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는 흘러간 후에나 그것이 어떤 것인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안에 있으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1914년 사라예보의 총격 시점에서 그것이 1차대전의 시작이라고 모두가 평가하진 않았을것이고, 1933년에 히틀러가 총리에 집권하던 시점에 그것이 2차대전과 어마어마한 학살로 이어질 거라고 평가했던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1910년에 나라를 잃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고, 1945년 7월에도 이 땅의 사람들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을거다. 오늘 방송은 그 내용을 듣고 이해하는 또는 이해하려는 사람보다는 "왜 김어준은 내 옆에서 이재명을 같이 욕하지 않냐?"는 녀석들이 바글바글하더라. 유튜브 실시간 채팅, 댓글, 커뮤니티 게시판에 분노의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저 능선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양쪽 끝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서 그랬듯이 양쪽 끝에 있는 녀석들은 언젠가 만나던데, 그런 녀석들은 조금만 길어도 읽지 못하니까, 아마 여기까지도 읽지 못하고 뒤로 돌아가기하거나 욕댓글을 달겠지. 오늘 박구용-김어준이 하려던 말의 주요 내용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를 둘러싼 주변의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이해하고,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진단하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사랑이나 우정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우리 언어에서 감정과 관련된 다른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마도 '사랑에서 우정으로'를, 신뢰의 관계에서 거래의 관계로 바뀌었다고 하면 좀 나았으려나. 여기다가 대고 뭐, 박구용이 사람을 고쳐쓰니 마니, 사랑이니 우정이니가 말이 되네 마네 하는... 한심한 얘기는 좀 안했으면 좋겠다. 오늘 방송은 어차피 들으려고 하지 않는 양쪽 끝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방송이 아니라, 아직 능선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현재 상황을 이해시키려는 거라고 본다. 나는 나름 힘들게 살았던 90년대를 회상할 때 '그 시기는 문화적으로 상당히 뛰어났던 시기였지'라고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적도 없지만. 앞으로 수십 년 지나서 죽기 전에 '그 시기는 야만의 시기였어'라고 회상할 것인지, '그 시기는 야만의 시기였지만, 우리는 잘 버텨냈지'라고 하려면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를 이해하는게 우선이다. 대책은 그 다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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