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지난주 토요일에 병원 갈 일이 있어서 손주를 저희 집에 맡기고 갔어요 돌 지난 지 두 달 된 아기예요 그날 아침부터 제가 분유 타고 이유식 데우고 기저귀 갈고 낮잠 재우고 다 했습니다 남편은 오후에 거실에서 두 시간 정도 아기랑 같이 있었어요 그 두 시간도 정확히 말하면 아기는 매트에서 혼자 놀고 남편은 소파에서 야구 보면서 가끔 까꿍 해준 게 전부예요 그동안 저는 저녁 준비했고요 저녁에 딸이랑 사위가 아기 데리러 왔는데 남편이 사위한테 오늘 내가 애 보느라 혼났다 장모 좀 도와줬지 이러더라고요 사위는 아버님 고생하셨어요 하면서 홍삼 선물 세트를 남편 손에 쥐어드렸어요 저는 부엌에서 설거지하다가 그 말 듣고 고무장갑 낀 채로 잠깐 서 있었어요 도와줬다는 말이 제일 걸려요 손주 보는 게 제 일이고 남편은 거기에 잠깐 손 보탠 사람이라는 거잖아요 생각해 보면 딸 키울 때도 똑같았어요 남편은 애를 본 적이 없고 늘 봐준 사람이었어요 제가 미용실 가는 날 두 시간 봐주면 그 주 내내 생색을 냈고 친정엄마한테도 김서방이 애를 잘 본다는 칭찬을 들었죠 저는 이십 년 넘게 애 보면서 잘 본다는 소리 한 번 못 들어봤는데요 딸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엄마 아빠 원래 그렇잖아 그냥 웃고 넘겨 하더라고요 딸도 자기 남편이 아기 목욕 한 번 시키면 단톡에 사진 올리고 고맙다고 하는 걸 봤어요 그걸 보고 웃고 넘기라는 말이 이해가 되긴 했어요 저희 세대만 이런 줄 알았는데 다음 세대도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홍삼은 지금 남편이 아침마다 하나씩 뜯어 먹고 있어요 오늘 아침에도 하나 뜯으면서 이거 먹으니까 애 볼 힘이 나네 하길래 그럼 다음 주에도 당신이 봐요 했더니 다음 주엔 동창 모임이 있대요 다음 달부터 딸이 복직하면 평일에 제가 손주를 봐주기로 했는데 남편은 벌써 친구들한테 우리가 손주 봐주기로 했다고 말하고 다니네요 우리라는 말이 이렇게 얄미울 줄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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