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먼저 할아버지 곁으로 이사 가자고 했는데 장...

저희 할아버지가 올해 아흔이세요. 할머니 돌아가시고 시골집에서 혼자 사신 지 6년 됐어요.
제가 어릴 때 부모님이 맞벌이라 할아버지 손에서 컸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아버지 같은 분이에요.
지난달에 할아버지가 마당에서 넘어지셨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으셨는데 그날 밤에 한숨도 못 잤습니다.
그 다음 주말에 아내가 저녁 먹다가 갑자기 그러더라고요. 우리 그냥 할아버지 댁 근처로 이사 갈까?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어요. 아내 직장도 여기 있고 애들 학교도 있으니까요.
근데 아내가 진지하게 이미 다 알아봤대요. 할아버지 댁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아내 회사 지점이 있고, 거기로 전보 신청할 수 있다고요. 애들 학교도 거기 초등학교가 한 반에 열 명 남짓이라 오히려 좋을 것 같다고요.
솔직히 그 말 듣고 연애할 때보다 더 설렜어요. 이 사람이랑 결혼 잘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확 들었달까요.
문제는 장모님이었어요.
지난 일요일에 처가 가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더니 표정이 확 굳으시더라고요. 시골 가서 시할아버지 수발들라고 내 딸 키운 줄 아냐고 하셨어요.
아내가 엄마 그런 거 아니라고, 모시고 사는 게 아니라 근처에 사는 거라고 몇 번을 말해도 안 들으세요. 장인어른도 한두 번 거드시다가 그냥 조용히 계셨고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엄마는 자기가 시집살이 해봐서 그런 거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요.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요. 저 때문에 아내가 친정이랑 틀어지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할아버지께는 아직 말씀 안 드렸어요. 말씀드리면 분명히 오지 말라고 하실 분이라서요. 손주며느리 고생시키는 거 제일 싫어하시는 분이거든요.
어제 전화드렸더니 마당에 감이 많이 열렸다고, 애들 데리고 따러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목소리가 작년보다 많이 작아지셨어요.
전화 끊고 아내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아내가 먼저 그럼 더 서둘러야겠네 하더라고요.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어요.
저희 부모님은 아직 이 얘기를 모르세요. 아시면 며느리한테 너무 미안해하실 거라 아내랑 상의해서 정해지면 말씀드리기로 했어요.
아내는 이번 주에 전보 신청서를 내겠다고 해요.
장모님 마음도 이해가 가고 아내 마음은 너무 고맙고, 그 사이에서 저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단 감 따러 가는 날은 온 가족이 다 같이 가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