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아침햇발 20090403 비굴이냐, 고통이냐 지금 이 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에 출석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쓰고 있다. ‘잔인한 4월’의 마지막날, 추락하는 꽃잎은 초라하고 비장하다. 노 전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지금 어떤 상념이 스치고 지나갈까. 뒤늦은 자책과 회한인가, 아니면 분노와 결연한 의지인가. 그의 얼굴 표정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렵다. 노 전 대통령의 앞날과 관련해 주목되는 여론의 흐름 하나는 불기소론이다. 법치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감옥에 보내지 말자는 일부 보수 논객들의 호소는 눈물겹다. 주된 근거는 국가의 위신이다. 나라의 품격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국가적 차원의 모욕감을 피하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국가의 위신 추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부에 불편한 글 좀 인터넷에 썼다는 이유로 미네르바를 구속해 국제적 웃음거리가 된 것만할까. 서울 한복판에서의 토끼몰이식 철거민 진압으로 죄 없는 목숨들이 죽어나간 사건보다 나라의 체면이 더 깎일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사실은 모두 부질없는 말들이다. 그럴 가능성이 없겠지만, 혹시 노 전 대통령이 불기소론자들의 아량과 은총에 감읍해 용기백배한다면 정말로 ‘바보’다. 맘껏 희롱하고 조롱한 뒤 아량을 베푸는 것처럼 잔인한 처사는 없다.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어놓고 목숨만 살려놓는 것이야말로 ‘적’에게 가하는 최대의 복수임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노 전 대통령의 가슴은 지금 검찰의 정치보복성 수사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이번 수사에는 그런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권력을 기쁘게 하려는 수사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자신의 대통령 재임기간에도 있었다. 검찰은 본래 그러하다. 죽은 권력에는 굶주린 하이에나요, 살아 있는 권력에는 순한 양의 속성은 세세연년 변치 않는다. 자신들의 떡값 의혹에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일반 하급공무원이 기백만원 받은 봉투에는 추상 같은 게 검찰이다. 그러니 너무 서러워하지도, 분노하지도 말았으면 한다. 그런 검찰을 대통령 재임 때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 원죄도 있으니 말이다. 조금 매정하게 말하면, 노 전 대통령의 앞에는 비굴이냐, 고통이냐의 두 갈래 길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프고 괴롭겠지만 지금의 운명을 긍정하고 고통의 길을 걸었으면 한다. 가령 노 전 대통령이 앞으로 기소를 면한다고 치자. 그래도 그의 무죄가 확인됐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와 박연차씨의 돈거래를 상부상조의 미담으로 여길 사람은 더욱 없어 보인다.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진술할 필요야 없지만, 피의자의 방어권을 내세워 구차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럴수록 더욱 초라해질 뿐이다.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봉하마을 집 주변에 가시나무 울타리를 치고 ‘위리안치’되는 신세나, 옥중에 갇히는 생활이나 오십보백보다. 지금이야말로 그의 예전 장기였던 ‘사즉생 생즉사’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나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깨끗이 목을 베라’고 일갈했던 옛 장수들의 기개를 한번 발휘해볼 일이다. 그가 한때 탐독했던 책이 마침 <칼의 노래>가 아니던가. ‘사즉생’을 말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 개인의 부활을 뜻하는 게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선언한 대로 그의 정치생명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지만 그는 죽더라도 그의 시대가 추구했던 가치와 정책, 우리 사회에 던져진 의미 있는 의제들마저 ‘600만달러’의 흙탕물에 휩쓸려 ‘동반 사망’하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아직도 남아 있다. 