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소재주의, 빻주의 17. "저는.. 아직 가본 적 없어요." "정말요? 그 레스토랑 되게 괜찮던데." "대신 이야기는 들었어요. 해산물 요리가 맛있다고." "음.. 네. 특히 해산물 요리가 맛있더라고요." "네에.." 학생들을 만나지 않는 평화로운 토요일. 나름 추위가 덜한 오후 1시, 로버트는 게리와 함께 학교 주변을 산책했어. 첫날 이후 이리저리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바빴던 게리가 이제야 또 학교를 소개해달라고 했거든. 그가 이 학교에 부임한지 약 3주 정도가 지났을 때야. 어느새 로버트의 얼굴에 들었던 멍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 두 사람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를 구경했어. 사실상 대화를 하느라 제대로 구경도 못했지만 게리는 별 신경을 쓰진 않았어. 잠깐만 구경하려 했는데 벌써 1시간이나 지났어. 로버트는 사실 이 시간이 조금은 즐거웠을지 몰라. 정말 말 그대로 이곳에서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게리뿐이잖아. "다음에 같이 가요." "네?" "그 레스토랑이요. 아직 같이 식사한 적도 없으니까." "아아.. 네, 네 좋아요." 로버트는 잠깐 망설이는 듯 보이더니 이내 고개까지 끄덕이며 대답했지. 그 모습에 게리는 싱긋 웃어보였어. 그는 안경을 들썩이며 목도리를 고쳐맸지. 저 멀리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 학생들이 이 한겨울에 춥지도 않은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어. 게리는 혈기왕성한 학생들의 모습에 대단하다며 헛웃음을 쳤어. 그리고는 운동장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가. 로버트는 정말이지 가고 싶지 않았어. 만약 게리가 자신을 주말에도 만난다는 걸 학생들이 알게 된다면 저절로 제이크의 귀에도 들어갈텐데. 또 어떤 대단한 방식으로 저를 괴롭힐지.. 상상만 해도 수치스러워졌어. "저.. 게리 선생님." "네?" "그쪽에는 딱히 볼.. 만한 건 없어요.. 저기- 저-기에 뭐가 많은데.." "그래요? 그럼 저기- 저-기에 가볼까요?" 게리는 로버트의 말투를 따라하며 씩- 웃었어. 그의 미소에 로버트도 살풋 웃었지. 금방 운동장에서 등을 돌린 게리는 로버트가 가리킨 곳으로 가려고 했어. 그런데 저 멀리서 누군가가 두 사람을 부르잖아. "게리 선생님! 로버트 선생님!" 들..켰다. 로버트는 그대로 발걸음이 굳어버렸고 게리는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찾아 두리번거렸어. 그리고는 어디론가 향해 손을 흔들었지. "어? 맞다! 선생님!" 로버트가 돌아가지도 않는 고개를 겨우.. 겨우 움직여 시선을 돌리니.. 미치겠어. 눈도 좋지. 운동장이 꽤 멀었는데 두 사람을 어떻게 발견한건지 축구를 하고 있던 학생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그래도 춥긴 추운지 양 볼과 코가 빨갛게 달아올라있었지.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서려나와. 게리는 장난스럽게 표정을 구기며 춥지도 않냐고 묻자 학생들은 코를 훌쩍이면서도 별로요? 라고 대답해. 검은 머리의 휴스턴은 축구공을 옆구리에 낀 채 물었어. "선생님들 어디 가세요?" "내 집에. 왜?" "왜요? 왜 로버트 선생님이 게리 선생님 집에 가요?" 먹잇감이라도 잡은 듯 스티브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어. 로버트는 황급히 대답했지. "게리 선생님께 받을 물건이 있어서 그래." "꼭 집에서 받아야 하는 건가요?" 레이먼드가 물어. 그러자 이번에는 게리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어. "그렇지. 꽤 무겁거든." "뭔데요?" 에이든의 질문에 게리는 찡긋 윙크하더니 비밀이라며 능청을 떨었어. 그러자 학생들이 야유를 해.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킥킥 웃는 아이들도 있었어. 로버트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기만 했지. 이와중에 게리 선생님 앞에서는 그래도 학생답게 굴어줘서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어. "음- 그렇구나." 그 생각도 잠깐이었지. 망했다. 