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충한 일요일 오후, 혼자 산에 숨이 있었던 이유는 친구에게 얻은 미라화나를 피워보기 위함이었다. 다른 애들처럼 술집이나 기숙사에서 피워도 되지만, 완전히 '그런 애'로 비춰지는 건 피하고 싶었다. 실제로 코너는 그런 애도 아니었으니까. 그리 깊이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걸어서는 15분 정도 정도 걸리는, 산의 초입이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그런 곳에서 웬 바이크를 탄 남자들이 모여서 놀고 있었다. 코너보다는 훨씬 나이대가 있어 보이는 이들이었고 술을 마시는 사람, 알몸으로 수영하는 사람, 태닝하는 사람으로 다양했다. 심지어 해도 없는 아주 흐린 날이었는데도 말이다. 그중 키가 2미터는 될 것 같은 사람이 코너의 눈에 들어왔다. 상의를 탈의하고 가죽 바지만 입고 있었다. 몸이 정말 좋아 보였다. 어깨와 가슴, 배에 과하지 않은 근육이 콕콕 박혀있었고 팔과 다리가 길었다. 모델일까?라고 생각하며 조금 더 가까이서 그를 보기 위해 한발 내디뎠을 때, 버려진 음료 캔을 밟고 말았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당장이라도 달려와서 자신의 멱살을 잡거나 뭘 쳐다보냐고 고함을 지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서 코너를 바라봤다. 코너도 그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요동치는 심장을 몰래 달래면서. 떨리는 더리를 겨우 진정시키면서. "이름이 뭐야."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묻는 대신, 정체가 뭐냐고 묻는 대신 그는 코너의 이름부터 물어봤다. 코너 맥나마라, 아주 정직하게도 제 본명을 줄줄 읊었다. 그는 자신을 레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수술 흉터가 짙게 남은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손에 쥐고 있는 거 마리화나야? 동그란 머리통이 위아래로 끄떡였다. 같이 한잔할래? 저기 가면 네 또래도 있어. 코너는 어째서인지 거절할 수 없었다. 레이라는 이름의 남자를 따라 물가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불이 피워져 있었다. 정말 코너의 또래도 있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코너보다는 다섯 살 정도 많았다. 한 남자가 유독 그 스물다섯 살짜리 남자를 옆에 끼고 있었다. 케이인지 테이인지 뭐라고 부른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았다. "먹을래?" 레이는 꼬챙이에 마시멜로를 하나 끼워 코너에게 내밀었다. 모닥불 앞에 모여 앉은 이상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마리화나는 한 모금씩 돌아가며 빨았더니 금세 닳아 없어졌다. 불에 구운 마시멜로를 신중하게 한 겹 한 겹 벗겨 먹는 데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산은 빨리 어두워지니 절대 오후에 올라가지 말라던 뉴스 내용이 떠올랐다. "저 가야겠어요. 너무 어두워져서..." "그래." 코너는 그 자리에 있는 모두와 작별 인사를 했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다시 아까 그 나무쪽으로 걸어가는데 나무와 가까워질수록 방향감각이 둔해졌다. 아까 나무 뒤에서 이렇게 저쪽을 바라봤으니까 내가 이쪽 길로 올라왔던 것 같은데... 도무지 어느 방향으로 올라왔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집이 어디야. 데려다 줄게." "아, 그럼 큰 길까지만 혹시 부탁드려도 될까요?" "집까지 데려다줄게. 가자." 레이의 바이크를 얻어 타기 위해 코너는 다시 모닥불에 앞에 모인 사람들 곁을 지나갔다.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자 몇몇 남자들이 코너를 묘한 눈길로 응시했다. 대부분 둘둘 짝을 이루고 있었다. "제가 기숙사에 살거든요. 그래서 큰길까지만 데려다주시면 아직 문 연 식당들도 많고 산보다는 밝을 테니까 혼자 갈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헬멧은 보기보다 훨씬 무거웠다. 제대로 썼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잘못됐는지 레이가 코너의 헬멧 윗부분을 주먹으로 콱 내리친 다음 턱끈을 매만지니 훨씬 편해졌다. 바이크 뒷자리에 탄 건 처음이었다. 어딜 잡아야 할지 몰라 다리 사이에 남은 시트 공간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레이가 출발하지 않고 있던 이유가 자신의 허리를 잡지 않아서란 사실을 조금 늦게 깨닫고 서둘러 그의 허리를 잡았다. 