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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에컴8 지극히 주관적인 스토리 리뷰 - 혼을 담은 구라, 고스트 격추왕

※ 주의 : 두서없이 주절거리는 개씹뇌피셜입니다 진짜 존나 두서없음 ㅈㅅ https://www.youtube.com/watch?v=FEUZwCiHPTw https://youtu.be/FEUZwCiHPTw?list=RDFEUZwCiHPTw 에이스 컴뱃 8(이하 AC8)의 스토리는 이미 예상하고 있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늘 먹던 그 맛이다. 적국의 기습으로 전쟁은 불리하게 시작되고, 적의 압도적인 전력과 슈퍼웨폰들이 앞을 가로막으며, 그 모든 것을 뒤집는 에이스가 등장한다. 시리즈를 즐겨왔다면 익숙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이것을 감점요소로 삼을 생각은 없다. 불가능해 보이는 전장에 출격해 전쟁을 끝내는 것은 에이스 컴뱃이 플레이어에게 해온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초반부터 토니트루스의 창에 얻어맞은 마당에 캠페인 내내 비현실적인 슈퍼웨폰들이 플레이어를 기다리리라는 예상은 어찌보면 장르 계약에 서명한 것에 가깝다. 이제와서 이런 요소들을 문제 삼기에는 우리 모두 그동안 너무 많은 거대 레일건을 부쉈다.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그 익숙한 이야기를 성립시키는 방식이었다. AC8은 정보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미 패배한 국가가 저항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드러낸다. 그렇게 마련된 세계에 시브의 날개라는 영웅이 등장한다. 시브의 날개라는 설정 자체는 솔직히 진부한게 맞다. 나라가 절망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이름 없는 수호자는 이미 수없이 봐온 클리셰고, 이런 영웅이 사실 실체가 없고 주인공은 그 타이틀을 어쩔 수 없이 이어받아 진짜 영웅이 된다는 것도 수없이 봐온 뻔한 '진짜가 된 가짜' 클리셰에 해당되니까. 하지만 작중 인물들 역시 이를 알고 있고,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는 이유로 이 클리셰를 의도적으로 생산한다는 데서 재미가 생긴다. 항공전력이 거의 궤멸하고 조종사와 기체가 모두 부족해진 FCU에 시브의 날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여야 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끝을 소토아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게 두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 하술할 DD (루카스 디에즈 도니판) 엔소 오더의 DD가 기획한 이 상징은 SNS를 통해 유통된다. 그는 출격 직전 격납고 사진의 기체번호를 바꾸고 항공사진의 전투기 수를 편집해 실제보다 많은 전투기가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선전과 기만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 연출이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선전의 매체와 정보의 소비 방식까지 전쟁의 일부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사진이 올라오면 누군가는 기체번호를 확인하고, 다른 사진과 대조하고, 남아 있는 전력의 규모를 추정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분석은 다시 원본 사진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전달된다. 공개된 정보를 수집하고 재가공하는 사람들이 선전의 유통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만이 소토아 군사정보부까지 완벽하게 속였다고 볼 수는 없다. 별도의 정찰 수단을 가진 군 당국의 평가와 점령지 주민, 일선 병사, 해외 여론이 받아들이는 전쟁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FCU의 전투기가 계속 출격하고 있으며 이 국가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유지할 수 있다면 저항의 조건도 달라진다. 이 프로파간다로 군사력 자체가 늘어나지는 않지만, 잔존 군사력이 행동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은 넓어진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민간의 지지와 지원을 더 많이 기대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AC8에서 흥미로운 질문은 시브의 날개가 누구인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군사적으로 거의 패배한 국가가 정보 공간에서는 얼마나 오래 패배하지 않은 국가로 존재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렇게 유지된 믿음은 실제 전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초대 시브의 날개인 장 코프의 실체를 플레이어에게 숨김없이 바로 보여주는 것도 이 질문과 잘 맞는다. 