학생들 사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나봐. 그럴리가 없는데. 전부 얼굴을 확인했는데. 로버트는 홱 고개를 들어 제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어. 주인공은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지. 그렇담 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았을텐데.. 신경이 너무 예민해져서 그런가봐. 고작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도 바로바로 반응할 수 있게 바뀌어버렸나봐. 제이크는 쩌억- 하품을 하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로버트를 쳐다보았어. 한쪽 눈썹을 들썩이면서. 저 표정은.. 지금 그냥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뜻이야. 로버트는 알 수 있었어. 제이크가 저를 그렇게 자주 쳐다봤으니까. 제이크는 무심한 얼굴로 로버트와 게리를 번갈아보았어. 그 눈빛에 로버트의 입안은 얼마나 메말라가는지. "가자. 선생님들 바쁘신 것 같으니까." "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 말에 로버트는 깜짝 놀랐어. 제이크는 정말 흥미가 하나도 없다는 듯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하더니 금방 등까지 돌렸어. 그래도 교육 받은 티는 났어. 깍듯하게 인사까지 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그의 행동에 놀란 건 로버트 뿐만은 아니었어. 제이크가 과연 게리 앞에서 어떻게 로버트를 골려줄지 기대하던 학생들도 적지않게 놀랐지. 그들은 로버트와 게리의 눈치를 보다 금방 제이크를 뒤따랐어. 게리는 특이한 녀석들이라며 혀를 끌끌 찼고 로버트는... 로버트는 차마 제이크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어. 제이크의 탄탄하고 넓은 등을 하염없이 눈으로 좇다 저를 부르는 게리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어. 18. "정말 혼자 들고 가실 수 있으시겠어요?" "네 당연하죠. 저 이래 봬도 힘 세요." 로버트의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게리는 작게 웃었어. 그는 그럼 1층까지만 같이 가요라고 말하고는 꽤 무거운 전기난로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올렸지. 로버트는 후다닥 엘리베이터 앞으로 달려가 버튼을 눌렀어. 그리고 문을 옆으로 밀었지. 협소한 엘리베이터에 전기난로까지 들어오니 두 사람의 어깨가 닿았어. 로버트는 층수를 올려다보는 게리를 슬쩍 곁눈질 했어. 그리고 눈이 딱 마주쳤지. 로버트가 곧장 고개까지 돌려가며 티나게 모른 척하자 게리는 미묘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어. 19. 이렇게까지 게리의 집에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느새 해가 졌어. 역시 겨울 해는 짧다니까. 로버트는 전기 난로를 질질 끌고 가며 생각했어. 바퀴가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생각보다 무거웠어. 그래도 조금만 고생하면 앞으로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테니 얼마나 기쁜 일이야. 로버트의 집.. 이라기에는 다 쓰러져가는 건물에서 게리의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가 걸렸어. 게리는 새로 지은 교직원 숙소에서 살고 있었지. 정말 좋더라고. 넓고 깨끗하고 무엇보다도 따뜻했지. 아늑한 소파에 앉아서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 특히 그가 라스베거스에서 얼마나 재밌는 여행을 했는지, LA는 정말 따뜻하다고 뉴욕은 너무 춥대. 서부 지역에 별 관심이 없었던 로버트도 가보고 싶어질 정도로 푹 빠져 들었었어. 그러다보니 10분만 몸만 녹였다가 돌아가야지.. 에서 벌써 3시간이나 흘러버렸어. 혼자서 러스와의 대화를 곱씹으면서 몰래 피식피식 웃으며 오다보니 벌써 집에 도착했어. 이제 또 2층까지 올라가야 하니.. 후우- 저절로 한숨이 쉬어졌지만 힘을 내보았어. 만약 게리가 장갑을 빌려주지 않았다면 손이 얼어붙었을거야. 끼익거리며 불길한 소리를 내는 낡은 나무 판자로 덧댄 계단을 올랐어. 이 추운데 힘 좀 쓰니 땀이 나. 그리고 또 오랜만에 힘을 쓰니... 