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산 지 8년째예요 식은 안 올렸고 혼인신고도 안 했어요 처음엔 둘 다 그게 편했어요 서로 한 번씩 파혼 경험이 있어서 서류에 묶이는 게 싫었거든요 양가 부모님한테도 인사는 다 드렸고 명절도 번갈아 가면서 다녔어요 주변에서는 다들 저희를 부부로 알아요 저도 그냥 그렇게 살았고요 문제는 올봄에 제가 갑상선 수술을 받으면서 생겼어요 수술 동의서에 보호자 서명이 필요했는데 그 사람이 서명을 못 하더라고요 법적으로 아무 관계가 아니라서요 결국 지방에 계신 친정엄마가 새벽 버스 타고 올라오셔서 서명하셨어요 수술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그 사람 쳐다보던 눈빛을 아직도 못 잊어요 병실에서 엄마가 저한테만 조용히 물었어요 너 저 사람이랑 앞으로 어떡할 거냐고 저는 그냥 괜찮다고 웃었어요 그게 제일 쉬운 대답이라서 퇴원하고 나서 처음으로 혼인신고 얘기를 꺼냈어요 그 사람 첫 반응이 왜 갑자기 그러냐였어요 갑자기가 아니라 8년 만에 처음 말하는 거라고 했죠 그랬더니 지금까지 잘 살았는데 굳이 그걸 해야 하냐고 하더라고요 그 뒤로 몇 번 더 얘기했는데 매번 말이 조금씩 달라져요 한 번은 자기 어머니가 서운해하실 거라고 하고 한 번은 재산 문제가 복잡해진다고 하고 한 번은 우리 나이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고요 재산 얘기가 나왔을 때 처음으로 좀 무서웠어요 이 집 전세금 절반은 제 돈이거든요 계약서는 그 사람 이름으로 돼 있고요 그동안은 한 번도 그게 문제라고 생각 안 했어요 같이 사는 집이니까요 근데 재산이라는 단어가 그 사람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 집이 갑자기 남의 집처럼 느껴졌어요 지난주 목요일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한테 말했어요 올해 안에 혼인신고 안 할 거면 헤어지자고 목소리가 떨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담담하게 나오더라고요 그 사람은 신발 신다가 멈춰서 한참 서 있더니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나갔어요 그 뒤로 일주일째 집에서는 평소랑 똑같이 지내요 밥 먹고 티비 보고 주말엔 같이 마트 가서 장도 보고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요 근데 그 얘기는 둘 다 한 마디도 안 꺼내요 어제 그 사람 폰에 어머니 전화가 왔는데 베란다로 나가서 받더라고요 8년 동안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어요 어머님이라고 부른 지 8년 된 분인데 그 통화가 제 얘기라는 건 안 들어도 알겠더라고요 저는 지금 제가 너무 늦게 말한 건지 아니면 말하지 말았어야 했던 건지 모르겠어요 마흔셋에 헤어지면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래도 다음에 또 아프면 그때는 엄마를 부르고 싶지 않아요 그 생각 하나로 버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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