 있던 웃음기가 그대로 사라졌음. “....” 콜트의 상태는 단순히 피곤해서 늦잠을 자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음. 얼굴 전체가 열에 들뜬 듯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땀에 젖은 앞머리는 이마에 축축하게 엉겨 붙어 있었음. 입술은 말라 있었으며 숨을 내쉴 때마다 뜨거운 기운이 천천히 새어나왔고, 편히 잠든 사람답지 않게 미간까지 잔뜩 찌푸린 채였지. 갑자기 이불이 걷히며 서늘한 공기가 닿자 콜트가 작게 몸을 움츠렸음. “으응...” 목 깊숙한 곳에서 낮은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그레이스의 표정도 완전히 달라졌음. 곧바로 몸을 숙여 손바닥을 콜트 이마에 가져다 댔는데, 손이 닿자마자 놀랄 만큼 강한 열기가 느껴졌지. “콜트?” 혹시 잘못 느낀 건가 싶어 볼과 목까지 차례로 짚어봤지만 어디든 마찬가지였음. 몸 전체가 뜨거웠음. 콜트는 그레이스가 부르는 소리에 몇 번이나 무거운 눈꺼풀을 들썩이다가 겨우 눈을 조금 떴음. 초점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눈으로 한참 그레이스 얼굴을 바라보더니, 잔뜩 잠긴 목소리로 겨우 중얼거렸지. “...형.” 평소의 힘찬 목소리는 흔적조차 없었음. 그레이스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음. “코트!” 확연히 다급해진 목소리에 거실에 있던 식스가 거의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음. 무슨 일이냐는 듯 방 안으로 들어오던 식스도 침대 위의 콜트를 확인하는 순간 표정이 달라졌지. “얘 열나는 것 같아.” 그레이스의 말에 식스는 곧장 침대 가까이 다가왔음. 직접 콜트의 이마를 짚어본 순간 미간이 깊게 좁아졌고, 손을 뗀 뒤에는 길게 묻지도 않은 채 바로 몸을 돌렸지. “잠깐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체온계와 물, 집에 있던 약이며 당장 필요할 만한 것들을 한꺼번에 챙겨 돌아왔음. 거실에 남아 있던 드라이버 역시 그쯤 되자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렸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용하던 집 안에서 갑자기 형들이 분주하게 오가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콜트 방 쪽으로 따라왔지. 처음에는 괜히 끼어들지 않으려는 듯 문가에 머문 채 안쪽만 바라봤음. 형들 사이로 보이는 콜트의 모습은 드라이버에게도 영 낯설었지. 늘 집 안을 쏘다니고,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잠시를 못 참고 움직이던 사람이 이불 속에 힘없이 파묻혀 있었으니까. 드라이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평소 콜트를 볼 때면 으레 묻어나던 심드렁함도 장난기도 어느새 얼굴에서 완전히 사라져 있었음. 그레이스는 식스에게 체온계를 건네받으면서도 다른 손은 계속 콜트의 이마에 얹어둔 채였음. “많이 뜨겁네...” 체온을 재는 동안에도 콜트는 좀처럼 눈을 뜨지 못했음. 조금 전 그레이스의 부름에 겨우 정신을 차렸던 것도 잠시, 어느새 다시 잠에 빠져들 듯 무거운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지. 잠시 뒤 체온계에 뜬 숫자를 확인한 그레이스의 표정이 더 굳었음. 39도에 가까운 고열이었음. 옆에서 지켜보던 드라이버도 슬쩍 몸을 기울여 숫자를 확인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지. “많이 높은 거 아니야?” “응.” 짧게 대답한 그레이스의 목소리에도 걱정스러운 기색이 묻어났음. 식스는 잠든 듯 누워 있는 콜트를 한동안 내려다보다가 문득 전날 일을 떠올린 듯 입을 열었음. “어제 무슨 일 있었나?” 그레이스가 고개를 저었음. “모르겠어. 늦게 들어와서 얼굴도 제대로 못 봤어.” 그러고는 다시 콜트 쪽으로 몸을 숙였지. “콜트.” 한 번 불러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음. “콜트, 잠깐만 눈 떠봐.” 그레이스가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몇 번 더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콜트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음. “응...” “어제 촬영에서 뭐 했어?” 질문을 이해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는 듯 콜트는 한참 동안 눈만 느리게 깜빡였음. 그러다 겨우 입술을 달싹였지. “...물.” “물?” “어제... 물에서... 찍는 거...” 말이 중간중간 힘없이 끊겼음. 한마디를 꺼낼 때마다 생각이 흐려지는 건지 문장 하나를 제대로 끝내지 못했지. 