우리는 전설의 정체를 추적하기에 앞서, 그 전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게 된다. AC7을 무인기와 AI, 네트워크가 전장을 바꾸는 이야기, 즉 2010년대의 상상력으로 읽는다면, AC8은 정보의 유통이 전쟁을 인식하는 방식까지 바꾸는 이야기, 즉 2020년대의 상상력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작중의 시간도 마침 10년이 흘렀다. 이 정보전은 동시에 FCU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브의 날개가 대중에게 저항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동안, 그 이름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이미 많은 것을 소진한 상태다. AC8은 패배한 쪽의 투혼을 보여주면서도 그것만으로 현실을 아름답게 포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낭만을 한꺼풀 벗겨낸 것에 가깝다. 타샤 세베르스카야는 그 현실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유크토바니아에서 건너온 타샤는 군인조차 아닌 민간 곡예비행단의 조종사다. 호넷으로 스턴트 비행을 할 수는 있어도 전투기의 무장을 조작하고 전투를 수행하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처음에는 극단적인 회피기동으로 적의 시선을 끄는 정도의 역할을 맡는다. 타샤가 강제로 동원되었다고 단정할 이유는 없다. 항모 인듀어런스의 승조원들과 조커 편대를 자신의 사람들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스스로 싸우기로 했다고 읽는 편이 자연스럽다. 우리는 이런 자발성이 FCU가 처한 상황의 비참함을 부각하는 장치가 된다는 아이러니에 주목해야 한다. 제대로 된 훈련과 준비를 거칠 여유 없이 민간 조종사까지 전투에 투입해야 할 만큼 사람이 부족한 것이다 AC7의 스페어 편대 역시 비참함을 보여주는 소재이기는 했으나, 적어도 이들은 형벌부대이고, 이들과 조커 편대의 비교는 오히려 스페어 편대를 굴리던 오시아 쪽이 그나마 행정역량이 살아있는 편이었고 외국 민간인의 자원을 거절하지 못하는 쪽이 진짜 마비된 상태라는 점을 부각한다. 시브의 날개 역시 마찬가지다. FCU에는 죽은 에이스를 죽은 사람으로 남겨둘 여유가 없다. 코프가 죽으면 다른 사람이 그의 이름을 받아야 하고, 그 이름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계속 날아야 한다. 정체성을 포함한 모든 것이 저항을 지속하기 위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사진 속 기체번호를 조작하는 일은 이런 절박함의 연장선에 있다. 조종사가 부족하면 민간 조종사에게 전투를 맡기고, 상징을 잃으면 다른 사람에게 죽은 이의 이름을 맡기며, 기체가 부족하면 사진 속 전력이라도 늘린다.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을 바치는 언더독의 투혼이다. 그러나 이는 가까이서 보면 정상적인 전쟁 수행에 필요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그렇다고 이런 수단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FCU의 저항이 부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침략당한 국가가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는 명분은 유지된다. 다만 그 명분이 저항을 지속하는 모든 수단과 그 비용까지 아름답게 만들지는 않는다. 렉스가 실제 영웅이 되더라도 사진 속에서 번호를 바꿔 달아 조작한 수십 대의 전투기가 실존하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AC8이 벗겨내는 것은 약자의 정당성이 아니라 약자의 전쟁을 둘러싼 환상이다. 개인의 선택은 숭고할 수 있지만, 그 선택에 기대어 가까스로 버티는 전쟁의 현실까지 숭고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구분이 AC7에서 불편하게 느꼈던 '강제된 양비론'의 인상을 피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진영의 절박함과 거친 수단을 드러낸다고 해서 침략자와 피침략자의 책임을 같은 자리에 놓을 필요는 없으니까. 엔소 오더를 다루는 방식도 이 구분을 흐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양쪽 국가를 오가며 전쟁을 조종하는 익숙한 흑막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작중에서 드러나는 조직의 형태는 하나의 의지로 움직이는 중앙집권적 집단과 거리가 있다. 세포조직이 다르면 서로의 정체조차 모르며, 같은 전쟁을 두고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린다. 