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정리 방금 끝냈어요 손이 아직도 얼얼해요 시어머니가 이번 주말에 오세요 오시면 제일 먼저 냉장고 문부터 여시거든요 지난번에 오셨을 때 냉장고 열고 한참 보시더니 한숨을 푹 쉬셨어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한숨만요 그게 말보다 더 오래 남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엔 작정하고 정리해봤어요 해보니까 이게 은근 요령이 있어서 적어봐요 반찬통은 다 같은 투명통으로 바꿨어요 다이소에서 열두 개 샀고요 뚜껑 색 다른 거 섞여 있으면 정신없어 보인대서요 유통기한 지난 소스는 다 버렸어요 버리고 보니 케첩이 세 개 있었어요 왜 세 개인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냉동실은 지퍼백에 날짜 써서 세워서 넣었어요 눕혀 놓으면 꽉 차 보이는데 세우니까 반은 비어 보이더라구요 김치통은 제일 아래 칸 안쪽으로요 시어머니 김치가 아니라 친정엄마 김치라서요 이건 숨긴 거예요 야채칸은 키친타월 깔고 대파는 잘라서 통에 세워뒀어요 시어머니가 대파 시든 거 보시면 꼭 살림 얘기가 나오시거든요 작년에 대파 하나로 삼십 분 들었어요 계란은 원래 문쪽 칸에 넣었는데 그게 온도가 제일 많이 바뀌는 데라 안 좋다고 해서 안쪽 선반으로 옮겼어요 이건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마지막으로 냉장고 탈취제 새 걸로 바꿨어요 다 하고 나니 새벽 한 시 반이에요 버스 첫차 운행이 다섯 시 사십 분인데요 남편은 옆에서 엄마 그냥 습관이야 신경 쓰지 마 이러고 먼저 잤어요 습관인 거 알아요 근데 그 습관 때문에 제가 지금 케첩 세 개를 버리고 있잖아요 솔직히 이렇게까지 해도 이번엔 또 다른 데서 한숨 쉬실 거예요 지난번엔 냉장고였고 그 전엔 베란다였고 그 전엔 신발장이었으니까요 베란다 때는 빨래 건조대에 수건 개는 방향이 틀렸다고 하셨고 신발장 때는 애들 운동화가 너무 많다고 하셨어요 애들 발이 크는 걸 어떡하나요 이번엔 어디일지 맞혀보는 것도 나름 재밌네요 심심하진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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