그레이스가 조금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음. “물에서 촬영했어?” 콜트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음. “응... 계속....” 잠시 숨을 고르던 콜트가 마른 입술을 한번 축인 뒤 겨우 말을 이었음. “차가운 데... 오래 있었어...” 거기까지가 한계였는지 마지막 말은 거의 숨소리처럼 흐려졌고, 무거운 눈꺼풀도 다시 천천히 내려앉았음. 그 정도만 들어도 셋은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지. 콜트는 쌀쌀한 날씨에 오랫동안 물속에서 스턴트 촬영을 했던 모양이었음. 평소 체력도 좋고 몸 관리도 철저해서 감기에 걸리는 일조차 드문 애였으니, 촬영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가능성이 컸지. 하지만 찬물 속에서 몇 시간씩 몸을 쓰고, 촬영까지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으니 아무리 평소 튼튼한 콜트라도 이번만큼은 몸이 버티지 못했던 듯했음. 그레이스는 자기도 모르게 짧은 한숨을 내쉬었음. “...이래서 난 그 일 마음에 안 든다니까.” 낮게 흘러나온 말에는 못마땅함보다 걱정이 훨씬 짙게 묻어 있었음. 물론 그레이스도 콜트가 그 일을 좋아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지. 다만 형의 입장에서는 마냥 마음 편히 볼 수가 없었음. 멀쩡히 나갔다가 온몸에 멍을 달고 돌아오기도 했고, 손목이나 어깨를 삐끗해 며칠씩 불편해한 적도 있었음. 별일 아니라며 웃어넘긴 상처가 생각보다 깊었던 적도 있었고, 오늘처럼 제 몸이 상한 줄도 모른 채 돌아와 그대로 앓아눕는 날까지 생겼지. 그럴 때면 멋있다는 생각보다 먼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음.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하고 안전장치를 갖춘다 해도, 결국 그 장면을 위해 직접 몸을 던지는 건 콜트였으니까. 지금처럼 열에 들떠 축 늘어진 얼굴을 보고 있으니 그 마음이 새삼 더 선명해졌음. “맨날 괜찮다고만 하고...” 그레이스가 작게 중얼거리며 콜트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넘겼음. 콜트는 이미 다시 눈을 감은 채였고, 더 대답을 재촉할 상태도 아니었지. “콜트.” 그레이스가 뺨을 가볍게 두드렸음. “조금만 버텨. 약 먹고 다시 자자.”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겠다 싶었지만, 문제는 콜트가 좀처럼 정신을 붙들지 못한다는 거였음. 결국 그레이스는 한쪽 팔을 콜트의 등 뒤로 깊숙이 넣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음. “자, 잠깐만 일어나보자.” “으응...” 콜트는 스스로 몸을 가눌 생각조차 못 하는 사람처럼 그대로 그레이스 쪽으로 무너져 기대왔음. 뜨거운 이마가 그레이스 어깨 위에 툭 얹혔지. 그레이스가 자연스럽게 등을 받쳐 안았음. “콜트, 눈 좀 떠봐.” “싫어...” “약만 먹고 다시 자. 이것만 먹으면 돼.” 한 손으로 콜트 몸을 받친 채 다른 손을 내밀자 식스가 기다렸다는 듯 물컵을 건넸음. 그레이스가 컵을 입가에 가져다 대도 콜트는 고개를 들 힘조차 없어 보여서, 결국 어깨에 기대게 둔 채 조금씩 물을 넘겨줬지. “한 모금만.” 콜트가 겨우 물을 삼켰음. “그래. 잘했어. 한 번만 더.” “싫어...” “싫어도 먹어야 돼.”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콜트가 아주 작게 웅얼거렸음. “약 싫어...” 목소리에는 힘이라곤 하나도 없으면서 평소의 투정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음. 그레이스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런 반응이라도 돌아온 게 차라리 다행이라는 듯 입가를 조금 누그러뜨렸음. 그러고는 땀에 젖어 이마에 붙은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넘겼지. “먹어야 덜 아파. 너 지금 몸이 불덩이야.” 몇 번이나 달래가며 물을 먹이고 나서야 겨우 약까지 삼키게 할 수 있었음. 그레이스는 입가에 묻은 물기를 손등으로 가볍게 닦아줬음. “됐어. 이제 자.” 다시 천천히 베개 위에 눕혀주자 콜트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옆으로 조금 웅크렸음. 그레이스가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려주는 동안 눈은 이미 완전히 감겨 있었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한 번 정리해줄 즈음에는 숨소리도 다시 길고 고르게 이어지고 있었지. 그레이스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음. 