김종구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한겨레신문 사설 20090407 노 전 대통령, 국민 가슴에 대못 박았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제 입을 열었다. 불행하게도 첫마디는 사과였다. 그동안 끈질기게 제기되던 여러 혐의 가운데 일부를 시인하며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잘못을 빈 것이다. 모든 고백은 나름의 진정성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의 시인은 오히려 국민을 참담한 심정에 빠뜨렸다. 자존심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무모할 정도로 저돌적이었지만, 청렴성만큼은 믿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가슴엔 대못을 박았다. 게다가 그는 한 오라기의 진정성도 인정받을 수 없었다. 자신의 집사라 할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이 검찰에 체포되고, 그를 통해 또다른 문제가 드러날 즈음에야 시인한 것이다. 기만당한 국민의 분노만 자극할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은 분명히 기억할 게 있다. 앞으로 무슨 말을 해도 신뢰를 받기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 퇴임 뒤 형 노건평씨의 검은돈 거래가 거듭 제기됐을 때도 그는 알쏭달쏭한 말로 피해 가기만 했다. 자신이나 부인을 둘러싸고 혐의가 제기될 때도 전직 대통령의 예우 등 무언가 기대를 하는 듯 ‘지켜보자’고만 했다. 조카사위 연철호씨의 500만달러가 나왔을 때도 알고 있는 바를 털어놓지 않았다. 확인되거나 확인될 가능성이 있는 것만 털어놓았던 것이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이제 전직 대통령으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건 진실의 고백뿐이다. 형은 ‘돈 먹는 하마’에 ‘막가는 브로커’로 확인됐다. 자신도 비록 차용증을 썼다지만 파렴치한 기업인으로 돈을 빌려 썼고, 부인 역시 그로부터 돈을 받아 썼다. 그의 오른팔 왼팔 하는 측근들도 지저분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거나, 이미 실형을 살았다. 이제 더 지킬 것도 없는 셈이다. 떳떳하게 진실을 고백함으로써 국민의 자존심만이라도 살려줘야 하는 것이다. 사실 부인이 수억원을 빌렸다고 한 것도 의심스럽다. 퇴임 당시 그의 재산은 9억원이 넘었다. 그 정도는 갚을 수 있었다. 온갖 추문의 근원이었던 ‘노무현 재단’도 그렇다. 그동안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면 그 자신이 모를 리 없다. 박연차씨의 50억원, 강금원씨의 70억원도 이 때문에 제기됐다. 검찰에 나가서 밝힐 게 아니다. 지금 낱낱이 소명해야 한다. 더는 그처럼 불행한 대통령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모든 것을 당장 털어놓기 바란다. 한겨레신문 사설 20090408 검찰에 앞서 국민에게 고해성사하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을 접하며 느끼는 심정은 충격과 분노 이전에 서글픔과 허탈함이 더 크다. 유달리 청렴함과 도덕성을 강조한 노 전 대통령의 ‘배신’에 대한 실망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졸업’했다고 여긴 전직 대통령의 검은돈 수수 관행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심정은 참담하다. 앞선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도 대통령 친인척 등 주변 인사들의 숱한 비리 의혹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그렇지만 최소한 대통령까지 비리 의혹에 연루된 적은 없었다. 전직 대통령 자신이 의혹의 당사자로 떠오른 것 자체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느낌”이라는 한 민주당 의원의 말은, 그래서 딱히 민주당원들만이 느끼는 심정이 아닐 듯하다. 상황이 이렇게 엄중한데도 노 전 대통령이 보이는 태도는 구차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다. 검찰이 발표하기 전에 앞질러 ‘자백’과 ‘사과’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 내용은 오히려 ‘면피용’에 가깝다. 받은 돈의 전체 규모는 얼마인지, 그 돈은 어디에 썼는지, 노 전 대통령 자신은 언제 알았고 어느 선까지 개입했는지 등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털어놓은 게 없다. 