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가
← 이전 글
다음 글 →

불러오는 중

↔

화면을 좌우로 스와이프하여 다음/이전 글로 넘겨보세요

📰
이슈
- ·
0
|

거짓말이 사라진 날

어느 날 갑자기 진실만이 존재하는 세계가 되었다. 누구도 거짓을 말하지 못했다. 그날 아침 내가 처음 들은 진실은 아내의 입에서 나왔다. “당신이 싫어진 건 아니야.” 아내는 식탁에 앉아 식어버린 커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술이 몇 차례 움직였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말하지 못하는 문장이 목 안에 걸려 있는 사람처럼 가슴을 누르더니, 마침내 말을 이었다. “다만 당신이 퇴근했을 때보다 퇴근하기 전의 집이 더 편해.” 나는 대답하려 했다. 나도 알아. 그런데 ‘알아’의 첫 음절에서 목이 막혔다. 나는 정말로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짐작은 했고, 모른 척했으며,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한참 만에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처음 들었어.” 그것이 진실만 남은 세계에서 내가 한 첫 번째 말이었다. 그날 인류는 아주 빠르게 세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거짓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둘째, 글로도 쓸 수 없다. 셋째, 그렇다고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사실이 발견되면서 인류는 가까스로 멸망을 피했다. 처음 몇 주간은 참혹했다. 생방송 중이던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라는 문장에서 ‘최우선’이라는 단어를 발음하지 못했다. 그는 입을 벌린 채 십일 초 동안 정지해 있다가 물을 마셨고, 방송은 긴급히 중단됐다. 제약회사 대표는 신약 발표회에서 “환자의 생명을 위해 개발했습니다”라고 말하려다 헛구역질했다. 이어진 주주총회에서는 “시장 선점을 위해 개발했고, 그 과정에서 환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정확히 정정했다. 결혼식장에서는 신랑 세 명이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라는 문장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중 한 명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영원히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랑하고, 가능하면 오래 노력하겠습니다.” 그 결혼식만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광고업계가 가장 먼저 무너졌다. 최고의 맛, 당신만을 위한, 자연 그대로의,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단 하나의 선택. 이런 표현들은 하나씩 자막에서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광고 문구는 어느 냉동만두 회사가 내놓은 것이었다. ‘밀가루와 고기와 몇 가지 다른 것을 넣었습니다. 배가 고프면 맛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광고는 그해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법원은 잠시 한가해졌다가 이전보다 더 바빠졌다. 피고인이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재판이 간단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범죄자들은 곧 침묵할 권리를 발견했다. 외교도 마찬가지였다. 정상회담은 짧아졌고 공동성명은 길어졌다. 아무 의미도 없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단어가 필요했다. 종교계는 의견이 갈렸다. 신이 인간에게 정직을 명령했다는 쪽과, 악마가 인간에게서 자비로운 거짓말을 빼앗았다는 쪽이 맞섰다. 양측 모두 상대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었으므로 말에는 아무런 제약도 없었다. 그제야 네 번째 사실이 발견됐다. 사람은 틀린 말을 할 수 있었다. 자기가 옳다고 믿기만 한다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은 여전히 지구가 평평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자신이 구세주라고 믿는 사람은 자신이 구세주라고 선언할 수 있었다.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못 하게 되었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의 연설을 예전처럼 계속했다. 진실만 존재하게 되었지만 진실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사라진 것은 거짓이 아니라, 자신이 거짓이라고 알고 있는 말뿐이었다. 그 발견 이후 세상은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믿는 법을 배웠다. 정확히는, 믿고 싶은 것을 진심으로 믿는 법을 배웠다. 기업은 직원들에게 비전을 주입했고, 국가는 관료들에게 확신을 교육했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결백하다는 말을 반복해 스스로 믿게 만들었다. 연인들은 거울을 보며 “나는 행복하다”고 연습했다. 충분히 오래 반복하면 어느 순간 목이 열렸다. 거짓말이 불가능해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능력은 정직이 아니었다. 자기기만이었다. 나는 당시 주간지 기자였다. 세상이 진실 때문에 뒤집혔는데 진실을 파는 직업이 망하지 않을 리 없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기자를 찾았다. 정치인에게 다시 질문해달라고, 기업의 진심을 밝혀달라고, 배우자에게 누구를 사랑하는지 물어달라고 했다. 그러다 곧 깨달았다. 