침대 끝에 그대로 앉아 한동안 잠든 콜트의 얼굴을 살폈고, 식스 역시 체온계와 물컵을 정리하면서도 몇 번이나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음. 드라이버도 여전히 문가에 머문 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지. 아침까지만 해도 아무 일정 없이 느긋하게 흘러갈 줄 알았던 주말은 어느새 방 안에서 앓고 있는 콜트 걱정으로 가득해져 있었음. 그 뒤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 약을 먹였으니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랐지만, 콜트는 오후가 되도록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 한두 시간씩 깊이 잠들었다가 몸이 불편한지 작게 끙끙거리며 잠시 눈을 뜨고, 물을 몇 모금 마시거나 이불 속에서 자세를 바꾼 뒤에는 다시 금세 잠에 빠져들었음. 간혹 정신이 들어도 맑은 상태와는 거리가 멀었지. 누가 말을 걸면 알아듣기는 하는 것 같은데 대답이 몇 박자씩 늦었고, 겨우 눈을 떴다가도 금세 다시 무거운 눈꺼풀이 내려앉았음. 결국 그레이스는 아예 의자 하나를 끌어와 침대 옆에 자리를 잡았음. 체온을 틈틈이 확인하고, 땀이 많이 나면 젖은 앞머리를 정리해주고, 열이 오르는 것 같으면 이불을 조금 걷어줬다가 추워하는 기색이 보이면 다시 목 끝까지 당겨 덮어줬지. 콜트가 잠결에 미간을 찌푸리거나 뒤척이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얼굴부터 들여다봤음. 그렇게 반나절 가까이를 곁에서 보내다 보니, 콜트가 잠깐씩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마주치는 사람도 대부분 그레이스였음. 한 번은 한참 자던 콜트가 힘겹게 눈을 뜨더니 흐릿한 시선으로 옆을 찾았음. “형...” 그레이스가 바로 몸을 조금 가까이 기울였지. “응. 여기 있어.” 그 말을 확인하고 나서야 콜트는 안심한 사람처럼 다시 눈을 감았음. 한참 뒤 깨어났을 때도 비슷했지. “형...” “응.” 그레이스는 그때마다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음. 자꾸 같은 확인을 하는 게 귀찮다는 기색도 없이, 그저 자신이 옆에 있다는 걸 알려주듯 짧게 대답해줬지. 그날 집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음. 평소 주말이었다면 거실 어딘가에서는 거의 반드시 콜트의 목소리가 들렸겠지. 심심하다며 드라이버에게 먼저 시비를 걸거나, 식스한테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을 늘어놓거나, 그레이스 방에 불쑥 들어가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한참 떠들어댔을 거임.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문득 생각난 게 있는지 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일도 흔했고. 하지만 그날은 그런 소리가 하나같이 빠져 있었음. TV도 평소처럼 켜져 있었고 식스와 드라이버도 거실에 있었지만, 유난히 집 안이 잠잠했지. 평소 같으면 콜트 목소리에 묻혀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나 시계 초침 소리까지 또렷하게 귀에 들어올 정도였음. 드라이버에게는 그 정적이 생각보다 더 낯설었음.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시선이 콜트 방문 쪽으로 향했지.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었고, 방 안에서 작은 인기척이라도 들리는 것 같으면 저도 모르게 그쪽부터 바라봤음. 그러다 한 번은 괜히 물이라도 마실 생각인 척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가, 어느새 콜트 방 앞까지 와 있었음. 문은 조금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는 여전히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는 그레이스가 보였음. 그레이스가 문가의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지. “왜?” “...그냥.” 드라이버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자리를 뜨지는 않았음. 그레이스가 잠깐 드라이버 얼굴을 바라보다 침대 옆을 턱짓했음. “들어올래?” 드라이버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왔음. 침대 곁에 서서 내려다본 콜트는 아침보다는 얼굴의 붉은 기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지만 여전히 지쳐 보였지. 드라이버가 낮게 물었음. “아직도 많이 아파?” “열은 조금 내려갔어.” 