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재주의, 빻주의 9. "후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와. 오늘도 한 차례 넘겼어. 이제 모든 수업 끝이야. 다행이야. 로버트는 차례대로 왁자지껄 떠들며 교실을 떠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다 제 책상 위에 올려진 숙제를 정리했어. 유명한 수학자 한 명을 골라 그의 생애와 업적을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는데.. 역시 제대로 된 보고서를 제출한 사람은 두 명 정도야. 그들 중 하나는 누가봐도 책에 있는 내용 그대로 따라 적었어. 쓰기 싫은 듯 엉망진창인 글씨가 정말 억지로 한 숙제 같았지. 아니면 저처럼 괴롭힘 당하는 다른 학생이 대신 적어줬을 수도 있고. 로버트는 종이를 넘겼어. 그리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버렸지. 가장 윗줄에 적힌 글렌 세러신이란 이름은 역시 기대를 배신하지 않아. 깔끔한 글씨에 걸맞는 완벽한 보고서였어. 현재 하버드를 목표하는 그는 12학년, 즉 졸업 학년으로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어. 글렌의 보고서를 집중해서 읽어내려 가는데 누군가가 책상을 똑똑 두드려.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10학년의 사이먼이야. 로버트는 순간적으로 긴장해버렸어. 왜냐하면 사이먼은 제이크의 친구란 말이야.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 데이비드. 무슨 일이니? B반 수업은 내일인데.." "아- 별건 아니고요. 뭐 하나만 써주시면 안 될까요?" 사이먼은 주머니에 오른손을 꽂은 채 껄렁거리며 물었어. 그의 왼손에 들린 편지지가 힘없이 팔랑거렸지. 오늘 하루 평화롭게 지나가나 생각한지 5분도 되지 않아 재앙이 나타났어. 로버트는 최대한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대충 무슨 짓을 벌어질지 예상이 되었지. 로버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당겼어. "미안해.. 수업을 준비해야해서.. 다음에 써줘도 될까?" "네에?" 로버트는 연신 사과하며 사이먼을 지나쳤지. 그러나 금방 손목이 붙잡혔어. 사이먼이 다가오고 로버트는 두려움에 푸른 눈이 빠르게 흔들렸어. 뒷걸음질 치느라 대충 끌어모은 숙제를 안은 팔이 교탁에 툭 닿았어. 사이먼은 웃지 않았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대신 로버트의 엉덩이를 덥썩 잡더니 비죽이며 웃어. "선생님, 써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대로 로버트의 엉덩이가 주물러져.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 끈적하고 불쾌한 손길이야. 저도 모르게 팔에 힘이 풀려 종이들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어. 로버트가 이러지 말라고 그를 밀어내도 오히려 더 악력이 강해져올 뿐이야. 사이먼은 편지지를 교탁 위에 툭 올려놓더니 아주 가볍게 로버트의 몸을 돌렸어. 교탁에 배가 꾸욱 눌려. 마른 등에는 사이먼의 탄탄한 가슴팍이 딱 달라붙었지. 덕분에 엉덩이에도 무언가가 닿았어. "윽..!" 교탁에 짓눌린 배가 아파. 엉덩이골 사이로 부비는 그의 윤곽에 수치심이 몰려왔어. 이미 제 양 손목은 저보다 키와 덩치가 큰 사이먼에게 붙잡혀 있었지. 귓가에 헉헉거리며 내뱉는 신음에 눈을 질끈 감았어. 사이먼은 로버트의 손목을 강제로 움직여 교탁에 굴러다니는 연필을 쥐게 만들었어. 제 품에서 물에 빠진 생쥐처럼 바들바들 떨며 어쩔 줄 몰라하는 로버트가 꽤 나쁘지는 않은지 앞섬을 엉덩이에 부비며 속삭였지. "하아...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러, 이러지.. 억!" 머리카락이 사납게 잡아당겨졌어. 두피가 당기는 통증을 깨닫기도 전에 억지로 고개가 젖혀졌다가 쿵-! 그대로 교탁에 얼굴이 묵직하게 쳐박혔어. 갑작스러운 고통에 로버트는 어안이 벙벙했지. 로버트의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쥔 사이먼의 손이 이번에는 로버트의 두피를 손끝으로 꾹꾹 눌러. "말 좀 잘 들어주세요." "허억.. 헉..." 코가 얼얼해. 뼈가 부러졌나 싶을 정도로 너무 아팠어. 코와 함께 부딪힌 눈썹뼈도 마찬가지야. 안경알은 이미 깨졌고 테는 휘었어. 고통에 반사적으로 눈물이 뚝 떨어졌어. 로버트의 손이 억지로 움직여져.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사이먼은 로버트를 잡은 손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글씨를 써내려가기 시작했지. 로버트는 교탁에 엎드린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머리가 어지러웠고 자꾸만 교탁에 눌리는 배가 아팠어. 