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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에 나온게 다 엉터리, 왜곡으로 가득차

효자동 이발사, 박수웅씨 인터뷰 ''영화에 나온 게 다 엉터린데, 거기 나오는 이발사가 내가 아닌데 만날 필요가 없지요. 내용이 순 엉터리라서'' --- 陸英修 여사가 돌아가신 직후 朴正熙 대통령은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朴대통령께서는 아침과 저녁 두 차례 志晩군과 槿惠(근혜)ㆍ槿英(근영)씨 등 자녀들을 데리고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애통해 하셨습니다. 가슴이 너무나 아팠던 것은 국민장으로 치러진 陸여사의 장례식 당일(1974년 8월19일) 아침 朴대통령의 머리를 만져 드리는데 눈물을 참지 못해 펑펑 울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두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 앞에 있는 거울을 보니까 朴대통령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朴대통령께서 志晩군을 부르시더군요. 당시 중학생이던 志晩군이 올라오니까 대통령께서 저를 보고 「임자, 오늘이 이 애 애미의 출상이 아닌가? 이 애가 맏상주인데 이발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잘 좀 해줘」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시더니 朴대통령께서 志晩군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어릴 때는 예쁘기만 하더니 크고 나니 (대하기가) 어렵구나」라고 하시면서 이발관을 나서셨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朴씨는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고 눈물을 애써 참으려는 듯 청 와대가 있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통령 그만 두고 신당동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陸英修 여사가 돌아가신 뒤 朴正熙 대통령은 외로움을 느끼시지는 않았습 니까? 『평소에도 말씀이 없으셨지만 陸여사께서 돌아가신 뒤 더욱 말씀이 없으시고 갑자기 많이 늙으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朴대통령께서는 1976년부터 청와대 본관 앞 구석진 잔디밭에 펜스를 만들어 깃털이 금빛색을 띠는 닭의 일종인 金鷄(금계)를 키우셨습니다. 아마 외로운 마음에 금계를 키우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루는 이발이 끝나자 대통령께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무시고는 잔디밭 쪽을 바라보시다 참새 수십 마리가 날아와 펜스 주위를 맴돌다 이 중 몇 마리가 펜스 안에 넣어둔 먹이를 먹기 위해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자 「朴군, 저거 보래이. 역시 용기 있는 놈이 맛있는 먹이를 먹는구먼」 하시며 너털웃음을 지으시던 일이 생각납니다. 1977년 여름에는 朴대통령께서 이발을 마치신 뒤 돌아가신 陸여사가 생각나셨는지 먼 하늘을 쳐다보시면서 「나도 이제 대통령 그만두고 신당동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집을 처음 살 때 내자(陸여사)와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했었지. 집안 살림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지나치게 많이 마련하면 재미가 없는 법이라고.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하나하나 키워 나가는 것이 삶의 재미지. 朴군, 자네도 욕심내지 말고 차근차근 살아」 하시면서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朴正熙 대통령께서 金載圭의 총탄에 맞아 돌아가신 날에도 이발을 하셨습 니까? 『물론입니다. 그날 오전 9시쯤 이발을 하셨습니다.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지는 않았고 물수건으로 머리를 닦아낸 뒤 스킨을 바르고는 빗질만 해드렸습니다. 제가 「잘 다녀오십시오」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그래, 갔다와서 보자구」하시더군요. 이 한 마디가 제가 이승에서 朴대통령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朴대통령께서 이발관 직원들에게 용돈도 자주 주시곤 하셨는지요. 『朴대통령께서 한 달에 한 번은 반드시 저희 직원들에게 용돈을 주셨습니다. 보통 20만 원 정도였습니다. 10만 원권 수표를 두 장 주실 경우도 있고 현금으로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이 돈은 직원들에게 똑 같이 나눠 주고 朴대통령께 보고를 드리면 「그래, 잘했다」고 말씀하셨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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