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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딘으로 그냥 가볍고 귀여운거 보고싶다25

20편: # 20편(외전1): # 20편(외전2): # 21편: # 22편: # 23: # 24: # 루크딘 ㅇㅇ딘 계좌가 풀린 것은 엿새째 되던 밤이었다. 딘은 그동안 밤마다 정비대 앞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암호화된 수신처는 진작 풀었지만 그 끝에 걸려 있는 건 이름 없이 등록된 계좌 수백 개였다. 결국 그 거래 기록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정찰선이 뜬 날짜, 그 배에 실을 물자를 사들인 날짜와 맞지 않는 계좌는 하나씩 지워 나갔다. 그렇게 며칠을 지루하게 되풀이한 끝에 그날 밤 마침내 마지막 계좌 하나가 남았다. 몇 달째 어느 항구 도시로 꼬박꼬박 대금이 송금되고 있는 계좌였다. 자판을 두드리던 손이 멈추었다. 딘은 화면에 뜬 도시 이름을 입속으로 되뇌며 한 번 더 읽어 내렸다. 예전이었다면 혼자 갑옷부터 챙겨 입었을 것이다. 사흘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돌아온 뒤 어디를 다녀왔느냐 묻는 말에는 그저 건성으로 둘러댔을 터였다. 위험한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으니까. 그러나 그 계산에서 한 사람을 빼놓았을 때 무엇이 남는지 딘은 지난번 일로 뼈저리게 배웠다. 상처를 숨기려고 며칠 동안 헬멧을 벗지 않았던 날들과 끝내 그걸 알아채던 루크의 상처받은 얼굴로. 딘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 문을 열었다. 은은한 등불 아래에서 무언가를 읽고 있던 루크가 시선을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딘은 침대 가에 걸터앉아 가지고 온 단말기의 화면을 루크 쪽으로 돌려 보였다. “도시를 찾았습니다. 이틀이면 다녀올 수 있는 거리입니다.” 딘은 잠시 숨을 가다듬고 덧붙였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루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딘을 바라보았다. 대단할 것 없는 작은 단말기를 하나 들고 왔을 뿐인데 루크는 마치 중요한 무언가를 건네받은 사람처럼 깊은 눈을 하고 있었다. “네.” 그것으로 충분했다. 루크는 왜 이제야 말하느냐고 타박하지도 잘 생각했다며 덧붙이지도 않았다. 딘은 그 짧은 대답이 고마웠다. 만약 거기에 한 마디라도 더 얹어졌더라면 이 방문 하나를 열고 들어오기까지 자신이 얼마나 오래 주저했는지 전부 들켜 버렸을 것이다. … 루크의 전언을 받은 아소카는 다음 날 아침 해가 다 뜨기도 전에 도착했다. 그로구는 아소카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반갑게 두 팔을 뻗었다. 예전에 만났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인지 아이는 조금도 낯을 가리지 않았고 덕분에 아이의 짐을 챙겨 넘기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로구가 쓰던 작은 담요를 접어 챙기려 할 때 짐이 많아 딘의 손길이 잠시 꼬였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곁에 서 있던 루크가 자연스럽게 담요를 받아 들었다. 짐을 주고받는 짧은 순간 손끝이 스쳤고 루크는 그 온기를 아쉬워하듯 손을 살짝 늦게 놓았다. 그 모습을 코앞에서 지켜본 그로구가 아소카의 품에서 길쭉한 귀를 푹 접어 내렸다. 질릴 대로 질렸다는 듯 아주 익숙하고 지겹다는 표정이었다. 아이는 혀를 차듯 작게 쯧 소리를 내더니 아예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아소카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아소카는 품에 안긴 그로구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올려 두 사람을 마주 보았다. “…둘이, 언제부터?”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딘은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 버렸다. 반면 루크는 여유로운 얼굴로 한쪽 눈을 가볍게 찡긋할 뿐이었다. 아소카는 더 깊게 추궁하지 않고 그로구의 작은 등을 토닥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무언가 중얼거렸다. 아이는 응수하듯 짧게 ‘뽀압’ 하고 대답했다. … 그로구가 없는 함선 안은 생경할 정도로 조용했다. 늘 아이를 향해 나뉘어 있던 신경이 이제는 모조리 한 사람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루크는 그 낯선 집중이 어색하면서도 나쁘지 않아 자꾸만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배가 대기권을 벗어나 안전 궤도에 들어서자 루크는 옷을 갈아입었다. 