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7년, 여진을 정벌하기 위해 북쪽 국경으로 진격한 윤관과 17만 고려군. 윤관은 대규모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을 준비했는데, 윤관은 공격에 나서기는커녕 예전에 사로잡아둔 여진족 인질들을 석방하겠다며 여진의 추장들을 불러들인다. 이후 한곳에 모인 400여 명의 여진 추장에게 술과 음식까지 대접하는데... 병마판관 김부필과 녹사 척준경이 이끄는 복병이 기습해 추장들을 모두 죽였다. 관문에 이르러 의심을 품고 들어오지 않은 50~60명도 최홍정이 기병을 이끌고 쫓아가 몰살했다. 완안부에서 보낸 사신 두 명도 함께 살해당했다. 이후 윤관의 고려군은 차례대로 여진의 성을 함락시키고, 고려는 새롭게 확보한 여진의 영토에 아홉 개의 성, 즉 ‘동북 9성’을 축조한다. 하지만 당대에도 조정에서 비판받았고 유목민들이 중요시한 그 접대의 관습을 어긴 만행 때문에 그나마 친하게 지내려고 했던 여진족조차 등을 돌렸다고 한다. 결국 남은 여진족들이 원한에 똘똘 뭉쳐 매서운 반격을 시작하였다. 갈라수 전투에서 한반도 역사상에 남을 대패를 당하고 결국 동북 9성도 돌려주면서 결과적으로 고려의 여진 정벌은 실패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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