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라도 본 표정이군요. 놀라셨나요?" "솔직히 좀 의외네요. 저를 만나리라 예상하고 계실 줄 알았는데." "붉은 재앙. 하늘을 덮는 악몽. 무수한 공화국 젊은이의 피를 눈 위에 뿌린... 제국의 비늘 달린 것. 패악룡." "그 악룡이 공화국 수도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하고, 인간의 예복으로 몸을 감싼 채, 고분고분 연단에 올라 평화를 입에 담는 모습." "선전으론 이만한 게 없을 테니까요." "자, 건배." "... 건배." "다들 즐거워 보이네요. 안도한 표정이기도 하고요." "당신도 그런 표정이셨죠. 방금 전까지는. 후후." "그렇지만 공, 그거 아세요? 저는 이 평화가 벌써 지겹답니다." "전쟁 때는 참 좋았어요. 늘 공께서 절 만나러 달려와 주셨잖아요." "절 죽이겠다느니, 반드시 막겠다느니." "그때는 정말이지, 멋진 얼굴을 하고 계셨는데." "전쟁이 없다면 그것도 이젠 다 끝이겠죠." "그러니 이 평화란 것이, 제게는 조금 고약하게 느껴질 수밖에요."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부수려고요. 마음에 안 드니까." "공화국이 애지중지하는 낡은 건물 몇 개 부수고. 광장에 불이라도 질러주면 되겠죠." "무턱대고 하는 일은 아니랍니다. 어떤 제국인들은... 음, 전쟁을 참 좋아하거든요. 저와는 결이 다르지만요." "아, 벌써 시작했나 봐요." "아니면 어린아이들이 폭죽놀이라도 하는 걸 수도 있고요. 후후..." "두렵지도 않나?" "뭘 말씀하시는 걸까요?" "아... 푸흐흐... 실례." "글쎄요. 어떤 비유가 적절할까요." "음... 혹시 공은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이 두려워 길을 건너길 주저하시나요?" "물론, 아니시겠죠." "제게 벌레 이상의 의미는 없군요. 당신 외의 인간은..." 폭발음. 이번에는 모두가 들었다. 음악은 멎고, 수군거림이 번지듯 빈자리를 채운다. "흐응. 아쉽지만 헤어질 시간이네요." "기다려." "기대하고 있을게요." "언젠가 당신이 내게 굴복해." "내가 당신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될 그날을." "그러니, 또 나를 만나러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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