제 엉덩이를 찌르는 그의 성기도 이제는 어쩔 수가 없었어. 그대로 눈을 반쯤 까뒤집은 채 입을 벌렸지. 정신이 차려지질 않아. 깨진 안경 덕에 시야도 흐렸어. 뒤에서 중얼중얼거리는 사이먼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지. 편지지가 눈물로 젖어가. 그러나 사이먼은 별 신경 쓰지 않는지 마지막 글자까지 써내려가더니 로버트의 왼손을 잡은 손을 풀어 제 바지 주머니를 뒤졌어. "이게 핵심이거든요." 사이먼은 엎드린 채 꼼짝 않는 로버트의 눈 앞에 무언가를 흔들어보였어. 로버트의 시선이 느리게 굴러갔지. 제대로 보이질 않아. 저에게 험핑까지 하는 그에 구역질이 올라왔어. 로버트의 얼굴이 우악스러운 손길로 잡혀져 미끈거리는 것이 입술에 게걸스럽게 칠해졌어. "아이린 선생님의 립스틱이에요. 제가 훔친 건 아니니 화는 내지 말아주세요." 립스틱을 본 적도 별로 없는 남학생이 예쁘게 입술에 칠해줄 수 있겠어? 마치 피칠갑을 한 듯 대충 립스틱을 입술에 문지르더니 그는 만족한 듯 그대로 다시 로버트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아 얼굴을 편지지에 억지로 부볐지. 입술이 눈물에 축축한 편지지에 닿았어. 교탁에 얼굴이 꾸욱 눌려 부어오른 코와 눈썹뼈도 닿아버렸어. 고통에 저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지. "아아-!" 그러나 사이먼은 로버트가 아파해도 별 관심이 없어. 그저 완성된 편지지를 보고 기뻐했어.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내기에서 이길 수 있겠어요." 그리고 제가 헤집고 있던 머리카락을 놓아주더니 미련없이 교실을 나가버렸지. 로버트는 그대로 교탁 앞에 털썩 주저 앉았어. 한 쪽 귀에 겨우 걸려있던 삐뚤어진 안경이 마룻바닥으로 떨어졌어. 로버트는 반사적으로 주륵주륵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했어. 아직도 제 엉덩이에 노골적으로 비비던 감각에 소름이 돋았어. 벌벌 떨리는 손으로 코를 만져보니 피는 나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부어올랐단 걸 알 수 있었지. 몇 분 내에 멍이 들고 말거야. 아니 이미 들었을 수도 있어. 손을 옮겨 눈썹뼈도 만져보니 찢어진 것 같기도 해. 손목을 내려다보니 벌건 손자국도 확실하게 나 있었어. 교탁에 짓눌렸던 배에는 이미 가로로 된 직선 자국도 남아 있을거야. 갑자기 휘몰아닥친 일에 로버트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어. 분명 오늘.. 괜찮았어. 평소보다 괴롭힘도 덜 받았고 글렌의 완벽한 보고서를 보고 기분도 좋았지.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10. 터덜터덜 지친 발걸음을 이끌고 겨우 교무실에 도착했어. 문을 여니 아직 퇴근을 하지 않은 선생님들이 남아 있었지. 몇몇 선생님은 로버트를 보고는 흠칫 놀라더니 곧바로 시선을 피했어. 로버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혹시 제 입에 아직 립스틱이 남아있을까 셔츠 소매로 입술을 벅벅 닦았어. 붉은 자국이 묻었어. 화장실 거울을 보고 입술이 떨어져라 물로 씻어냈는데도 남아있었나봐.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지. 로버트는 삐걱거리는 바닥만 바라본 채 제 자리로 걸어갔어. 슬쩍 옆자리를 보니 이미 게리 선생님은 퇴근하셨나봐. 자리가 비어있었어. 그편이 더 좋았어. 만약 게리가 있었더라면.. 굉장히 쪽팔렸을거야. 게리가 온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지만 여전히 그는 로버트에게 평범하게 대해주고 있었거든. 그 착한 마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몰랐지만 로버트는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았어. 왕따나 다름없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로버트는 손에 들고 있던 깨진 안경과 보고서를 책상에 올려두었어. 구겨지기도 했고 몇 개는 또 찢기기도 했지. 하나하나 넘겨 글렌의 보고서를 찾았어. 다행히 발자국도 남지 않고 깨끗했어. 하아- 작은 한숨이 터져나와. 의자에 앉으니 또 제 엉덩이를 부벼대던 불쾌한 찝찝함이 떠오르는 것 같아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져. "선생님." "흐익-! "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이상한 목소리가 튀어나왔어. 심장이 벌렁거려. 이 목소리는 분명 제이크야. 고개를 들 수 없었어. 그가 내기를 한 주범일텐데 만약 그가 제 얼굴을 본다면 또 어떻게 놀려댈지 벌써부터 무서웠어. 로버트가 한껏 어깨를 움츠리고 대답 않자 또 목소리가 들려와. "선생님." 이번에는 어깨까지 잡혀. 덕분에 몸이 파드득 떨려. 그러자 금방 손이 떨어졌지. "선생님, 저 글렌이에요." 11. "우리가.. 가진 건 엑스와 그 역수의 합이야..