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뉴스×지리산포럼] 지리산포럼 2026 ‘변화이면’ 참석 후기. (⏳ 7분) 섬으로 태어나는 인간, 대륙을 꿈꾸는 인간 활동가의 영혼, 활동가의 몸 광장과 마을: 남태령이라는 ‘씨앗’ 초 치는 질문 금지: 침묵과 경청 그리고 격려 인간은 섬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가끔 마음속으로 대륙을 품는다. 작지만 소중한 우리의 대륙, 지리산포럼. 난 올해 지리산포럼 2026의 소감을 이렇게 남겼다. 지리산포럼의 3박 4일이 눈을 한 번 크게 뜨고, 감고, 한 번 더 뜨니 끝나버렸다. 버스 타고, KTX 타고, 마치 마법사 마을처럼, 민주주의기술학교 수실라의 눈에 띄어, 아름다운재단 최지와 함께 셋이서, 롤러코스터 같은 신비한 미니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산길을 통과해 지리산에 갔다. 지리산포럼에 갔다. 여기에서 남원 시민 전용(?) 미니버스를 운좋게 타고 아주 흥미진진한 롤러코스터 모드로 산길을 뚫고 지리산포럼의 ‘베이스캠프’에 해당하는 ‘들썩’ 근처 실상사(사찰)에 갈 수 있었다. 민주주의기술학교 수실라 님 감사~! 이하 별도 표시가 없으면 사진 출처는 모두 민노씨. 기차표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부랴부랴 택시를 부른 이장님(양석원, 사진). 덕분에 공짜로 남원역까지 갔다. 그리고 다시 이장님(양석원)이 예약한 택시를 얻어타고, KTX 타고, 다시 버스 타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와서 짐 정리하고, 씻고, 이것저것 먹고, 지난 3박 4일동안 보지 못한, 어느새 조금 낯설어진 밀린 주식 방송을 보다 잠들었다. 그리고 문득 새벽에 눈을 떴다. 나는 언젠가부터 글 쓰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이기적이고, 유치한 짓이라는 생각이 든 거다. 글을 쓴다는 건 아주 이기적인 짓이다. 물론 이타심도 이기심이니까. 그런 이타적 이기심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1914) 속 ‘선생’ 식으로 말하면, 나는 언젠가부터 글을 쓴다고 해서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광장에 발가벗고 뛰어다니며 ‘내가 옳다’ ‘나는 아름답다’고 외치는 미친 사람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 뒤로 글을 잘 쓰지 않는다. 물론 쓴다는 건, 읽고 운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개는 좋은 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겐 부끄럽고 뻔뻔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오늘은 문득 글을 써보고 싶다. 이상 4장의 사진은 내 아침 산책길 코스에서 찍은 사진들. 주로 실상사를 한 바퀴 돌고 캠프(들썩)으로 간다. 30분쯤 걸린다. 활동가는 대륙으로 태어난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섬으로 태어난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징검다리로 이어서 육지로, 끝이 보이지 않는 대륙으로 만드려는 사람들. 그렇게 하염없이, 부질없이 거대한 바위를 산으로 올리는 시지프스 같은 존재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깊은 애정과 경외심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냉소를 품는다. 그게 나라는 사람이다. 그런 냉소적인 나에게도 아이의 궁금증은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페터 한트케도 궁금해한 “아이가 아이였을 때 묻는” “왜 나는 네가 아니고, 왜 너는 내가 아니지” 하는 궁금증. 특히 누군가와 소중한 무엇인가를 위해 애정을 품고 이야기할 때, 나는 그 대화의 관계 속에 몰입한다. 그리고 문득 왜 나는 네가 아니지, 왜 당신과 나는 다른 존재인지, 진심으로 궁금해한다. 인간은 본질에서 섬으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섬으로 태어났지만, 누군가는 숲을 꿈꾸고, 누군가는 강물을 꿈꾸고, 누군가는 태양을 꿈꾸고, 또 풀잎과 바람을 꿈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든 걸 품은 대륙과 대양을 꿈꾼다고 생각한다. 테이블에서 우연히 발견한 글귀. 하지만 인간은 점점 레고 블록이 되어 간다. 더 멋진 레고 블록이 되기를 꿈꾼다. 더 멋진 통조림이 되기를 더 멋진 아파트가 되길 더 멋진 자동차가 되길 꿈꾸는 것 같다. 나도 그렇다. 나도, 그런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다.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도 꿈이니까. 그 꿈도 성취하기 너무 어려운 꿈이고, 아주 큰 기쁨을 주니까. 하지만 때론 그게 싫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글이 또 길어지려고 한다. 