그레이스가 다시 콜트 이마에 손을 얹어보며 대답했음. “그래도 계속 자네. 몸이 많이 힘든가 봐.” 드라이버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음. 기분이 묘했지. 콜트는 형제들 중에서도 드라이버가 가장 거리낌 없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이었음. 나이 차이도 크지 않은 데다 성격부터 워낙 스스럼없는 편이라, 둘은 자연스럽게 부딪히는 일이 많았지. 콜트가 먼저 장난을 걸면 드라이버는 귀찮다며 밀어냈고, 허리를 끌어안거나 어깨에 매달리기라도 하면 떨어지라며 인상을 쓰는 게 늘 있는 일이었음. 별것도 아닌 말 한마디로 서로 빈정대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말을 섞는 것까지, 둘에게는 너무 익숙한 일상이었지. 그래서 지금의 콜트가 더욱 낯설게 느껴졌음. 드라이버가 아는 콜트는 좀처럼 기운이 떨어지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음. 하루 종일 몸을 쓰고 돌아온 날에도 잠깐만 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아파서 누워 있는 모습을 본 기억도 거의 없었지. 늘 체력 좋은 큰 강아지처럼 집 안을 쉴 새 없이 돌아다니던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심각한 병은 아니었음. 독한 감기에 단단히 걸린 것뿐이었고, 약도 먹은 데다 아침보다 열도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으니 푹 쉬고 나면 다시 평소처럼 돌아올 거라는 것쯤은 드라이버도 충분히 알고 있었지. 그런데도 늘 멀쩡하고 기운 넘치던 형이 아무 말도 못 한 채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은 좀처럼 따라주지 않았음. 별일 아닐 거라고 몇 번이나 되뇌어봐도, 익숙하지 않은 모습에서 오는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지. ‘괜찮겠지.’ 굳이 속으로 한 번 더 확인하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놓일 만큼. 그레이스는 말없이 그런 드라이버를 바라보다가, 평소보다 한층 가라앉은 막내의 얼굴에서 그 마음을 대충 읽어낸 듯했음. “디.” 드라이버가 고개를 들었음. “네가 잠깐 형 보고 있을래?” “...내가?” “응.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드라이버는 침대 위의 콜트를 한번 내려다봤다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음. “...응.” 그레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드라이버가 자연스럽게 비어버린 의자에 앉았음. 밖으로 나온 그레이스는 문을 완전히 닫지 않고 살짝 열어둔 채 거실로 향했음. 식스가 그 모습을 보고 바로 물었지. “어때.” “열은 아까보단 좀 내려갔어.” “다행이네.” 식스가 짧게 대답하자 그레이스가 콜트 방문 쪽을 한번 돌아봤음. “디가 좀 걱정하나 봐.” 식스도 열린 방문 너머를 한번 힐끗 바라봤음. “그럴 만도 하지.” 짧게 대답한 뒤 더는 말을 보태지 않았지. 한편 방 안에는 다시 조용한 정적이 내려앉았음. 드라이버는 그레이스가 비워준 의자에 앉아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잠든 콜트만 바라봤지.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콜트가 잠결에 천천히 미간을 찌푸리더니 무거운 눈꺼풀을 조금 들어 올렸음. 한동안 초점 없는 시선이 허공을 헤매다가, 이내 바로 곁에 앉아 있던 드라이버에게 멈췄지. “...디?” “응.” 콜트는 몇 번 느리게 눈을 깜빡였음. “막내네...” 그 말에 드라이버는 별다른 대꾸 없이 콜트를 바라봤음. 콜트는 잠시 주변을 살피듯 흐릿한 시선을 옮기다가 다시 작게 물었지. “형은...?” “잠깐 나갔어.” “으응....” 콜트는 그제야 다시 눈을 감았음. 그러고는 거의 잠에 빠져들기 직전인 사람처럼 희미하게 중얼거렸지. “그래... 막내가 와줬구나...” 평소의 장난기나 능글맞은 기색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힘 빠진 목소리였음. 그저 드라이버가 곁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안심한 듯한 말이었지. 그게 오히려 드라이버의 마음을 더 묘하게 만들었음. 평소의 콜트라면 먼저 귀찮게 굴고, 밀어내도 다시 달라붙고, 어떻게든 한마디 더 받아치겠다며 끝까지 쫓아왔을 텐데. 오늘은 자기 얼굴을 한번 확인한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다시 조용히 잠에 빠져들고 있었으니까. 드라이버는 입술을 꾹 다문 채 한동안 콜트의 얼굴을 바라봤음. 잠시 뒤 그레이스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대로였지. 