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 "둘을 그대로 제곱합니다." "으응.. 맞아." 어느새 교무실에는 둘만이 남았어. 로버트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공식을 하나하나 적어주었지. 글렌은 옆에서 묵묵히 설명을 들었고. 로버트는 당장이라도 그 춥고 낡아 빠진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돌아가면 교무실과는 차원이 다른 추위가 자신을 반길 걸 알면서도 말이야. 로버트는 최대한 제 멍이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돌렸어. 글렌은 별 관심 없는지 문제에 고정을 했지만서도.. 그래도 좀 학생에게 보여주기 그렇잖아. "너도 알다시피 그러면.. 양 끝에 우리가 원하는 항이 생겨. 가운데에는 이 두 항을 곱한 값이 남고.. 그 값은 간단해. 엑스와 역수를 곱하면 돼." "..." "그리고 처음에 주어진 값은 3이었으니까 그것 역시 제곱하면 되고.. 이제 양변에서 2만큼 빼면.." "..." "답은 7이야." "틀린 것 같습니다." "어?" 곧바로 정답에 반문하는 로버트는 적지않게 당황했어. 처음이었거든. 글렌이 제 답에 이의를 건 적은. 글렌은 안경 너머로 로버트가 연필로 써내려간 공식들과 문제를 번갈아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지. "선생님, 8을 3로 보셨네요." "어? 아.. 미안해. 안경을 쓰지 않아서.. 제대로 못 봤나봐." "괜찮습니다." 로버트는 습관처럼 안경다리를 매만지려다 허공에 떠도는 손에 곧바로 손을 내렸어. 괜히 민망해져 지우개로 공식을 지웠지. 그러다 제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 슬쩍 시선을 옮기니 글렌과 눈이 마주쳤어. 글렌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로버트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어. 로버트는 다시 시선을 책으로 옮겨 묵묵히 마지막 공식까지 지웠어. "다시 가르쳐 줄.." "선생님." "어..?" "시력이 어떻게 되세요?" 타닥타닥- 장작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려. 로버트는 대답할 수 없었어. 연필을 쥔 손이 책을 맴돌다 이내 다시 숫자를 써내려가. "4도랑 5도 정도 왔다 갔다 해." "나쁜 편이시네요." "응.. 뭐 그렇지..." 로버트의 대답을 듣자 글렌은 다시 책으로 고개를 돌렸어. 로버트는 이번에는 3이 아니라 8로 제대로 적었어. 다시 설명을 시작했지. 엑스가 어쩌구 제곱이 어쩌구. 참 어려운 문제들인데 역시 하버드 준비생은 다르긴 다른 것 같아. 물론 이곳에 있는 많은 학생들이 아이비 리그를 꿈꾸지. 당연해. 이곳은 미국의 최고 사립 학교이니까. 로버트는 이제는 스스로 문제를 푸는 글렌을 흘낏 보았어. 셔츠 단추도 끝까지 잠구고.. 넥타이도 아주 잘 매져있어. 자켓에는 주름 하나 없이.. 누구와는 다르게 정말 단정한 교복차림이야. "이 답이 맞나요?" 한참을 멍하니 글렌을 바라보다 그의 목소리에 정신이 차려져. 로버트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 글렌이 쓴 공식들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했지. 그리고 제가 생각한 답이 적혀 있는 것과 똑같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어. "응.. 맞아. 역시 잘하는구나." "..." 글렌은 대답하지 않았어. 대신 다른 문제를 풀려고 했지. 그러자 로버트가 그를 말렸어. "글렌, 혹시 내일 가르쳐줘도 될까..? 나도 이제 퇴근을 해야해서.." "아, 네. 그렇네요.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응.. 늦었는데 기숙사까지 조심히 가." "네, 선생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혼자 남은 교무실에 멍하니 앉아있었어. 따뜻해서 그런가 얼굴이 더욱 욱씬거려. 불필요한 감각들을 잊자. 머릿속에 되뇌어도.. 하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지. 12. 결국 안경없이 출근했어. 어쩔 수 없었어. 안경을 새로 사기에는 로버트에게 좀.. 부담됐거든. 지금 다 쓰러져가는 집 같지도 않은 곳에 살면서 새 안경을 맞출 돈은 없었어. 만약 가족에게 보내는 돈을 줄인다면 살 수야 있었겠지만. 게다가 시내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거리였어. 버스 정류장은 가까이 있었지만 겨울에는 해가 일찍 져. 퇴근하고 나면 이미 어두컴컴한데 좋지 않은 시력으로 잘못된 버스를 탔다간 그것도 그것대로 골치 아팠어. 그리고 로버트는 차가 없었지. 지금이 수요일이니 주말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지만. 그래도 매일같이 오가던 길이라 교무실까지는 무탈없이 도착했어. 그래도 굉장한 집중력을 소모해 아침부터 조금 지쳤지. "선생님 안경은요?" 