내일 근육통 확정이었지. 헉헉거리며 하나 밖에 없는 제 집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벽에 눈까지 감은 채로 털썩 기댔어. 힘들어 죽을 뻔 했어. 색색 숨을 고르고 천천히 눈을 떴지... 그리고 로버트는 정말 말 그대로 소리를 꽥 질렀어. "으악! 제이크?!" "선생님 늦으셨네요." "너, 너 여기서.. 여기서 뭐해?" 제이크는 계단에서 앉아 책을 읽고 있었어. 이 강추위에. 특히 이 건물은 벽틈과 깨진 유리창 사이로 바람이 솔솔 불어서.. 정말이지 너무 춥단 말이야. 제이크의 얼굴을 보니 꽤 오래 앉아 있었던 것 같아. 코나 볼이나, 게다가 귀끝까지 빨갛게 색이 변해있었거든.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놀란 로버트는 황급히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내더니 재빠른 손놀림으로 문을 열었어. 그러자 제이크는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나 로버트가 들어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멋대로 방으로 쏙 들어갔지. 로버트는 어안이 벙벙했어. 대체 여기에서 뭘 하고 있던거야. "제이크, 조금만 기다려 빨리 따뜻하게 해줄게." 전기난로를 끌고온 로버트는 바닥에 쭈구려 앉아 코드를 찾았어. 그러나 그의 손이 제이크에 의해 저지 되었지. 제이크는 로버트의 뒤에서 허리를 숙여 전기난로에 손을 올렸고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살살 저었어. "괜찮아요." "아냐.. 너 지금 콧물 나는 것 같은데..." "전 정말 괜찮아요." 하지만... 로버트가 말을 더 잇기 전에 제이크는 그를 일으켜 세우더니 침대에 풀썩 앉았어. 그래도 제이크는 제 나름대로 목도리에 두꺼운 겨울코트와 스웨터 그리고 장갑까지 끼고 있었지. 축구가 끝나도 기숙사로 돌아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왔나봐. 로버트는 매트리스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딴청을 피우는 제이크를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이 들었는지 분주하게 움직였어. "그래도 따뜻한 물이라도 좀 마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아.. 아니면 차라도 괜찮고." "어떤 차가 있나요?" "으음.. 별로 없어. 캐모마일과 루이보스." "캐모마일로 부탁드려요." 제이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제가 가져온 책을 책장에 꽂아놓고 말도 없이 멋대로 로버트의 책을 아무거나 꺼냈지. 그리고는 다시 침대에 앉아 읽기 시작했어. 차를 사두었어서 다행이야. 로버트는 한 달 전 극심한 추위에 따뜻한 물이라도 자주 마시려 사두었던 찻잎이 든 통을 부엌 찬장에서 꺼냈어. 그리고 주전자에 물을 올렸어. 슬쩍 제이크를 보니 그는 비스듬히 앉아 책을 읽어. 몸이 으슬으슬 떨려와. 그의 눈치를 보던 로버트가 다시 전기장판 코드를 꽂으려 하자 낮은 목소리가 그를 가로막았지. "선생님." "어..?" "전 차만 있으면 될 것 같아요." 저를 향해 눈길도 주지 않는 제이크의 말에 로버트는 다시 조심스럽게 코드를 내려놓았어. 추운데.. 로버트는 제가 입고 있는 얇은 코트를 여미며 다시 주전자 앞에 섰어. 여기 있으니 그나마 좀 따뜻해.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움츠리며 머그컵에 차를 따랐어. 제이크 거 하나, 내 거 하나. 티백을 나눠 담고 컵을 들어 제이크에게 다가갔어. 컵의 따뜻한 온기가 딱 좋았어. 제이크도 차를 마시더니 책을 탁- 덮었지. 로버트는 차마 제이크와 함께 침대에 앉지 못하고 책상에 엉덩이를 걸쳐 앉았어. 그런데 자꾸만 시선이 전기난로로 향해. 그걸 제이크가 모를리가 없는데.. 추우니까 자꾸만 시선이 가버렸어. "선생님." "응.." "옷을 벗어주시겠어요?" "뭐?" 전기난로에 향하던 푸른 눈이 제이크를 향해. 제이크는 뻔뻔한 얼굴로 차를 홀짝 마시며 로버트를 빤히 바라보았지. 그의 녹빛 눈은 너무나도 차분해. 방금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들은 로버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어. "너 지금 진심이니?" "네." 어쩜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인지. 