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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그레이스 그 사람은 내가 아다인 걸 모른다 5나더

1 # 2 # 3 # 4 # "수업 시간에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했어? 너 원래 성실한 학생이잖아." 1등으로 과학실에 도착해 마지막까지 남아 정리를 돕던 애런이 오늘은 완전히 다른 학생처럼 굴었다. 계속해서 옆 친구와 잡담을 하고 좋아하던 세포 관찰 시간에도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평소 어울리는 친구가 별로 없어 더 마음이 쓰였기에, 주변 환경이나 심경에 변화가 생긴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냥요." "그냥 그런 게 어딨어. 뭔가 문제가 생겼으니 다르게 행동하는 거지." 순간 그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도 지금의 나처럼 답답하겠지. "말씀드려도 선생님은 해결 못해요." "뭐?" "연애 문제거든요." "그, 그걸 왜 내가 해결 못한다는 거야? 선생님 연애 박사야!" 내가 아다라는 사실을 알고 한 말이 아닐 텐데도 괜스레 발끈하고 말았다. "사실 에밀리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랬어요." "에밀리... 에밀리 귀엽지. 에밀리를 좋아해?" "저 혼자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지난주엔 데이트도 한 걸요. 그런데... 갑자기 제 전화도 씹고 DM도 안 읽어요. 그러더니 오늘 대뜸 에릭이랑 같이 앉잖아요. 에릭은 완전 꼴통이에요. 똑똑하고 귀여운 남자가 좋다고 했으면서 어떻게 에릭 같은 남자애랑 사귈 수가 있어요?" 연애 박사라고 큰소리를 쳐놨으니 무슨 조언이라도 해야할 타이밍이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다?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나? 어쩌면 질투심 유발 작전일수도 있다? "아무래도 그런 쿨한 남자애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오늘 좀 이상하게 행동했던 거였어요. 죄송해요... 근데 중요한 건 제가 쿨하지 못해서가 아닌 것 같아요" 애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참을 망설이다 일생일대의 비밀을 털어놓듯 속삭였다. "제가 연애 경험이 없거든요. 근데 에밀리도 에릭도 이 애랑 사귀었다가 저 애랑 사귀었다가 벌써 몇 번이나 그랬거든요. 전교생이 다 알아요. 그런데 전..." "연애 경험 없는 게 뭐 어때서!" "아, 선생님 조용히 하세요...!" 마흔 살에 아다인 사람도 있다- 라는 말은 애런에게 위로도 되지 않을뿐더러 나 역시 절대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중학생이 연애 경험 없는 건 당연한 거라고 해도 애런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과학 수업 듣는 애들 중에 아직 첫 키스도 못 해본 건 아마 자신뿐일 거라면서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애들이란... "너 혼자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다른 이유일 수도 있고, 그냥 하루아침에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에밀리의 마음은 에밀리만 아는 거잖아." "다른 이유요?" "아... 글쎄. 뭐, 데이트할 때 실수한 거 없어?" "실수... 그런 거 없어요!" 그래, 이 어린애들이 무슨 대단한 데이트를 했겠으며 실수라고 해봐야 귀여운 실수겠지. "엄마 카드를 훔쳤는데, 그게 신용카드가 아니라 코스트코 카드였어요. 그래서 제가 음식값을 못 냈거든요..." "아, 아이고... 그랬구나. 그럼 차라리 에밀리한테 그땐 미안했다고 하면서 다시 데이트 신청을 해보는 건 어때? 그리고 엄마 카드는 왜 훔친 거야? 데이트 하게 용돈 좀 달라고 하면 분명 주셨을 텐데." "버리고 도망 나왔어요." "뭘...?" "에밀리를요." "뭐?!" "결제할 수 없는 카드란 걸 알게 된 순간 너무 무서워서... 저도 모르게 그냥 가게 문을 열고 뛰쳐나갔어요. 당연히 에밀리가 따라 나올 줄 알았는데 안 오더라고요." 결국은 에밀리가 비상금으로 결제했고, 넌 천하의 겁쟁이고 쓰레기 찐따라는 DM를 받은 뒤에 차단당한 것 같다고 했다. 지금까지 무슨 얘기를 들은 건지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에밀리랑 다시 잘 될 수 있을까요? 선생님 말씀대로 다시 기회를..." "애런. 에밀리를 그냥 내버려둬." "하지만 누구나 실수를 하잖아요!" "바로잡을 마음이 없으면 그건 애초에 실수가 아냐. 정말 실수였다면 일주일이 훌쩍 지나도록 사과 한 마디 없이 이렇게 대충 넘어가선 안 되지. 정식으로 사과하고 그 돈을 돌려준다든가, 응? 절반이라도 말이야. 그럴 생각은 해봤니?" '위이잉-' 책상 위에서 핸드폰 진동음이 길게 울렸다. '코틀랜드, 호신술' 아직도 저장된 이름이 이 모양이었다. 