가죽자켓 원단만 살짝 쥐고 있으니 레이가 코너의 손을 겹쳐 잡고 자신의 허리를 아예 두르게끔 만들었다. 아빠도 삼촌도 이렇게 안아본 적이 없었다. 아주 어릴 때라면 몰라도, 적어도 코너가 기억하는 한 남자끼리 이런 자세로 껴안은 적은 없다. 첫 바이크 시승이 산길이라니, 바퀴가 돌부리에 걸려서 바이크와 함께 하늘 높이 떠오르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해서 넘어지거나 어디 멀리 날아가 버리는 불길한 장면만 떠올랐다. 기어코 학교 주변 번화가까지 코너를 데려다준 레이였다. 그는 코너에게 헬멧을 돌려받으면서 일요일에 종종 그곳에서 모이니 심심하면 놀러 오라고 했다. 그럴까요?라며 햇살처럼 웃는 얼굴을 레이가 차갑게 노려봤다. 하지만 코너는 그 차가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참 친절하고 잘생긴 어른 남자라고만 생각했다. "그럼 자주 갈지도 모르겠어요. 가족들도 멀리 살고 신입생이라 아직 학교 친구도 별로 없거든요. 주말이면 항상 혼자 있게 돼서... 죄송해요! 이렇게 붙잡고 있으면 안 되는데.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이는 코너가 쥐고 있던 핸드폰을 말도 없이 빼앗아 제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매주 모이는 건 아니니까 놀러오고 싶으면 미리 연락해." "네... 감사합니다." 시트 밑의 보조 공간에 코너가 썼던 헬멧이 쏙 들어갔다. 그는 바이크를 몰아 빛처럼 빠르게 사라졌고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코너를 힐끔거렸다. 바이크 슈트를 입은 남자와 너무 앳된, 흙 묻은 청바지 차림의 소년은 그들의 안줏거리가 되기 충분했다. 정확히 일주일 뒤, 코너는 일요일 아침부터 레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2주 연속 산에서 놀 것 같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르니까 확인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오늘은 거기 안 가세요?' 전송하고 나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 예의 없는 짓을 해버렸단 생각에 진땀이 났다. 6시 55분이 7시로 바뀌는 순간, 답장이 도착했다. '안 가.' 저 때문에 깨신 거라면 죄송하다고 답장을 입력하고 있는데 말풍선이 하나 더 생겼다. '바이크 타고 싶어?' 코너는 그 말에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바이크가 딱히 재밌다거나 또 타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매력적인 어른 남자가 자신을 신경 써주는 듯한 느낌이 설레었다. '타고 싶긴 한데. 제가 뒤에 타면 아저씨가 원하는 만큼 빠르게 못 달리잖아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룸메이트가 깨지 않게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2층 침대라 조금만 움직여도 밑에서 시끄럽다고 난리를 쳤다. '상관없어. 4시에 보자. 지난주에 너 내려뒀던 그 장소.' '그럼 이따 봬요!' 일요일 아침부터 옷장을 뒤지는 코너에게 룸메이트가 욕을 했다. 성악을 전공하는 3학년 학생인데 아주 무례하고 까칠해서 웬만하면 부딪히지 않으려고 한다. 지문이 잔뜩 묻은 뿌연 전신거울 앞에서 이런저런 옷을 몸에 대보았다. 바이커처럼 보일 만한 옷은 한 벌도 없었지만 적어도 너무 어린애처럼 보이지는 않길 원했다. 청바지와 몸에 붙는 흰색 반팔 티를 입고 그 위에 연하늘색 셔츠를 걸쳤더니 그래도 제법 대학생 같았다. 3시 40분부터 약속 장소에 나가 기다리는데 한 남자가 전화번호를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무척 큰 용기를 낸 것 같아 거절하기 미안할 정도였다. 코너는 그에게 전화번호를 건네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눴지만, 머릿속은 온통 레이뿐이었다. 레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오늘 만나는 건 데이트나 다름없으니까. 3시 58분에 도착한 레이는 바이크에서 내려 시트를 열고 코너 몫의 헬멧을 꺼내 건넸다. 이번에도 레이가 주먹으로 헬멧 윗부분을 콱 찍어눌렀다. 처음보다는 자연스러워진 태도로 레이의 허리를 껴안고 바이크에 몸을 맡겼다.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걸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슼탘 레이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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