늘 입던 제다이의 검은 로브를 벗어 두고 부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헐렁한 옷가지로 갈아입은 뒤 조종석 쪽으로 걸어왔다. “어때요?” 딘은 대답 대신 다가와 옷깃부터 매만졌다. 삐뚤어진 자리를 손끝으로 쓸어 펴고 매무새를 가다듬는데 점검을 핑계로 대기엔 손길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머물렀다. 겉옷 안쪽을 살짝 열어 품속에 숨긴 라이트세이버가 움직일 때 드러나지 않는지도 살폈다. “팔 올려 보십시오.” 루크가 군말 없이 양팔을 들자 딘의 손바닥이 옆구리와 팔 안쪽을 차분하게 훑어 내렸다. 무기가 걸리는지 확인하는 사무적인 손길이었으나 동작은 자꾸만 느려지고 부드러워졌다. 마지막으로 옷깃을 한 번 더 짚어 준 딘이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됐습니다. 무기도 안 보이고, 제다이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다 끝났다는 듯 계기판 쪽으로 돌아서던 딘이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덧붙였다. “행성에선 제 옆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알겠어요.” 루크가 낮게 웃으며 대답했다. 딘의 어깨 너머로 조종석 패널의 작은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 항구 도시는 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웠다. 정박한 대형 화물선들의 밑바닥이 하늘을 가린 채 지붕처럼 얹혀 있었고 그 그늘 아래로 부두와 창고, 얽히고설킨 골목이 때에 찌든 채 층층이 쌓여 있었다. 사방에 사람이 들끓었고 비릿한 악취가 진동했으며 높은 구조물 어디선가 썩은 물방울이 끊임없이 떨어져 내렸다. 딘이 앞장서 걸었고 루크는 한 걸음 뒤에서 그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베스카 갑옷을 입은 자가 지나가자 험악한 시선들이 기웃거리듯 따라붙었다. 하지만 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하나같이 흩어져 버렸다. 딘은 그런 시선 따위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계좌 명의로 등록된 창고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창고는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주기적으로 명의를 바꿔 가며 꼬리를 자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딘은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부두 사무소로 발길을 돌렸다. 구석에서 한가롭게 서류를 뒤적거리던 사내 하나를 낚아채 어두운 뒤편 벽으로 거칠게 밀어붙였다. 팔 관절을 바짝 꺾어 올리자 사내는 20초도 버티지 못하고 가진 정보를 모조리 뱉어 냈다. 새 창고의 정확한 위치는 오직 배차 담당자만 알고 있는데, 하필 그자가 오늘 아침 배를 타고 떠나 내일이나 되어야 돌아온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하루라는 공백이 붕 떠 버렸다. 본의 아니게 자유 시간이 생긴 셈이었다. 벽에 눌려 있던 사내를 놓아주고 돌아서는데 옆에 서 있던 루크의 입가에서 참지 못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파란 눈에는 갑자기 생긴 둘만의 시간을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딘은 헬멧 너머로 그 눈빛을 받아 내며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가다듬었다. “…저희는 놀러 온 게 아니라 일하러 온 겁니다.” “알아요, 자린 씨.” 루크가 씨익 웃으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결국 딘은 그 빈 하루를 그냥 쉬면서 보내지 못하고 창고 구역 전체를 한 바퀴 돌며 비상시 빠져나갈 퇴로를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부두로 이어지는 통로까지 쓸데없이 몇 번이고 점검하고서야 걸음을 멈추었을 때는 해가 완전히 넘어간 뒤였다. 이제는 정말로 핑계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빙글빙글 웃는 제다이의 얼굴이 이렇게 얄미울 수 없었다. 숙소는 부두 위쪽의 어두운 골목 구석에 있었다. 숙박료가 싸고 투숙객 장부를 따로 적지 않는 곳으로 일부러 골랐다. 카운터 뒤에 앉아 있던 주인이 두 사람을 아래위로 노골적으로 훑어보았다. 풀 베스카 갑옷을 입은 만달로리안 하나와 그 곁에 선 차림새가 말끔한 평범한 젊은 남자. “방 하나.” 주인은 군말 없이 돈을 받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녹슨 열쇠 하나를 건네며 딘 쪽으로 의미심장한 눈짓을 보냈다. 