제이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먹을 쥐고 입술을 꽉 깨문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로버트를 보며 눈을 깜빡였지. 그의 갈색빛이 도는 속눈썹이 팔랑거려. "뭐하세요? 벗으라니까요?" "제이크, 너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그런 부탁을.." "선생님." "..." "세 번은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제이크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로버트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찔거려. 그 모습에 제이크는 피식 웃더니 다시 침대에 앉았지. 로버트는 잘게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몇 번이나 손등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어. 장갑이 부들부들했지. 로버트가 어쩔 줄 몰라하자 제이크는 인내심 있게 그를 기다렸어. 바람이 솔솔 부는 방 안은 추웠고 그 사실을 제이크도 당연히 알아. 부탁이 아닌 명령인 걸 로버트도 알아. 그러나 로버트는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전부 벗으라니. 제이크는 한 번도 그런 얄궂은 부탁을 하지 않았어. 애초에 그럴 일도 없었지. 로버트는 오로지 제이크의 욕구를 달래주기 위해 입이나 손을 썼지.. 옷을 벗으라는 건.. 대체 무슨 뜻인지.. 설마.. 아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아. 로버트는 우물쭈물 제이크를 향해 등을 돌렸어. 제이크도 굳이 딴지는 걸지 않았어. 가장 먼저 게리가 준 장갑을 벗어 책상 위에 올려두었어. 얇은 코트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늘어진 낡은 회색 스웨터도 벗겨져. 입고 있던 하얀 티셔츠가 코트 위로 얹어졌어. 신고 있던 헤진 스니커즈도 벗었어. 양말까지 벗고 나니.. 이제 남은 건 바지였지. 철컥- 벨트 버클을 푸는 소리가 들려. 그러자 제이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어. "스트립쇼를 보는 것 같아요." 멈칫- 바지를 내리던 손이 멈춰버렸어. 제이크는 보지 못했지만 로버트의 표정은 이미 울상이야. 게다가 제 맨살에 닿는 찬바람에 몸이 저절로 떨렸지. 바지까지 전부 다 벗은 로버트는 한껏 몸을 움츠린 벽을 바라보며 말해. "이럼 됐지..?" "저를 보시겠어요?" 쓸데없이 정중하긴. 로버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닭살이 오소소 돋은 양 팔을 교차에 부여잡고 뒤뚱거리며 제이크를 향해 몸을 돌렸어. 너무 추워 제대로 설 수도 없었어. 등이 굽어지고 다리가 오므려저. 제이크는 침대에 삐딱하게 앉아 로버트의 마른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어. 로버트는 눈을 꾹 감았어.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제 팔에 종이 뭉치가 툭 닿았다 떨어져. "속옷도 벗으셔야죠." "제이크.. 그건 정말.." 말이 채 마무리 되지 않아. 눈을 뜨니 그의 눈빛에 겁이 나. 로버트는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내려 제 속옷을 움켜쥐었어.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아무리 그래도 제자 앞에서 .. 나체라니... 수치심에 이미 얼굴을 새빨개졌어. 추위에 콧물이 코끝에 달려있는 건 신경도 쓰이지 않나봐. 로버트가 하얀 속옷을 내리지도 못하고 망설이자 제이크는 또 책을 찢어 종이뭉치를 로버트에게 던졌어. "타인 앞에서 나체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건.. 익숙하실 텐데.. 왜 이제와서 부끄러워 하시는 거죠?" 그 말에 숨이 턱 막혀와. 이미 앞니에 짓눌린 입술에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아. 로버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속옷을 마저 내렸어. 무릎을 세워 속옷을 다리에서 빼내었고 바닥에 툭 떨어트렸지. 로버트는 차분해지려고 했어. 제이크에 지지 않으려 했지만 어째서 눈물이 많은 사람으로 태어난건지. 이미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있어. 너무나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이 순간을 이겨내고 싶은데 그게 쉽지만은 않아. 