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이 안 와서 써요 월요일인데 벌써 피곤하네요 결혼 9년 차고 초등학생 둘 키워요 저는 지금 전업이고 남편은 회사 다녀요 애들 어릴 땐 맞벌이였는데 둘째 낳고 그만뒀어요 어제 일요일에 남편이 오랜만에 집안일을 했어요 본인 말로는 하루 종일 했대요 저녁에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집안일은 진짜 해도 해도 티가 안 난다고, 당신 그동안 고생 많았겠다고요 처음엔 고맙다고 했어요 진짜로요 근데 자기 전에 집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웃음이 나더라고요 설거지는 했는데 싱크대 거름망에 음식물이 그대로 있어요 빨래는 돌렸는데 건조기에 그대로 있고요 꺼내서 개는 건 안 했어요 청소기는 돌렸는데 소파 밑이랑 침대 밑은 손도 안 댔어요 거실 가운데만 동그랗게 돌렸더라고요 화장실 청소했다길래 가봤더니 세면대만 닦았어요 변기는 그대로고요 애들 저녁은 배달 시켜줬대요 그 배달 용기는 현관 앞에 묶지도 않고 놓여 있었고요 저는 제가 하루 집안일 하면 티가 나요 애들이 엄마 오늘 집 냄새 좋다고 해요 남편도 퇴근하고 들어오면 오 깨끗하네 하고요 근데 남편이 하면 티가 안 나요 그건 집안일이 원래 티가 안 나서가 아니라 반만 해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남편 출근하기 전에 말했어요 어제 고생한 건 아는데 집안일이 티가 안 나는 게 아니라 끝까지 안 해서 그런 거라고요 건조기 빨래 개는 거, 음식물 버리는 거, 변기 닦는 거 그게 다 집안일이라고요 남편 표정이 확 굳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루 종일 해줬는데 고맙단 말은 못 할망정 채점을 하냐고요 그리고 애들 키우면서 집에 있는 사람이 이 정도는 당연히 하는 거 아니냐고 본인은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해줬는데 돌아오는 게 잔소리라고요 해줬다는 말에서 진짜 말문이 막혔어요 같이 사는 집인데 왜 해준 거예요 저는 9년 동안 매일 하는데 한 번도 해줬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 그 말에 제가 그럼 앞으로 주말엔 내가 쉬고 당신이 끝까지 다 해보라고 했더니 아 됐다 그냥 내가 다시는 안 하면 되겠네 하고 문 닫고 나갔어요 남편 나가고 건조기 빨래를 혼자 개는데 남편 와이셔츠가 맨 위에 구겨진 채로 있더라고요 그거 다림질까지 하고 나니까 아홉 시였어요 애들은 아침밥 먹으면서 다 들었고요 큰애가 엄마 아빠 싸웠어? 하는데 아니라고 웃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티 안 난다는 그 말이 처음엔 저를 알아주는 말인 줄 알았어요 근데 자고 일어나서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냥 본인이 한 게 티가 안 나서 서운하다는 말이었어요 오늘 저녁에 남편 들어오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무 말 안 하면 또 저만 9년째 혼자 하는 거고 말하면 또 채점하는 마누라 되는 거고요
📰
이슈
-
·
-
·
약 1분 분량
·
0
|
댓글
댓글을 작성하려면 회원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