배가 수시로 드나드는 항구 도시에는 하룻밤 몸을 팔아 연명하는 자들이 차고 넘쳤다. 오래 홀로 떠돌던 사냥꾼이나 밀수꾼이 항구에 닿으면 그중 하나를 사서 방으로 데리고 올라가는 것은 흔하디흔한 풍경이었고 주인은 두 사람을 딱 그런 사이로 본 것이었다. 어두운 계단을 오르며 딘은 무어라 한마디 하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오해를 정정하려 들면 설명이 길어질 테고 설명이 길어질수록 남의 기억에 쓸데없이 오래 남게 될 뿐이었다. 그는 뒤따라오는 루크의 얼굴을 흘깃 보고는 더는 돌아보지 않은 채 계단을 끝까지 올랐다. 방은 좁고 눅눅했다. 딘은 습관처럼 창문의 창살부터 확인한 뒤 삐걱거리는 나무판자 문을 점검했다. 손가락으로 치면 금세 부서질 것처럼 얇은 문이었다. 갑옷을 풀기 위해 버클에 얹은 손이 잠시 멈칫했다. 이런 낯선 도시의 허름한 여관방, 그것도 누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얇은 문 뒤에서 헬멧을 벗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사이 먼저 씻고 나온 루크가 젖은 머리칼에서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좁은 침대 가장자리에 털썩 앉았다. 목덜미에서 풍기는 옅은 비누 냄새와 체온이 눅눅한 방 안에 번져 나갔다. 루크는 딘의 머뭇거리는 손길을 기다려 주듯 굳이 헬멧에 대해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딘은 결국 흉갑과 어깨판까지만 풀어 스탠드 옆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문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침대 가장자리에 먼저 몸을 누였다. 둘이 눕기엔 침대가 지나치게 좁아 루크가 그 곁으로 누워 오자 어깨와 팔이 자연스럽게 바짝 닿았다. 스탠드 불을 끄자 방 안에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아래층에서는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란이 웅성거렸고 얇은 창문 틈으로는 항구의 눅눅한 바람이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딘이 마침내 천천히 팔을 올려 헬멧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짧은 잠금 소리와 함께 헬멧이 들어 올려졌다. 딱히 벗어야 할 현실적인 이유는 없었다. 문은 여전히 불안할 만큼 얇았고 바깥에는 험악한 자들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지금 이 방 안에서 헬멧 아래 숨겨진 맨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곁에 누워 자신의 숨소리를 듣고 있는 한 사람뿐이었다. 그것 하나면 충분했다. 딘은 벗어 낸 헬멧을 침대 머리맡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한참 동안 무거운 정적이 방 안을 채우다, 마침내 루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주인이요.” “…” “우리를 묘한 눈으로 보던데요.” 딘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저 제다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주인의 눈에 자신들이 어떻게 보였을지 굳이 말로 뱉지 않아도 짐작이 갔으므로. “절 하룻밤 돈으로 산 사람쯤으로 보던데, 자린 씨가 제법 돈 있는 만달로리안처럼 보였나 봐요.” “…모르는 척 넘어가지 않으실 거라는 건 알았습니다만.” 딘이 낮게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이런 곳에서는 흔한 일이니까요.” “전 마음에 들었어요.” 딘이 루크 쪽으로 휙 고개를 돌렸다. 헬멧을 벗은 맨얼굴의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그 얼간이가 선생님을 창부 취급한 게 왜 마음에 드는 겁니까?” “그런 뜻 아닌 거 아시면서요.” 루크가 어둠 속에서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린 씨가 그 많은 사람 중에 날 골라서 데리고 온 것처럼 보이잖아요.” “…생각하신것과 달리 그런 고상한 뜻이 아니었을겁니다.” “뭐, 정 마음에 걸리시면 자린 씨 한정으로 진짜 그 직업으로 바꿔 보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고요.” “무슨…”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불 밑으로 따뜻한 손 하나가 살며시 넘어왔다. 딘의 허벅지 위에 지그시 얹힌 손가락이 옷감 너머로 천천히 위를 향해 쓸어 올라왔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가만히 계시길래 마음에 드신 줄 알고요.” 