문가에 선 그레이스는 의자에 앉은 드라이버와 그 옆에서 잠든 콜트를 잠깐 바라보다가 조용히 안으로 들어왔음. 그러고는 드라이버 뒤에 서서 머리를 한 번 천천히 쓸어줬지. 드라이버가 고개를 돌렸음. 그레이스는 평소보다 유난히 가라앉아 있는 막내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희미하게 웃었음. “맨날 투닥거리던 형이 이렇게 조용하니까 너도 기분 이상하지?” 드라이버는 곧장 아니라고 하지는 못했음. 잠깐 입을 다물고 있다가 결국 아주 작게 대답했지. “...좀.” 그레이스는 더 놀리거나 캐묻지 않았음. 그저 머리를 한 번 더 부드럽게 쓸어준 뒤 말했지. “그럼 조금만 더 형 옆에 있어줘.” “응.” 그레이스가 방을 나가고 문이 조용히 닫히자, 방 안에는 다시 콜트와 드라이버 둘만 남았음. 드라이버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잠든 콜트를 바라보다가 문득 낮게 중얼거렸지. “너 아프니까 집이 조용해.” 타박하는 말투는 아니었음. 하루 종일 집 안을 채우고 있던 낯선 정적을 이제야 입 밖으로 꺼낸 것에 가까웠지. 잠결에도 들은 건지 콜트의 미간이 아주 조금 움직였음. 잠시 뒤에는 잔뜩 쉰 목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지. “너는... 이 와중에도 형 소리 안 하네...” 드라이버가 잠깐 멈칫했음. 저렇게 정신도 없으면서 그건 또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지. 어이가 없다는 듯 짧게 숨을 내쉬었지만, 조금 전까지 굳어 있던 표정은 어느새 한결 누그러져 있었음. 콜트가 눈도 뜨지 않은 채 다시 힘없이 중얼거렸음. “...조용해서 좋지?” 드라이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음. 평소 같았으면 망설일 것도 없이 그렇다고 했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지. 잠깐 침묵하던 드라이버가 이불 밖으로 조금 빠져나온 콜트의 손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대답했음. “조용하긴 해.” 그리고 잠시 뒤, 혼잣말처럼 덧붙였지. “근데 별로야.” 콜트가 그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음. 이미 다시 잠에 빠져든 듯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드라이버는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다가 조금 흘러내린 이불을 잡아 콜트의 어깨까지 다시 끌어올려줬음. 그러고는 잠든 얼굴을 잠깐 내려다보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 “빨리 나아서 다시 시끄럽게 굴어. 형.” 이번에는 일부러 붙여준 ‘형’이라는 말에도 콜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음. 식스 역시 겉으로 티를 덜 낼 뿐, 콜트의 상태를 계속 신경 쓰고 있었음. 늘 팔팔하게 돌아다니고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던 동생이 제대로 정신조차 차리지 못한 채 앓고 있으니, 평소처럼 무심하게 넘길 수는 없었지. 식스는 걱정을 말로 드러내기보다는 필요한 걸 먼저 챙기는 쪽이었음. 시간이 좀 지났다 싶으면 슬쩍 방에 들어와 체온을 재봤고, 약 먹일 때가 가까워지면 그레이스가 말하기도 전에 물과 약부터 챙겨왔음. 콜트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방 앞을 지날 때면 자연스럽게 안을 한번 들여다보곤 했지. 오후가 지나도록 열이 좀처럼 완전히 떨어지지 않자, 식스는 체온계에 찍힌 숫자를 한동안 바라보다 그레이스에게 낮게 말했음. “더 안 내려가면 저녁에 병원 가자.” 그레이스도 별다른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음. “응. 나도 그러려고 했어.” 식스는 그제야 다시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음.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는 콜트의 얼굴을 잠시 살핀 뒤에야 조용히 방을 나섰지. 다행히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열은 조금씩 더 내려가기 시작했음. 그리고 하루 종일 거의 잠만 자던 콜트도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조금씩 정신을 차렸지. 시간은 저녁 여덟 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음. 그레이스가 다시 방에 들어갔을 때 콜트는 처음으로 혼자 눈을 뜬 채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음. “깼어?” 콜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음. “응...” 