애런을 대충 타일러 돌려보내고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라이, 바쁘죠? 그래도 학교 끝났을 시간이라 전화해봤어요." "코티는 지금 수업할 시간 아니에요?" "원래라면 그렇죠. 그런데 오늘은 문 닫았어요." "왜요...?" "그냥요."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주고 받는 말 사이의 정적까지도. "그냥 그런 게 어딨어요... 이유가 있으니까..." "기분이 별로 안 좋아서요. 재미가 하나도 없고 무기력해요." "......" "그래서 말인데. 오늘 퇴근하고 나 안 만날래요? 우리 평일엔 잘 못 만나니까." 코티는 내가 일주일 넘게 자신을 만나주지 않아서라고, 토요일에 체육관에 들르지 않아서라고, 일찍 퇴근하는 월요일에도 야근 핑계를 대서라고 말하는 대신 우리가 평일에 잘 못 만나는 직장인 커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인 것처럼. "좋아요. 사실은 오늘 밤에라도 잠깐 만나자고 하려 했어요." "어... 그건 좀 무서운데요. 그냥 만나지 말까요?" "5시에 우리 저번에 봤던 2층 카페에서 만나요." 학교 앞으로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남의 차에 자전거를 싣고 있는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코티 성격에 운전석에 얌전히 앉아 나 혼자 자전거 싣는 걸 기다릴 것 같지도 않고. 애런과 대화하기 전까진 오늘 그 사람을 만날 계획이 없었기에 거울 속 내 모습이 유독 추레하게 느껴졌다. 카페에 도착하니 코티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코티는 나를 반가워하면서도 조금은 긴장한 듯 보였다. 그리고 살짝 피곤해 보이기도 했고. "보고 싶었어요." "잘 지냈죠? 미안해요. 연락, 잘 안 받아서..." "괜찮아요. 바쁘면 그럴 수도 있죠." "...바빠서 그런 거 아니에요." 코티의 얼굴이 천천히 굳는가 싶더니 이내 어색한 미소가 뒤따랐다. "커피 먼저 주문할까요? 내가 갔다 올게요. 오트라떼 마실 거죠?" 오늘은 라떼를 두 잔이나 마셔서 다른 걸 먹겠다고 말할 틈도 없이 코티는 주문대로 향했다. 매번 에스프레소만 마시던 사람이 오늘은 웬 펌킨라떼를 시켰단다. 그러고보니 곧 할로윈인데, 이 사람도 할로윈 분장 같은 걸 할까? 나는 올해도 스크림의 고스트페이스다. 공포영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검은색 천을 뒤집어쓰고 고스트페이스 가면만 착용하면 끝이니 아주 편리하다. "펌킨라떼 원래 좋아했어요?" "그냥 시켜봤어요. 양이 많아 보여서." "아... 혹시 배고파요?" "오래 마셔야 오래 얘기할 수 있잖아요. 물론 헤어지잔 얘기할 거라면, 펌킨라떼고 뭐고 다 소용없지만." 역시, 코티는 내가 헤어지자고 할까 봐 긴장하고 있었다. "헤어지잔 얘기 아니에요. 그러려고 만나자고 한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오늘 밤에라도 만나려고 했다길래... 사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나왔어요." "그게 아니라... 사과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어요." 입이 영 떨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마주 앉으니 하고 싶은 말이 마구 떠올랐다. 코티는 두 개의 머그잔 사이로 굳이 손을 집어 넣어 내 손을 꽉 쥐었다. 손등에 뜨거운 잔이 닿아 빨개지는 것도 꾹 참으면서. "그날, 우리 그런... 시간을 보냈잖아요. 그리고 다음날부터 내가 연락도 잘 안 받고, 답장도 잘 안 하고 또 토요일에 체육관에 들르지도 않고... 유일하게 하루 종일 데이트할 수 있는 일요일에도 다른 핑계 대며 안 만났고요. 월요일엔 일도 일찍 끝나면서 야근한다고 거짓말..." 이건 말할 생각 없었는데. 코티의 눈썹이 축 쳐졌다. "거짓말이었어요? 몰랐어요..." "미안해요. 야근 안 했고 그냥 집에 일찍 갔어요. 아, 아무튼 내가 그랬던 이유는... 코티한테 무슨 잘못이 있거나 내가 코티가 싫어졌거나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럼 왜 그랬어요? 난 내가 너무 서둘러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좀, 갑작스럽긴 했으니까요. 라이가 이것 때문이 아니라고 해도 나도 사과하고 싶어요." 대화해 보니 별일도 아니었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별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해버리고 이 자리에서 뻥 차이든 어쩌든 결판을 내야지. "나, 나... 그러니까 내가 자꾸 코티를 피했던 이유는..." "편하게 말해요. 라이, 난 정말 그게 뭐든..." "첫경험이라 그랬어요." "네...?" 주변이 조용해졌다. 원래부터 조용했던 건지 내가 첫경험이란 단어를 너무 크게 말한 건지 헷갈렸다. 매장 음악 소리가 원래 이렇게 작았나? 코티와 나는 서로 마주본 채로 굳어버렸다. 그래, 놀랍겠지. 바쁘게 즐기며 재미 봐야 할 나이에 아다 남자친구라니. 정말 성가시고... 