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얘기 꺼낸 날 아내가 사고가 났습니다

결혼 19년차고 고등학생 아들 하나 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아내와 각방을 썼어요 크게 싸운 건 아니고 서로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밥 먹었어 응 이 두 마디가 하루 대화의 전부였어요
지난달 초에 제가 먼저 얘기를 꺼냈습니다 애 수능 끝나면 우리 정리하는 게 어떻겠냐고요
아내는 놀라지도 않더라고요 설거지하면서 그래 그럼 서류 알아봐 그러는데 등만 보였어요
그러고 저는 평소처럼 출근했습니다 회사 총무 일이라는 게 바쁘지도 않아서 하루 종일 그 말이 머리에 맴돌았어요
오후 세 시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보호자 되시냐고 아내분이 교차로에서 사고가 났다고요
그때 제가 뭘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차 키를 찾느라 서랍을 다 엎은 것만 기억나요
병원까지 40분 걸렸는데 그 사이에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결혼할 때 아내가 입었던 하늘색 원피스 같은 게 왜 그때 떠오르는지 모르겠어요
응급실 커튼을 걷었더니 아내가 목 보호대를 하고 앉아 있더라고요 다행히 타박상이었습니다
저를 보더니 첫마디가 뭔 줄 아세요
왜 왔어 서류 알아보라니까
그 말을 듣는데 제가 거기서 그냥 주저앉아 울었어요 마흔일곱 먹은 남자가 응급실 바닥에서요
옆 침대 할머니가 쳐다보시는데도 멈춰지지가 않더라고요
아내가 한참 보더니 휴지를 건네줬습니다 그러면서 당신 우는 거 처음 본다고 하더라고요
그날 저녁에 병원 앞 분식집에서 둘이 김밥을 먹었어요 아내가 목이 안 돌아가서 제가 젓가락으로 집어 줬습니다
몇 년 만에 마주 앉아서 밥을 먹은 건지 모르겠어요
아내도 사실은 제가 언제 그 말을 꺼낼지 몇 달을 기다렸다고 하더라고요 기다리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냐고요
요즘 저희는 이상해요
퇴근하면서 뭐 사 갈까 문자를 하는데 답장이 오면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스무 살도 아니고 이게 뭔지 모르겠어요
지난 주말에는 아내 물리치료 끝나고 손잡고 집까지 걸어왔는데 아들이 보더니 둘이 왜 그래 징그럽게 이러더라고요
각방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어떻게 다시 합치자고 말해야 할지 그걸 모르겠어요 19년을 살았는데 그 말이 제일 어렵네요
서류 얘기는 그 뒤로 둘 다 안 꺼내고 있고요 아들한테는 물론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이게 사고 때문에 잠깐 놀라서 이러는 건지 진짜로 돌아온 건지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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