자리에 앉자마자 옆자리에서 질문이 던져져. 로버트는 고개를 차마 돌리지 못했어. 푸르스름하게 올라온 제 멍을 들킬까봐. 안경이 있었다면 나름 가려졌을텐데. 완전히 민낯인 지금은.. 누가봐도 놀랄 정도로 멍이 크게 들었어. 아까 출근하면서 마주친 미스터 존이 얼마나 놀랐는지. 로버트보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을 정도라니까. "아.. 잃어버려서..요." "그렇군요?" 다행히 게리의 자리에선 로버트의 멍이 보이지 않았나봐. 그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더니 금방 관심을 잃었는지 다른 선생님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어. 파운데이션이라도 빌려 멍을 가리고 싶지만 로버트는 여자 선생님들 중 그 누구와도 말을 섞을 수 없었어. 다들 로버트를 예뻐라 했는데.. 이젠 아니지. 앨리스 부인에게 빌려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녀에게 파운데이션이 있을리가 없었어. 그런데 왜일까. 왜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걸까? 13. 수업이 시작하기 전 교실에서 오늘 나갈 진도를 확인했어. 200페이지까지 풀었으니까.. 오늘은 새로운 공식을 배우면 되겠다. 혼자 정리하며 만년필로 메모해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와. 10학년 B반의 수업이야. 그말인 즉슨 제이크가 있는 반이지. 게다가 어제 저에게 심한 짓을 한 데이비드도. 문이 열리고 학생들이 들어와. 로버트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어. 학생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어. 그냥 아프다는 핑계나 대고 쉴 걸.. 철판이라도 깔고 파운데이션을 빌릴걸. 무슨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멍이 든 얼굴을 뻔뻔하게 들고 다닐 수 있지..? 슬쩍 시선을 올려다보니 학생들은 아직 딱히 로버트에게 관심은 없어보였어. 손에 든 걸 보며 서로 낄낄 웃어. 로버트는 그 웃음이 싫었어. 분명 저를 향한 비웃음일게 뻔하잖아. 종이 치고 로버트는 깊은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래도 수업은 해야하잖아.. 힘없이 교탁 앞에 서니 누군가가 소리 쳐. "선생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얼굴에 큰 멍이 드셨어요!" "오늘 안경을 쓰지 않으셨네요?" 악의 없는 질문들일까. 아닐거야. 분명 알고서 묻는거야. 로버트는 억지로 웃지도 못했어. 정말 학생들 말대로.. 눈가와 콧대에 아주 큰 멍이 들었으니.. 그냥 고개만 꾸닥이고 책을 펼쳤지. 멍한 눈빛으로 문제를 읽으려 했어. 안경이 없어서 그런가.. 잘 읽히지도 않아. 눈을 가늘게 뜨고 봐야지만 겨우 읽혔어. "다들 201페이지 볼래..." 축처진 목소리에 스스로도 놀랐어. 역시나 학생들은 가볍게 로버트의 말을 무시했지. 다들 옹기종기 모여있어. 로버트는 그저 등을 돌려 칠판에 문제를 적었어. 하얀 분필가루가 토톡토독 떨어져. 책과 칠판을 번갈아가며 2개의 문제를 거의 다 썼을 때 누군가 제 옆에 섰어. "선생님." 누굴까 싶어 고개를 돌리니 사이먼이야. 로버트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어. 언제 교탁까지 온건지. 저를 내려다보는 사이먼에는 대단한 위압감이 풍겨왔어. 그의 짙은 밤색머리와 새파란 눈에 잡아먹힐 것만 같아. 학생들을 보니 ... 안경을 쓰지 않아서 좋은 점은 그들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겠지. 사이먼은 분필을 쥐고 있지 않는 로버트의 다른 손에 어떤 종이를 얹어주었어. 그리고 이렇게 말했지. "선생님의 편지에 모두가 감명 받았어요." "...뭐?" "그러니 제발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낭독해주시면 안 될까요?" 얼굴이 화르륵 불타올라. 그런 저질스러운 편지들을 모두가 돌려봤을거라 생각은 했지만.. 낭독이라니. 로버트는 곧바로 제이크를 찾았어. 이것도 제이크의 계략일 것이 분명해.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 금발의 학생은 여러명이고 넥타이도 제대로 매지 않은 학생들도 여러명이야. 로버트의 푸른 눈이 빠르게 움직였지. 찾을 수 없어. 없나? 없는 걸까? 오늘 결석인가? "선생님." "어..?" "읽어주세요." 사이먼은 손을 들어올려 박수를 치며 호응을 유도했고 그를 따라 학생들은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박수를 쳐댔어. 편지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 편지가 구겨지자 사이먼은 미간을 구겼지. 그리고 .. 짝-! "히익!" 엉덩이가 화끈거려. 고통에 화들짝 놀라 허리가 앞으로 숙여져. 