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가
← 이전 글
다음 글 →

게시글 상세

↔

화면을 좌우로 스와이프하여 다음/이전 글로 넘겨보세요

📰
이슈
- · 약 1분 분량 ·
0
|

홍사훈 대기자에게 누가 태클을 걸었나봐요.

# 김성수라는 평론가가 제 과거(?)에 대해 어디서 누구에게 뭘 들었는지 잘못된 얘기를 한다고 누가 전해줘서 유튜브로 봤습니다. KBS에 기상전문기자로 입사한 주제에 이명박 시절 기자들이 숙청당하고 그 빈자리(?)에 탐사보도부로 들어가서 부장되고 국장되고 등등 전형적인 기회주의자.. 어쩌고 하더라고요. 김성수 씨가 누군지 저는 모르지만 아마도 잘 모르고 한 얘기라 믿고 문제를 삼진 않겠습니다. 대신 궁금하실 것 같아 제 과거(?)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기상기자 출신이란 게 왜 흠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KBS 시절부터 KBS 직원게시판(코비스)에 늘 이 점이 저에 대한 공격포인트였기에 익숙합니다. 당시 제가 시사제작국장으로 발령 받았을 때도 비슷한 내용의 글들이 올라와서 제 입장을 코비스(KBS 게시판)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기상 전문기자 출신이라 부장 , 국장까지 올라가면 왜 안되는지 모르겠으나 제 짧은 생각으론 KBS가 살아나려면 10명, 100명의 또다른 홍사훈이 나타나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KBS는 가망이 없는 것 아닙니까?" 저는 기자가 좋았습니다. 기자상도 꽤 많이 받았습니다. '올해의 보도기자상'부터 '한국방송대상' 등등 30개 가까운 기자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KBS에서 저만큼 기자상을 많이 받은 기자들 몇 안됩니다. 2000년 미국 MIT Knight science journalism fellowship에 선발돼 1년간 연수를 다녀온 뒤 취재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그 당시 바로 옆 하바드 니만 펠로우십에 연수온 사람이 동아일보 이동관 이었습니다) 그간 기상, 과학분야 취재에서(30년 전 무인자동차 영상이 많이 돌던데 그것도 이 때 특종한 기사였습니다.) 이후 KBS 2TV 뉴스가 강화되면서 '출동 5인조'라는 고발뉴스 코너에 합류했습니다.(2TV도 기자들 죽어도 안가려 하는 부서입니다)그리고 이명박 정권 당시 시사제작부(탐사보도부 아닙니다) 기자로 발령받아 시사기획 창을 제작했습니다. 김성수 씨는 당시 이명박 때 기자들이 숙청돼 좋은 부서에 제가 차고 들어갔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방송국에서 보도국이 아닌 시사제작국은 기자들이 가기 싫어하는 부서입니다. 물론 김성수 씨가 잘 모르니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거 이해합니다.기자들은 뉴스 하고 싶어하지 다큐멘터리 이런거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숙청된 기자 없어요. KBS에서 직원 짜르기가 얼마나 어려운 조직인지 조금만 알아보면 알 수 있을텐데..) 시사기획 창에서 활동하면서 점차 진짜 기자로 만들어졌습니다.주로 노동과 임금, 불평등을 주제로 지금 다시 봐도 명작 다큐멘터리들을 많이 제작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도 이때부터 달라졌습니다. 박근혜 정부, 길환영 KBS 사장 시절 제가 시사제작부장이 된 건 맞습니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시사제작 1부장으로 발령났으니 발령장 받으러 사장실로 오라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당시 저는 KBS 본부노조 소속으로 당시 보도본부장이나 길환영이 왜 저를 부장으로 승진시켰는지 궁금했습니다. 후일 비서실에 물어봤더니 제가 제작한 '정의사회구현'이란 제목의 전두환 일가 비자금, 특히 둘째 아들 전재용이 여의도 절반 면적의 오산 땅을 세금 안내고 증여받으려는 걸 폭로한 다큐 덕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박근혜 정부 당시 전두환일가 재산 환수 특별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거든요. 박근혜 입김이 작용했는지 아닌지는 제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당시 '정의사회구현' 다큐는 링크를 달아놓겠습니다. 특히 이순자를 따라간 프롤로그는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니 전 편을 다 못보더라도 프롤로그는 꼭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뭐 그런데 부장을 오래하진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세월호 사건이 터졌고, KBS가 유가족들 외면하면서 문제가 됐습니다. 저는 사장인 길환영이 책임지고 물러나라고 연판장에 이름을 올리고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부장이 사장 나가라 나댔으니 당연히 징계가 내려졌고 전주KBS 평기자로 갑자기 발령이 났습니다. 다행히 20여일만에 길환영이 쫓겨나면서 서울로 복귀했고 시사기획 창 평기자로 다시 취재했습니다. (김성수 씨가 세월호 보도를 제가 길환영 사장과 함께 뭉갰다는 건 도대체 어디서 누구에게 들은건지 궁금하긴 합니다. 당사자 확인하지 않은 전언 보도는 한 방에 갈 수 있다는 사실 명심하기 바랍니다.) 그러다 이명박 정권, 고대영 KBS사장 시절 뒤늦게 천안함을 쫓아다녔습니다. 이번엔 저성과자란 낙인을 찍어 대전KBS로 발령이 났습니다. 전주에선 한달도 안돼 복귀했지만 대전으로 갔을 땐 꽤 오랜 시간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형탈모증이 심하게 생겨 비주얼에 흠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는 스스로 자기 몸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니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보라 했습니다. 그 날밤 곰팡이 냄새나는 대전의 원룸에서 다짐했습니다.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지 않고 다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개자식들 가만두지 않겠다.. 다짐했습니다. KBS가 파업하면서 고대영 사장을 쫓아냈고 약 1년만에 다시 시사기획 창 기자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약 1년 뒤 시사제작 2부장이 됐고 그 후 시사제작국장이 됐습니다. 역시 시사제작국장 오래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이 문제가 돼 제가 최종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는데 구체적인 이유는 후배가 연관돼 있는 일이라 말하진 않겠습니다. 개인 과거사를 너무 장황하게 말한 거 아닌가 싶긴 한데 또다른 김성수가 나올 수도 있겠다 싶어 자세히 올렸습니다. 솔직히 김성수 씨는 제가 잘 모르니 그렇다 쳐도 그 옆에서 맞장구 치던 사람은 제 대학 동기인데다 뉴스공장에서 자주 만나 인사하던 친구인데 좀 서운하긴 합니다. 저라면 안그랬을 것 같습니다.암튼 김성수 씨는 저를 쥐새끼처럼 묘사했던데 제 생각에 제가 기회주의자는 아니었다고 믿습니다. 뭐 그렇다고 제가 문제를 삼진 않겠습니다. 지금의 분열과 갈등이 저 역시 안타깝고 분하고 허탈하니 말이죠. .

💬

댓글

0개

댓글을 작성하려면 회원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