대부분의 글은 그렇게 길 필요가 없는 글들이다. 빨리 글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가장 인상적인 세션은 CTR 강상우와 기부(GIBOO) 이지은이 함께 준비한 ‘신라상회 기금’ 에 관한 발제였다. 구관혁(꿈을짓는학교 사회적협동조합 대표)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으로 지원 단체와 내가 하나의 섹터에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다른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활동가에게 조직은 혼이고, 프로젝트는 몸이다.” “혼과 몸”은 해석이 필요하다. 관이나 민이 지원하는 돈, 활동 지원금이 없으면 우리가 시민단체라고 부르는 비영리단체는 운영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원금은 늘 부족하고 팍팍하다. 한국 사회는 그분들 활동에 어마어마한 ‘빚’이 있는데도 그분들 활동이 돌려받는 물질적 대가는 대개 초라하다. 아니 모욕적이다. 영혼은 시민단체 조직 자체, 그곳에서 활동하는 사람 자체를 상징하는 말이다. 그리고 프로젝트인 몸은 활동 성과로만 평가받는 지원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다. 영혼 없는 몸이 껍데기라면, 지원이 향해야 하는 건 몸 이전에 영혼이다. 영혼을 존중하는 방법은 조직을 신뢰하는 것이고, 그 조직 자체인 사람에게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건비는 그 최소한이다. 하지만 지원금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 겨우 10~20% 정도라고 안다. 발표자는 이지은(기부 대표). 그리고 관이든 민이든 항상 영혼이 아니라 조직과 사람이 아니라 프로젝트라는 ‘몸뚱이’만 심사한다. 그래서 지원사업은 일종의 미인대회다. 심사위원은 시민단체를 무대 위로 세워 놓고 그 ‘몸뚱이’만 기계적으로 어쩔 수 없는 권위의 시선으로 심사한다. 그런데 신라상회 기금은 그 돈을 100% 인건비로 써도 된다(예: 소셜임팩트뉴스). 진일보로 생각한다. 파격적인 시도고, 현재의 관행을 고려하면 위대한 전진 이다. 기금은 연간 6억 원까지 꾸준히 상향하고, 그 규모를 유지하겠다는 계획이다. 따로 인터뷰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CTR과 기부의 신라상회 기금 프로젝트가 영혼은 무시하고 몸만 ‘측정’하는 지원 관행에 충격을 줄 수 있길 기대한다. 파괴적 혁신의 증거로 민간재단은 물론이고 정부와 지자체에도 ‘신선한 논란거리’가 되면 좋겠다. ‘남태령’ 상영회가 있었다. 나는 다른 분과 대화하다가 중간부터 봤다. 사람들이 웃고, 눈물 흘렸다. 나도 문득문득 뭉클하고 찡했다. 그리고 GV가 있었다. GV는 ‘게스트 비지트’의 약자로 출연자나 감독이 영화 상영이 끝난 뒤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걸 의미한다. 한 출연자는 “남태령에서는 마음이 만져지더라고요. 진심이 만져졌어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2년이 흘렀지만, 그 기억으로 살아냈고,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라고도 말했다. 아름다운 말이다. 진심으로 느낀다. 남태령이라는 씨앗이 그분 마음속에 어느새 뿌려졌으리라. 그 씨앗이 여전히 자라고 있다고 느낀다. 아름다운 나무로 자라길 바란다. ‘남태령’ (2026, 김현지, 제작/배급: MBC경남 / 시네마달) 중 한 장면. 나는 ‘남태령’을 소중하고 훌륭한 다큐로 생각하지만, 이 다큐는 기성 시스템이 제작한 교양주의적 다큐다. ‘혁명’에 가까운 ‘변혁’의 목소리를 담고 전하지만, 그 형식과 시스템은 교양주의적 시스템의 안온한 체제 안(MBC)에 있고, 소규모 자본주의적 배급 시스템으로 상영된다. 그것이 잘못이라는 게 아니다. 더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더 많은’ 때론 더 과격하고 때론 더 논쟁적인 ‘남태령’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남태령’을 보면서, 보고 난 뒤에도, 난 이상헌과 나눈 인터뷰를 떠올렸다. 이상헌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게 광장이다. 거대한 도시의 광장, 집중화된 광장은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강력한 힘을 주지만, 작은 마을의 광장과는 의미가 다르다. 마을의 작은 광장에는 거기 사는 사람의 삶이 있고, 마을의 고유한 역사가 있다. 하지만 도시의 광장, 중앙집권화된 광장은, 거기에도 물론 긍정적이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지만, 그 광장을 떠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 텅 빈 광장을 떠나 우리가 되돌아가야 할 곳은 구체적 삶이고, 그런 삶이 담긴 마을이다. 그런데 그런 마을마저 이미 무너져 있다.” 이상헌(ILO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을은 사라지고 광장만 남았다” 중에서 게티이미지. 