그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이상한 목소리가 튀어나왔고 교탁에 몸을 기댄 채 눈만 끔뻑였어. 학생들의 시선이 교차해. 서로 방금 소리 들었냐며 신호를 주고 받았지. 짝-! 또 한 번 엉덩이가 내려쳐져. 이번에는 자동으로 무릎이 굽혀져. 쓰라림에 눈물이 고였어. 울면 안 되는데. 사이먼이 의기양양한 목소리 말해. "얼른 읽어주세요." 구겨진 편지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려. 로버트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열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어. "사...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안 들려요." 짝-! "흐읏-!" 결국 몸이 무너지고 말았어. 완전히 교탁에 기대버린 로버트는 아무리 제대로 일어서려해도 그럴 수 없었어.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사이먼은 손을 들어보였고 로버트는 또 맞을까 무서워 겁에 질린 목소리를 허겁지겁 내뱉었지. 억지로 쓰여진, 마치 초등학생들이 쓴 것처럼 삐뚤빼뚤한 글씨는 눈물자국에 번져있었어. "나.. 나는.. 거, 걸레.. 창..놈입니다.." "더 크게-" "제발.. 내 보.. ... ... 지..에.. 정.. ...액..을.. 가득.. 뿌려주세요...." "안 들려요-!" "저를.. 강간해주세요... 저를 육변기로.. 써주세요.... 제발.." 그 순간 뭐랄까. 모든 힘을 잃어버렸어. 뒤에 더 많은 글이 남아있었지만.. 더는 읽을 수 없었어. 사이먼은 더 읽으라며 재촉했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 로버트가 입을 다물자 학생들도 합세했어. 빨리 더 읽으라며 그를 조롱하기 시작했지. 사이먼의 손이 공중에 올라갔고 로버트의 엉덩이를 내려치기 전 낮은 목소리가 그를 제지해. "그만." 익숙한 목소리. 제이크야. 제이크가 있었나봐. 어디 있는거지? 로버트는 여전히 편지를 쳐다보고 있었지. 제이크는 볼펜을 손가락으로 현란하게 휙휙 돌리더니 대충 손을 까딱였어. 그러자 사이먼은 쳇 혀를 차며 로버트의 손에서 편지를 빼앗듯이 가져갔어. 로버트는 그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제가 올려놓은 책으로 시선을 옮겼어. 그리고... 무슨 생각이었을까 덮힌 책 위로 손을 올렸어. "... 201페이지 펴.." 몸을 천천히 일으키고 책을 펼쳤어. 교실은 아주 조용했어. 분필소리 밖에 들리지 않아. "이 문제는 별로 어렵지 않아.. 다들 알고 있는 공식을 사용하면 돼." "사이먼." 제이크가 로버트의 말을 가로막았어. 분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지. 제이크는 아주 느긋하면서도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어. "다음 내기할까?" 그의 말에 학생들은 새로운 재밋거리에 분주히 몸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어. 제이크는 여전히 칠판에 공식을 적으며 저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 로버트를 형형어린 녹빛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내 시선을 옮겼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보다 앞줄에 앉아있는 사이먼에게 느릿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더니 피식 웃었어. "어느 쪽이 더 오래 버티는지." 퍼억- 둔탁한 소리가 교실에 울려퍼져. 그 소리에 놀란 로버트가 곧바로 뒤돌아보았지만 이미 늦었어. 학생들은 어느새 바닥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두 사람을 가운데에 두고 둥글게 둘러서 있었어. 누구 하나 말리려 하지 않아. 그저 숨을 죽인 채 벌어지는 싸움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지. 로버트가 황급히 두사람을 향해 뛰어갔어. 어느새 철도 없이 학생들은 싸워라-! 싸워라-! 기합을 넣었어. 누구를 응원하는, 그런 것도 없어. 그냥 이 싸움 자체가 재밌다는 듯이. 제이크는 사이먼의 몸 위에 올라탄 채 얼굴에 무자비한 주먹을 꽂고 있었어. 분명 사이먼이 제이크보다 꽤 클텐데 아무런 의미가 없었어. 몸을 일으키기는 커녕 손 한번 제대로 뻗지 못했지. 사이먼은 코피를 흘리며 필사적으로 몸을 뒤틀었어. 팔을 들어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지. 제이크는 그런 사이먼 내려다보며 웃었어. 제 아래에서 저항도 하지 못하는 그를 보니 웃긴가봐. 제이크는 헉헉 숨을 고르쉬더니 그리고 다시 주먹을 내리꽂았어. 14. "사이먼의 부모님께는 전화 드렸어요. 지금 당장 비행기 타고 병원으로 가신다고 하시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치료 경과보고 연락드릴게요. 앤드류 선생님? 