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어그로 끌려는게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종교(특히 기독교)에 실증적 연구들을 논리적으로 생각해본 결과이고 에피쿠로스, 데이비드 흄 의 악의 문제 , 윌리엄 로우의 증거적 악의 문제, 앨빈 플랜팅가의 자유의지의 변론, 신적 숨음(divine hiddenness)등의 논제들에 대해 고찰해봄. 신앙의 힘을 제외하고 최대한 논리에 기반하여 생각해봤다. 그 기초에는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정의가 있다. 1.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다. 2. 하나님은 절대선이다. 3. 하나님은 전 인류를 사랑한다. 1. 전지전능 and 절대선 이라는 개념이 가능한가? 최소한 지금까지 봐온 인류역사(전쟁의 역사라고 봐도 되겠지)는 전쟁이 끊긴적이 없다. 이러한 인류를 정말 사랑했다면 왜 온갖 악행을 저지를 수 있게 설계되었는가?->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악을 선택하는것 까지 제한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의지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죽어서 가는 소위 천국이라는 곳에서는 모두가 선을 행함.-> 자유의지 속에서 선을 행하는 자만 선택받아 천국에 가기 때문이라고 반박가능 그러면 왜 지구에서는 똑같은 것을 하지 않는가?-> ????? 전인류가 구원받길 원한다면 도대체 왜 지구에서 실행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을 추려서 그곳에서만 ?....또 선택은 커녕 태어나자 마자 죽어버린 아이들과 어린이들은 ? 절대선과 전지전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면 인류에게 자유의지를 주되 악을 행하지는 못하게 해야하는게 선아닌가? 여기에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유의지가 다시한번 나오겠지만 자유의지로 인해 벌어지는 극단적인 악(살인,전쟁 등)을 그냥 놔둘 필요가 있나 하는점이 포인트이다. 왜 지구, 현실에서도 천국과 같은 선의 세상을 만들지 않는가? 2. 진리를 설파하는데 인간에게 엄청나게 의존적인 시스템을 이용. 전지전능한 신이 절대적인 진리를 설파하는데 있어 원문 → 필사 → 번역 → 정경화 → 해석 → 교단 → 개인 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원초적인 루트로 진리를 전달하려고 함. 근데 인간적인 루트는 필시 휴먼 에러를 동반한다. 이것이 전지전능한 신이 자신의 진리가 인류의 손에 맡겨졌을때 교파가 갈라지고 서로 전쟁을 통해 엄청난 악이 발생할 것 이라는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 전지전능 and 인류애가 넘치는 신이라면 수많은 방법중에 인간에 손에 맡길리가 없다. 심플하게 왜 전인류에게 동시에 나타나서 구원의 길인 진리를 설파하지 않았는가? 훨씬 더 임팩트 있고 정확한 길이 있었음에도 선택하지 않음. 3. 전인류를 사랑하고 절대선이지만 평등하지 않은 신? 예수는 특성시간대에서 인간의 가장 원초적 공포를 기원에 둔 기적들을 보여준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무력감인 대자연의 극복 = 파도를 잠잠하게 하고, 물위를 걷거나 인류의 영원한 극복과제 = 죽음의 초월 굶주림에 대한 원초적 공포 = 음식을 대량소환 그리고 질병에 대한 공포 = 환자들을 치료 전지전능한 신이 펼쳤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하고 국지적으로 보인다. 그 당시 노예로 살고 불쌍한 삶을 살다 죽었던 전세계의 어린아이들, 가여운 사람들을 다시 부활시켜주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어째서 전인류를 사랑하는 신이 특정지역, 특정민족, 특정시기에만 기적들을 보여줬는가? 더 나아가 그 강력한 기적을 직접 현장에서 본 사람들과 2천년뒤에 전승으로 듣는 이들이 갖게 되는 신앙심의 차이는 너무나 자명한 것 이고 행동양식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도 명백하다. 그것은 그 자체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것을 평등하다고 볼 수 있나? 당시 기적을 눈앞에서 본 사람과 현대인의 마음가짐이 같을 수 있겠는가 하는 그냥 심플한 질문이다. 이것도 신의 뜻이며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게 바로 코즈믹호러의 근간이라는 점이다. 4. 성격이 변하는 신의 존재. 구약에서 신은 어떤 특정 민족을 멸하라(이것 조차 말이 안되는게 다 하나님의 자식이 아닌가?...)고 한다든지 수많은 인류중 단 한사람이였던 욥기의 10명의 자식과 100명이 넘는 종들을 싹다 죽이는 위력행사(굉장히 마이크로하게 컨트롤 한다는 느낌이 든다.) 를 보면 초기에는 굉장히 디테일하게 인류에 개입한다. 욥기가 만약 하나님이 한짓이라는걸 알았다면 그야말로 코스믹 호러 그자체 였을것이다. 근데 신약에 들어서는 자신의 대리인을 보내서 원수를 사랑하라, 병자도 사랑하고 이웃을 아껴라라고 갑자기 득도라도 한것처럼 스탠스를 바꾼다. 그리고 본인은 이제 질린것인지 더이상 마이크로 컨트롤을 하지 않는다. 동일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구약과 신약에서 폭력/심판/적에 대한 태도/인간에 대한 관계가 상당히 다르게 묘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이 실제로 신의 계시가 발전한 것인가, 아니면 시대에 따라 신을 이해하는 인간의 관점이 변화한 것인가? 전자라면 애초에 전지전능한 신이 왜 계시를 발전시켜야 하는건지? 왜 진리를 가진자가 변화해야하는건지도 이해는 되지 않는다. 5. 종합 어찌 되었건 하나님이 있고, 없고를 논증하거나 증명해낼 방법은 없다. 다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전지전능 and 절대선 and 전인류를 구원하고싶은)은 없다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그래도 최소한 전지전능이라는 부분만 인정해주자면 그때부터 코즈믹 호러와 같다.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에 인간이 느끼는 무력감과 광기는 그 자체로 공포다. 내 말대로 안하면 영원히 고통받은 불타는 세계로 끌고가 영겁의 고문을 받게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사탄과의 내기로 당신의 자녀를 모두 몰살해버리는 신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만약 하나님이 인간의 도덕적 기준을 초월해 있고, 인간은 그의 선함을 이해할 수 없으며, 그의 판단 기준 역시 인간에게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존재가 실제로 선한지 악한지를 인간이 판별할 방법도 사라진다. 그 순간 인간에게 남는 것은 사랑받는 자녀라는 확신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를 초월하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무력감이다. 선한지 악한지 알 수 없는 절대자의 존재? 이것은 코즈믹 호러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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