진정한 참회와 반성은 없고 어떻게든 궁지를 모면해 보려는 안간힘만 느껴진다. 그런데도 노 전 대통령 쪽은 “추가적인 설명은 당분간 하지 않겠다”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노 전 대통령의 최대 장점은 누가 뭐래도 ‘거침없음’과 ‘솔직함’이었다. 대통령 재임 시절 아무도 예기치 않은 파격적인 언행으로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노 전 대통령의 요즘 모습은 그런 기개나 파격, 솔직함과는 동떨어져 있다. ‘아내’를 뜻하는 수많은 단어를 놓아두고 굳이 ‘집의 부탁’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쓴 것부터가 구차하다. 노 전 대통령 쪽은 “검찰에 나가 모든 것을 말하겠다”고 말한다. “먼저 자세한 내용을 밝히면 수사에 미리 선을 그으려는 것처럼 비칠 것 같아서”라는 명분도 내세웠다. 하지만 그런 변명은 옹색하기만 하다. 노 전 대통령이 진실을 털어놓을 대상은 검찰이 아니라 국민이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남김없이 고해성사하고 석고대죄해야 한다. 그것이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보여야 할 마땅한 예의다. 검찰에 나가 진술하고, 혐의 여부에 따라 적합한 죗값을 치르는 것은 그다음 일이다. 만약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검찰 출석이 ‘파격’이고, 그것으로 국민의 동정심을 자극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이번 사건의 심각성은, 그 여파가 노 전 대통령이나 참여정부의 도덕성 훼손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변화와 개혁, 깨끗한 사회를 갈망하는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에 치유하기 힘든 깊은 상처를 안겨준 게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이제 노 전 대통령에게 남은 과제는 한 가지다. 그나마 뒷마무리라도 정직하고 의연하게 하는 일이다. 그것이 자신을 지지했던 유권자, 그리고 진보·개혁 세력 전체의 기대를 배반한 데 대한 최소한의 속죄다. 경향신문 사설 20090408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백, 국민은 참담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제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박 회장으로부터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전격 체포되자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그 혐의는 정 비서관의 것이 아니고, 저희들의 것”이라고 실토했다.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으나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던 노 전 대통령의 위선을 보는 것 같아 말문이 막힌다. 조카 사위 연철호씨가 박 회장으로부터 500만달러를 받은 데 대해서도 “퇴임후 이 사실을 알았다”고 털어놨다. 정작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특별히 호의적인 동기’가 개입된 것으로 보였지만, 성격상 투자이고, 저의 직무가 끝난 후의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의심했는데도 문제를 삼지 않았다니 ‘정의’와 ‘청렴’을 입에 달고 살았던 그답지 않아 보인다. 자세한 경위야 앞으로 드러나겠지만 “경제에는 무능했을지 몰라도 정치를 바로잡고, 부패를 몰아내는 데는 앞장 섰다”는 그의 호언은 그야말로 허언이 되고 말았다. 노 전 대통령의 고백은 분노, 배신을 넘어 참담함을 자아낸다. 당선자 시절인 2002년 12월 “이권 개입이나 인사청탁을 하다 걸리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일갈한 그는 형 건평씨의 인사청탁 의혹이 일자 “별 볼 일 없는 시골 노인에게 머리 조아리지 마라”며 일소에 부쳤다. 측근 수사엔 “언론이 깜도 안 되는 것을 갖고 소설을 쓴다”고 공박했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임기 중) 무슨 사건에서 비자금이 나오고 정·관계 로비라는 말이 나온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다행히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큰 소리를 쳤을 정도다. 이미 드러난 참여정부의 권력형 비리 정황도 충격적이다. 형님과 조카사위, 가신과 측근들도 모자라 결국 자신까지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뭐라 할 것인가. 