앰뷸런스에 올라타시면 됩니다." 로버트는 앰뷸런스를 쳐다보았어. 결국 사이먼은 의식을 잃은 채 들것에 실려있었지. 로버트 대신 앤드류가 함께 병원에 가기로 했어. 옳은 판단이야. 학생들은 창문 너머로 상황을 구경했지. 교장 선생님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혀를 쯧쯧 찼어.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우리 학교에서 폭행 사건이라니!" "죄송합니다..." "로버트 선생, 이따가 면담 좀 합시다." "네..." "퇴근하고 곧장 내 사무실로 오세요!" 교장 선생님은 권위있는 척 말했지만 사실 별 관심은 없었을거야. 제이크 세러신이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있다는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뛰어왔지만 피해자가 아니란 사실에 금방 흥미가 식은게 티가 났거든. 로버트는 칼바람에 팔을 쓸었어. 얇은 코트로는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 앰뷸런스가 떠나고 로버트도 슬슬 다시 돌아가려고 했어. 제이크가 면담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이유라도 들어야 했어. 로버트가 자리를 떠나려하자 누군가가 그를 가로 막아. "로버트 선생님." "게리 선생님." 게리는 안경을 고쳐쓰며 저 멀리 떠나가는 앰뷸런스를 확인하더니 어깨를 으쓱였어. 로버트는 고개를 푹 숙였지. 이렇게 마주보면 멍든 제 얼굴을 들킬테니까. "이야기 들었어요. 선생님 담당 학생들이죠?" "네... 맞아요." "골치 아프군요." "네.." "손 좀 펼쳐보시겠어요?" "네?" 게리도 딱히 사건에 흥미는 없나봐. 별로 캐묻지 않아. 로버트는 게리의 말에 엉겁결에 손등을 위로 손을 펼쳤어. 그러자 게리는 하하 호쾌하게 웃고는 그게 아니라며 직접 손을 잡아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반대로 돌려주었지. "선물이에요." 선물이라니.. 별 생각없이 제 손에 얹어진 물건을 보았어. 파운데이션이야. 로버트의 눈이 커졌어. 홱 고개를 드니 눈이 마주쳤어. "얼굴에 큰 멍이 있길래. 연고는 잘 바르고 계시죠? 신경 쓰일 것 같아서... 마가렛 선생님한테 빌렸어요. 여자친구가 요즘 화장에 관심 있어해서 하루만 빌린다고 거짓말 쳤으니까 몰래 쓰셔야 합니다? 너무 엉성한 거짓말이라 이미 들켰을지도 모르겠군요." 로버트는 그저 눈만 깜빡였어. 알고 있었나봐. 신경 쓰였었나봐. 게리는 아무 말도 하지않고 자기를 빤히 바라보는 로버트에 멋쩍은지 머리를 긁으며 변명했어. "제가 아는 척 하면 민망해 하실까봐.. 어디 넘어지신거죠? 모른 척 해드릴테니까 쓰고 다니세요." "..."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학생들이 기다려서요." "..." "...넵." 게리는 별 반응없는 로버트에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를 뜨려 했지만 로버트가 그를 붙잡았지. "선생님." "네?" "감사해요.. 내일 돌려드릴게요.." "아- 아뇨. 그냥 쓰세요. 제가 마가렛 선생님한테 잃어버렸다 하겠습니다. 주말에 새거 사오면 되니." 로버트는 몇 가지 말을 덧붙이려 했지만 관두었어. 게리는 그럼 이만 들어가보겠다고 인사했지. 로버트는 게리의 멀어지는 뒷모습과 제 손에 들린 파운데이션을 번갈아보면서 간절히 빌었지. 더는 친절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15. 면담실 앞, 로버트는 작게 심호흡 했어. 제이크가 기다리고 있을거야. 침착해야 해. 침착하고 또 침착하자. 그가 무슨 요구를 해도 이번만은 들어줄 수 없어.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삐딱하게 앉아있는 제이크가 눈에 들어왔지. 그와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요동쳐. 시선을 내려 팔짱을 끼고 있는 제이크의 손을 보자 꽤 다쳐있었지. 로버트는 작게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보았어. 분명 작은 구급상자가 있을텐데. "선생님." "...응." "저 다쳤어요." "알아..." "약 발라주세요." "... 지금 찾고 있어." 잡동사니가 가득 쌓인 목재 선반에서 먼지가 쌓인 손만한 구급상자를 찾았어. 로버트는 의자를 끌고 와 제이크 앞에 앉았지. 의자에 엉덩이가 닿자 순간적으로 로버트의 미간이 찌푸려졌어. 그러나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제이크에게 손을 펼쳐보라는 듯이 제 손을 펼쳤어. 그러자 제이크가 로버트를 따라해. 로버트는 구급상자를 열어 연고를 면봉에 바르더니 눈치를 한번 쓱 보고는 조심스럽게 제이크의 손을 잡았어. 제이크는 피하지 않았지. "따가우면 이야기 해." "말한다고 아픈게 달라지나요?" "그건 아니지만... 살살 바를게." "아파요." 아직 면봉이 닿지도 않았는데... 로버트는 입을 꾹 다물고 제이크를 슬쩍 올려다보았어. 제이크는 별 다른 표정을 짓지는 않았어. 