우리는 진실을 알아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대답하지 않는 사람을 오래 쫓아다니는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신문사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취재원은 거짓말을 못 했지만 사실을 말할 의무도 없었고, 기자 역시 기사에 ‘모든 진실’을 담았다고 쓸 수 없었다. 나는 마지막 호의 마지막 기사에 이렇게 적었다. ‘여기에 적힌 내용은 내가 확인한 사실이다. 확인하지 못한 사실은 적지 않았고, 확인하고도 적지 않은 사실이 있다.’ 편집장은 그것을 읽고 한참 웃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정정보도문을 썼네.” 우리는 그날 회사를 닫았다. 이후 정부는 ‘진실현상관리청’을 만들었다. 이름을 정하는 데만 석 달이 걸렸다. ‘진실부’라는 이름은 지나치게 정직하지 않았고, ‘국가정직위원회’는 위원 중 누구도 자기 기관이 정직하다고 장담하지 못해 폐기됐다. 나는 관리청의 기록관으로 들어갔다. 우리 부서의 정식 명칭은 ‘발화불능 및 예외문장 조사과’였다. 사람이 어떤 문장을 말하지 못했는지 조사하고, 반대로 거짓임이 명백한데도 발화에 성공한 문장을 수집하는 곳이었다. 예외는 대부분 설명할 수 있었다. 죽은 남편이 살아 있다고 말한 노인은 치매 환자였다. 자신이 새라고 말한 소년은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번 한 번만 하고 끊겠다”고 말한 도박중독자는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우리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속이는 방식에 번호를 붙였다. 망각형, 확신형, 충동형, 신념형, 인지결손형. 10년 동안 분류되지 않은 예외는 없었다. 이수민이라는 아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수민이는 열두 살이었다. 급성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지 2년째였고, 우리가 찾아갔을 때에는 치료를 중단한 상태였다. 문제가 된 문장은 어머니가 촬영한 영상에 담겨 있었다. 영상 속 수민이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굴은 부어 있었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 어머니가 젖은 수건으로 아이의 이마를 닦으며 물었다. “많이 아파?” 수민이는 카메라를 보지 않고 어머니를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하나도 안 아파.” 담당 의사는 그 순간 아이가 심각한 통증을 겪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진통제 투여 기록이 있었고, 심박수와 혈압도 그것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수민이는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터뷰에서 내가 물었다. “그때 정말 안 아프다고 생각했니?” “아뇨. 엄청 아팠어요.” “그런데 왜 안 아프다고 말했어?” “엄마가 울 것 같아서요.” “말이 그냥 나왔니?” “네.” “목이 막히거나 숨이 안 쉬어지지는 않았고?” “네.” “네가 한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니?” 아이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네. 그런데 하면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그 영상은 즉시 국가기밀로 지정되었다. 전 세계 연구기관에서 사람들이 왔다. 언어학자, 신경과학자, 철학자, 신학자, 마술사도 한 명 왔다. 마술사는 사흘 만에 돌려보냈다.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가장 정직한 사람이었다. 수민이는 수백 가지 검사를 받았다. “하늘은 초록색이다.” 말하지 못했다. “나는 백 살이다.” 말하지 못했다. “딸기는 맛이 없다.” 수민이는 딸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말하지 못했다. “우리 엄마는 못생겼다.” 말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화를 냈고, 실험 설계가 부적절했다는 이유로 해당 항목은 폐기됐다. 마지막으로 연구원이 물었다. “지금 아프니?” 수민이는 어머니가 방 안에 있을 때는 “안 아파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어머니를 내보내자 “아파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처음에 어머니의 존재가 아이의 인식을 바꾼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수민이는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알고 있었다. 그것은 최초의 진짜 거짓말이었다. 정부는 흥분했다. 군은 수민이의 뇌를 연구하면 적을 속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업은 광고산업이 부활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종교계는 아이를 성녀 또는 악마로 선언했다. 양쪽 모두 진심으로 믿었으므로 선언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수민이가 죽으면서 연구는 끝났다. 겨울이 시작되던 날이었다. 마지막 순간 수민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엄마, 나 괜찮아.” 아이는 괜찮지 않았다.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문장은 방해받지 않았다. 수민이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우리에게 마지막 영상을 넘겼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이 아이가 왜 거짓말할 수 있었는지 알아내시면,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나는 알려드리겠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목이 막혔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알아내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때부터 23년이 걸렸다. 