엔소 오더의 일원인 DD는 주인공을 끝까지 돕고, 나중에는 조직에서 배제된 뒤 사비를 털어 PMC를 고용해 조커 편대를 돕기까지 한다. 반면 소토아에 붙은 엔소 오더의 인원들은 전쟁의 지속을 통해 중앙 유지아에서 국경의 기능을 무력화하려 한다. 같은 간판을 공유한다고 해서 이 행동들이 모두 하나의 계획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조직의 이름을 안다고 그 구성원들의 목적까지 알게 되지는 않는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엔소 오더가 전쟁을 기획하기는커녕 예측하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미 시작된 전쟁에 개입하고 각자의 목적을 위해 이용한다. 그 과정에서 전쟁을 악화시킨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전쟁 전체의 원인을 이들에게 돌릴 수는 없다. 배후 세력의 정체가 드러나도 소토아의 침략이 그저 누군가에게 속은 결과로 정리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엔소 오더는 시리즈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흑막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다. 이들을 찾아낸다고 전쟁의 원인이 설명되지도 않고, 이들의 개입을 걷어낸다고 당사자들의 책임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동시에 시브의 날개가 엔소 오더 소속 인물의 기획에서 출발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이름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행동을 위선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주인공 렉스의 이야기는 바로 그 간극에서 시작한다. 그의 출발점에는 이미 완성된 이름이 있다. 대중이 믿는 시브의 날개와 그 이름에 걸어놓은 기대는 주인공보다 먼저 존재한다. 코프의 뒤를 이은 렉스는 그 기대 속에 들어가고, 자신보다 먼저 만들어진 서사를 감당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성장은 미숙한 조종사가 숙련되는 과정이라기보다, 한 인간이 자신에게 씌워진 이름의 의미를 채워가는 과정이다. 전임자에게 요구되었던 일이 우선 살아 돌아오는 것이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에게 요구된 생존은 정보전 임무였다. 다음 날에도 시브의 날개가 존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플레이어가 조종간을 잡은 뒤부터는 소토아의 에이스들이 하나씩 격추되고, 그 이름은 실제로 부정할 수 없는 전력이 된다. 우리에게 이런 에이스가 있다고 쌩구라를 까던 FCU가 정말로 그런 에이스를 갖게 된 것이다. * 전임자도 실력 좋지 않음? >> 그양반 기동은 잘하는데 격추수가 1이라 언럭키 타샤임 에이스 컴뱃 특유의 비상식적인 전과가 여기서는 거짓이었던 선전을 현실로 만드는 기능까지 얻는다. 그러나 렉스를 진짜 영웅으로 만든 것은 격추 수만이 아니다. 그가 그 힘으로 무엇을 선택했는지가 렉스를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렉스는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도 위기에 처한 퀸 편대를 구하러 간다. 구출한 뒤 남은 임무도 수행하겠다고 AWACS를 설득하고, 적 에이스에게 쫓기던 퀸 편대장을 구한다. 그의 역량은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이 된다. 렉스는 그 선택으로 늘어나는 위험과 부담까지 자신이 떠안는다. 정찰 중 마주친 저항군을 돕다가 추락하는 에피소드는 그 선택의 대가를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람을 살리려는 행동이 당장의 전술적 성공으로 보상받지 않는다. 그는 실제로 추락하고, 지상에서 적국의 두 에이스와 대면한다. 이후 탈출 과정에서 소토아에 붙은 전 아군 에이스를 설득한 일이 최종전 합류의 기반이 되지만, 처음 저항군을 도울 때부터 그 결과를 계산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렉스가 누군가를 위해 감수한 위험이 나중에는 다른 누군가가 그와 함께 싸울 이유가 된다. 그는 압도적인 전과에서 오는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끌어모으지 않는다. 누구를 살리려고 했는지, 무엇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는지가 관계를 바꾼다. 그런 의미에서 격추 수는 절망적인 전황 속에서도 사람을 살리는 선택을 수행한 결과 따라온 보너스처럼 느껴진다. 군사적으로는 그 전과가 누적되며 전황을 뒤집지만, 렉스를 영웅이라고 부르게 만드는 감정의 순서에서는 선택이 먼저다. 뛰어난 전투 능력은 시브의 날개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었고, 그가 구한 사람들은 그 이름을 믿을 이유가 된다. 후반부에 적국인 소토아 국민 일부까지 시브의 날개를 지지하게 되는 전개도 여기에서 의미를 얻는다. FCU가 처음 필요로 했던 것은 프로파간다였다. 