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애 재우고 나서 씁니다. 저희 시댁은 대대로 성당 다니는 집이고 저희 친정은 절에 다니는 집이에요. 결혼할 때 이 얘기 안 나온 건 아니었어요. 남편이 종교는 각자 알아서 하자고, 애가 생기면 애가 커서 스스로 정하게 하자고 먼저 말했고 저도 그게 맞다고 생각해서 결혼했어요. 시어머니도 그 자리에서 요즘 세상에 그럼 되지 하셨고요. 아이가 올해 다섯 살이 됐어요. 지난달 시댁 갔을 때 시어머니가 성당 유아세례 신청서를 꺼내셨어요. 이번 성탄 전에 받으면 좋겠다고, 대부모도 벌써 시누 남편으로 정해놨다고요. 저는 그 자리에서 결혼 전에 정한 대로 애가 크면 스스로 정하게 하자고 말씀드렸어요. 시어머니 얼굴이 굳으셨는데 그건 예상했어요. 진짜 허탈했던 건 집에 오는 차 안에서였어요. 남편이 운전하면서 그러더라고요. 세례 하나 받는 게 뭐 그렇게 큰일이냐고, 엄마가 저렇게 원하시는데 받게 해드리자고요. 제가 결혼 전에 당신이 먼저 말한 거 기억 안 나냐고 했더니 그땐 애가 없을 때 얘기였대요. 친정엄마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엄마는 또 그럼 우리 절에서 백일기도 올린 건 뭐가 되냐고 서운해하셨어요. 저는 애 이름으로 절에 연등 다는 것도 친정엄마가 혼자 하시는 거라 그냥 두고 있었거든요. 이제 와서 그것까지 문제가 되니까 양쪽 사이에 끼어서 숨이 막혀요. 남편은 지금 제가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애가 커서 안 다니면 그만인데 왜 형식 하나로 엄마를 서운하게 하냐고요. 근데 저는 형식이라서 더 싫은 거예요. 애는 아직 성당이 뭔지도 모르고 십자가 보면 칼이냐고 묻는 나이예요. 그런 애한테 어른들 마음 편하자고 이름 하나 더 붙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중에 애가 커서 왜 나한테 묻지도 않고 정했냐고 하면 그땐 누가 대답해주나요. 어제 시어머니가 남편한테 전화로 신청서 언제 낼 거냐고 물어보셨대요. 남편은 이번 주 안에 낸다고 했고요. 저한테는 아무 말 없이요. 저녁에 남편이 식탁에 그 신청서를 올려두고 서명란에 엄마 이름 칸만 비워놨더라고요. 지금 그 종이가 아직 식탁 위에 있어요.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랑 그냥 서명하고 끝내고 싶은 마음이 반반이에요. 결혼 전에 했던 약속이 애 하나 생기니까 이렇게 쉽게 없던 일이 되는 건가 싶어서 그게 제일 허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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