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VvOWg7y6nq0 저 쇼츠의 당사자는 백선엽 장군의 동생인 백인엽이라고 합니다. 제미나이를 통해 알아본 백인엽의 말년 행적입니다. 1. 군납 비리로 무기징역 선고 (박정희와의 악연) 전쟁 후 백인엽은 6군단장으로 재임하던 중, 장병들의 부식 납품업자들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상납받는 등 심각한 군납 비리를 저질렀습니다. 이로 인해 수만 명의 장병들이 영양실조 에 걸리는 참상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그의 밑에서 부군단장으로 일하며 온갖 모욕과 가혹행위를 당했던 사람이 바로 박정희 소장 이었습니다. 이후 5·16 군사정변으로 박정희가 정권을 잡자, 백인엽은 즉시 부정축재 및 군사 독직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무기징역 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형 백선엽이 박정희의 목숨을 구해준 옛 은혜가 있었기에, 그 덕분으로 형기가 줄어든 뒤 1963년 최종 사면되었습니다. [ 1 ] 2. '사학 재벌'로 변신과 단군 이래 최대의 사학 비리 감옥에서 풀려난 백인엽은 형제의 이름(백 선 엽·백 인 엽)을 딴 선인학원(선인재단) 을 인천에 설립하고 교육자로 변신했습니다 . 한때 학교 15개를 거느리며 인천 청소년의 23%가 이 재단 학교에 다닐 정도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학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군대식 무단통치로 교사들을 탄압했고, 9,900명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편입학 장사 를 벌였습니다. 기부금과 공금 수십억 원을 횡령해 가족 묘지를 사고 외제차 유지비로 쓰는 등의 만행을 부리다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1년 다시 구속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 1 , 2 , 3 , 4 ] 3. 시민들의 분노와 비참한 강제 퇴출 형기를 마친 후에도 막후에서 재단 복귀를 노렸으나, 그의 부정부패에 분노한 인천 시민, 교사, 학생들이 수년간 격렬한 '선인학원 정상화 운동'을 벌였습니다. 결국 버티지 못한 백인엽은 1994년 선인학원의 모든 운영권과 재산을 인천광역시에 국가헌납 형식으로 강제 기증 하고 완전히 퇴출당했습니다. (이후 선인학원 소속 학교들은 시립·공립으로 전환되었습니다). [ 1 , 2 ] 4. 고독한 말년과 사망 모든 권력과 부를 잃은 백인엽은 외부 활동을 일절 중단한 채 은둔 생활을 했습니다. 형 백선엽과 달리 언론 인터뷰도 거의 응하지 않았으며, 세간의 비난을 피해 조용히 지내다 2013년 12월 14일, 향년 90세의 나이로 노환으로 별세 했습니다. [ 1 , 2 ] 그는 국가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받아 국립현충원에 묻힐 자격이 있었으나, 생전의 수많은 악행과 비리 행적 때문에 사회적 반발이 심했고, 본인의 유지에 따라 대전이나 현충원이 아닌 천안의 한 공원묘지(가족장) 에 쓸쓸히 안장되었습니다 먼산...
📰
이슈
-
·
-
·
0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회원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