손이 더 아슬아슬한 곳까지 올라오기 직전에 딘이 손목을 붙잡았다. “내일 일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자는 건데요. 내일은 바빠서 쳐다보지도 않으실 거잖아요.” “…” “어차피 이 도시에 다시 올 일도 없을 텐데.” 딘은 붙잡은 손을 꾹 눌러 이불 위로 도로 얹어 놓았다. 제법 단호했으나 세게 쥔 힘은 아니었다. “주무십시오.” 거의 말을 씹어 뱉듯 내던졌다. 정작 그 손목을 쥔 딘의 손은 놓아주지 못하고 제 옆구리 곁에 붙들어 두고 있었다. 루크가 어이없다는 듯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깨가 들썩이는 진동이 이불을 타고 전해졌다. “손이나 놓아주고 주무시라고 하든가요.” “…내일 일 끝나고 얘기하시죠.” “좋아요. 그럼 내일 제대로 받아 가요.” “뭘 말입니까.” “오늘 못 한 서비스요. 자린 씨한테 드리려고 한 거.” 딘은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꾸해 봤자 저 능청스러운 제다이의 페이스에 휘말릴 게 뻔했으므로 그저 루크의 손목을 잡은 손에 슬쩍 힘을 주며 눈을 꼭 감아 버렸다. 손바닥 아래로 루크의 맥박이 밤새 규칙적으로 잔잔하게 뛰고 있었다. … 아침에 먼저 눈을 뜬 건 딘이었다. 밤새 루크가 제 팔을 베고 넘어와 누운 무게 때문이었다. 눌린 팔을 빼려다 이내 포기했다. 팔을 빼내면 루크가 깰 테고 저 사람이 깨고 나면 이 시간도 끝이 난다. 벗어 둔 헬멧이 머리맡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당장에라도 닿을 거리였지만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다. 지금 헬멧을 쓰면 저 사람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차가운 베스카가 되어 버린다. 딘은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죽이다가 어느새 다시 눈을 감았다. 잠시 뒤 루크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시선에 담긴 것은 딘의 맨얼굴이었다. 얇은 커튼 틈새로 새어 들어온 아침 볕이 그의 뺨을 반쯤 비추고 있었고 긴 속눈썹이 그 아래로 옅은 그늘을 만들었다. 턱선을 따라 거뭇하게 자란 수염 자국까지 선명했다. 차마 깨우기가 아까워 루크는 그 무방비한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온기 어린 시선을 느꼈는지 딘이 옅은 숨을 내쉬며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투명하게 빛나는 말간 파란 눈이었다. 루크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딘의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느긋하게 넘겨주며 눈꼬리를 살짝 접어 다정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딘의 뺨에 살짝 손을 얹은 채였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몇 시입니까.” “글쎄요. 일부러 안 봤어요.” 딘 역시 단말기를 확인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 몇 시인지 알아 버리는 순간 이 시간에도 기어이 끝이 찾아올 테니까. “조금만 더 이러고 있으면 안 돼요?” 루크의 눈가에 나른한 온기가 번졌다. 딘은 가만히 손을 올려 제 뺨을 감싸고 있던 루크의 손등을 덮어쥐고는 그를 제 품으로 조금 더 끌어당겼다. “원하신다면 조금만 더 있겠습니다.” 루크가 작게 웃으며 딘의 품에 기분 좋게 파고들었다. 그러다 고개를 슬며시 들어 딘의 까슬한 턱 끝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매일 아침 당연하게 그래 왔던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창밖 먼 곳에서 부두가 깨어나는 소란이 들려오기 시작해서야 두 사람은 아쉬운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배차 담당자는 그날 아침 정말로 돌아왔다. 약간의 수고비를 얹어 주자 사내는 순순히 입을 열었다. 목적지는 부두 맨 끝 구역, 간판 하나 걸려 있지 않은 오래된 창고였다. 창고로 향하는 어두운 골목길, 딘은 걸음을 늦추지 않은 채 낮게 중얼거리듯 당부했다. “제 바로 뒤에 계십시오. 떨어지지 마시고요.” “네.” 루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이 지나치게 가벼웠다는 걸 딘은 나중에야 깨달았다. 어느덧 도착한 창고 앞에는 사내 넷이 서 있었다. 딘이 걸음을 멈추었다. 간판조차 없는 부두 창고 하나를 지키는 데 넷은 지나치게 많은 수였다. 게다가 서 있는 자세가 무언가를 지킨다기보다는 누군가 오기를 작정하고 기다리는 쪽에 가까웠다. 정찰선이 돌아오지 않은 뒤로 배후의 놈이 사람을 급히 긁어모았다면 지금 저들이 기다리는 건 다름 아닌 딘 자신이었다. 딘은 넷을 하나씩 훑었다. 