아직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지만, 낮처럼 정신이 흐릿한 상태는 아니었음. 눈에도 어느 정도 초점이 돌아와 있었고. 그레이스는 침대 가까이 다가가 자연스럽게 이마부터 짚었음. “어때.” 콜트가 잠깐 제 몸 상태를 살피듯 눈을 굴렸음. “그냥... 목 좀 아프고... 몸도 아프고...” “열은 많이 내렸네.” 그레이스가 손을 떼려는데 콜트가 이번에는 아주 또렷하게 말했음. “배고파.” 그레이스가 그 말을 듣자마자 웃었음. “먹을 생각 드는 거 보니까 좀 나아졌나 보네.” 먹을 걸 찾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레이스는 마음이 한결 놓였음. 속에 부담되지 않을 만한 걸 조금 먹이고 약까지 다시 챙겨 먹였지만, 콜트는 좀처럼 잠들 생각을 하지 않았지. 그도 그럴 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하루를 통째로 자버린 셈이었으니까. 몸은 여전히 무겁고 기운도 완전히 돌아온 건 아니었지만, 정신만큼은 제법 또렷해져 있었음. 결국 아홉 시쯤 되자 계속 침대에 누워 있는 게 답답해진 콜트가 이불을 어깨에 둘둘 두른 채 거실로 나왔음. 그러고는 소파 한가운데에 털썩 주저앉았지. 그레이스가 바로 콜트를 돌아봤음. “왜 나왔어.” “너무 많이 자서 몸이 뻐근해.” “아직 몸살 있잖아. 그냥 누워 있지.”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허리 아파.” “그러다 또 열 오른다.” 콜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이불 속으로 몸을 조금 더 파묻었음. “여기 있을래.” 아직 코맹맹이에 잔뜩 쉰 목소리였음. 목도 아플 텐데 굳이 거실까지 나와 저러는 걸 보면 역시 가만히 누워 있는 건 체질에 맞지 않는 모양이었지. 그레이스는 잠시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결국 더 말리지 않았음. 저렇게 고집을 부릴 여유가 생겼다는 것 자체가 아침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예상대로 콜트는 소파에 앉은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아 하루 동안 못 한 말을 한꺼번에 쏟아내기 시작했음. “와, 나 진짜 하루 종일 잤네. 벌써 밤이야?” 아무도 대답하기도 전에 혼자 말을 이었지. “이렇게 하루가 다 가버리다니 너무 아깝다. 모처럼 넷 다 같이 쉬는 주말인데 아무것도 못 했잖아. 아침부터 깨어 있었으면 뭐라도 했을 텐데. 영화라도 보고, 나가서 뭐 먹든가...” 아침에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말이 끊이질 않았음. 목소리에는 여전히 감기 기운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지만, 말을 이어갈수록 표정도 조금씩 살아났고 평소의 콜트다운 기운도 돌아오고 있었지. 한동안 가만히 듣고 있던 식스가 결국 콜트 앞을 지나가다가 손가락 마디로 정수리를 가볍게 콩 두드렸음. “어우, 시끄러. 이제 좀 살 만한가 보네.” “아야.” 콜트가 곧장 머리를 감싸 쥐었음. “아포.” 식스가 코웃음을 쳤지. “엄살은.” 콜트는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린 채 억울하다는 얼굴로 식스를 올려다봤음. “진짜 아픈데.” “그래.” 대답은 무심했지만 식스의 입가에도 아주 희미하게 웃음이 걸려 있었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드라이버 역시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조금 올렸지. 하루 종일 축 늘어진 채 잠만 자던 콜트를 보다가 다시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별것도 아닌 일에 엄살을 부리는 모습까지 보고 있으니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음. 식스한테 한참 꿍얼거리던 콜트가 이번에는 문득 소파 한쪽에 앉아 있는 드라이버 쪽으로 시선을 돌렸음.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던 콜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지. 드라이버는 그 표정을 보자마자 불길한 기색을 읽었음. 콜트는 아무 말 없이 이불을 몸에 둘둘 두른 채 소파 위를 조금씩 옮겨 드라이버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지. 드라이버가 곧바로 몸을 뒤로 뺐음. “오지 마.” 하지만 콜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음. 그대로 몸을 기울이더니 이불째 드라이버를 냅다 끌어안았지. “아, 뭐 해.” 드라이버의 얼굴이 바로 구겨졌음. 두꺼운 이불까지 둘러쓴 콜트가 온몸으로 달라붙으니 뜨겁고 답답하기까지 했지. 