그런데 렉스의 행동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 이름에서 의지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한다. 그때부터 시브의 날개라는 이름은 처음 그것을 기획한 사람들이 그 의미를 독점할 수 없게 된다. 프로파간다라는 출발점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출발점이 렉스의 선택까지 결정할 수는 없다. DD가 이름과 이미지를 마련했다면, 렉스는 그 이름을 믿어도 되는 이유를 자신의 행동으로 만들어낸다. 결국 가짜 아니냐는 평가와 그래도 진짜라는 평가는 그렇게 공존하게 된다. 렉스에게서는 역대 주인공들의 모습도 겹쳐 보인다. 압도적 위상에서는 모비우스가, 외부에서 들어와 적국의 에이스들을 쓰러뜨리는 모습에서는 사이퍼가, 낙인을 짊어지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모습에서는 트리거가, 패배한 국가의 반격을 이끄는 역할에서는 탈리스만이 떠오른다. 개인의 이름보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전설을 짊어진다는 점에서는 라즈그리즈의 유령들과도 비슷해 보인다. 렉스는 그런 계보를 이어받으면서, 이미 존재하는 전설에 자신의 선택으로 응답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안는다. 주인공을 이렇게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만큼 라이벌인 섀도우-22에게는 아쉬움이 남았다. 기리시 토프락과 럭스 루나에가 전투에서 주는 압박은 분명하다. 그러나 강한 적과 싸운다는 긴장이, 그 인물과 싸워야 한다는 서사적 긴장으로 충분히 이어지지는 않았다. 황색 13번에게는 점령군의 에이스라는 위치와 그가 속한 공동체가 있었고, 그 공동체가 무너져가는 과정이 마지막 전투에 무게를 더했다. 픽시와의 결투에는 함께 전쟁을 겪었던 동료가 기존 질서 자체를 부정하게 되었다는 갈등이 있다 미하이에게도 하늘에 남고 싶은 욕망이 인간 에이스의 자리를 위협하는 기술에 기여한다는 아이러니가 있었다. 이들은 주인공 앞을 가로막으면서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마지막 전투가 무엇을 뜻하는지 되묻게 한다. 섀도우-22는 상대적으로 소토아에도 뛰어난 에이스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역할에 머무는 인상이 강했다. 렉스에게 격추당함으로써 전설을 키워주기는 하지만, 렉스의 선택이나 정당성을 돌아보게 만드는 상대라는 느낌은 약했다.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AC8이 거짓으로 만들어진 영웅이 실제 영웅이 되어가는 이야기라면, 소토아에서 이미 전공과 신뢰를 쌓은 국민적 영웅을 상대역으로 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기 나라에서는 진짜 영웅인 사람이 침략전쟁 속에서 그 지위를 잃어가고, 가짜 이름으로 시작한 렉스는 적국 사람들에게까지 인정받게 되는 구도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아쉽다. 다만 소토아에 그런 영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카밀 튜이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문제는 플레이어를 직접 압박하는 조종사와 상대 진영의 역사와 인간적 무게를 짊어지는 인물이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튜이의 서사가 흥미롭다는 사실과 별개로, 그 무게가 섀도우-22와의 공중전까지 온전히 전달되지는 않았다. 튜이는 유능함과 인간적인 면모를 갖췄으면서도 전쟁의 가해자라는 책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우유를 건넨 소녀에게 발전기를 선물하고 얼굴의 멍을 살피며 동정심을 보이고, 눈앞의 상대가 자신들이 쫓는 시브의 날개임을 알아보면서도 보내주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적을 유리한 전장으로 유인하고 에이스들을 동원해 주인공 부대를 여러 차례 위기에 몰아넣는 유능함 역시 보여준다. 부하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따르는 이유를 납득시킬 만한 지휘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튜이가 섀도우-22의 역할까지 함께 맡았다면 아쉬움이 해결되었을까? 전투의 상대와 서사의 상대가 일치했다면 감정적인 밀도는 높아졌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으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내가 기대한 라이벌상이 여전히 과거 에이스 컴뱃의 기사문학적인 구도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리즈는 에이스 파일럿을 기사처럼 묘사해왔다. 편대의 엠블럼은 문장처럼 기능하고, 에이스에게는 별칭이 붙으며, 거대한 전쟁 속에서도 이름 있는 상대와의 결투는 특별한 무게를 얻는다. 렉스에게 동등한 적수를 기대하는 감상도 그 전통에서 나온다. 뛰어난 에이스가 나타났으니 그와 맞설 또 다른 기사가 있어야 한다는 기대다. 황색 13번이나 래리 폴크처럼 말이다. 