제이크의 자세는 굉장히 거만했지. 등 뒤로 손을 뻗어 매트리스에 제 몸을 푹 기댔어. 오만하게 벌어진 다리에 로버트는 자꾸만 내려가는 입꼬리를 겨우 끌어올리려 했어. 제이크는 노골적으로 로버트의 몸을 눈으로 훑었지. 책상과 침대 사이는 가까웠어. 한걸음이면 닿을 정도니. 로버트는 제 성기가 제이크의 눈 앞에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어. "자세." "..." "차렷하세요." 그의 단호한 말에 로버트는 엉거주춤 뻣뻣한 몸을 일으켰어. 추운데 차렷이라니. 저절로 몸이 움츠러든단 말이야. 조금이라도 추위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제 모습이 보이지도 않나봐. 로버트는 코를 훌쩍이며 간절하게 부탁했어. "이제 됐지? 나 너무 추워 제이크. 제발 다시 옷 입게 해줘.." "뒤로 돌아봐요." 제이크는 가뿐하게 로버트의 부탁을 무시하며 손가락을 빙글 돌렸어. 그럼 어째. 그의 말을 들어야지. 로버트는 천천히 몸을 돌렸어. "앞으로 한 발자국." 그럼 로버트는 발을 옮겼지. 제이크는 또 별 말 없었어. 로버트도 이제는 슬슬 추위에 익숙해지는 것만 같아. 그렇다고 해서 춥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선생님." "으응..." 목소리가 덜덜 떨려. "허리 좀 숙여보시겠어요?" 무슨 그런 부탁을.. 로버트는 순순히 허리를 숙였어. 정신이 나갔지. 이제는 싫다는 말조차 하지 않아. 제이크는 로버트의 엉덩이를 내려다보다 다시 말을 이었어. "엉덩이를 잡아 벌려 주세요." "뭐?!" 곧바로 허리가 벌떡 세워지고 몸을 홱 돌려 제이크를 바라보았어. 무슨 그런, 그런.. 그런 말을..! 로버트는 눈을 부릅 뜨고 제이크를 노려보았지만... 제이크가 무서워 할리가 없지. 제이크는 고개를 들어 오히려 뻔뻔하게 로버트를 빤히 바라보았어. 마치 뭐가 문제냐는 듯이. 로버트는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이 쿵쿵 발소리를 내며 제 옷더미 앞으로 걸어가 코트를 주웠어. "제이크 세러신 당장 나가." "선생님." "나가라는 소리 안 들려? 당장 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깨가 붙잡혀 돌려지고 곧바로 뺨이 내려쳐져. 덕분에 안경이 날라갔어. 손에 쥐었던 코트도 떨어졌지. 너무 놀라 히끅 딸꾹질이 나와버렸어. 돌아간 고개를 바로 세울 용기가 나지 않아. 겁에 질려서 그런건지 아님 추워서 그런건지.. 눈에 띄게 몸을 떠는 로버트를 제이크는 무심히 쳐다보았어. 그리고 제가 때린 로버트의 벌건 뺨을 손으로 툭- 툭- 치며 물어. "어떤 점이 그렇게 불만이세요?" "허억.. 헉..." "지금 불만 있는 사람은 나인데." 그대로 로버트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거칠게 쥐어잡혔고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어. 얼마나 세게 넘어졌는지 로버트의 오른팔과 다리가 나뭇바닥에 쓸렸을 정도야. 로버트는 무서웠어. 저도 모르게 나왔던 반항은 1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나버렸지. 제이크는 아무리 그래도 저를 때리거나 한 적은 없었어. 그런데.. 그런데.. 대체 왜. 제이크는 싸늘한 눈으로 벌벌 떠는 로버트를 내려보았어. 로버트는 본능적으로 살고 싶었어. 당장이라도 도망가야하는데. 다리가 말을 듣질 않아. 추위에 얼어붙었다고 믿고 싶어. 뚜벅- 끼익- 뚜벅- 끼익- 구둣소리와 무게에 비틀어진 나뭇바닥소리가 교차해. 제이크는 몸을 채 일으키지도 못한 로버트의 앞에 쭈구려 앉아 팔짱을 낀 채로 어느새 눈물콧물 범벅이 된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어. 그의 녹빛 눈은.. 너무나도 건조했지. 로버트는 그에게 빌지도 못했어. 또 심기를 잘 못 건드렸다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한참을 조용히 있던 제이크가 손을 올리자 로버트는 황급히 팔까지 올려가며 제 얼굴을 막았어. 그러면 픽- 비웃음이 들려와. 꾹 감아버린 로버트의 눈이 떠질 생각을 안 해. 손목에 아찔할 정도로 차가운 온기가 닿아. 손목을 감은 제이크의 가죽장갑 느낌이 너무나도 이질적이었어. 로버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손목이 이끌려. 그대로 몸이 질질 끌려가. 몰랐는데 어느새 창문이 있는 벽까지 도망쳤었나봐. 제이크는 로버트가 무겁지도 않은지 아주 가뿐하게 그를 한 손으로 끌고갔어. 로버트는 저항도 못했어. 그에게 끌려가면서 눈물만 주륵주륵 흘렸지. 