드라이버가 어깨를 밀어 공간을 만들려 하자 콜트는 오히려 팔에 힘을 더 줬음. “형아 아퍼...” 그 말에 밀어내던 손이 그대로 멈췄음. 콜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더 기대더니 드라이버 어깨에 턱까지 얹었지. “밀어내지 마...” 평소 같았으면 진작 떼어냈겠지만, 아직 아픈 사람한테까지 그럴 수는 없었음. 결국 드라이버는 콜트에게 반쯤 붙잡힌 채 얼굴만 잔뜩 구겼지. “아... 진짜.” 그러다 문득 옆에서 이 광경을 태평하게 구경하고 있는 식스와 눈이 마주쳤음. 드라이버는 잠시 눈으로 어떻게 좀 해보라는 신호를 보내다가 결국 직접 입을 열었지. “형, 좀 떼줘.” 식스는 둘을 한번 내려다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음. “보기 좋은데 왜.” 드라이버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식스를 노려봤음. 그레이스한테 저렇게 달라붙었으면 귀찮게 하지 말라며 진작 떼어냈을 사람이, 이상하게 콜트가 자기한테 붙어 있을 때만큼은 늘 한 발 떨어져 재미있다는 듯 구경하곤 했지. “아, 떨어져. 감기 옮는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콜트는 드라이버 어깨에 얼굴까지 묻은 채 느릿하게 웅얼거렸음. “가족끼리 좀 옮을 수도 있지...” “난 싫거든.” “너무하네...” “아, 좀 비키라고.” 입으로는 계속 투덜거리면서도 드라이버는 끝내 콜트를 세게 밀어내지 못했음. 식스는 그런 둘을 잠시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그레이스도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음. 드라이버만 잔뜩 꿍한 얼굴로 콜트에게 붙잡힌 채 낮게 경고했지. “진짜 감기 옮기기만 해봐.” 콜트는 대답 대신 드라이버 어깨에 더 편하게 기대며 작게 웃었음. 어느새 집 안은 다시 시끄러워져 있었음. 콜트가 쉴 새 없이 말을 늘어놓고, 드라이버가 귀찮다는 듯 받아치고, 식스가 옆에서 한마디씩 거드는 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웠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소란이었지만, 하루 종일 그 소리가 빠진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니 그날만큼은 누구도 정말로 시끄럽다고 느끼지 않았음. 오히려 하루 종일 비어 있던 자리가 다시 채워진 것처럼, 그제야 집도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했지. [에필로그] 그리고 몇 달 뒤, 그날 콜트를 지독한 감기에 걸리게 만들었던 영화가 개봉했음. 콜트가 스턴트로 참여한 작품이 극장에 걸릴 때면 네 형제에게는 거의 정해진 행사처럼 굳어진 일이 하나 있었지. 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가는 거였음. 콜트가 먼저 가자고 조르지 않아도 그레이스가 알아서 일정을 맞췄고, 식스와 드라이버도 웬만하면 시간을 비웠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콜트가 맡았던 장면을 두고 한마디씩 해주는 것까지 늘 비슷했지. 그날의 콜트는 평소보다 유난히 들떠 있었음. 이번 영화는 촬영 기간도 길었고 유독 고생한 장면도 많았으니까. 극장으로 가는 내내 어느 장면에서 뭘 했는지는 아직 말해줄 수 없다면서도 입은 좀처럼 쉬지 않았지.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자 콜트는 금세 조용해졌음. 스크린에 집중한 채 말없이 영화를 바라보고 있었지. 그리고 자기가 맡은 스턴트 장면이 나올 때면 아무렇지 않은 척 옆자리를 슬쩍 살폈음. 차량 추격 장면에서는 드라이버 쪽을 한번 보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는 식스 쪽을 한번 봤고, 불길을 뚫고 나오는 장면에서는 괜히 그레이스 쪽으로 시선이 향했지. 그러다 문제의 물속 장면이 나오자 그레이스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음. 화면 속에서는 물에 빠진 인물이 한참을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수면 위로 올라오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었음. 다른 관객들이야 긴장감에 숨을 죽이며 보고 있었겠지만, 그레이스의 머릿속에는 영화보다 먼저 몇 달 전의 콜트가 떠올랐지. 열이 39도 가까이 오른 채 침대에 축 늘어져서는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던 모습이었음. ‘...저거였구나.’ 그레이스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조금 찌푸렸음. 옆을 슬쩍 돌아보니 정작 그 고생을 한 당사자는 세상 뿌듯한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지. 