그런데 AC8은 영웅의 존재를 성립시키는 조건 자체에 관심을 둔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과 사람들이 그를 희망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그 행동이 알려지고, 해석되고, 공동체의 기대와 연결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렉스에게는 바로 그 과정이 서사의 중심으로 주어진다. 정보의 확산은 신화를 해체할 수도 있지만 훨씬 빠르게 키울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시브의 날개 자체가 그 사례다. AC8이 보여주는 것은 신화의 소멸보다 신화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과정의 가시화에 가깝다. 전설의 안쪽에서 이름을 만들고 사진을 편집하는 사람들까지 보이게 된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렉스와 섀도우-22의 비대칭에도 해석할 여지가 생긴다. 한쪽에는 강한 조종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강한 조종사의 행동을 공동체의 희망으로 연결하는 이야기가 있다. 모든 뛰어난 에이스에게 자동으로 같은 무게의 전설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섀도우-22에게 대칭적인 영웅 서사가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작법의 실패라고 볼 필요는 없다. 다만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주인공의 라이벌로서 느낀 아쉬움을 모두 해소하지는 않는다. 작품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는 것과 그 인물에게 충분히 마음이 움직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내게 섀도우-22는 끝내 강한 적으로는 남았지만, 오래 기억할 만한 적수로까지 남지는 못했다. 아마 다음 작품 나올때쯤 이름을 까먹을지도 모르겠다. 그 아쉬움을 인정하더라도 렉스가 시리즈 안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선명하다. 그는 역대 주인공들의 모습을 거의 모두 하나씩 이어받으면서도, 그들의 전설이 만들어진 순서를 다르게 밟는다. 먼저 존재하는 것은 이름이고, 그 이름에 걸맞은 인간이 되는 일이 그의 몫으로 남는다. * 원래 전임자 코프의 것이었던 TAC네임 REX와 그의 헬멧을 받는 장면. 이름 때문인지 내 눈에는 이게 궁색한 대관식처럼 보였다. 왕을 뜻하는 렉스라는 이름은 이 지점에서 절묘하다. 코프가 죽어도 그 이름은 사라질 수 없고, 다른 사람이 이어받아 계속 날아야 한다. 왕이 죽어도 왕위는 비워둘 수 없듯 시브의 날개라는 자리도 비워둘 수 없다. 처음 렉스에게 주어진 것은 이미 만들어진 왕관이다. 렉스는 그 왕관의 정당성을 전장에서 얻는다. 그것은 적국의 에이스들을 쓰러뜨린 결과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이 그 이름에 건 기대를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선택이 쌓이면서, 그 이름은 FCU의 선전이 약속했던 범위를 넘어선다. 역대 주인공들에게서 작위를 하나씩 수집하듯 계승한 인물 이 마지막에는 자기 행동으로 왕관의 무게를 감당하게 되는 셈이다. 그 중 렉스의 행적을 돌아볼 때 가장 강력한 비교 대상은 사이퍼다. 외부에서 들어온 무명의 조종사가 적국의 에이스들을 쓰러뜨리고 전쟁의 향방을 바꾼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았다. 그러나 그들이 남기는 이름의 운명은 다르다. 사이퍼라는 이름은 그가 마지막 착륙 이후 홀연히 사라진 뒤, 살아남은 에이스들과 픽시의 증언으로 재조립된다. 그를 두려워했던 사람, 존중했던 사람, 한때 곁에서 날았던 사람이 각자 자신이 만난 사이퍼를 이야기한 결과 그 증언들이 모여 원탁의 마왕이라는 신화를 이룬 것이다. 정작 당사자가 부재하기 때문에 그 이름에는 회상과 해석이 들어갈 여백이 남고, 한 사람의 전쟁은 그렇게 불멸성을 얻었다. 반면 렉스의 이름, 시브의 날개는 이제 와서 사라지면 안 되는 이름이다. 처음에는 패배한 국가가 저항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했지만, 그가 한 선택들은 더 많은 사람에게 그 이름을 믿을 이유를 주었다. 사이퍼의 불멸성이 남겨진 사람들이 완성한 신화의 성질이라면, 시브의 날개의 불멸성은 살아 있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요구에 가깝다. 사이퍼의 이름이 부재 속에서 신화적 불멸성을 얻었다면, 렉스의 이름은 신화가 계속 존재해야 하기에 불멸을 요구받는다. 사이퍼가 "사라짐으로서 완성된 신화, 원탁의 마왕"이라면, 렉스는 "신화를 짊어진 현세의 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글 제목은 왜 고스트 격추왕이냐구요? 프롤로그에서 뒤진 코프가 엔딩까지 계속 나레이터로 쓰이다가 엔딩크레딧 직전에 성불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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