그닥 넓지도 않은, 그래 그냥 좁은 집에 도망쳐봤자 얼마나 갔겠어.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두 사람은 침대 앞까지 다시 돌아왔어. 제이크는 미련없이 로버트의 손목을 놓아주더니 다시 침대에 앉았지. "등 돌려서 무릎 꿇어요." 그럼 로버트는 비적비적 자세를 취했어. 더이상의 반항은 소용이 없으니까. 제이크는 제 말대로 자세를 취한 로버트를 내려다보더니 말을 이었어. "양 손으로 엉덩이 잡아 벌려요. 상체 숙이고." 로버트는 말을 잘 들어. 제이크가 원하는 자세를 완벽하게 잡았지. 볼과 어깨가 나뭇바닥에 부벼져. 더럽지만 이제는 콧물과 눈물이 볼을 타고 옆으로 흘러. 엉덩이만을 하늘에 들어올렸어. 제이크가 로버트의 무릎 사이를 발로 툭툭 치며 벌리자 자세가 안정적으로 잡혀. 로버트는 마른 몸과 반대로 꽤나 통통한 엉덩이를 갖고 있었어. 손가락 사이로 살이 파묻히는게 퍽이나 제이크의 마음에 들었지. 로버트는 정말 그가 원하는대로 엉덩이를 양손으로 잡아 벌렸어. 제이크는 로버트의 엉덩이 사이로 보이는 그의 벌어진 구멍을 확인했어. 추위에 한껏 움츠러들었지. "엉덩이 흔들어봐요." "..." "얼른-" 제이크의 재촉에 로버트는.. 입술을 꽉 깨물고 엉덩이를 어설프게 흔들었어. 제이크는 그게 아니라며 구두를 신은 발로 로버트의 엉덩이를 크게 흔들어 밀었지. 그러자 로버트의 엉덩이가 크게 움직여. 그와 동시에 그의 성기도 같이 덜렁거렸어. 그 모습에 제이크는 참지 못하고 푸핫 웃어버렸고 로버트는 수치심에 얼굴뿐만 아니라 목까지 시뻘개졌어. 제이크는 재밌다는 듯이 로버트의 둔부를 발로 툭툭 빠르게 밀었고 그럼 엉덩이가 힘없이 밀려났어. 성기도 같이 흔들리지. "이제는 선생님 혼자서 해봐요." 제이크의 발이 내려가고 그는 기다렸어. 로버트가 소심하게 허리를 흔들었어. "악-!" "그게 아니죠." 퍽-! 발목이 무겁게 짓눌려져. 로버트가 고통에 몸부림치자 제이크는 다시 발을 제자리로 옮겼어. 로버트는 서둘러 제 엉덩이를 빠르게 흔들었지. 또 밟히긴 싫잖아. 발목이 너무 아팠어. 제이크는 엉덩이와 함께 그의 다리 사이로 보이는,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로버트의 성기를 보며 또 푸흡- 웃음을 터트렸어. 한참동안 로버트가 엉덩이를 흔들었어. 그의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계속해서. 제이크는 이제 됐다며 로버트의 엉덩이를 손으로 툭툭 쳤어. 로버트는 수치심에 미칠 것만 같았어. 당장이라도 혀를 꽉 깨물어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였지. 제이크는 침대에서 일어나 로버트를 지나쳐 책상 앞으로 가더니 무언가를 한움큼 쥐고 다시 돌아왔어. 로버트는 이제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아. 몸이 완전히 얼어붙었어. 이대로 쓰러질 수도 있겠다 생각했으나 제이크가 무서워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지. "나보다 더한 사람도 많았을텐데." "..." "힘 빼요." 갑자기 그게 무슨..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제 구멍에 이질감이 느껴져. 반사적으로 몸이 파드득 떨려. 그러자 제이크의 차가운 가죽장갑이 로버트의 허리를 꾸욱 눌러. "가만히..." 이게 뭐지. 이게 뭐야? .. 이상해.. 이게 뭐야? 로버트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해. 꽤 제 안까지 들어왔어. 제이크는 뻐끔거리는 구멍을 보고는 씩 웃었어. 그리고 말도 없이 다른 물건을 또 로버트의 구멍에 꽂았지. "걱정마요. 볼펜이에요. 선생님 책상 위에 있던 거." "윽..." 어느새 세 자루가 꽂혀있어. 제이크는 긴장을 풀라는 듯 로버트의 손등 위로 제 손을 얹었어. 그리고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지. 로버트는 엉덩이를 부여잡아 벌린 제 손에 힘이 들어갔어. "일찍 올 줄 알았는데..." "하아.. 학.. 하윽..." "저를 이 추위에 혼자 둔 벌이에요." 다 됐다- 마치 생일 초 꽂듯이 로버트의 구멍에 볼펜을 무려 다섯 자루나 꽂았어. 아주 뻑뻑해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겨우 우겨 넣었지. 로버트는 학학- 심호흡을 내뱉었어. 볼펜은 꽤 두껍지. 그게 다섯 개나 꽂혀있었으니.. 로버트는 제 구멍이 찢어질까 무서웠어. "선생님 너무 어색하게 구시네요." "읏.. 허억.. 하..으...윽..." "이미 해볼 거 다 해보셨으면서." 꾸욱- 내벽 안으로 볼펜이 밀려 들어가. 동시에 엉덩이를 잡고 있던 로버트의 손이 떨어져나갔지. "어?" "제이크.. 