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 직후 며칠 동안은 폭발인지, 추락 사고인지, 심지어 어디에 떨어졌는지조차 전혀 모르는 완전한 미궁 상태 였습니다. KAL 858기가 1987년 11월 29일 오후 2시 5분(한국시간) 버마(현 미얀마) 안다만해 상공에서 관제탑과 마지막 교신을 끝으로 연락이 두절되었을 때, 당국의 첫 반응과 수사가 테러로 급선회하게 된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초기의 혼선: 단순 추락 사고 및 수색 작업 위치 파악 불가: 교신 끊김 직후에는 기체 결함이나 악천후로 인한 추락 사고 가능성이 먼저 제기되었습니다. 사고 해역이 버마와 태국 접경 지역의 밀림 및 바다여서 정확한 추락 지점조차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수 색 실패: 한국, 태국, 버마 당국이 수색 작업을 벌였으나 기체 잔해나 시신이 전혀 발견되지 않아 실종 초기에는 원인 규명이 불가능했습니다. KAL 858기 사건은 아무런 물적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간첩 폭파 사건으로 수사 방향이 전환되었습니다. 김현희가 사용했다는 소형 라디오 폭탄으로 비행기가 공중 분해된 사례는 KAL 858기가 유일합니다. 해외 유사한 사건들 모두 기내 일부 손상이나 소수 인명 피해에 그쳤을 뿐, 무사히 착륙했습니다. 따라서 KAL 858기가 원인 불명의 사고로 실종되자, 안기부(중정)가 이중간첩으로 포섭되어 있던 김현희를 활용해 '북한 간첩에 의한 폭파 사건'으로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1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음에도 보수 언론은 체포 직후부터 김현희의 미모에만 집중했고, 그녀는 뜬금없이 사면되어 풀려났습니다. 그 수사 담당했던 심지어 경북 출신의 안기부 직원과 결혼까지 했으며, 그 남편은 2021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KAL 858 블랙박스도 못 찾음 상식적으로 웃끼잖아 북한 공작원 교육 받은 애가.. 블랙박스는 어떤 폭파 증거도 없는데 며칠만에 스스로 잡혀 순수히 자백한 것이 구체적 내용을 다 진술.. 타이머를 설정해서 불특정 다수를 죽인다는 것이 말이 안됨 타켓없이... 김현희를 조사 했던 인물이 김현희하고 결혼.... 골때리는 사건 노태우 대통령 선거 보름 앞두고 일어난 사건 원인 불명으로 추락한 KAL 858를 간첩 폭파 사건으로 안기부 공작 사건으로 조작 노태우 당선에 결정적 영향 국힘은 악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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