로버트가 허리까지 굽혀가며 연고를 발라주자 그제야 입꼬리를 끌어올렸지. "제이크." "네." "아무리 그래도.. 친구를 때리면 어떡해." "그냥 평범한 싸움이에요. 선생님은 학창 시절 때 주먹다짐 안하셨어요?" "난 그런거 안했어.." "왜요?" "... 그냥 안했어." 로버트는 제이크의 상처난 손뼈에 마저 연고를 전부 바르고는 잡았던 손을 내려놓아주었어. "... 앞으로는 싸우지마." "노력 해볼게요." "..응." "선생님." "..." "편지를 다시 쓰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입술을 꾹 깨물어져. 로버트는 대답하지 않았어. 말리지 않을거야. 그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지 않을거야. 로버트는 구급상자를 정리하며 화제를 돌렸어. "아직 어떤 징계를 내릴지 정해지진 않았지만 선생님이 최대한 가벼운 처벌을 해달라고 부탁 해볼게." "선생님, 제 질문에 대답해주세요." "..." "사랑하는 제자의 질문이에요." 사랑하는 제자. 로버트의 어깨가 눈에 띄게 크게 움찔거려. 제이크는 웃음을 겨우 참고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로버트를 빤히 내려다보더니 제 차가운 손으로 그의 말랑한 볼을 감싸올렸어. 눈이 마주쳐. 역시 울려고 하네. 제이크는 아프지 않게 로버트의 멍든 콧대와 눈가를 엄지로 살살 문지르더니 혀를 쯧 찼지. "개새끼가... 예쁜 얼굴에 멍이나 들게 만들고." "..." "또 어디 맞은 곳 있어요?" "..." "안경은 또 어디 갔어요?" "... 잃어..버렸어." "깨졌구나." "..." "손목에도 멍 들었네." 제이크의 시선이 제 손목으로 향하자 로버트는 급하게 소매로 가렸어. 제이크는 보들보들한 로버트의 뺨을 몇차례 더 매만지더니 손을 떼어냈지. 볼이 차가워졌어. 전부터 느꼈는데 제이크의 손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차가웠어. "일어나요." "...왜?" "엉덩이도 맞았잖아요. 멍 들었는지 확인해보려고요." "뭐? 괜찮아!" "지금 제 말에 토를 다는 건가요?" 로버트는 제 벨트를 움켜쥔 제이크의 손에 경악하며 다급히 그의 손을 잡으려다 멈추었어. 연고를 다 발라뒀는데 만질 수도 없고 손목을 잡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지. 제이크는 로버트가 반항하지 못하도록 그의 등을 과격하게 눌렀어. 로버트의 몸이 그대로 책상 위로 무너져. 일어나려 해도 힘에 밀렸어. 바지와 속옷이 한번에 벗겨졌어. 차가운 온기에 닭살이 돋았지. 제이크는 벌겋게 올라온 로버트의 엉덩이를 내려다보더니 손바닥으로 살살 쓸기 시작했어. 로버트의 몸이 바들바들 떨려. "멍이 들 것 같지는 않네요." "으읏..으..." "그런데.. 저는 멍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무슨, 로버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짜악-! 손이 내리쳐져. 그대로 로버트의 다리가 풀려버렸어. 안그래도 아픈 곳을 또 맞으니 정말 눈 앞에 별이 빙빙 돌 정도로 너무 아팠어. 사이먼보다 더 아픈 것 같아. 로버트의 몸이 무너져내리자 제이크는 제대로 서라며 낮은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지. "어허- 제대로 서야죠." "흐윽.. 윽.." "제가 아닌 사람이 만든 멍을 들고 나타나질 않나.. 전 정말 기분이 나쁘네요." "윽.. 제이크.. 아파..." "오늘은 가볍게 열 대로 넘어가 드릴게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봐드리지 않을거에요." "하지, 하지마..." "자, 따라하세요. 하나." "제발.." "하나." "...흐윽.. 하나..." 짝-! 커다란 손이 엉덩이를 내리쳐. 그럼 또 로버트의 무릎이 저절로 굽혀지지. 속옷은 아슬아슬하게 걸려있고 바지는 이미 바닥에 떨어졌어. 로버트가 책상에서 일어나려고 해도 제이크가 등을 누르고 있는 탓도 있지만 팔에 힘도 들어가지 않아. 분명 공기는 차가운데 엉덩이는 활활 불타오르는 것만 같아. "둘." "아악-! .. 두, 둘..." 짝-! 로버트는 제 팔에 얼굴을 묻었어. 새어나오는 눈물에 셔츠가 축축히 젖어들어갔지. 제이크는 로버트의 비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로버트의 넥타이를 그의 입에 쑤셔넣었어. 억지로 비집고 들어오는 넥타이를 이로 꽉 물었어. "쉿.. 조용히 해요." "..." "아, 이러면 숫자를 셀 수 없나?" 피식 제이크이 비릿한 입꼬리에서 웃음이 새어나와. 로버트는 그의 웃음소리에 더욱 비참해졌지. 제이크는 정말 로버트의 엉덩이를 열 대 때렸어. 이정도면 완벽하게 멍이 들거라며 만족하는 듯 보였어. 그는 다시 의자에 털썩 앉았어. 로버트는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주섬주섬 속옷과 바지를 주워 입었지. 수치스러워. 아마 복도에 전부 들렸을거야. 아무리 이곳을 잘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분명 누군가는 들었을거야. 