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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자들엔 담기지 않은 [육영수 음모론은 왜 생겨났나?]

구미 CGV에서 영화 《암살자들》 상영이 중단되었다고 하죠. 영화조차 다 담아내지 못한 실제 팩트들을 바탕으로, 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둘러싼 의혹과 음모론이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는지 짚어드리겠습니다. 1. 상식 밖의 경호 구멍: 입국부터 행사장 잠입까지 문세광이 위조 여권으로 비자까지 받아 총기를 들고 한국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당일 경호실의 느닷없는 '외국인 우대 조치' 덕분에 문세광은 소지품 검사조차 제대로 받지 않고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립극장 행사장에 버젓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시작부터 경호 실패의 극치였습니다. 2. 현장 점유와 탄환 은폐: 명백한 증거 훼손 사고 직후의 대처는 더 기괴합니다. 사건 당일 밤, 청와대 경호실은 정식 수사·감식반이 들어가기도 전에 행사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현장의 핵심 탄환들을 자체 수거해 갔습니다. 그리고 그 탄환들은 끝끝내 수사본부나 법원에 공식 제출되지 않았습니다. 물리적 핵심 증거를 수사선상에서 빼돌려 감추어버렸으니, 이 사건이 '물증 없는 의문사'로 남은 것입니다. 경호실은 명백한 현장 은폐자입니다. 3. 중정과 경호실의 알력, 그리고 정권 차원의 묵인 당시 앙숙 관계였던 중앙정보부는 이 기회에 경호실의 책임을 제대로 파헤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경호실은 청와대 울타리 뒤에 숨어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고, 박정희는 이를 뻔히 알면서도 사실상 묵인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영화에 들어갔다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그 결과 수사는 '정권 안보와 도덕성에 가장 덜 치명적인 방향'으로 번개불에 콩 볶아먹듯 날림 종결되었습니다. 최고 권력의 묵인과 정권 보위를 위한 정보기관의 속성이 결합해 진실 규명 대신 각본 맞추기를 택한 셈입니다. 4. 장봉화 양 사건이 증명한 조작의 실체 합창단원 장봉화 양의 피격이 그 대표적 증거입니다. 사건 당시에는 장봉화 양 역시 문세광의 흉탄에 맞았다고 발표하며 덮었지만, 15년 뒤인 1989년 서울시경 감식계장의 양심고백으로 경호관의 오발탄이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경호원의 실수가 정권 도덕성에 치명적이라는 이유로 무고한 여고생의 피격 원인까지 날조해 은폐했는데, 과연 감춰진 게 이것 하나뿐이겠습니까? 5. 실패한 자들의 영전과 권력 독점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은 사건 이후입니다. 국가 원수의 배우자가 백주대낮에 살해당하는 치명적인 경호 참사가 벌어졌음에도, 실질적 책임 라인에 있던 이들은 축출되기는커녕 주요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이후 차지철 체제로 넘어가면서 경호실의 권력은 오히려 중앙정보부를 억누를 정도로 비정상적인 괴물이 되었습니다. 박정희가 경호실에 속아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정권 차원에서 사건의 진실을 투명하게 규명하기보다는 이 비극을 활용해 유신 정권이 처한 곤궁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는 데 급급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현장의 총알을 감추고 수사를 왜곡해 음모론의 씨앗을 뿌린 주체는 다름 아닌 정권과 경호실 자신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그들이 억울해할 이유는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살아있는 박정희의 유가족에 고통을 외면했다는데 그들은 장봉화 양의 유가족들에게 어떤 사과를 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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