자기가 만들어낸 장면이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음.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까지 전부 올라간 뒤에야 네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 밖으로 나왔음.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식스였지. “고생했네.” 콜트가 바로 식스를 돌아봤음. 식스는 별다른 말 없이 엄지를 하나 들어 보이더니 짧게 덧붙였지. “잘했어.” 그 단순한 한마디에도 콜트 얼굴이 금세 밝아졌음. “진짜?” 드라이버도 옆에서 한마디 보탰음. “난 차 추격하는 게 제일 좋았어.” 콜트가 이번에는 곧바로 막내 쪽으로 돌아봤지. “진짜? 내가 차 위로 올라가는 것도?” “그것도.” “그 뒤에 옆으로 떨어지는 것도?” “응.” 드라이버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콜트를 향해 엄지를 아주 살짝 들어 보였음. 그제야 콜트의 표정이 눈에 띄게 더 뿌듯해졌지. 그리고 이제 남은 사람은 한 명뿐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그레이스를 바라봤음. “형은?” 그레이스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음. 영화가 멋있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멋있었음. 거대한 스크린 위에서 누군가가 질주하고, 떨어지고, 불길과 물살을 뚫고 나오는 장면 하나하나가 관객들을 숨죽이게 만들었고, 그 뒤에 콜트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 자랑스러웠지. 콜트가 왜 이 일을 좋아하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았음. 그런데 정작 형의 눈에는 멋있다는 감상보다 다른 것들이 자꾸 먼저 들어왔음. ‘저 건물에서 떨어지는 거, 설마 진짜 네가 한 거니.’ 아무리 안전장치를 했어도 높이가 너무 아찔했음. ‘그리고 사람 몸에 불을 그렇게 붙여도 되는 거야?’ 방화복을 입었다고 해도 스크린을 가득 채운 불길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지. 달리는 차 위에도 올라가 있었고, 계단을 몇 번이나 굴렀으며, 창문을 깨고 튀어나오는 장면까지 있었음. 거기에 몇 달 전 콜트를 지독한 감기에 걸리게 했던 바로 그 물속 촬영까지. 생각할수록 한두 마디로 끝날 잔소리가 아니었음. ‘물속에는 대체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거야. 그때 네가 얼마나 앓았는데...’ 그레이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음. “근데 너...” 그러다 말끝이 그대로 멈췄지. 콜트가 눈을 반짝인 채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음. 앞서 식스와 드라이버에게 칭찬을 들었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그레이스의 감상까지 듣고 싶은 게 얼굴에 너무도 뻔히 드러나 있었지. 꼭 자기 차례를 얌전히 기다리는 큰 강아지 같은 얼굴이었음. 하고 싶은 말은 차고 넘쳤지만, 그런 얼굴을 보고 있으니 차마 잔소리부터 꺼낼 수가 없었지. 결국 그레이스는 목 끝까지 올라왔던 말들을 전부 삼켰음. “...멋있었어.” 콜트의 눈이 조금 더 커졌음. 그레이스는 못 말리겠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도 결국 웃었지. “진짜 멋있었어. 우리 동생.” 그러고는 콜트 쪽으로 엄지까지 슬쩍 들어 보였음. 형제들 사이에서 그 손짓은 꽤 익숙한 표현이었지. 원래는 콜트가 제일 자주 쓰는 버릇이었음. 스턴트 현장에서는 준비가 됐다는 뜻으로, 혹은 다치지 않았고 괜찮다는 뜻으로 엄지를 들어 보이는 일이 많았고, 그게 습관처럼 굳어 집에서도 뭔가 마음에 들거나 문제없다는 뜻으로 곧잘 엄지척을 해 보이곤 했음. 그러다 보니 어느새 형제들도 콜트에게는 같은 방식으로 대답하는 일이 많아졌지. 괜찮다는 뜻도, 잘했다는 칭찬도, 마음에 들었다는 표현도 말 대신 엄지 하나면 충분할 때가 있었음. 특히 콜트가 참여한 영화를 보고 나온 날이면 더 그랬고. 그레이스가 들어 올린 엄지는 결국 그 모든 뜻을 한꺼번에 담고 있었음. 좋았고, 잘했고, 멋있었다는 뜻. 그제야 콜트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지. “그치?” “응.” “진짜?” “진짜.” 그레이스는 여전히 올리고 있던 엄지를 한번 까딱여 보이며 다시 웃었음. ‘그래도 다음에는 조금 덜 위험한 거 하면 안 되니...’ 그 말만큼은 끝내 속으로 삼킨 채였지. 고슬고슬 고슬사자 4형제 사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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