로버트가 원망어린 눈으로 제이크를 바라보자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이며 말해. "왜 그렇게 저를 쳐다보시나요?" "..." "저는 선생님이 사랑하는 제자인데?" 16. "그러니까.. 정말 이젠 싸우면 안 돼.." "노력한다니까요? 그러니 선생님도 노력해주세요." "난 네가.. ... 알겠어." 면담실 문이 열렸어. 로버트는 코트 소매로 입가를 닦았지.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비릿한 입안을 헹궈야겠어.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늘 입가는 튿어지는 것 같아. 목구멍도 칼칼해. 음모에 쓸린 얼굴도 따가워. 잡아당겨졌던 머리도 아프고.. 오른쪽 입안은 집중적으로 찔러대느라 헌 것 같아. 혀끝에 감도는 정액맛이 불쾌했지. 설마 얼굴에 정액이 묻진 않았겠지? 걱정을 하며 고개를 든 순간 몸이 굳어버렸어. "선생님." 글렌이야. 글렌이 면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정확히 말하면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지만.. 아무튼.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에 소스라치게 놀란 로버트는 황급히 미끌거리는 입을 벅벅 닦으며 어색하게 웃었어.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던거지? "그.. 글렌, 무슨 일이니." "드릴 게 있어서요." 로버트를 뒤따라 나오던 제이크는 두 사람을 기다리고 아니, 로버트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로 보이는 글렌에 곧바로 표정을 굳혔어. 뭐야? 그는 로버트와 글렌을 번갈아 보며 입안에서 혀를 굴렸지.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대체 왜 글렌 세러신이 여기에 있는거지? 글렌은 제이크에게 관심도 없었어. 정말 말그대로 쳐다도 보지 않았어. 그는 제 자켓 주머니에 있던 작은 상자를 꺼내더니 로버트에게 건넸지. "안경입니다." "어...?" "저랑 시력이 똑같으셔서요. 제 예비 안경이니 편하게 쓰세요. 다음에 돌려주셔도 되고 계속 쓰셔도 됩니다." "난 괜찮은데.." "수업에 지장이 가잖아요. 어젯밤에 숫자를 제대로 못 읽으셨지 않나요?" "어어... 고마워.." 어젯밤? 제이크는 한쪽 눈썹을 들썩였어. 어젯밤에 숫자를 제대로 못 읽었다? 입꼬리가 파르르 올라가. 로버트는 제이크의 속도 모르고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지. 그리고 제 코트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들어가지 않아. 뭔가 싶어 주머니에 든 물건을 꺼내니 파운데이션이야. "이건 뭔가요?" 글렌은 파운데이션과 로버트를 번갈아보더니 물었어. 제이크도 어느새 로버트의 옆에 섰지. "파운데이션.. 이야. 알지? 여자들이 피부화장 할 때 사용하는 화장품. 아까 게리 선생님께서 주셨거든." "웩- 남자가 무슨 화장을. 그 선생님 화장해요? 게이도 아니고..." "그게 아니라..! ... 그런게 있어." 글렌은 희미하게 붉어지는 로버트의 얼굴을 알아차렸어. 제이크도 마찬가지야. 로버트는 어색하게 웃었어. 굳이 학생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줄 필요는 없잖아. "수업 가야지. 글렌 너도." "...네." "제이크 너도 수업 들어야지." "됐어요." "... 으응..." 제이크는 바로 꼬리를 내리는 로버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괜한 심술이 들었지. 그래서 이런 말을 해버렸나봐. "얼굴에 정액 다 묻었어요. 형 앞에서 쪽팔리지도 않아요?"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로버트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라. 그제야 글렌은 제이크를 쳐다보았지. 제이크는 모른척 로버트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을 이었어. "학교에서 학생 좆이나 빨다니 참 부끄럽지.." 이미 수치심에 울상인 로버트가 대답도 없이 도망가려하자 제이크가 아닌 글렌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어. 로버트는 입술을 말아 깨물며 눈물이 그렁그렁 달린 눈으로 글렌을 바라보았지. 제이크는 글렌을 쳐다보며 이를 꽉 깨물었어. 마음에 들지 않아. 대체 언제부터 둘이 알고 지낸건지도 모르겠고. 속이 마구 뒤틀려. 제이크가 그를 밀어내기도 전에 글렌의 손이 움직여. 글렌은 검지를 들어 로버트의 입꼬리 끝에 묻은 액을 닦아 그의 작은 입에 쏙 물려주며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어. "이제는 티 안나요." 행맨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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