내가 이상해 보이겠지... 그치만 나도 내가 여태 아다로 남을 줄은 상상도 못... "그게 뭐 어때서요. 정말 그 이유 때문에 날 피한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던 코티는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더니 웃기 시작했다. "난 또 뭐라고. 그날 바로 얘기하지 그랬어요." "어떻게 얘기해요... 마흔 살이나 돼서 처음이라고... 분명히 이상하다고 생각할 텐데. 게다가, 처음인 상대는 좀 성가시잖아요. 그래서 코티가 싫어할 것 같았어요." "그럼, 그 딜도는..." 잊고 있던 데이빗을 언급하다니. 주변을 빠르게 돌아본 뒤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남자랑 실제로 안 해봤다는 소리예요. 나도 하고 싶은 욕구는 있으니까 이런저런 도구로 혼자 해보긴 했는데... 사람이랑 다 벗고 그런 건..." 코티가 나를 쳐다보는 얼굴이 조금 이상했다. 눈은 멍하고 자꾸만 혀로 입술을 낼름낼름 핥았다. "그 변태같은 표정은 뭐예요?" "아, 미안해요. 티 났어요? 이런저런 도구로 해봤다고 해서... 나도 모르게 상상이 돼가지고. 미안해요." "아무튼...! 처음이라... 무서워서 그랬어요. 내가 이 나이에 처음이란 걸 밝혀야 하는 게 무서웠어요." "이런 말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라이의 첫 남자라서 기분 좋아요. 정말이에요. 이제 그딴 실리콘이랑 매일 씨름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다 해줄게요." "아니, 뭐, 뭐라는 거예요...! 누가 매일 한대요?" 두 손을 꽉 잡고 있느라 커피는 한 모금도 못 마셨는데 얼굴이 후끈거렸다. 코티의 얼굴도 묘하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정말 말 그대로 기분이 좋아보여서 의아할 정도였다. 내가 아다라는 사실이 그렇게까지 좋은 걸까? 내 생각과 달리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개의치 않는 태도였다. 마흔 살 먹고 첫경험인 주제에 또 이것저것 도구는 써봤다고 말하는 게, 조금도 우습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짜 하루라도 더 빨리 말할 걸 그랬어요." "앞으로는 뭐든 망설이지 말고 얘기해요. 나한텐 다 말해도 돼요. 당신이 그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고 싶어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요." 이런 게 아무도 다치지 않는 평범한 연인 관계라는 거구나. 희롱 당하고, 이용당하기만 했던 어그러진 관계들과는 차원이 다른 안정감이 느껴졌다. 논문 승인을 받기 위해 몇 번이나 지도 교수의 물건을 빨았다. 자꾸만 엉덩이를 만지고 허리를 감싸는 손길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결국 대학원을 때려치우고 교사 양성과정을 수료한 게 당시엔 피눈물 났지만, 이렇게 코티를 만날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인 일이다. 만약 계속 대학원에 남아 석사, 박사 과정을 밟았다면 지금쯤 내가 원하는 연구실에서 실컷 연구만 하고 살 수는 있겠지만 계속해서 그 교수의 물건을 빨아야 했을지 모른다. "근데 진짜 처음이에요? 라이처럼 잘생기고 귀여운 사람이 어떻게 한 번도 못해봤을 수가 있어요?" "그만 놀려요..." "놀리는 거 아니에요. 내가 라이의 첫 남자라니, 놀라워서 그래요." "그럼 이제 기분 좀 나아졌어요?" "아, 체육관? 사실은 천장 누수 때문에 공사하고 있어요. 그래서 내일도 안 열어요." "그런 거였어요? 난 또... 나 때문에 울적해서 일도 안 하는 줄 알았어요." "설마요. 라이 때문에 아무리 슬프고 괴로워도 돈은 벌어야죠. 그래야 이렇게 데이트도 하지." 코티는 콧수염에 우유 거품이 묻은지도 모르고 그윽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럴 때 보면 정말 다섯 살이나 어린 사람인 게 확 느껴졌다. "코티, 그럼... 오늘 우리집에 갈래요?" "...그래도 돼요?" "내일 체육관 안 연다면서요. 모처럼이니까, 늦게까지 같이 놀면 어떨까 해서요..." 좋다는 대답 대신 코티는 서둘러 차키와 지갑을 챙겨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펌킨라떼는 겨우 두 모금 홀짝여 찰랑찰랑한데 그대로 쟁반을 들어 반납대에 갖다 치우기까지 했다. "빨리 가요. 시간 없어요." "그, 근데 집이 좀 더러워요. 오늘도 밖에서 좀 기다려야 해요." "알겠어요. 오늘은 딜도 진열해 놓지 말고 잘 숨겨요. 아니, 이제 그딴 거 필요 없으니까 갖다 버려요." 체육관에서보다 날쌘 동작으로 코티는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차 트렁크에 자전거를 싣고 운전석으로 돌아오는 얼굴이 티 나게 상기되어 있어 조금은 겁이 났지만, 코티니까 모든 게 다 괜찮았다. 고슬고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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