더구나 뒤늦은 고백을 촉발시킨 정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죽마고우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드러날 비리의 실체를 쉽게 가늠하기 어려워 보인다. 얼마전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 돼 버렸다. 이제는 감출 수도 없게 됐고, 다 털어버리겠다”고 한 으름장의 끝이 어디일지 궁금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제 스스로 밝혔듯이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여 한치 의혹도 없이 진상을 밝히고 이에 대해 당당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전직 대통령으로서 한 때 그를 성원했던 지지자들과 국민에게 진정으로 사죄를 구하는 일이다. 혹여 이번 고백이 측근 세력을 비호하기 위한 정치적 고려라면 노 전 대통령은 두번 죄를 짓는 것이다. 한겨레신문 사설 20090414 밝혀야 할 수백만달러의 대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쪽에 줬다는 돈의 성격 등을 놓고 검찰과 노 전 대통령 쪽의 논란이 거세다. 노 전 대통령 쪽은 빌린 돈이나 투자금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검찰은 대가성 있는 뇌물로 보는 듯하다. 노 전 대통령이 이를 언제 알았는지에 대해서도 양쪽 주장이 엇갈린다. 실체적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지켜보는 국민으로선 어지럽기 짝이 없다. 돈의 흐름은 어느 정도 드러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100만달러를 받는 등 모두 13억원가량을 받았고, 조카사위 연철호씨는 아들 노건호씨와 함께 박 회장을 만난 뒤 500만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아무런 대가 없이 주고받기에는 큰돈이다. 노 전 대통령이 없다면 그런 거액을 줬겠느냐고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 노 전 대통령 쪽은 이런 합리적인 의심에 답해야 할 일차적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노 전 대통령 쪽은 모호한 말로 이를 회피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누리집에 잇따라 올린 글에서 권씨가 돈을 받은 사실을 ‘몰랐다’는 말 말고는 왜 받았는지, 어디에 썼는지 등은 밝히지 않았다. 권씨도 검찰 조사에서 돈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함구했다고 한다. 나중의 법적 다툼에 대비하려는 방어권 행사일 수 있지만, 지금 국민이 이해하긴 어렵다. 박 회장이 선의의 도움만 주는 ‘패밀리의 일원’인 양 내세우는 것도 상식에 맞지 않는다. 박 회장은 이익을 좇기 마련인 기업인이다. 그가 거액의 대가로 어떤 이권과 특혜를 누렸는지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잖아도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여러 분야에 걸쳐 사업을 확장했다고 한다. 그런 일에 노 전 대통령의 관여가 있었다면 대가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재임 때는 돈 받은 사실을 몰랐다며 법률적 책임이 없음을 주장하는 것과는 별도로, 노 전 대통령이 마땅히 국민 앞에 해명해야 할 대목이다. 검찰 수사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박 회장 진술 말고 다른 확실한 증거나 객관적 정황을 확보하고 있다면 지금 같은 논란은 불필요할 것이다. 이는 괜한 ‘언론 플레이’라는 오해를 자초하는 일이다. 노 전 대통령 쪽 주장대로 박 회장의 궁박한 처지를 이용해 증언을 확보한 데 불과하다면 나중에 더한 낭패를 보게 된다. 다시 한번 검찰의 엄정하고 절제 있는 수사를 촉구한다. 미디어오늘 시평 20090414 노무현 전 대통령께 노무현 전 대통령님, 제번하옵고, 무릇 언론이 감시하고 비판해야하는 대상은 살아있는 권력이어야 합니다. 죽어있는 권력을 향해 짖고 까부는 것은 하이에나들이나 하는 비열한 짓거리이지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님은 죽은 권력입니다. 여사님과 아드님, 형님, 조카사위 등 가족은 물론 측근들까지 줄줄이 검찰의 소환을 받거나 구속됐고, 님께서도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듯 합니다. 하이에나들에게 생살을 뜯기는 아픔을 참지 못하시고, 몇 말씀 하셨더군요. 님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글들을 봤습니다. 국민들의 분노를 듣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봉하마을 역시 청와대만큼이나 민심을 접하기엔 어려운 곳이긴 하지요. 먼저 저자거리에서 술꾼들끼리 나누던 이야기 하나 전해드립니다. “노무현은 MB와 강부자의 프락치다.” 