자세, 무기를 쥔 손의 모양, 서로 떨어져 선 간격. 부두의 흔한 잡부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꼴이 아니었다. 놈들은 현상금 사냥꾼이었다. 딘은 한동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이라도 발길을 돌릴 수 있었지만, 돌아서는 순간 이쪽이 낌새를 챘다는 사실을 저쪽도 눈치챌 터였다. 그렇게 되면 배후의 놈은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또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게 분명했다. “들어갑니다. 제 뒤에 붙으세요.” 딘이 먼저 걸음을 옮기자 넷은 그를 막아서기는커녕 약속이라도 한 듯 창고 안쪽으로 뒷걸음질 쳐 물러섰다.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창고 문턱을 넘자마자 딘이 머릿속으로 짜 둔 계산은 완전히 어그러졌다. 창고 안쪽 깊숙한 곳에 책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그 뒤에 사내 하나가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도망칠 생각조차 없다는 얼굴이었다. 뒷문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안으로 물러섰던 넷이 순식간에 딘과 루크의 양옆을 가로막아 섰고 높은 선반 위에도 둘이 더 자리를 잡고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전부 합쳐 여섯이었다. 놈들은 만달로리안을 상대하는 법을 아는 자들이었다. 사거리를 벌려 다각도로 사격망을 짰고, 휘슬링 버드가 발사되는 딘의 오른팔 방향으로는 일부러 아무도 서지 않았다. 반면 무기도 없이 딘의 뒤를 따라 들어온 루크는 놈들 눈에 경계할 필요도 없는 짐꾼이나 만만한 동행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루크 쪽으로는 총구를 내미는 자조차 없었다. 첫 발이 딘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 뒤쪽 나무 상자를 산산조각 냈다. 딘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몸을 던졌다. 좁고 폐쇄적인 공간에서는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정면마저 가로막혀 있었다. 딘은 옆에 있던 커다란 짐상자 뒤로 급히 몸을 돌리며, 루크의 소맷자락과 팔을 낚아채 세차게 끌어당겼다. 루크는 딘의 힘에 자연스럽게 따라와 상자 뒤로 몸을 붙였다. 딘이 묵직한 베스카 갑옷으로 루크의 앞을 가로막아 서며 블래스터를 고쳐 잡는 동안에도 루크는 딘의 등 뒤에서 동요 한 점 없는 눈빛으로 상황을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딘이 당기는 손길에는 익숙한 듯 순순히 따라 주면서도 그 중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제다이 마스터의 여유였다. 문제는 숨을 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상자 뒤로 몸을 숨기자마자 왼쪽 통로에서 사내 하나가 바짝 육박해 들어왔고, 정면의 좁은 틈새로 둘이 총구를 겨누며 거리를 좁혀 왔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포위 각도였다. “이런 허름한 데서 만도 하나 잡겠다고 왜 여섯이나 불렀나 했더니, 풀 베스카?” 정면에 선 자가 낄낄거렸다. 은빛으로 빛나는 풀 베스카를 훑어 내리는 사내의 눈에 지저분한 탐욕이 번졌다. “어쩐지 값을 제법 크게 쳐준다 했어. 현상금도 현상금이지만… 저 갑옷 하나만 벗겨 팔아도 평생 아쉬울 일은 없겠는데.” 사내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총구를 고쳐 잡았다. 상자 뒤에서 딘의 눈이 자신을 둘러싼 셋을 재빠르게 훑었다. 왼쪽의 하나는 블래스터로 먼저 쳐낼 수 있는 각도였다. 문제는 정면에 늘어선 둘이었다. 휘슬링 버드를 쓰려고 팔을 들어 올리는 순간 상체가 무방비하게 열린다. 블래스터로 정면의 하나를 처리하는 그 짧은 찰나에 나머지 하나가 그 틈을 놓칠 리 없었다. 셋을 동시에 털어낼 계산이 도무지 서지 않았다. 혼자라면 망설임 없이 몸을 던져 판을 뒤엎었을 것이다. 여태껏 살아오며 죽을 위기에 몰린 적은 셀 수도 없었고, 승산이 희박한 판인 걸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정면 돌파해 온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제 등 뒤에는 지켜야 할 사람이 있었고 그 탓에 아주 짧은 허점조차 허용할 수 없었다. 단 한 순간이라도 틈이 생겨 저들의 블래스터 총구가 루크를 향하게 되는 상황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고 싶었다. 바로 그 순간, 딘의 등 뒤에서 평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만하시죠.” 