제이크 제발..." 그리고 쿠당탕- 로버트의 자세가 무너졌어. 엉덩이에 볼펜들을 꽂은 채 더러운 바닥에 누워... 교사의 권위는 어디로 갔는지 처절하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니.. 제이크는 몸을 숙여 제 허벅지 위로 팔을 올린 채 턱을 괴었어. 질질 울며 저를 올려다보는 로버트에 불퉁한 표정을 풀고 싶어도 그게 맘처럼 쉽지가 않아. "전 오늘 선생님에게 너무 화가 났어요." "대체.. 대체 왜..." "그야 당연한거 아닌가요?" "내, 내가 널.. 밖에 혼자 둬서..?" 로버트는 도통 모르겠어. 혼란스럽기도 했어. 제이크는 눈물을 퐁퐁 흘리는 로버트를 보자 한숨을 푸욱 쉬었지. "실망이에요. 제 마음도 모르고." "제이크.. 제이크 난.. 히끅" "화가 식을 때까지 혼자 있고 싶어요." "난.. 나는 어떻게," "자자- 일어나세요." 다시 손목이 붙잡혔어. 제이크는 힘까지 써가며 로버트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어. 억지로 일어나다보니 또 몸이 휘청거리고 구멍이 수축되어 제 구멍에 박힌 볼펜들이 더 밀려들어오는 듯 해. 그 이질적이고 깊은 감각에 묘하게 흥분이 되기도 했지만 절대 제이크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어. 애초에 너무 추워서 그 흥분감도 금방 사그라들었지만. 제이크는 로버트의 손목을 꼭 붙들고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갔어. 발치에 걸리는 옷더미들을 한껏 무시했지. 로버트는 힘없이 끌려갔어. 얼굴을 뒤덮은 눈물과 콧물을 잡히지 않은 손으로 벅벅 닦았지. 제이크는 문 앞에 서서 눈을 필사적으로 부비는 로버트의 손을 잡아내렸어. 그리고 장갑을 벗어 코트 주머니에 넣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코와 볼을 맨손으로 닦아주었어. 눈물이 달린 눈가는 손등으로 로버트를 불러. "선생님." "...응.... 히끅" 로버트는 겨우 진정되었는지 콧물을 훌쩍이며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대답했어. 애초에 너무 울어서 딸꾹질이 나오는 바람에 대답도 잘 못하겠지만. 제이크는 아무리 닦아도 자꾸만 새어나오는 로버트의 눈물을 이제는 두 손으로 닦아주기 시작해. 말랑한 오른쪽 볼이 아직도 빨갛게 부어올랐어. "제가 오늘 화가 났던 이유는 선생님이 게리 선생님 집에 가서 그랬어요." 제이크는 속상하고도 서운한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또박또박 말했어. 어디선가 솟아오르는 화도 꾹꾹 억눌렀지. 로버트는 생각지도 못한 이유에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려 제이크를 마주보았어. 표정을 보니 정말로 화가 났었나봐. 제이크의 표정은 좋지 않았어. 정말이지 어떻게 해서든 화를 삭히려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까. 착각일지도 몰라. 그런데 적어도 로버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어. 제이크에게 잡힌 손목이 차가워. 따뜻한 가죽장갑을 끼고 있었는데도 금방 손이 식었나봐. 로버트는 어떤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그저 입만 벌렸다 다물었다 반복했지. 제이크는 기다렸어. 그치지 않는 로버트의 눈물을 또 닦아주었어. 콧물도 새어나오니까 더러운 것보다 조금은 귀여운 것 같기도 해. 단순하게도 금방 마음이 풀어져가. 로버트는 울망거리는 눈망울로 제이크를 보며 웅얼거렸어. "미안해..." 솔직히 정말 미안한 마음이 있냐고 묻는다면 제이크도 알다시피 전혀 아니야. 그런데 이렇게라도 말해야할 것 같았어. 살고 싶다는 생존 본능이었지. 로버트는 제 얼굴을 계속해서 닦아주는 제이크를 바라보았어. 눈이 마주치질 않아. 그는 그저 로버트의 눈물을 닦아줘. "게.. 히끅, 게,.. 게리 선생님.. 집에에.. 가서.. 내가 미안해.. 응..?" "..." "그으러니까, 켈록, 그러니까.. 화 풀어줘.." 드디어 눈이 마주쳤어. 제이크는 로버트의 말에 볼에 얹었던 손을 천천히 내리더니 다시 손목을 잡았지. 이미 손자국은 날대로 다 났어. "화 풀게요." "저, 정말..?" "네, 선생님께서 그렇게까지 부탁하시니 제가 화를 풀어야죠." 하하... 로버트는 저도 모르게 헤실 웃어버렸어. 그러자 제이크도 희미하게 웃었지. 그러나 손목에 잡힌 악력이 점점 강해져. 로버트는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에 제 손목과 제이크를 번갈아 보았고, 제이크는 여전히 미소짓고 있었어. "대신 잘못에 대한 벌을 받으셔야죠." "벌, 아, 아까 받.. 