마음에 남태령이라는 씨앗을 심은 그가 광장을 꿈꾸고, 거대한 변혁을 꿈꾸며, 그 현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 그렇게 살아내겠다고, 살아가겠다고 말하는 것… 그건 아름답지만, 동시에 너무 잔인하다고 느꼈다. 너무 슬픈 연애 같다고 느꼈다. 너무 슬픈 짝사랑 같다. 그건 미래를 향한 희망이 아니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그리움이 담긴 회고담 같았다. 나에게도 그런 슬픈 연애의 기억은 있고, 그게 얼마나 아픈 건지 조금은 안다. 물론 이런 감상평은 주제넘은 짓이라는 걸 잘 안다. 그래도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안쓰러운 마음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나 자신에게 말한다. ‘너나 잘하세요.’ 사진 지리산이음. 남태령이 자라는 마음 한 켠 나무를 바라보며, 작고 초라하더라도 ‘나의 마을’에 다시 남태령이라는 씨앗을 뿌리고, 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저 슬픈 연애가 슬픈 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차마 그런 바람과 아쉬움을 담은 ‘주제 넘은’ 질문은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남태령’을 보며, 웃고, 눈물 흘렸다. 그 웃음과 눈물이 나의 어쭙잖은 감상평이나 질문보다는 훨씬 더 소중하게 지켜져야 하는 ‘순간’이다. 누구나 위로가 필요하고, 격려가 필요하며, 따뜻하게 안아줄 마음과 가슴이 필요하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그렇다. 올해 지리산포럼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마지막 날 오전에 늘 함께 동그랗게 모여 나누는 소감 시간이었다. 2시간 동안 3박4일을 함께한 160여 명 참석자 중에서 끝까지(?) 남은 40여 명이 소감을 나눴다. 이 소감 시간의 유구한 전통처럼,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EDGE) 활동가 한바다는 눈물을 흘렸다. “엉망진창 운동회를 이렇게 철저하게 계획했는데…” 나도 웃으면서 속으로 울었다. 올 한 해는 힘든 한 해라고 했다. 뭘 해도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도 했다. 다들 그럴 거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다들 힘들 거다. ‘엣지’ 한바다. 소감 시간 직후에 찍은 사진이라서 웃고 있지만, 눈가에 눈물 흔적이 조금 남았다. 나도 재작년 소감 시간 전통(눈물)을 이어가게 한 사람 중 하나다. 모두들 1분~3분 정도, 이제 벌써 과거가 되어버린 지리산포럼 2026의 기억이 더 희미해져서 사라지기 전에, 그 기억을 붙잡고, 종이비행기처럼 곱게 접어서, 지리산의 하늘로, 서로의 마음속 창공으로 날렸다. 그런데 그 비행기, 지금 어디에 있을까… 벌써 저 멀리로 날아가서 잘 보이지 않는다. 사회자 역할을 한 조아신의 특별한 배려로 지리산포럼 ‘공식 수다쟁이’인 나에게는 특별히 4분 정도가 허락됐다(강상우의 증언에 따르면 7~8분을 썼다고 한다. 다시 한번 죄송…). 여기엔 사연이 있다. 발제 후 토론시간에서 질문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고 아신과 ‘뒷담화’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신라상회에서 한 번, 남태령에서 한 번. 나는 내 궁금증을 내 질문을 꾹 참았다. 이유는 ‘초 치는 질문’이 될 것 같아서. 발제하는 강상우(CTR 부회장).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재단을 이끄는 빌 게이츠는, 제프리 엡스타인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존경받을 만한 기업인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가 캡콜드(김낙호 드렉셀대 교수)와 “게이츠 재단에서 일하려면 꼭 읽어야 할 두 권의 책” 인 ‘팩트풀니스’(2018, 한스 로슬링)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2011, 스티븐 핑커)에 관해 이야기한 적 있다. 착한 부자의 ‘인류 구원 프로젝트’가 가지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비용 편익적 성과 중심의 시장주의적 세계관을 운영체제로 탑재함으로써 드러낼 수밖에 없는 한계에 관해 캡콜드는 이야기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죽어간다. 그 귀한 목숨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게이츠 재단의 방법론은 코로나 백신 생산의 효율성을 높여 더 많은 백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방향성은 ‘효율적 이타주의’, ‘기능적이고 시장주의적인 박애주의’ 를 상징한다. 하지만 더 많은 생명을 살려야 한다면, 백신의 ‘특허’라는 자본주의적 시스템 그 자체에 관해 질문해 볼 수도 있다. 