적들의 시선이 일제히 상자 뒤쪽으로 쏠렸다. 딘의 어깨 너머로 루크가 단정한 모습 그대로 천천히 한 걸음 걸어 나왔다. 루크는 어떤 무기도 쥐지 않은 채 그저 평화로운 자세로 서서 사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면에 서 있던 사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루크에게 총구를 돌리려 했다. 아니, 손가락에 힘을 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붙들린 것처럼 사내의 손목이 기괴하게 꺾였다. 손가락이 억지로 벌어지며 총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자의 총 역시 제 의지와 상관없이 손에서 튕겨 나갔다. 선반 위에 있던 둘마저 제 손에서 총이 스스로 미끄러져 추락하는 것을 보며 소리칠 말조차 잃었다. 오직 딘의 왼쪽에 있던 하나만이 한 박자 늦게 루크 쪽으로 총구를 틀려 했다. 그 찰나, 딘의 블래스터가 묵직하게 먼저 울렸다. 붉은 광선이 정확히 꽂히며 그자의 총을 튕겨 냈다. 사전에 어떤 신호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딘은 방아쇠를 당기고 나서야 깨달았다. 저 제다이가 제압할 수 없어서 남겨 둔 게 아니라, 딘이 가장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위치의 하나를 일부러 딘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는 것을. 루크는 끝까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상자 뒤에서 나와 딘의 곁에 선 그 자세 그대로였다. 표정 역시 아침에 여관방을 나설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고요했다. 루크가 총을 잃고 굳어 있는 사내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쯤에서 끝내시죠.” 창고 안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정면에 서 있던 자가 이를 갈더니 포스로 무기를 빼앗긴 와중에도 허리춤에서 단검을 기습적으로 뽑아 들었다. 사내의 눈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아, 저러면 안 되는데. 딘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불과 몇 달 전, 시장에서 여덟 명의 무리가 저렇게 만용을 부렸다가 어떻게 박살이 났는지 딘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 제다이는 똑같은 경고를 두 번 던지는 위인이 아니었다. 단검의 날이 다 올라오기도 전에 사내의 몸이 둥그렇게 말리며 뒤로 튕겨 나갔다. 사내는 높은 선반 두 줄을 잇달아 산산조각 내며 창고 깊숙한 벽면에 거칠게 처박혔다. 선반이 무너지며 터진 곡물 포대에서 뽀얀 먼지가 창고 전체로 일제히 피어올랐다. 남은 자들이 멍하니 고개를 돌린 순간, 이번에는 그들의 발밑이 통째로 밀려 나갔다. 공간 전체를 짓눌러 버리는 포스의 파도에 옆구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몸들이 꺾였고, 놈들은 그대로 통로 끝까지 쓸려 나가 바닥을 구르며 처박혔다. 루크가 책상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등 뒤에서, 통로 끝에 엎어져 있던 사내 하나가 바닥을 더듬어 떨어진 총을 다시 움켜쥐었다. 사내의 총구가 무방비하게 드러난 루크의 등을 겨누었다. 그러나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리기도 전에 딘의 블래스터가 먼지를 뚫고 울렸다. 붉은 광선이 사내의 어깨를 정확히 꿰뚫었다. 루크는 뒤조차 돌아보지 않았다. 딘이 제 등 뒤를 지켜 줄 거라는 걸 너무나 당연하게 알고 있다는 듯이. 창고를 채우던 먼지가 차츰 바닥으로 가라앉는 동안 창고 안에는 신음조차 없는 침묵만이 남았다. 먼지 속에 선 루크가 딘을 돌아보았다. 아침에 여관방을 나설 때 입었던 그 흔하고 평범한 겉옷 차림 그대로,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고요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가 지나온 창고 절반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무너져 내려앉아 있었다. “자린 씨, 괜찮으세요?” 딘은 그제야 상자에 기대고 있던 등을 천천히 뗐다. 발을 옮길 때마다 터진 포대에서 쏟아진 곡물 알갱이들이 사그락거리며 부츠 밑창에 밟혔다. “…괜찮습니다.” 루크는 피를 보지 않고 끝내려고 한 번은 기회를 주려 했을 것이다. 딘은 그 특유의 다정한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으나, 바닥에 나뒹구는 여섯은 그 경고를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 헬멧 안쪽에서 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낮은 실소가 새어 나왔다. 