황당하게 들리십니까? 그렇다면 술꾼들이 나눴던 나머지 이야기를 전해드리지요. 도대체 노통(님을 이렇게 칭하는 건 알고 계시지요?)이 잘한 게 뭐야? 입에 달고 살던 도덕성, 청렴성은 완전한 위선이고 사기였잖아. 그러고 보니 MB 당선시키고, 강남 집값 몇 배로 올려놓고, 사설학원들 재벌 만들어준 일 빼놓고는 노통이 한 일이 없잖아. 왼쪽 깜빡이 넣고 우회전이나 하고, 사회 양극화도 최고조에 달했고…. 어디 그 뿐입니까? 이제 그들의 말에 제 말을 보태겠습니다. 님께서는 퇴임 후에도 이명박 대통령을 가장 많이 돕고 있습니다. 시계바늘을 수십 년씩이나 거꾸로 되돌려 놓고 있는 MB 정부의 폭압정치에 항거해야 하는 이 중차대한 시점에 국민들의 시선이 어디로 쏠려 있습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검찰의 시리즈물 ‘노무현 패가망신 잔혹사’를 구경하느라 온통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그런 사이 제2롯데월드 건설 허용과 신경민 문화방송(MBC) 앵커교체 등 재벌 특혜 정책과 언론장악 시나리오는 이때다 싶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도덕적 가치관과 사회정의에 대한 국민들의 냉소가 늘어나고, 거리의 촛불이 시들해 진 것도 상당 부분은 님의 책임으로 돌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검찰이 박연차 태광실업회장 등의 입에서 나오는 확인도 안 된 피의 사실들을 언론에 마구잡이로 흘리면서 님을 압박하고 있는 듯합니다. 님께서 인정하신 사실이 무엇이었지요? 권양숙 여사께서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와 3억 원을 받았다고 했지요. 거기다가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수감중인 형님 건평씨는 자신의 혐의를 상당 부분 시인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님은 이런 정도만으로도 유구무언이어야 합니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라는 변명은 일개 필부의 입에 올리기에도 부끄러운 말입니다. 님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세상에 나섰던 분입니다. 그런 분이 제가(齊家) 하지 못한 것은 내 죄가 아니라고 발뺌하셔서야 되겠습니까. 억울해서 못 참겠다고요? 지금 ‘노무현 패밀리’ 때문에 국민들이 받고 있는 분노와 스트레스, 충격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속된 말로 국민들이 열 받아 있는 상황에서 일국의 대통령을 지내신 분이 검찰과 티격태격, 갑론을박 다투면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해서야 되겠습니까? 시시콜콜 따지는 건 법정에서 하면 될 일 아닙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님, 우리는 아직도 ‘바보 노무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5공 청문회 때 권·경 유착의 거대한 부패 고리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총선 때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안정권인 종로 대신 부산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고, 대통령 재임시절엔 야당의 탄핵 공세에 당당하게 맞섰던 ‘바보 노무현’…. 그 ‘바보 노무현’을 정작 본인만 잊어버린 겁니까? 국민들 앞에 석고대죄 하십시오. 다 까발리고, 다 털어놓으시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죽을 때 죽더라도 하찮은 하이에나 떼에 물려 죽지 마시고, 지도자답게 산화하십시오. 당신이 죽어야 이 땅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가 부활합니다. 박상주 논설위원 경향신문 이대근 칼럼 20090415 굿바이 노무현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습니까. 한 번 꼽아 보세요.”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 어떤 잘못을 상기시키면 그가 승복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만두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는 비정규직·양극화 문제, 북핵문제 외에는 잘못한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는 퇴임 1년4개월을 남겨 놓은 시점에 이미 자기평가를 다 끝내고, 그걸 몇몇 언론인을 초청한 자리에서 막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행히 그는 자신이 얼마나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 설명하는 데 열중하느라 자기가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 그는 점차 진지해졌고 얼굴은 붉어져갔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느새 목소리가 높아지고 빨라졌다. 