수민이 이후에도 같은 예외가 발견됐다. 붕괴된 광산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작업자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산소 충분해.” 계기판에는 열일곱 분이 남아 있었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침몰하는 여객선의 승무원이 승객들에게 말했다. “구조대가 오고 있습니다.” 무전기는 이미 고장 난 뒤였다. 전쟁터에서 복부에 총상을 입은 병사가 함께 고립된 신병에게 말했다. “나는 걸을 수 있어.” 그는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대피소의 아버지가 아이에게 말했다. “밖에서 나는 소리는 불꽃놀이야.” 그는 그것이 폭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공통점이 없어 보였다. 직업도, 국가도, 종교도 달랐다. 문장의 내용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예외문장을 말한 사람들은 모두 두 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 그 말을 믿게 되면 상대가 조금 덜 두려워한다는 것. 관리청은 이 현상을 ‘이타적 허위 발화’라고 이름 붙였다. 나는 그 명칭이 싫었다. 너무 정확해서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준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시작했다. 돈을 기부한 사람이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실패했다. 마음 한편에서 칭찬을 기대하고 있었다. 연인이 상대를 위해 헤어지는 척했다. 실패했다. 자신도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음식이 맵지 않다고 말했다. 성공했다. 그러나 본인도 함께 먹을 예정이라는 조건을 추가하자 실패했다. 몇 년에 걸친 실험 끝에 규칙이 드러났다. 거짓말로 인해 생기는 이익이 말하는 사람에게 단 하나라도 돌아오면 문장은 차단됐다. 상대가 진실을 모름으로써 얻는 평온만 남고, 그 대가를 말한 사람이 떠안는 경우에만 거짓말은 허용됐다. 인류는 이를 다섯 번째 진실이라고 불렀다. 거짓말이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한 거짓말만 사라진 것이었다. 발표 이후 세상은 다시 한번 뒤집혔다. 사람들은 수민이처럼 말하고 싶어 했다. “걱정하지 마.” “나는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나 대부분은 말하지 못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서 자신도 편해지고 싶었고, 괜찮다고 말해 상대의 부담을 피하고 싶었으며,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민이의 거짓말은 따라 할 수 없었다. 따라 하는 순간 그것은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행동이 됐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은 사랑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과학자들은 자기보존 욕구가 완전히 배제된 발화라고 설명했다. 철학자들은 사실적 진실보다 높은 윤리적 진실이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나는 어느 쪽도 완전히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민이는 세상을 구하려고 거짓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엄마가 울 것 같았을 뿐이다. 아내는 진실현상이 시작된 지 31년째 되던 해에 병에 걸렸다. 처음에는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었다. 다음에는 약속을 잊었고, 그다음에는 내가 누구인지 잊었다. 아내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게 된 날, 나는 이상하게도 우리가 식탁에서 나눴던 첫 번째 진실을 떠올렸다. 당신이 퇴근하기 전의 집이 더 편해. 그 말을 들은 뒤 우리는 이혼하지 않았다. 행복하게 살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불행하게 살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말과 하지 않는 편이 나은 말을 배웠다. 아이를 낳지 않았고, 같은 집에서 늙었으며, 가끔 여행했고, 자주 침묵했다. 그것이 사랑이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입이 열리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아내의 마지막 겨울, 병실에 들어서자 아내가 물었다. “누구세요?” 나는 이름을 말했다.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사람인데.” “당신 남편이야.” 이 문장은 말할 수 있었다. 법적으로도 사실이었고, 내게도 사실이었다. 아내는 한동안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물었다. “우리 사이가 좋았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좋았다고 하기에는 외로운 날이 많았고, 나빴다고 하기에는 함께한 날이 너무 많았다. 진실만 허용되는 세계에서도 어떤 질문은 진실 하나로 대답할 수 없었다. 아내가 다시 물었다. “나를 사랑했어요?” “응.” 그 말은 쉽게 나왔다. “내가 당신을 사랑했어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아는 진실이 아니었다. 아내는 창밖을 보았다. 눈이 오고 있었다. “미안해요. 기억이 안 나서.”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 했다. 