저들은 만달로리안 하나를 확실하게 잡겠다고 며칠 밤낮을 머리를 맞대고 판을 짰을 것이다. 그 조잡한 정성도 우스웠지만, 정작 자신이 지키려 했던 옆의 남자가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인지 까맣게 모른 채 덤벼들었다는 게 참으로 우스웠다. 마음을 비우고 등을 맡겼더니, 루크는 딘의 몫까지 남겨 둔 채 판을 정리해 버렸다. 딘이 블래스터를 쏠 방향으로는 뒤조차 돌아보지 않은 채.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는 않았으나 딘의 어깨판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 미세한 떨림을 놓치지 않은 루크가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웃으셨네요.” 책상 뒤의 남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붙박여 있었다. 도망칠 곳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얼굴이었지만 창고가 절반쯤 쑥대밭이 된 꼴을 보면서도 양손을 들기는커녕 아직도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셈하고 있는 눈치였다. 딘이 다가가 사내의 멱살을 움켜쥐고 책상 위로 거칠게 밀어붙였다. “그 행성에 대해 뭘 알고 있지.” “…아무것도 모르오.” 딘이 턱밑으로 차가운 총구를 들이댔다. “그렇다면 정찰선은 왜 보냈나.” 그제야 사내의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당신들, 대체 뭘 알고 있는 거요?” 딘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는 방금 전 눈앞에서 벌어진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질려 거친 숨을 헐떡이며 루크를 곁눈질로 흘끔거렸다. 경악과 공포로 희번덕거리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기어이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건 이 무뚝뚝한 만달로리안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남자는 이내 사시나무 떨듯 떨며 오로지 딘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그 배를 보낸 건 맞지만, 나도 얻어낸 건 아무것도 없소! 대단한 게 숨겨져 있다는 소문만 듣고 사실인지 확인해 보려던 것뿐이었는데… 배가 돌아오지 않으니 도리어 거기 진짜 무언가 있다는 확신이 들더군. 그래서 사냥꾼들 몸값을 대폭 올렸던 거요. 하지만 내 눈으로 확인한 게 없는데 그걸 어떻게 팔겠소? 아직 아무한테도 정보를 넘기지 못했단 말이오!” 딘의 손에서 스르르 힘이 빠져나갔다. 정찰선을 추락시키고 조용히 처리했다고 여겼으나 그 배가 돌아가지 않고 사라졌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명확한 흔적이자 신호가 되어 버린 셈이었다. “…제가 그 배를 통째로 없앤 게 잘못이었습니다.” “아니요, 없애지 않았으면 이미 온 우주에 위치가 알려졌을 거예요.” 사내가 마침내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털어놓은 소문의 출처는 다름 아닌 신공화국 청사였다. 어느 부서의 사석에서 무심코 흘러나온 가벼운 입방정이 중개인 몇의 손을 거치며, 이 어두운 부두 창고까지 현상금이라는 이름으로 흘러든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루크의 얼굴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공화국 회의장에서 자신이 내렸던 거절은, 백 번을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내릴 선택이었다. 제다이의 일을 정치적 계산판 위에 올리려는 자들의 미련한 짓거리가 어디까지 미쳤는지 똑똑히 확인한 셈이었다. 상황의 전말을 파악한 딘이 먼저 침묵을 깼다. “공화국에 넘기시죠. 내부에서 소문을 흘린 놈까지 깔끔하게 뿌리 뽑으려면 공권력이 움직여야 합니다.” “…레아한테 연락해 봐야겠어요.” “누님이 나서 주시면 깔끔하게 처리될 겁니다.” 루크는 망설임 없이 품에서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굳어 있던 루크의 얼굴에 단호한 기색이 서렸다. 채널을 맞추자 짧은 연결음이 이어졌고, 루크가 채 입을 떼기도 전에 통신기 너머에서 특유의 당차고 정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루크?” “공화국에서 제다이 관련된 정보가 새어 나갔어, 레아. 누군가가 사석에서 입을 놀린 모양이야.” 통신기 너머에서 낮은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떤 자인지 특정이 돼?” “지난 회담에 참석했던 고위 인사 중 하나인 것 같아.