의자를 옆으로 비스듬히 돌렸다. 손 움직임이 커졌고, 말은 더 거칠어졌다. “김영삼은 자기도 모른 상태에서 벼랑으로 떨어졌고, 김대중은 임동원 해임건의 문제로 레임덕에 빠지고 게이트에 휘말렸습니다. 나는 더이상 떨어질 곳이 없어요. 난 소통령도 없고, 게이트도 없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이 그 말을 할 때는 그의 형이 박연차와 함께 농협을 먹잇감 삼아 돈을 챙긴 지 1년 지난 뒤였다. 그리고 그 말을 한 지 10개월 뒤 박연차는 대통령 지시를 받고 100만달러가 든 가방을 대통령 관저에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또 그 말을 한 지 1년4개월 뒤에는 노무현의 아들과 조카가 500만달러를 요구하자 박연차는 대통령의 부탁이기에 그냥 주었다고 한다. 돈받은 본질은 달라지지 않아 누가 돈 달라 했고, 누가 돈을 썼는지 지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시하고 전달하고 받은 이들은 모두 노무현의 가족이라는 점이다. 남편·부인·형·아들·조카. 그리고 그들을 돕는 가족과 다름없는 사람들, 그들이 한 일이다. 노무현 패밀리가 한 일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범죄와 도덕적 결함의 차이, 남편과 아내의 차이, 알았다와 몰랐다의 차이를 구별하는 데 필사적이다. 그러나 그런다고달라지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실정으로 서민들이 가난해지는 동안 노무현 패밀리는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재벌 개혁을 다짐하고는 삼성에 국정을 의탁하고,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고는 스스로 특권층이 되고, 시장 개혁 대신 시장 만능의 우상을 퍼뜨림으로써 노무현을 통해 세상의 낡은 질서를 바꾸려 했던 그 열정을 싸늘한 냉소로 바꾸어 놓고, 절망 속에 빠진 서민을 버려두고 자기들은 옥상으로 피신해 헬기 타고 안전지대로 탈출하려 했다는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대통령 패밀리끼리는 건드리지 않기로 하자”고 했다던가. 그들에게는 정권교체가 패밀리 교체, 아니 이권 교체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랬기에 수많은 절박한 이들의 구원의 손길을 뿌리치고 그 마지막 헬기를 향해 손 내민 한 사람만 더 태우고 떠나려 했을 것이다. “우리 쪽 패밀리에는 박연차도 포함시켜 달라.” 우리는 이제 민주화 세력이 아닌, 의리·이권·혈연으로 뭉친 이 패밀리가 진정한 집권세력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몰랐다’는 점을 노무현이 더 설득력 있게 해명한다 해도, 자기 정권의 존재 이유였던 개혁을 포기하면서도 그토록 지키려 했던 패밀리의 안전과 그들이 축적한 부를 지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5년간 되풀이 했던 그 신물 나는 <노무현의 투쟁> 속편을 끝까지 보여주고야 말 것이다. 자신이 뿌린 씨앗 거두고 가길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집권한 그는 민주화 운동의 인적·정신적 자원을 다 소진했다. 민주화 운동의 원로부터 386까지 모조리 발언권을 잃었다. 그를 위해 일한 지식인들은 신뢰와 평판을 잃었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개혁이든 노무현이 함부로 쓰다 버리는 바람에 그런 것들은 이제 흘러간 유행가처럼 되었다. 낡고 따분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 이름으로는 다시 시민들의 열정을 불러 모을 수가 없게 되었다. 노무현이 다 태워버린 재 속에는 불씨조차 남은 게 없다. 노무현 정권의 재앙은 5년의 실패를 넘는다. 다음 5년은 물론, 또 다음 5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당선은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해야 옳다. 이제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경향신문 아침을 열며 20090503 아내 핑계 대는 남편들 여자: 당신, 구속안되겠지? 다른 대통령들은 2000억원 넘게 챙기던데. 우린 80억원도 안되잖아요. 고생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돈 좀 보낸 건데. 지들은 자식없나. 지들은 돈 안받았어! 남자: 내가 판사출신 대통령이야! 고시보느라 당신에게 가족생계 떠맡긴 죄밖에 없다고. 15년 전 내가 쓴 책 <여보, 나 좀 도와줘>에 고생담이 나오잖소. 