받은거 아녔," "그건 저를 이 추운 날에 홀로 세워둔 벌이고.. 이건 게리 선생님의 집에 간 벌이에요." 벌컥- 문이 열렸어. 한순간에 얼어붙은 공기가 로버트와 제이크를 뒤덮었지. 로버트는 먼지가 쌓인 좁은 공간과 쓰러져가는 나뭇계단을 보고 기겁을 했어. 그리고 곧바로 세차게 고개를 저었지. "제이크, 제발, 제발 안 돼. 제발, 제발 이러지마. 제이크!" "어차피 아무도 오지 않는 곳 아닌가요? 선생님께서 소란스럽게 할수록 밖에 다 들릴거에요." "제이크! 너 정말 정신차려! 제이크! 제이크! 제발, 제발 안 돼! 안 돼 제이크! 컥-!" 그대로 가슴팍이 강하게 밀쳐져 숨이 순간적으로 쉬어지지 않았어. 먼지가 쌓인 차가운 나뭇바닥에 몸이 휘청거리며 넘어질뻔 했지만 겨우 중심을 잡았어. 그러나 로버트가 손을 채 뻗기도 전에 쿵- 문이 닫혀버렸지. 로버트는 곧장 문고리를 부여잡았지만 덜컥거리기만 할 뿐 단단히 잠겨있어. 순식간에 피가 식어내려가. 뇌까지 차가워져.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고 입이 벌벌벌 떨려. 쾅쾅쾅- 문이 세차게 두드려져. 로버트는 이성을 잃은 사람마냥 제이크를 불러대며 소리쳤어. "제이크! 미쳤어? 제이크 제발 문 좀 열어줘! 제이크, 제이크!" 로버트는 나체야. 말그래도 정말 천 쪼가리 하나 입지 않았지. 아무도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야외였어. 그리고 집에서 느꼈던 것과 차원이 다른 강풍과 추위가 로버트를 뒤덮였어. 정말이지 이정도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감기는 건너뛰고 폐렴이라도 걸릴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지금 뒤에는 볼펜을 다섯 자루나 꽂고 있었잖아. 로버트가 제이크의 이름을 불러대며 울부짖자 문 건너로 겨우 화를 참아내는 목소리가 들려왔어. "걱정하지 마세요. 10분 뒤에 문 열어 드릴테니까요. 저도 알아요. 밖은 많이 춥다는 걸.. 사실 1시간 뒤에 문을 열고 싶었지만.. 선생님이 사과를 하셨으니 저도 많이 봐드린 거에요." "제이크.. 제발.. 내가 잘못 했어.. 제발.. 제발 문 좀 열어줘..." "볼펜 뺄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아시겠어요? 그럼 저는 책을 읽고 있을테니 조용히 계셔주세요." "제이크.. 제이크..." "시끄러우시면 정말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인가 싶어 찾아올 거에요. 특히 .... 음 그래 앨리스 부인이요. 혹은 게리 선생님?" 뚜벅뚜벅- 걸음소리가 들려. 제이크는 그 말을 끝으로 문에서 멀어졌지. 로버트는 계단에 앉지도 못했어. 그럼 볼펜들이 제 안으로 더 밀려올거야. 그러나 계속 서 있는다면 창문 너머로 누군가가 로버트를 발견할 수도 있었지. 로버트는 그대로 바닥에 쭈구려 앉았어. 무릎이 아프고 짓밟혔던 발목에 무리가 갔지만 눈을 감고 꾹 참았어. 이미 한참 전 날라갔던 안경이 없어 앞도 잘 보이지 않아. 어차피 눈물에 계속 시야가 흐려저 안경이 있으나 마나였겠지만. 로버트는 무릎 위로 팔을 교차에 얼굴을 푹 묻었어. 너무 춥고 아프고 고통스러워. 대체 왜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지. 로버트라고 들키고 싶지 않았어. 제가 원해서 했던 일도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하필이면 제이크에게 전부 들켜버리다니. 그렇게 모두에게 알려지다니. 말도 안되는 유치했던 생각을 품었던 제 잘못이겠지. 전부 잊고 새출발 할 수 있다는 제 오만함 때문에 이렇게 벌을 받는거야. 그런거야. 로버트는 괜히 작년의 일들이 떠올랐어. 저를 졸졸 쫓아오며 선생님- 로버트 선생님- 부르며 귀엽게 굴었던 제이크의 얼굴이 눈앞에 그려졌어. 켈록-켈록- 기침이 자꾸만 나와. 정신이 아늑해지는 것 같기도 해. 안돼. 정신 차려야 해. 그런데 자꾸만 눈이 감겨. 그래도 몸을 좀 웅크리니.. 아냐.. 그래도 추워서 미칠 것만 같아. 제이크가 전부 닦아준 콧물이 다시 주륵주륵 흐르고 덜덜덜 이가 떨려. 이젠 침까지 뚝뚝 떨어져. 이제 몇 분 지났지? 모르겠어. 그래, 제이크.. 제이크 말이야. 매일같이 저에게 장난치며 킥킥 웃던 그 개구진 미소. 그 미소가 좋았어. 그랬어. 그땐 그랬어. 그래서 그런 마음을 품어버렸을지도 몰라. 그러면 안됐는데.. 정말 안 됐는데 말이야. 행맨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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