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어디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서로 엇갈릴 경우 몇 시간이든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로 연결이 안되는 것 자체가 소재의 일부가 되는 거죠. 요즘에는 스마트폰을 다들 들고 다니고 통신 음영 지역도 없어서 그런 소재로 영화를 썼다간 욕 먹습니다. "전화하면 되잖아?" 주인공이 어디를 향해서 여행을 해야하는 상황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다가 인연을 맺는 클리셰도 많습니다. 요즘에는 그냥 지도 앱 켜면 끝나죠. 이렇게 일상의 편리한 부분이 하나씩 들어오면서 영화 소재도 수십 개씩 한꺼번에 고갈돼 왔습니다. 이동성도 상당히 좋아졌고 물류도 좋아져서 누군가의 편지나 택배를 며칠씩 기다리거나 어딘가로 수십 일 여행을 가는 스토라도 불가능합니다. 곧 AI 에이전트가 보편화되면 이제 주인공이 뭔가 연구하고 찾아본다고 도서관에 가서 수십 권 책을 뒤지는 연출도, 역사학자나 경제학자 등을 찾아가서 자문을 구하는 장면도 모두 삭제될 겁니다. 그냥 뭔가 몰라서 실수하는 일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사람의 생활이 점점 더 완벽해지고 편리해질 수록 시행착오 없이 살아가는 건 좋지만 영화나 드라마로 쓸 거리도 없어지겠죠. 그래서 요즘 이세계물이 유행인가 싶습니다만, 아마 AI 보편화가 되는 과도기인 지금, 2020년대가 문화계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최고점 르네상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입니다. 뭐 아쉽긴 하지만 인류는 또다른 게임이나 VR 등 도파민을 찾아 나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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