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브로커 한 명을 확보했어.” “알았어. 그놈은 내가 의회 바닥에서 직접 치워 버릴 테니까 걱정 마. 브로커는 잘 묶어서 근처 공화국 순찰선에 넘겨 두고.” “고마워, 레아.” “고맙긴. 조심히 와.” 통신이 끊기자 딘은 지체 없이 사내를 결박하기 시작했다. 손목을 뒤로 단단히 돌려 묶고 팔꿈치 위쪽을 한 번 더 옭아맨 뒤 발목까지 짧게 잇는 숙련된 동작이었다. 창고 밖으로 끌려 나오는 동안에도 사내는 줄기차게 말을 걸어 댔다. 정찰선을 없앤 게 당신이라면 정보의 값이 달라진다느니, 대체 거기 뭐가 숨겨져 있기에 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느냐느니, 부르는 대로 값을 쳐줄 테니 위치를 팔라느니. 딘은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사내는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 자신이 사겠다던 그 물건이, 방금 자신을 사시나무처럼 떨게 만든 바로 그 남자라는 사실을. 공화국 순찰선은 부두 초입의 눅눅한 그늘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인계 서류와 서명 몇 개, 그리고 결박 상태 확인. 그것으로 지긋지긋했던 일은 싱겁게 끝이 났다. … 함선이 궤도에 들어서고 항속 모드로 전환되자 함선 안에는 아늑한 고요가 감돌았다. 아소카는 착륙장 한가운데에 서서 느릿하게 내려앉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치가 열리고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자마자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그로구가 반가움을 참지 못하고 허공으로 팔을 바동거렸다. 어찌나 격렬하게 몸을 들이밀던지 아소카가 하마터면 아이를 놓칠 뻔했을 정도였다. 딘이 가장 먼저 걸음을 내디뎌 아이를 품에 받아 안았다. 아이는 딘의 흉갑과 옷깃을 꼭 움켜쥔 채 코를 킁킁거리다가, 비린내와 먼지가 섞인 낯선 항구 도시의 냄새를 맡았는지 귀를 움찔하며 뒤로 젖혔다. 어느새 루크가 옆으로 바짝 다가와 아이의 머리를 쓸어 주었다. 아이를 사이에 두고 딘의 어깨에 루크의 어깨가 가볍게 맞닿았다. 두 사람 모두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그로구가 샐쭉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귀를 푹 접었다. 곁에서 그 꼴을 지켜보던 아소카가 피식 웃었다. “저 표정, 너희 둘이 붙어 있을 때마다 나오는 거지? 이 녀석이 그동안 사원에서 무슨 꼴을 봐 왔는지 이제야 알겠네.” 아소카의 짧은 한마디에 딘은 또다시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헬멧 안쪽에서 무어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입술만 벙긋거리는 사이 아소카의 입꼬리가 매끄럽게 호를 그렸다. 그녀는 딘의 대답 따위는 진작에 기대지도 않았다는 듯 가볍게 손을 한 번 들어 보이고는 뒤를 돌았다. 옷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제 배가 정박해 있는 쪽으로 유유히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딘은 그저 굳은 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사원으로 향하는 능선을 넘어서며 딘은 자연스럽게 헬멧을 벗어 들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사원의 익숙한 전경이 저 멀리 눈앞에 펼쳐졌다. 앞장서 걷는 루크가 그로구를 품에 안은 채 지난 이틀간의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늘어놓고 있었다. 아이는 루크의 목소리가 마음에 드는지 웅얼거리며 루크의 옷자락을 꼭 쥐고 있었다. 딘은 서두르지 않고 보폭을 넓혀 루크의 바로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은 채 정확히 어깨를 나란히 맞춘 걸음이었다. 이제 이 능선 위에는 그들을 위협할 만한 것이 없었다. 설령 무언가 불쑥 나타난다 해도, 더 이상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질 필요가 없음을 딘은 잘 알고 있었다. 옆에서 시선을 느꼈는지 루크가 걸음을 늦추지 않은 채 눈꼬리를 살짝 접으며 시선을 맞춰 왔다. “그렇게 빤히 보면 쑥스러운데요.” 딘은 슬쩍 시선을 피하는 척하면서도 다시 루크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 고요하고 말간 얼굴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그러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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