목이 막혔다. 괜찮지 않았다. 아내가 나를 잊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서러웠다. 함께한 시간이 이제 내 머릿속에만 남았다는 것이 억울했다. 마지막 순간만큼은 나를 알아봐 주기를 바랐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수민이처럼 거짓말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아내의 호흡이 짧아졌다. 간호사가 가족에게 연락하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연락할 사람이 나뿐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침대 옆에서 아내의 손을 잡았다. 아내가 눈을 떴다. “무서워요.” 나는 알고 있었다. ‘무서워하지 마’는 거짓이었다. 무서운 일이었으니까. ‘아무 일도 없을 거야’도 거짓이었다. 곧 죽을 테니까. ‘내가 옆에 있어’는 사실이었지만, 아내가 알고 싶은 진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평생 진실을 기록했고, 세상이 허용한 문장들을 분류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야 진실은 정확한 문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문장이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한마디를 더 보탰다. “나도 곧 따라갈게.” 목이 막히지 않았다. 나는 건강했다. 당장 죽을 생각도 없었다. 언제 죽을지도 알 수 없었다. ‘곧’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장은 허용되었다. 아내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됐어요.” 그것이 아내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다음 날 관리청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문장: 나도 곧 따라갈게. 발화자 인식: 사실이 아님을 명확히 인지. 발화 목적: 임종자의 공포 완화. 발화자 이익: 판단 불가. 나는 ‘이익 없음’이라고 적을 수 없었다. 그 말을 하고 나 역시 위로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존 규칙과 맞지 않았다. 수민이의 거짓말은 오직 어머니를 위한 것이었지만, 내 거짓말은 아내와 나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보고서는 반려됐다. 나는 다시 썼다. 두 번째 보고서에는 분류와 분석을 모두 지우고 한 문장만 남겼다. ‘아내가 혼자 죽지 않기 위해 한 말이며, 나 역시 혼자 남지 않기 위해 한 말이다.’ 이번에는 승인됐다. 그날 관리청은 33년간 유지했던 결론을 수정했다. 거짓말이 허용되는 조건은 희생이 아니었다. 사랑도 아니었다. 거짓말을 통해 누구도 현실보다 가난해지지 않는 경우.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진실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혼자 감당하던 진실을 잠시 함께 나누게 되는 경우. 세계는 그것을 거짓으로 판정하지 않았다. 진실현상이 시작된 지 40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여전히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정치인은 침묵하고, 기업은 믿음을 만들며, 연인은 서로에게 말할 수 있는 만큼만 말한다. 세상이 특별히 좋아졌다고는 할 수 없다. 전쟁은 계속되고 사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사람을 속이는 방법은 많았다. 다만 가끔 불가능해야 할 문장이 세상에 나타난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아이에게 아버지가 말한다. “눈 감았다 뜨면 끝나 있을 거야.” 돌아오지 못할 구조작업에 나서는 소방관이 동료에게 말한다. “금방 올게.” 자식의 장례식장에서 늙은 어머니가 관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엄마 걱정하지 말고 가.” 그 말들은 사실이 아니다. 말한 사람도 안다. 그러나 세계는 막지 않는다. 나는 이제 진실현상관리청에서 퇴직했다. 오래전 아내와 살던 집에서 혼자 지낸다. 가끔 식탁 맞은편을 보며 아내에게 말을 건다. 죽은 사람은 듣지 못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오늘 있었던 일과 날씨를 이야기하고, 당신이 없는 집은 생각보다 조용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는 언제나 같은 말을 한다. “내일 보자.” 그 문장은 매번 아무런 방해 없이 나온다. 처음에는 그것이 내가 곧 죽을 징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나는 살아 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진실만 존재하는 세계가 되었던 날, 우리는 거짓말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사실과 진실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배운 것이다. 아내는 내일 오지 않는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내일이 올 때마다 나는 아내가 없는 하루를 다시 살아낸다. 함께 살았던 사람이 남긴 방식으로 커피를 내리고, 그녀가 좋아했던 쪽의 커튼을 열고, 저녁이면 빈 의자에 오늘의 일을 들려준다. 그렇다면 ‘내일 보자’는 약속은 아직 깨진 것이 아니다. 나는 내일도 아내를 볼 것이다. 기억 속에서든, 꿈속에서든, 언젠가 내가 도착할 곳에서든. 세계도 그것을 아는 모양이다. 오늘 밤에도 내 목은 열려 있다. “내일 보자.” 불을 끈다. 대답은 없다. 그래도 거짓말은 아니다.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회원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

© DAMP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