더 근본적인 더 본질적인 혁신, 혁명 까지를 염두에 두고 그 뿌리에서 시스템 자체를 의문시하며 질문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어제보다 조금씩 더 진보하는 낙관적인 미래와 그걸 증거하는 통계를 신뢰하면서 현재 시스템은 존중하는 방식, 그게 게이츠 재단의 방법론이다. 그리고 빌 게이츠가 몹시 좋아하는 위 두 권의 책은 그 철학과 방향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다. 나는 이 두 권의 책이 과대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두 책의 의의나 그 긍정적인 의미까지 부정하진 않는다. 나는 어느 방식이 더 우월하다거나 어느 방식으로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신라상회 기금이 이런 근본적인 철학과 방법론에 대한 대답까지 진지하게 토론하고 근심하면서 준비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 질문을 하진 않았다. 남태령 상영회에서 질문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 이미 신라상회 기금으로 저렇게 많은 단체 활동가들이 기뻐하고, 만족하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저 공감과 격려의 순간에 초를 치겠는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마음을 나누고 함께 환하게 웃는데 내가 뭐라고… 위대한 정신은 숭배받기보다는 비판받길 원한다고 니체는 말했지만, 대개는 뻘소리다. 참석자들과 대화하는 강상우와 이지은. 신라상회 기금을 준비한 CTR과 기부도 그리고 그 기금을 받고 조금이나마 영혼을 위로받은 활동가들도 모두 고생했다. 더 많이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면서 눈빛으로 마음으로 가슴으로 안아줘도 괜찮다. 그래서 나도 그저 박수로 눈빛으로 잘했다고 칭찬했다. 그 순간에는 그걸로 족하다고 느꼈다. 때론 침묵과 경청과 격려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아니 그 세 가지가 늘 부족하고, 소중하다. 그런 순간까지 불청객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런 생각을 가장 친한 친구(‘메롱’ 박미숙)에게 이야기했더니, “민노씨가 이제 조금 어른이 됐구나” 말해주었다. 나는 물론 나 자신이 여전히 아이라고 생각한다.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모자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들키지 않은, 부끄러운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래서 조금 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올해 지리산포럼 2026의 교훈은 이렇다. 초 치는 질문 금지. 그런 이야기는 뒷담화 시간에.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인 산내 초등학교. 따뜻한데 쓸쓸하다. 쓸쓸한데 따뜻하다… 우연히 만나 1시간 동안 비공식(?) 세션(주제는 좋은 책 추천 + ‘분노의 포도’ + 나쓰메 소세키 마음 + 수치심 + 리사 팰드먼 배넛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을 나와 함께 진행한 김은희, 썸머, 이지수. 올해 지리산포럼 2026 중 가장 즐겁고 유쾌했던 한때. 카페처럼 보이지만 CU편의점이라는 게 포인트. 넉넉(임현택, 지리산이름 이사장)에게 직접 그린 그림을 건네는 구관혁(꿈을짓는학교 사회적협동조합 대표). 홍윤희(무의 이사장). 가장 반가웠던 벗. 겸사겸사로 다시 시작한 연재 인터뷰를 현장에서 진행했다. 캠프 바로 옆에 있는 ‘검은집’. 식당 이름부터 뭔가 포스가 남다르다. 식당 주인장께서도 한 포스하신다. 물은 ‘절대’ 반출 금지! 수제비가 정말 별미다. 올핸 여기에서 두 번이나 먹었다. 내가 아주 애정하는 최요한 님. SKB에 다니면서 “돕는 사람을 돕는 일을 한다.” 지금까지는 마르셰 일을 주로 도왔는데, 영역을 아름다운가계로 확장했다. 포럼에는 12시간을 걸려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걱정돼서 전화를 대여섯 번은 했는데, 무사히 집에 잘 들어갔다고. 김희경 작가(전 여가부 차관)와는 발제와 관련이 높은 전작 ‘에이징 솔로’에 관해 인터뷰하기로 했다. 일단 ‘이상한 정상가족’과 ‘에이징 솔로’ 전자책 구매 완료! “자유를 향한 배움과 만남을 좋아하는 활동가” 이상화 님. 마지막 날 아침에서야 잠깐 인사드렸다. 남원시 인월한의원에서 허리에 침을 맞고 통증이 한결 호전되셨다고. ㅎㅎ 넉넉 님(임현택, 지리산이음). 왠지 좀 다가서기 어려운 포스를 품고 계신데, 주점 시간에 먼저 다가와 주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감사~! 역시 다음 인터뷰 후보고, 조만간 인터뷰할 예정. 숙소에서 캠퍼(들썩)으로 가는 오전 산책길에 항상 지나치게 되는 카페. 내년엔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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