여자: 그래요. 당신 대통령될 때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로 동정표 좀 얻었잖아. 이번에도 내가 총대멜게요. 우리 그 돈 어디다 썼는지 끝까지 말하지 맙시다. 우리가 말 안해도 국민들이 다 알텐데 뭘…. 남자: 걱정마. 내가 막무가내로 떼쓰는 초딩화법의 달인이잖아. 초지일관 당신이 돈 받아서 쓴 걸 몰랐다고 할테니까. 소나기만 피하자고. 국민들, 금방 잊어버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가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연극공연용으로 적어본 대사입니다. ‘빚꾸러기 영부인’ 권양숙 여사가 검찰에 재소환된다지요. 아내로, 어머니로 가족의 중심을 잡아야 할 인물이 도덕적 중심을 잃고 말았습니다. 대통령이 그 ‘중심’을 내놓도록 했습니다. “저의 집(아내)에서 (돈을) 부탁하고 받았다”고 했습니다. 가족 모두를 품고 사는 어머니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남편들, 걸핏하면 아내 핑계를 댑니다. 젊을 때는 어머니에게, 결혼후에는 아내에게 기댑니다. 직장다니는 저도 일에 지쳐 퇴근할 때 살뜰하게 보살펴주는 ‘마누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내, 어머니… 가족을 지키는 그 힘은 측정불가입니다. 한없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가족끼리 똘똘 뭉쳐야 살아남는 불황기일수록 어머니의 힘이 절실합니다. 어머니. 그처럼 원초적인 말도 없습니다. 놀랐을 때 ‘엄마’라고 외치지 않습니까. 가끔 아버지나 하느님을 찾는 분도 있겠지만 대부분 ‘엄마야’하고 놀랍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찾는 인간들입니다. 연극무대나 소설에서도 어머니는 영원한 화두입니다. 요즘 동국대이해랑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손숙의 어머니>는 전통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극중에서 어머니는 팔려가듯 시집가서 전쟁통에 자식을 잃고 바람둥이 남편 때문에 속이 썩다가 평생 자기자신으로 살지 못한 한을 보여줍니다. 어머니에 대한 회한 때문일까요. 남성관객들이 많이 운답니다.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배우 박정자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도 어머니가 주인공입니다. 평생 어머니라는 이름의 무게에 눌려 한 번도 참된 자기를 살지 못한 풍경을 보여줍니다. 오는 14일 개봉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는 국민어머니 김혜자가 어머니역을 합니다. 나잇값을 못하는 어수룩한 아들 때문에 애를 태우는데, 결국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아들 때문에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어머니는 이 땅의 복잡한 시대를 살아내는 우리 어머니들입니다. 어머니들은 전쟁과 속박으로 얼룩진 우리 역사의 중심에서 아버지가 사라진 집을 지켜왔고, 모진 역사 속에서 아픈 현실을 다독이며 치열해지고 단단해졌습니다. 어머니의 삶은 언제나 어머니의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를 가슴에 품고 있는 가족 모두의 것입니다. 디지털 유목민 시대에 신(新)모계사회가 도래한 지 오래입니다. 행정고시 외무고시 합격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고, 지난해 7개의 국가고시 수석을 여성들이 각각 차지했습니다. 여성천하가 될 것 같습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전직 대통령뿐이 아닙니다. 가정이, 일터가, 사회가 어머니들을, 아내들을 핑계대며 공공연한 피해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더 이상 피해자로 만들지 말라 가정의 달 5월. 혼돈의 시대에 어머니의 정신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가슴에 품었던 근원의 울림, 우리의 어머니를 새삼 기억합니다. 어머니. 나직이 부르면 괜히 가슴이 찡합니다. 어머니는 묵묵히 견디는 나무 같습니다. 슈퍼우먼이고 원더우먼입니다. 어릴 때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가 안계시면 괜히 허전하고 심통나지 않았습니까. 그때의 ‘허전한’ 그리움으로 돌아갈 순 없지만, 돌아볼 수 있는 5월의 날들이 옵니다. 어린이날(5일)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과 부부의 날(21일)이 금방입니다. 유인화 문화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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